[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⑳ 전환은 교육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 시리즈를 닫으며 이 시리즈를 시작한 건 2026년 4월이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노총의 간담회에서 한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였다. 양경수 위원장은 "피지컬 AI의 도입은 일자리의 변화가 아니라 소멸을 추구한다"고 경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피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 스마트팩토리 도입 5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인력이 더 필요하더라는 사례를 들며 "너무 공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안에 한국 사회가 앞으로 10년 동안 마주할 모든 논쟁의 요소가 거의 다 담겨 있었다. 지난 20회에 걸쳐 그 논쟁을 하나씩 풀어왔다. 스마트팩토리 고용 증가 통계의 실제를 검증했고(3편), 독일과 일본의 제도를 비교했고(8편·14편), 한국의 세수 구조까지 다뤘다(19편). 마지막 편에서, 이 모든 논의를 하나의 명제로 수렴시키려고 한다. 전환은 교육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5월 20일 — 시리즈가 던진 질문이 현실에서 답을 받은 날 이 편을 쓰기 전에 한 사건을 짚어야 한다. 5월 20일 밤 10시 30분, 총파업 90분 전 — 삼성전자 노사가 극적으로 잠정합의했다. 핵심은 이렇다. DS(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의 12%(기존 OPI 1.5% + 신설 특별경영성과급 10.5%)를 향후 10년간 성과급 재원으로 제도화한다. 다만 2026~2028년은...
강 민신 2026.05.30 추천 2 조회 49
광기는 무지가 아니라 인쇄기에서 시작됐다 — 유발 하라리 『넥서스』를 읽고 하라리가 들려주는 정보의 역사는 우리가 무심코 믿어온 신화 하나를 흔든다. "정보가 많아지면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그 신화. 그가 꺼내드는 반례들은 시대를 넘나들며 독자를 끌어당긴다. 1486년의 한 베스트셀러, 차우셰스쿠가 모은 2,000만 명의 필적, 그리고 머스크가 서명한 6개월 모라토리엄까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인류가 정보를 다뤄온 방식이 이렇게도 일관되게 어수선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1. 1486년, 한 권의 베스트셀러가 광기를 만들었다 도미니쿠스 수도사 하인리히 크라머는 자신의 '마녀 잡기' 사업이 잘 풀리지 않자 책을 한 권 썼다. 제목은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 마녀를 식별하고 고문하고 처형하는 방법을 담은 매뉴얼이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인쇄술이라는 새로운 정보 기술 덕분이었다. 1487년 첫 출간 이후 200년 동안 30판 넘게 찍혀 유럽 전역에 퍼졌고, 그 책이 지나간 자리마다 화형대가 세워졌다. 하라리가 이 이야기를 책 앞부분에 배치한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인쇄기는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빠르게 전달했다. 그러나 그 내용물은 진실이 아니라 광기였다. '정보의 양이 곧 진실의 양은 아니다.' 이 평범한 명제를 그는 마녀사냥에서 종교개혁으로, 식민지 선전으로, 그리고 오늘의 SNS 알고리즘으로 이어 붙인다. 우리는 더 많이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더 빨리 잘못 알게 됐을 뿐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분노를 권하는 풍경. 가짜뉴스가 진짜보다 먼저 도착하는...
외민동 관리자 2026.05.09 추천 1 조회 111
농협 조직개편의 방향 — 다수 조합원의 자치와 농업경제의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농협 개혁이 다시 시국의 한복판에 들어왔다. 정부와 여당은 6·3 지방선거 이전 입법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고, 농협 자율성 수호 비대위는 국회 앞에서 2만 명 규모의 결의대회로 맞서고 있다. 양쪽 다 국회 청원을 띄웠고, 입법을 앞둔 막판 국면이다. 여기서 농협 자율성 수호 비대위가 누구인지 짧게 짚어두자. 정식 명칭은 농협 자율성 수호 비상대책위원회. 정부·여당의 농협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전국 농·축협 조합장들이 결성한 조직이다. 박경식 안산농협 조합장, 이주환 조합장 등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4월 21일 여의도에서 농민·조합원 2만여 명이 운집한 결의대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비대위 출범을 공식화했다. 비대위는 (1) 정부 감독 확대 중단, (2) 자회사 지도·감독권 존치, (3) 농협감사위원회 신설 철회, (4) 중앙회장 직선제 변경 시도 중단 등을 요구하며, 정부 개정안을 관치(官治) 회귀로 규정한다. 즉 비대위의 핵심 동력은 조합장들이다. 이 점은 이 글의 분석에서 중요한 지점이 된다 — 왜 조합장들이 한목소리로 직선제 도입에 반대하는가. 농협 문제는 평소 농업·농촌과 거리가 있는 사람에게는 낯설다. 그런데 숫자를 보면 그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진다. 농협 전체 자산은 700조 원이 넘고, 그중 농협금융지주만 자산이 600조 원에 가깝다. KB·신한·하나·우리와 함께 한국 금융을 떠받치는 5대 금융지주 중 하나다. 단위농협은 전국에 1,110개, 조합원은 208만 명. 한국 농촌 어디서나 농협 간판이 보이고, 비료·농기계·농산물 유통·금융이 모두 농협을 거친다. 이 거대한 조직이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외민동 관리자 2026.05.06 추천 3 조회 191
우리 선박이 피격됐다는데, 정말 그런가 알아보자 트럼프의 단정, 한국 정부의 침묵, 그리고 외신이 보여주는 풍경 들어가며 뉴스가 뜨겁습니다. 2026년 5월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박이 폭발과 화재를 겪었습니다. 트럼프는 즉시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공격했다" 고 단정했고, 같은 호흡으로 "이제 한국이 임무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다" 며 사실상 파병을 요구했습니다. 한국의 트럼프 맹종자들이 빠르게 호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선박이 맞았으니 우리도 가야 한다" 는 논리입니다. 직관적으로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잠시 멈춰 묻고 싶습니다. 정말로 이란이 쐈는가? 그것을 누가 확인했는가? 이 글에서는 외신 보도와 한국 정부 발표를 교차 검증해, 지금 이 시점에 무엇이 사실로 확인됐고 무엇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지 차분하게 정리해보려 합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누구도 단정한 사람이 없습니다. 트럼프 한 명을 빼고는. 1. 사실관계 — 무엇이 일어났는가 먼저 검증된 사실부터 짚습니다. 출처는 모두 외신과 한국 정부 공식 발표입니다. 선박 정보 선박명: HMM Namu (HMM이 운영하는 벌크선) 국적기: 파나마 선적 — 한국 선적이 아닙니다 운영사: HMM (한국 해운사, 코스피 상장 011200.KS) 승무원: 24명 (한국인 6명 + 외국인 18명) 인명 피해: 없음 사고 정보 시점: 2026년 5월 4일 (월요일) 위치: UAE 연안에 정박 중 —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 항행 중이 아니었습니다 화재 발생 위치: 기관실 좌현(port side) — 폭발 후 화재 발생 5월 5일 현황: 화재 진압 완료, 두바이 항구로 예인 예정 HMM(선박 운영사)의...
외민동 관리자 2026.05.05 추천 0 조회 108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⑲ 일자리는 줄고, 이윤은 늘고, 세금은 사라진다 — 그럼 복지국가는 누가 지키나 지금까지 시리즈는 주로 노동 자체의 문제를 다뤄왔다. 이번 편에서는 시야를 한 발 넓혀보려고 한다. AI가 노동을 대체하면서 동시에 무너뜨리는 게 또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세수의 기반이다. 이게 왜 단순히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국가가 설 자리를 흔드는 문제인지 — 한번 짚어보자. 한국 세수에서 일어난 사건 2024년에 한국 세수에서 사상 처음 보는 일이 일어났다. 국세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근로소득세 비중이 법인세 비중을 넘어선 것이다. 수치를 보면 이렇다. 2022년에는 법인세 비중이 26.2%, 근로소득세 비중이 15.3%였다. 그런데 2024년이 되니 법인세 비중은 18.6%로 떨어지고, 근로소득세 비중은 19.1%로 올라갔다. 2년 사이 법인세 비중은 7.6%포인트나 떨어졌고, 근로소득세 비중은 3.8%포인트 올라간 것이다. 방향이 정반대로 갈렸다. 근로소득세의 절대 금액 자체도 가파르게 늘었다. 2020년에는 40조 9천억 원이었던 것이, 2025년에는 68조 4천억 원이 됐다. 5년 만에 67%가 늘어난 셈이다. 법인세는 어떤가. 2022년에 103조 원이었던 것이 2024년에는 62조 5천억 원으로 떨어졌다. 2년 만에 사실상 반토막이 난 것이다. 기업 실적이 나빠진 것과 정부의 감세 정책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이 변화가...
강 민신 2026.05.04 추천 0 조회 122
이라크 전쟁을 능가하는 외교 실패 — 미어샤이머가 본 이란 전쟁의 풍경 시카고 대학 미어샤이머 교수의 진단, 그리고 한국에 주는 함의 들어가며 학자가 자기 분야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를 꺼내는 일은 드뭅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 대학 정치학 교수. 공격적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을 만든 사람입니다. 1980년대부터 NATO 확장의 위험을 경고했고, 그 예측은 지금까지 거의 다 들어맞았습니다. 그런 그가 50년 학자 인생에서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표현을 다니엘 데이비스와의 인터뷰에서 꺼냈습니다. "이번 전쟁은 미국이 저지른 사상 최대의 외교 실수로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 자리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번이 쉽게 그것을 능가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능가한다. 학자가 이런 말을 할 때는, 가볍게 던지는 말이 아닙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진단을 정리하고, 그것이 한국에 어떤 의미인지 함께 짚어보려 합니다. 1. 미어샤이머는 누구인가 먼저 발언자의 무게부터 짚어야 합니다. 미어샤이머는 그저 평론가가 아닙니다. 시카고 대학 R. 웬들 해리슨 석좌교수, 그리고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라는 국제정치학의 한 학파를 세운 사람입니다. 2001년에 쓴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는 이 분야의 고전이 됐고, 2014년 Foreign Affairs에 실린 "왜 우크라이나 위기는 서방의 잘못인가"는 NATO 확장 비판의 결정판으로 꼽힙니다. 무엇보다 그의 예측은 거의 다 맞았습니다. 1990년대 NATO 확장이 위험하다고 했고, 그 결과가 우크라이나에서 터졌습니다. 미·중 패권 경쟁의 구조도 일찍부터 짚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이란 전쟁의 결말까지. 그런 사람이 이번 전쟁을 두고 "미국 사상...
외민동 관리자 2026.05.04 추천 0 조회 119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⑱ 사회적 대화 기구의 비용과 편익 — 민주노총은 어디에 앉을 것인가 2편에서 대통령의 "협조해 달라"와 민주노총의 "참여시켜라" 사이의 거리를 다뤘다. 이 차이는 그저 말투의 차이가 아니다. 결국 어느 테이블에 앉을 것인가라는 현실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이번 편은 그 선택을 어떻게 풀어낼지 짚어보려고 한다. 지금 민주노총 앞에는 테이블이 세 개 놓여 있다. 경사노위, 국회 사회적 대화, 노정 협의체. 각각이 어떤 자리이고,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또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를 하나씩 따져보자. 26년간의 거절 민주노총이 1999년 2월 노사정위원회(현 경사노위)를 탈퇴한 지 26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 번도 복귀하지 않았다. 이 긴 거절의 역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물론 그동안 복귀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당시 지도부가 노사정 대화 복귀를 선언했지만 내부 강경파의 반발에 막혔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복귀 물꼬가 트이는 듯했지만 2018년 6월 최저임금 심의를 둘러싼 갈등으로 무산됐다. 거절의 이유는 매번 같았다. 갔더니 이용만 당했다는 경험.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4월 간담회에서 이 경험을 정면으로 인정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갔더니 이용만 당하고, 형식적으로 회의 몇 번 하고 화나죠. 이해한다." 대통령이 민주노총의 거절을...
외민동 관리자 2026.05.03 추천 0 조회 73
카리브해의 조용한 권력 이동 — 러시아·터키의 쿠바 진출이 의미하는 것 트럼프의 "도르로 독트린"이 무너지는 풍경 들어가며 카리브해는 늘 그랬다. 미국이 자기 안마당이라 부르는 그 푸른 바다에서, 작은 일들이 큰 변화의 씨앗이 되곤 했다. 1898년 메인호가 침몰했을 때도. 1962년 소련 미사일이 발견됐을 때도. 그리고 지금, 2026년 봄에도. 세계의 시선은 호르무즈에 쏠려 있습니다. 이란 전쟁. 봉쇄. 유가의 비명. 그러나 그 사이,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 위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리고 위험하게. 러시아의 유조선 한 척이 미국 봉쇄를 뚫고 쿠바에 닿았습니다. 두 번째 유조선은 러시아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영국해협을 통과했습니다. 터키의 부유식 발전선이 쿠바 전력의 4분의 1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키 웨스트에서 드론과 AI 함대를 동원한 군사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트럼프가 "먼로 독트린의 부활"이라 선포한 정책이 시작된 지 불과 몇 달. 카리브해는 지금, 21세기 강대국 게임의 새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외신 보도와 유엔 문서 등 검증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그 풍경을 정리하고, 한국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짚어보려 합니다. 다만 미리 한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이 글이 쓰여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두 번째 러시아 유조선은 대서양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 결말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1. 배경 — 트럼프의 "도르로 독트린"과 쿠바 봉쇄 이야기는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됩니다. 2026년 1월 3일 새벽, 미군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작전명 "절대 결의 작전"(Operation Absolute Resolve)으로 체포했습니다....
외민동 관리자 2026.05.03 추천 1 조회 63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⑰ 돌봄·보건 일자리의 허와 실 — AI 시대의 '남은 일자리'는 해답이 될 수 있는가 AI 시대 일자리 논의에서 항상 등장하는 답이 있다. "돌봄과 보건 일자리는 AI가 대체할 수 없다. 여기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2026년 이재명 정부의 일자리 정책도 이 방향을 중심에 두고 있다. 2026년 3월 통합돌봄 전국 시행, 재택의료센터 확충(192개 → 250개), 통합재가기관 확대, 요양보호사 처우개선. 수치만 보면 분명 AI 시대의 새로운 일자리 축이 여기 있다. 그러나 이 편은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돌봄·보건 일자리가 AI 시대의 해답이라면, 왜 이 일자리는 지금도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바뀔 수 있는가. 숫자로 보는 현실 — 요양보호사의 삶 2025년 요양보호사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10,030원 선에서 정해진다.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는 1년을 일하든 15년을 일하든 최저임금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정부가 2026년 1월 보건복지부 고시로 발표한 "처우개선" 내역을 보자. 근속 7년 이상 요양보호사에게 월 최대 38만 원의 수당을 지급한다. 구성은 장기근속장려금 18만 원 + 농어촌 지원금 5만 원 + 선임 요양보호사 수당 15만 원. 이것은 분명 개선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7년 근속 후에도 기본급 외 수당이...
강 민신 2026.05.02 추천 0 조회 153
삼성 45조는 누구의 몫인가 — 메모리세 시론 오길준 동문의 분노는 정당하다 지난 일주일 외민동 단톡방에서 삼성 초기업노조 파업을 둘러싸고 글이 오갔다. 백철현 동문의 노조 옹호 글이 먼저 올라왔고, 오길준 동문이 본격 비판 글을 두 차례 연이어 올렸다. 사측을 옹호할 의도는 아니라고 거듭 못 박으면서도, 통계와 사례로 다져진 분석이었다. 오길준 동문의 분노는 정당하다. 분노의 핵심은 한 줄로 압축된다 —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국내 임직원이 1인당 약 6억씩 가져가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노동운동의 정의에 부합하는가? 이 질문은 옳다. 영업이익 15% 성과급 명문화 = 추정 영업이익 300조 × 15% = 약 45조. 삼성전자 작년 R&D 비용 37조 7천억을 초과하는 규모다.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조합원 7만 5천 명 (전체 임직원 12만 8천 명의 58%, DS 부문 가입률 80%) 중 분배 대상은 반도체 부문 국내 임직원이다. 평균 근속 13년, 평균 연봉 1억 5천만 원의 MZ세대 화이트칼라 집단이다. 같은 사업장에 협력회사 1차 700곳·37만 명·연간 거래 31조 원이라는 협력 생태계가 존재하는데, 이들의 의제는 노조 요구안에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 협성회 201개사 28만 3천 명의 처우 개선 의제도, 2·3차 하청 노동자의 자동화 충격 대비 의제도, 같은 회사 비정규직 의제도 빠져 있다. 같은 사업장에서 함께 잉여를 만든 이들 중 정규직 분배만 의제가 됐다는 사실 — 이것이 오길준 동문이 분노하는 자리다. 이 분노는 시리즈 13편이 다룬 "정규직의 섬, 보호받지 못하는...
외민동 관리자 2026.05.02 추천 0 조회 207
아리랑이 텍사스를 흔들 때, 옛 보안관을 떠올리다 BTS가 지난주 탬파에 이어 이번 주말(5월 2-3일) 엘파소 선볼 스타디움에서 이틀 공연을 한다. 군 제대 후 첫 월드투어 '아리랑'이다. 미국 남부를 가로지르는 도시 이름들이 하나씩 호명될 때, 엘파소에서 문득 한 영화가 떠올랐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텍사스-멕시코 국경의 황량한 사막,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세계 앞에서 무력해지는 늙은 보안관의 이야기. 18년 전 영화지만 지금 다시 보면, 미국이 스스로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한 예언서처럼 읽힌다. 기묘한 장면이 겹쳐진다. 한쪽에서는 한국 청년들이 5만 석 스타디움을 채우며 아리랑을 부르고, 같은 텍사스 사막 어딘가에서는 코엔 형제의 카메라가 비추었던 풍경—해독 불가능한 폭력, 늙은 보안관의 체념—이 현실의 국제정치로 번져 나가고 있다. 소프트파워의 부상과 하드파워의 황혼이 같은 지도 위에서 교차하는 순간이다. 제국의 황혼, 그리고 어둠 속의 불씨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본 미국 패권의 쇠락과 그 너머 늙은 보안관의 절망, 쇠퇴하는 제국의 자화상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는 표면적으로는 텍사스 국경 지역의 마약 거래를 둘러싼 추격전을 그린 범죄 스릴러다. 하지만 이 영화를 21세기 초 미국이 직면한 지정학적 현실의 메타포로 읽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예언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단, 한 가지 단서를 달아두어야 한다. 영화가 지정학적 알레고리로 환원되는 순간 정작 영화의 가장 무서운 핵심—악과 시간의 불가해성 그 자체—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외민동 관리자 2026.05.01 추천 0 조회 111
여성이 열어낸 길 — 어제 들은 윤경회 간사의 5.18 증언 이덕준 선생님의 증언에 이어 두 번째 순서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성폭력 사건 조사팀장을 지낸 윤경회 간사(5·18 열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5.18 당시 다섯 살, 경북에서 자라 1997년에 대학에 입학한 — 그러니까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던 해에 새내기였던 — 세대의 한 분입니다. "직접 겪은 분의 이야기를 제가 전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로 시작된 한 시간이었습니다. "5.18 성폭력이 아니라 5.18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조사위원회는 2024년 6월에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윤 간사는 처음엔 5.18 당시 성폭력만을 조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간호사 출신이고 성폭력 상담 경험도 있어서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그 일은 거뜬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피해 여성들은 자신이 입은 피해뿐 아니라, 그날 광주에서 본 모든 장면들조차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피해를 말하는 것이 큰 수치라고 여겨, 결혼한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손발이 떨리거나 구토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몸이 기억하는 일을 언어로 꺼내는 순간, 트라우마가 통째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윤 간사는 깨달았다고 합니다. "내가 조사하는 게 5.18 성폭력이 아니라, 5.18 자체를 조사하는 일이구나."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5.18은 절반의 기록이었습니다. 가두방송 전옥주 선생님 — 재생산 폭력 가두방송을 한 전옥주 선생님은 "북한에서 왔다, 이렇게 말 잘할 수 없다"는 시나리오에 엮여 끔찍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신군부에게는 명분이 필요했고,...
외민동 관리자 2026.05.01 추천 0 조회 41
소년이 지킨 새벽 — 어제 들은 이덕준 선생님의 5.18 증언 어제(4월 30일) 풀빛문화연대에서 열린 한국외국어대학교 민주동문회 주최 「5·18 46주년 함께 하는 이야기 — 소년이 지킨 새벽, 여성이 열어낸 길!」에 다녀왔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민군 마지막까지 함께한 이덕준 선생님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의 이야기였지만, 사십몇 년이 지난 일이 어제 일처럼 또렷했습니다. 옮길 수 있는 만큼이라도 옮겨두고 싶어 적어 봅니다. 시민군이 된 길 광주의 한 고등학교 문과 4개반 출신이었습니다. 지도교사로 박석무, 윤한봉, 박인성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셨고, 도청 앞 YWCA 양서협동조합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김남주 시인의 글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박정희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아가던 무렵이었다고 했습니다. 10.26 그날 밤, 박석무 선생님을 비롯한 지도교사들이 서부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다음 날 박정희 사망 소식과 함께 모두 풀려났습니다. 학교는 어용 교사 교체와 학도호국단 폭력부 폐지로 한바탕 술렁였고,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듬해 5월 가두로 이어졌습니다. 5월 18일, 처음 본 장면 5월 18일 일요일, 새벽 7시에 도청 앞으로 나갔습니다. 오전 내내 전투경찰과 밀고 밀리다가 친구들과 광주공용터미널 근처 한 친구네 목재상에 들러 밥을 먹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갑자기 바깥이 시끄러워 쌓아둔 나무 위로 올라가 봤더니, 공수부대원들이 트럭에서 뛰어내려 시민들을 무차별로 때리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본 것은 치마에 힐을 신은 여성을 곤봉으로 그대로 내리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시민들이 목재상 안으로 피해 들어오자 대문을 잠갔습니다. 그는 정원 쪽 철문 틈으로 밖을 보고 있었는데,...
외민동 관리자 2026.05.01 추천 0 조회 95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⑯ "공포감을 없애라"는 말의 정치경제학 — 기술 낙관주의는 누구에게 이익인가 간담회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자.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공포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이 한 문장은 이 시리즈 전체의 출발점이었다. 3편에서 이 발언의 근거 데이터(스마트공장 고용 증가)를 검증했고, 공백이 있음을 보였다. 그러나 데이터 검증만으로는 이 발언의 의미를 다 드러낼 수 없다. 이 편의 질문은 다르다. "공포감을 없애라"는 말은 누구에게 이익인가. 그리고 "공포감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측은 누구인가. 이것은 누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말이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떤 효과를 내는가의 문제다. "공포감을 없애라"는 세 가지 효과 대통령의 발언은 선의에서 나왔다. 그 점은 2편에서 충분히 인정했다. 그러나 선의와 무관하게, 이 발언은 구조적으로 세 가지 효과를 낸다. 효과 1: 도입의 정당화. "공포감을 가질 필요 없다"는 말은 "피지컬 AI 도입을 지연할 이유가 없다"는 말과 이어진다. 피지컬 AI 도입의 속도를 늦추자는 주장은 이 프레임 안에서 "공포에 기반한 비합리적 반응"으로 재분류된다. 도입의 속도에 제동을 걸려면, 먼저 "나는 공포에 빠진 것이 아니다"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효과 2: 저항의 선제적 무력화. 노동자가 피지컬 AI에 대해 불안을...
강 민신 2026.04.30 추천 0 조회 56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⑮ 피지컬 AI 공장에 노동자가 남아야 하는 기술적 이유 — 교섭력은 어디서 재구성되는가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주로 "피지컬 AI가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전개돼 왔다. 그 전제 자체가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다. 더 정확한 진술은 이렇다 — 피지컬 AI는 일부 노동을 대체하고, 일부 노동을 재구성하며, 일부 노동은 오히려 더 중요하게 만든다. 이 편은 기술적 관점에서 피지컬 AI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 한계 지점에서 노동자의 교섭력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분석한다. 민주노총에게 이것은 중요하다 — 왜냐하면 노동자가 "어디서 불가결한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 교섭력을 어디에서 행사할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재 휴머노이드의 기술적 현실 — 기대와 현실의 간극 2026년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의 기술적 한계를 정리하면 놀라울 정도다. 배터리 지속 시간 문제: 대부분의 휴머노이드는 30~90분 작동 후 충전 또는 개입이 필요하다. 산업 현장은 95~99% 가동률을 요구하는데, 현재 휴머노이드 기술로는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 손 재주(dexterity) 한계: IFR의 2026년 보고서에서 지적했듯,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 수준의 손재주"를 달성하는 것이 업계의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섬세한 부품 조립, 불규칙한 형상 처리, 촉각 기반 품질 확인 — 이 모든 영역에서 로봇은 여전히 인간에...
강 민신 2026.04.30 추천 0 조회 62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⑭ 일본 렌고의 AI 전략 — 민주노총의 선택지 8편에서 독일 공동결정제를 다룰 때 내가 조심스럽게 말한 부분이 있다. 독일 모델은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기 어렵다. 역사적 토대, 기업 지배구조, 노조 전통이 너무 다르다. 그렇다면 한국이 참고할 더 가까운 모델이 있는가? 있다. 일본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발전국가 모델의 공통 경험을 공유하며, 재벌·계열기업 중심의 기업 구조가 유사하고, 기업별 노조 전통까지 흡사하다. 게다가 일본 최대 노총인 렌고(連合, JTUC-Rengo)는 한국 민주노총과 같은 시기 — 1989년 — 에 창립됐다. 조합원 규모는 약 700만 명으로, 일본 전체 노조 조합원(약 991만 명, 2024년 6월 후생노동성 기준)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 편의 질문은 단순하다. 일본 렌고는 AI·디지털 전환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이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렌고의 기본 전제 —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인정하기 일본 노조 조직률은 2024년 기준 16.1%로 한국의 13.0%보다 조금 높지만, 전반적으로 유사하게 낮다. 그리고 더 중요한 공통점 — 일본도 기업별 노조가 기본 단위다. 한국처럼, 토요타노조는 토요타 안에서만, 미쓰비시노조는 미쓰비시 안에서만 교섭한다. 그런데 일본 렌고는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을 찾아냈다. 기업별 노조의 결과를 산업 단위로 연동시키는 구조다....
강 민신 2026.04.29 추천 0 조회 65
처마 밑에서 ― 故 양윤경 동지를 보내며 윤경아. 부음을 받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외대 민주동문 모임 자리에서 너희가 축가를 부르던 그 한순간이 갑자기 어제 일처럼 또렷해지더라. 무대 위의 너는 강렬했고, 그 인상이 오래 남았다. 후배에게 부탁해 카페에서 차 한잔의 시간을 얻어냈고, 마주 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너의 노래와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던 에너지를, 내가 어설픈 말로 칭찬하고 격려했던 분위기만 남아 있다. 그 짧은 한순간이 너를 떠나보내는 오늘에야 이렇게 다시 도착할 줄은 몰랐다. 오늘은 종일 네가 부른 〈우산〉을 듣고 있다. https://youtu.be/nTipyZAyH9M?si=i8nGqkIZxguIK_3n 그 노래의 화자가 사람이 아니라 우산이라는 것을, 비 오는 날 처마 밑과 정류장과 가로등 아래에서 끝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도구라는 것을, 새삼 다시 듣는다. 여름의 굵은 빗방울에서 가을의 가랑비, 겨울의 진눈깨비로 비는 점점 차가워지고 그대를 맞으러 오는 사람도 점점 지쳐 가는데, 화자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리고 비가 다 갠 맑은 세상이 와도 영광은 약속되지 않는다. 신장 한구석에 세워진 채 잊혀지고, 전철 좌석에 홀로 남겨질 뿐이다. 그럼에도 다시 어려운 날이 오면 또 다른 누군가의 머리 위에 자기 몸을 펼치겠다는 꿈을 꾼다. 보상도 인정도 전제하지 않은 헌신, 잊혀짐을 이미 받아들인 헌신. 너는 이 노래를 그저 부른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윤경아. 솔직히 말하면 나는 너를 보내며 슬픔보다 더 큰 분노 같은 것이 가슴에서 올라온다. 운동을...
강 민신 2026.04.28 추천 0 조회 63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⑬ 민주노총의 세 번의 기술 전환 — 컴퓨터화, 자동화, 디지털화의 교훈 12편에서 피지컬 AI 시대의 소유 재편 문제를 다뤘다. 그 논의가 "민주노총의 과제"로 수렴되는 지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이 과제를 수행할 역량과 경험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를 보자. 민주노총이 1995년 창립 이후 30년 동안 겪은 기술 전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네 번째다. 이전의 세 번 — 컴퓨터화(1990년대), 공장 자동화(2000~2010년대), 디지털 전환(2015~)— 에서 민주노총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못했는가. 이 편의 논지는 불편하다. 민주노총은 이전의 세 번의 기술 전환에서 모두 현장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구조 재편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의 패턴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를 묻는다. 첫 번째 전환 — 컴퓨터화와 사무직 노동의 재편 (1990년대) 민주노총이 1995년 창립됐을 때, 한국 기업 사무실에 이미 PC가 대규모로 보급되고 있었다. 은행에서 주판이 사라지고, 경리부서에서 수기 장부가 사라지고, 설계실에서 CAD가 드래프팅 보드를 대체했다. 이 전환의 노동 영향은 명확했다. 전통적 사무직 노동 — 계산, 문서 작성, 도면 작업 — 이 대량으로 재편됐고, 많은 여성 사무직 노동자들이 단순 보조 업무의 외주화·비정규직화 흐름에 휩쓸렸다. 1997년 외환위기가 오자 이 흐름은...
강 민신 2026.04.27 추천 0 조회 108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⑫ 생산성은 누구의 것인가 — 피지컬 AI가 만드는 부의 귀속 문제 지금까지 이 시리즈가 다뤄온 의제 — 노동영향평가(5편), 숙련 데이터의 권리(6편), 초기업 교섭(11편) — 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자동화의 이득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의 문제다. 이 편은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그 질문의 더 근본적인 층위를 짚는다. 피지컬 AI가 제기하는 문제는 "분배"가 아니라 "소유"다.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아니라, 파이를 만드는 수단을 누가 소유하는가. 그리고 그 수단이 만드는 잉여가치를 누가 전유하는가. 마르크스의 기계론 — 죽은 노동과 산 노동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기계에 대해 이렇게 썼다. "노동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다른 모든 수단처럼, 기계는 상품을 저렴하게 만들고,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부분을 단축함으로써 다른 부분 — 자본가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부분 — 을 연장하는 수단이다. 요컨대, 기계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수단이다." 쉽게 풀자. 기계는 노동자의 대체재가 아니라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뽑아내는 도구다. 노동자가 8시간에 했던 일을 기계로 4시간에 할 수 있게 되면, 기업은 필요 노동 시간을 줄이고 잉여 노동 시간을 늘린다. 기계가 도입돼도 노동시간이 줄지 않는 이유, 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유다. 이 분석에서...
강 민신 2026.04.25 추천 0 조회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