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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⑱ 사회적 대화 기구의 비용과 편익 — 민주노총은 어디에 앉을 것인가

작성자
외민동 관리자
작성일
2026-05-03 17:42
조회
76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⑱

사회적 대화 기구의 비용과 편익 — 민주노총은 어디에 앉을 것인가



2편에서 대통령의 "협조해 달라"와 민주노총의 "참여시켜라" 사이의 거리를 다뤘다. 이 차이는 그저 말투의 차이가 아니다. 결국 어느 테이블에 앉을 것인가라는 현실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이번 편은 그 선택을 어떻게 풀어낼지 짚어보려고 한다. 지금 민주노총 앞에는 테이블이 세 개 놓여 있다. 경사노위, 국회 사회적 대화, 노정 협의체. 각각이 어떤 자리이고,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또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를 하나씩 따져보자.





26년간의 거절

민주노총이 1999년 2월 노사정위원회(현 경사노위)를 탈퇴한 지 26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 번도 복귀하지 않았다. 이 긴 거절의 역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물론 그동안 복귀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당시 지도부가 노사정 대화 복귀를 선언했지만 내부 강경파의 반발에 막혔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복귀 물꼬가 트이는 듯했지만 2018년 6월 최저임금 심의를 둘러싼 갈등으로 무산됐다. 거절의 이유는 매번 같았다. 갔더니 이용만 당했다는 경험.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4월 간담회에서 이 경험을 정면으로 인정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갔더니 이용만 당하고, 형식적으로 회의 몇 번 하고 화나죠. 이해한다." 대통령이 민주노총의 거절을 합리적 선택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전례 없는 발언이다.

그러나 인정과 변화는 다른 문제다. 인정한 대통령이 다시 "그래도 들어와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구조 — 그 자체가 민주노총이 26년간 겪은 바로 그 구조의 반복이다. 다만 이번엔 정부의 태도가 부드러울 뿐이다.





첫 번째 테이블 — 경사노위

가장 무게가 큰 테이블이다. 정부, 사용자, 노동자가 함께 앉는 3자 구조에 공익위원이 더해지고, 대통령 직속 기구다. 사회적 대화의 정점이라 부를 만한 자리고, 여기서 합의된 내용은 정책과 입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문제는 그 무게가 곧 위험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26년간 떠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자리의 구조다. 정부가 미리 그려놓은 그림에 노동계가 들러리로 동원되는 경험. 다수결 논리 속에서 노동계의 소수 의견이 흡수되고 무력화되는 경험. 이것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정부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민주노총의 규정이 된다.

2026년 3월에 이재명 정부 1기 경사노위가 출범했다. 민주노총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김지형 경사노위 위원장이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2025년 12월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민주노총의 참여 여부가 사회적 대화를 새롭게 시작하는 데 반드시 전제가 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노총과 경총만 가지고 먼저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민주노총이 복귀를 망설이는 사이, 경사노위는 민주노총 없이 작동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두 번째 테이블 — 국회 사회적 대화

우원식 국회의장이 주도하는 자리다. 2025년 9월 민주노총 중앙위원회가 26년 만에 사회적 대화 복귀를 의결했다. 재적 355명 중 261명이 참석해 142명이 찬성했다. 찬성률 54.4%. 절반을 살짝 넘긴 셈이지만, 26년의 거절 끝에 나온 결정으로는 충분히 무거운 의결이다.

이 자리의 장점은 뚜렷하다. 국회가 주도하니까 입법 연계가 직접적이고, 경사노위보다 의제 설정이 유연하다. 행정부로부터 일정한 독립성도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국회에서 만들어진 합의가 곧바로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입법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 내부 강경파의 반발은 사라지지 않았다.

복귀를 결정한 양경수 위원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게 단순한 노선 변경 이상이라는 게 보인다. "비상계엄 시국에서 민주노총이 거리에서 역할을 했고 국민에게 효능감을 보여 줬다. 새 정부에서 입법 정책으로 민주노총이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거리의 투쟁과 테이블의 교섭을 병행하겠다는 공식 선언이다.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재명 정부 출범이라는 정치적 변화 속에서 나온 부분적 복귀다.





세 번째 테이블 — 노정 협의체

2026년 2월 11일에 출범한 자리다. 고용노동부와 민주노총이 직접 마주 앉는 양자 구조다. 사용자 단체가 빠져 있는 만큼 합의된 사안의 실행력이 약할 수 있지만, 반대로 민주노총이 의제 주도권을 가지고 자기 요구를 직접 정부에 던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양경수 위원장이 가장 무게를 두는 자리이기도 하다. 2026년 2월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총이 노동부를 비롯한 각 부처와 노정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신뢰 관계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 그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경사노위에 들어가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순서가 있다는 얘기다. 노정 협의체에서 먼저 신뢰를 쌓고, 그 다음에 경사노위 복귀를 검토하겠다는 것. 다만 이 순서는 위험하기도 하다. 정부가 노정 협의체의 주도권을 쥐는 순간, 26년 전 노사정위원회에서 겪었던 "협조" 구도가 작은 규모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양경수가 "신뢰"를 강조한다는 건 정확히 이 위험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AI 의제는 어느 테이블에서 다뤄질 것인가

이 모든 분석이 결국 한 질문으로 모인다. 피지컬 AI 전환 의제는 어느 테이블에서 논의되어야 하는가.

양경수 위원장은 2026년 2월 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만약 AI 도입 문제를 비롯한 중차대한 사안을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경사노위에서 논의하겠다고 결정한다면, 이는 논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을 배제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말의 의미는 분명하다. AI 의제는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곳에서만 다뤄야 한다는 선긋기다. 즉 노정 협의체나 국회 사회적 대화여야 한다.

그런데 이 입장을 그대로 가져가면 두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함정은 — 경사노위가 민주노총 없이 AI 의제를 그냥 다뤄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다. 그러면 결과물은 민주노총의 요구가 빠진 채로 만들어진다. 민주노총의 배제 선언이 거꾸로 민주노총 자신의 목소리를 정책에서 배제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김지형 위원장이 이미 "민주노총 없이 진행하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이 함정은 가설이 아니라 진행 중인 현실이다.

둘째 함정은 — AI 같은 복합 의제는 어느 한 테이블만으로 다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사노위가 거시적 노사정 합의를 만드는 자리라면, 국회 사회적 대화는 입법 의제에 강하고, 노정 협의체는 구체적 행정 현안에 강하다. AI 전환은 이 셋 모두에 걸쳐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생각은 이렇다. 민주노총은 세 테이블 각각에서 AI 의제를 독자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각 테이블의 성격에 맞는 다른 요구를 내놓아야 한다.

경사노위는 — 복귀 여부와 무관하게 — 손을 놓을 수 없는 자리다. 민주노총이 직접 들어가지 않더라도 공익위원을 통한 간접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고, 경사노위가 내놓는 결론에 대해서는 대외 비판 활동을 통해 정당성을 흔들 수 있다.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국회 사회적 대화에서는 입법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 노동영향평가법 제정, AI 기본법 개정(노동자 대표 참여 의무화), 기간제법 개정, 플랫폼 노동자 보호법 — 이런 의제들이 법률화되는 것이 목표다. 국회 의장 주도라는 자리의 성격이 이 목표와 가장 잘 맞는다.

노정 협의체에서는 행정 조치에 집중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소관 산업·일자리전환 지원금의 확대, 노동영향평가 시범사업, 숙련 데이터 기여 수당 시범사업. 법 개정 없이 행정 재량으로 가능한 영역이 많다. 양자 협의의 강점이 발휘되는 자리다.

이렇게 세 경로를 분리해서 추진하면서, 동시에 세 테이블 사이의 역할 분담을 민주노총이 주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우리가 경사노위에 안 갈 테니 AI 논의하지 마라"가 아니라, "경사노위, 국회, 노정이 각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우리가 제안한다"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크다.





한국노총이라는 변수

여기서 짚지 않을 수 없는 게 한국노총과의 관계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고, 조합원 수도 120만 2천 명으로 민주노총 107만 9천 명보다 많은 제1노총이다(고용노동부 2024년 말 기준 조직현황, 2025.12.4 발표).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하는 동안, 한국노총이 사실상 노동계 대표 역할을 독점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노동계의 입장은 한국노총의 온건 노선 위주로 형성된다.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양대 노총은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양경수와 김동명이 공동의장 체제로 협력했다. 10년 만의 공조였다. 그러나 이것은 반권위주의 공동 투쟁이었지, 일상적 의제 설정에서의 협력은 아직 제한적이다.

AI 전환 의제에서 양대 노총이 손을 잡을 가능성은 낮지 않다. 한국노총도 AI 도입에 대한 우려가 크고, 플랫폼 노동자 조직화에도 적극적이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밖에 머문다면, 한국노총과의 의제 조율을 통해 — 한국노총을 통해 민주노총의 요구가 경사노위 안으로 전달되는 경로를 만들 수 있다. 공식 불참을 유지하면서도 실질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강경파의 명분도 살리고 실리도 챙기는 길이 여기 있다.





"테이블에 앉지 않는 것"의 의미

이 편의 핵심 인식은 이것이다. 테이블에 앉지 않는 것도 분명히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략이 효력을 가지려면, 대안 테이블에서 적극적인 활동이 동반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를 거부하는 것 자체는 정당한 선택이다. 그러나 그 거부가 의미를 가지려면, 거부를 통해 민주노총이 다른 어디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있는지를 보여야 한다. 지난 26년 동안, 민주노총은 거부의 이유는 충분히 설명했지만 거부의 대안적 성과는 그만큼 축적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이재명 정부 5년은 이 구조를 바꿀 드문 기회다. 친노동 정부와의 관계에서,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밖에서도 충분히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 그러나 그러려면 노정 협의체와 국회 사회적 대화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한다.

성과 없이 거부만 반복하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관성이 된다.




다음 편에서는 시야를 더 넓힌다. AI가 노동을 대체하면서 세수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문제를 다룬다. 노동 없는 공장은 세금 없는 이윤을 만든다. 이것이 복지국가의 재정 기반 자체를 침식하기 시작할 때, 무엇이 필요한가. ■




출처:


다음 글: ⑲ 노동 없는 공장, 세금 없는 이윤 — AI 시대의 재정 기반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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