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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⑯ "공포감을 없애라"는 말의 정치경제학 — 기술 낙관주의는 누구에게 이익인가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⑯
"공포감을 없애라"는 말의 정치경제학 — 기술 낙관주의는 누구에게 이익인가
간담회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자.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공포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이 한 문장은 이 시리즈 전체의 출발점이었다. 3편에서 이 발언의 근거 데이터(스마트공장 고용 증가)를 검증했고, 공백이 있음을 보였다. 그러나 데이터 검증만으로는 이 발언의 의미를 다 드러낼 수 없다.
이 편의 질문은 다르다. "공포감을 없애라"는 말은 누구에게 이익인가. 그리고 "공포감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측은 누구인가.
이것은 누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말이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떤 효과를 내는가의 문제다.
"공포감을 없애라"는 세 가지 효과
대통령의 발언은 선의에서 나왔다. 그 점은 2편에서 충분히 인정했다. 그러나 선의와 무관하게, 이 발언은 구조적으로 세 가지 효과를 낸다.
효과 1: 도입의 정당화. "공포감을 가질 필요 없다"는 말은 "피지컬 AI 도입을 지연할 이유가 없다"는 말과 이어진다. 피지컬 AI 도입의 속도를 늦추자는 주장은 이 프레임 안에서 "공포에 기반한 비합리적 반응"으로 재분류된다. 도입의 속도에 제동을 걸려면, 먼저 "나는 공포에 빠진 것이 아니다"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효과 2: 저항의 선제적 무력화. 노동자가 피지컬 AI에 대해 불안을 표현하면, 그것은 "근거 없는 공포"로 처리된다. 과학적 논증이 아니라 감정적 반응으로 간주된다. 결과적으로, AI 도입에 대한 비판은 "합리성"의 영역에서 "감정"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효과 3: 책임의 비대칭. "공포감을 가지지 말라"는 말은 "잘 될 것이다"를 전제한다. 그러나 만약 "잘 되지 않으면" 누가 책임지는가? 낙관을 요청한 쪽이 책임지지 않는다. "내가 공포감을 가지지 말라고 했지,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한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노동자는 낙관을 받아들이고 AI 도입에 협조했다가 일자리를 잃으면 자기 책임이 된다.
그런데 노동자의 "공포"는 정말 근거 없는 것인가. OECD가 2023년 발간한 「Employment Outlook 2023 — AI와 노동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제조업에서 AI를 사용하는 근로자의 60%가 향후 10년 안에 AI로 인한 실직을 우려하고 있다. 같은 보고서는 또 "AI를 많이 쓰는 기업은 AI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에는 고용을 덜 하는 경향"도 확인했다. 한국 국회입법조사처가 이 OECD 보고서를 분석한 2023년 12월 자료(외국 입법·정책 분석 제46호)에서도 같은 통계가 그대로 인용된다. 노동자의 공포는 OECD가 데이터로 확인한 객관적 실태이지, "감정적 반응"이 아니다.
기술 낙관주의의 지리학 —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가
"공포감을 가지지 말라"는 말은 한국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AI 산업의 담론 지형을 보면, 이 말이 어떤 위치에서 나오는지가 선명히 드러난다.
샌프란시스코: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곧 도래할 AGI 또는 초지능 덕분에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밝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오픈AI는 작가와 예술가들의 작품을 동의 없이 학습 데이터로 사용했고, 학습 데이터 어노테이션 작업은 케냐와 베네수엘라의 노동자들에게 시간당 2달러도 안 되는 임금으로 외주됐다.
서울: LG AI연구원의 이진식 랩장은 2025년 헤럴드 기업포럼에서 "결국 노동으로부터 점진적으로 해방될 것"이라고 했다. "해방"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자.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누구에게 해방이며 누구에게 박탈인지를 묻지 않으면, 이 단어는 기업의 비용 절감을 노동자의 자유로 번역하는 수사가 된다.
시애틀: 아마존 CEO 앤디 재시는 2025년 "AI가 인력을 줄일 것이며, 사람들이 하는 일 중 일부는 멀지 않은 미래에 더 적은 인원만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마존은 같은 해 10월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인 1만 4천 명의 사무직 감원을 발표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아마존 내부 문서에 따르면, 아마존은 자동화를 통해 2027년까지 약 16만 명의 신규 고용을 회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공통점이 보이는가? "공포감을 가지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AI 기술을 개발하거나 도입하는 주체다. "공포감을 가질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기술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이다. 담론의 출처가 구조적으로 비대칭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4년 보고서는 이미 데이터로 이를 확인했다. 한국에서 AI 도입률이 증가한 지역에서 남성 서비스·판매직과 여성 사무·서비스직의 임금이 뚜렷이 감소했다. 특히 남성 30~44세와 여성 15~29세 등 청년층 및 전문대졸 이상 학력에서 고용과 임금이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 중장년층이나 고졸 이하에서는 오히려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AI는 "중간 기술 일자리"를 집중적으로 침식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늦지 않았다 — 그러나 곧 늦는다
2025년 미국에서 AI로 인해 사라진 일자리는 약 5만 5천 개로 집계됐다(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 보고서). MIT 연구에 따르면 AI는 이미 미국 노동시장에서 11.7%의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한국은 아직 이 정도는 아니다. 3편에서 봤듯이 제조 AI 도입률은 아직 0.1%다. 그러나 한국의 산업용 로봇 밀도는 노동자 1만 명당 1,220대로 세계 1위다. 2019년 이후 연평균 7%씩 증가했다(IFR World Robotics 2025, 2024년 데이터 기준). 도입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직 공포감을 가질 단계가 아니다"는 말은 엄밀히 맞다. 그러나 그것이 "앞으로도 공포감을 가질 필요 없다"로 미끄러지면 안 된다. 현재의 낮은 영향률은 준비 단계의 특징이지, 미래의 안전을 약속하는 지표가 아니다.
양경수 위원장의 "공포"는 정치적 무기인가 사회적 신호인가
반대로 민주노총의 담론도 들여다보자. 양경수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피지컬 AI를 "일자리의 변화가 아니라 소멸"로 규정했다. 이것은 공포를 조장하는가, 아니면 진단하는가?
나는 둘 다라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공포가 조직화의 동력이 된다면 정당하다는 점이다. 공포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공포가 어떻게 처리되느냐가 문제다.
공포의 세 가지 경로:
경로 1: 개별화된 불안. 공포가 개인의 불안으로 남으면 생산성을 낮추고 정신건강을 해친다. 이것이 지금 많은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것이다.
경로 2: 방어적 반발. 공포가 집단적이되 방어적이면 러다이트식 반응이 된다 — 기술 자체에 반대하는 것. 이것은 효과가 없다. 러다이트는 역사 속에서 패배했다.
경로 3: 조직화된 개입. 공포가 집단적이면서 구성적이면, 그것은 제도 설계의 동력이 된다. "이 기술이 도입되면 내가 위험하다 → 그러니 도입 조건을 협상하자"로 이어진다. 이것이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이다.
대통령의 "공포감을 없애라"는 경로 1로 밀어넣는다. 공포를 개인의 심리 문제로 환원하기 때문이다. 양경수 위원장의 "일자리 소멸"은 경로 2로 읽힐 수도 있고 경로 3으로 읽힐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읽히느냐는 구체적 대안을 동반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안이 있으면 공포는 준비가 된다
이 편의 결론은 단순하다. "공포감을 없애라"의 반대는 "공포를 조장하라"가 아니다. "공포를 제도로 번역하라"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포의 크기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공포를 준비로 바꾸는 장치의 설계다. 이 시리즈가 11편까지 제안해 온 것들을 다시 모으면:
- 노동영향평가의 법제화(5편) → 도입 이전의 예측 가능성
- 숙련 데이터 기여 수당과 거부권(6편) → 데이터 추출에 대한 통제
- 초기업 교섭의 AI 의제화(11편) → 산업 단위 대응
- 데이터·설비의 공동 소유 구조(12편) → 소유 재편
- 한국형 슌토(14편) → 산업 연동 교섭
이 제안들은 "공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포의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다. 공포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은 채 "공포감을 가지지 말라"고 하는 것은, 환자에게 통증을 숨기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한 문장으로 — 책임의 비대칭을 깨기
이 편의 핵심은 책임의 비대칭이다. "공포를 가지지 말라"고 말하는 쪽이 그 요청의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구조. 이 비대칭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제도적 공동 책임이다.
대통령이 "공포감을 가지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발언 뒤에 보장이 있을 때뿐이다. "공포감을 가지지 마라, 만약 잘못되면 이렇게 보상할 것이다"가 되어야 한다. 전환 기금, 고용 보험 확대, 보편적 재교육 보장 — 이 모든 제도가 "공포감을 가지지 말라"는 발언의 담보물이 되어야 한다.
담보 없는 낙관은 무책임이다. 담보 있는 낙관은 정치다. 민주노총의 과제는, 낙관의 담보를 요구하고, 그 담보의 규모와 구조를 교섭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AI 시대 일자리 대안으로 내세우는 "돌봄·보건 일자리"의 실제를 검증한다. 과연 그것은 AI 전환의 해답인가, 아니면 또 다른 저임금 일자리의 확장인가. ■
출처:
- 이재명 대통령·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간담회 트랜스크립트 (2026.4.10): 대통령의 "공포감을 가질 필요 없다" 및 양 위원장의 "일자리 소멸" 발언
- 샘 올트먼의 "AGI" 담론과 오픈AI 학습 데이터 어노테이션 작업자 임금: 카렌 하오, 《AI 제국: 권력·자본·노동》 (생각의힘, 2026). 시간당 $2 이하 어노테이션 임금 관련은 TIME 2023 탐사보도 및 동 저작 인용
- LG AI연구원 이진식 랩장 "노동으로부터 해방" 발언 (헤럴드 기업포럼 2025, 2025.9.24):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583312
- 아마존 앤디 재시 CEO 감원 발언 및 1만 4천 명 감원 (2025.10): 한국노동연구원 국제노동브리프 vol.23 no.6 (2025.11): https://repository.kli.re.kr/bitstream/2021.oak/11923/2/국제노동브리프_v.23_no.6_5.pdf
- 아마존 내부 문서 "2027년까지 16만 명 신규 고용 회피" (뉴욕타임스 입수): 동 국제노동브리프 인용
- 2025년 미국 AI 감원 5만 5천 개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 보고서): 라디오코리아 (2025.12): https://www.radiokorea.com/news/article.php?uid=488211
- MIT 연구 "AI는 이미 미국 노동시장에서 11.7% 인력 대체 가능 수준": 위 라디오코리아 인용
- KDI, '인공지능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와 정책방향' (2024): AI 도입 증가 지역에서 남성 서비스·판매직, 여성 사무·서비스직 임금 감소, 청년층 집중 피해: https://www.kdi.re.kr/research/reportView?pub_no=18370
- 한국 산업용 로봇 밀도 노동자 1만 명당 1,220대 (세계 1위, 2024년 데이터): 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 「World Robotics 2025」 (2026.4.8 발표), 2019년 이후 연평균 7% 성장. https://ifr.org/ifr-press-releases/news/robot-density-surges-in-europe-asia-and-americas
- OECD Employment Outlook 2023 — Artificial Intelligence and Labour Market (2023.7): 금융·제조업 AI 사용 근로자의 60%가 향후 10년 내 AI 실직 우려, "AI를 많이 쓰는 기업은 AI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에 고용을 덜 한다"는 분석
- 국회입법조사처(NARS) 손혜원, 「AI와 노동시장 — 일자리의 양, 질 및 노사관계: OECD Employment Outlook 2023의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외국 입법·정책 분석 제46호, 2023.12.27): https://www.nars.go.kr/
다음 글: ⑰ 돌봄·보건 일자리의 허와 실 — AI 시대의 '남은 일자리'는 해답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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