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⑫ 생산성은 누구의 것인가 — 피지컬 AI가 만드는 부의 귀속 문제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⑫
생산성은 누구의 것인가 — 피지컬 AI가 만드는 부의 귀속 문제
지금까지 이 시리즈가 다뤄온 의제 — 노동영향평가(5편), 숙련 데이터의 권리(6편), 초기업 교섭(11편) — 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자동화의 이득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의 문제다. 이 편은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그 질문의 더 근본적인 층위를 짚는다.
피지컬 AI가 제기하는 문제는 "분배"가 아니라 "소유"다.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아니라, 파이를 만드는 수단을 누가 소유하는가. 그리고 그 수단이 만드는 잉여가치를 누가 전유하는가.
마르크스의 기계론 — 죽은 노동과 산 노동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기계에 대해 이렇게 썼다. "노동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다른 모든 수단처럼, 기계는 상품을 저렴하게 만들고,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부분을 단축함으로써 다른 부분 — 자본가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부분 — 을 연장하는 수단이다. 요컨대, 기계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수단이다."
쉽게 풀자. 기계는 노동자의 대체재가 아니라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뽑아내는 도구다. 노동자가 8시간에 했던 일을 기계로 4시간에 할 수 있게 되면, 기업은 필요 노동 시간을 줄이고 잉여 노동 시간을 늘린다. 기계가 도입돼도 노동시간이 줄지 않는 이유, 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유다.
이 분석에서 핵심 개념이 "죽은 노동(dead labor)"과 "산 노동(living labor)"의 관계다. 기계는 과거의 노동 — 기계를 만든 노동자들의 노동 — 이 응축된 "죽은 노동"이다. 이 죽은 노동이 현재의 "산 노동"을 흡수하면서 잉여가치를 만든다. 《자본론》의 유명한 표현대로, "자본은 죽은 노동이며, 그 죽은 노동은 흡혈귀처럼 오직 산 노동을 흡수함으로써만 살아간다."
피지컬 AI는 이 구도의 극단적 형태다. AI 로봇은 숙련 노동자의 과거 동작 데이터, 즉 극도로 농축된 "죽은 노동"이다. 그리고 이 로봇이 생산 현장에 배치되면, 남아 있는 산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잉여가치를 뽑아낸다. 현장에 남는 노동자는 로봇의 감독·유지보수·조정 역할을 수행하면서, 훨씬 높은 생산성을 감당한다.
"생산성이 올랐으니 임금도 오르겠지"라는 상식적 기대가 왜 빗나가는지, 마르크스의 분석은 이미 150년 전에 답했다. 생산성 상승분은 기본적으로 죽은 노동의 소유자 — 자본 — 에게 귀속된다. 산 노동에게 돌아오는 것은, 노동자가 싸워서 얻어낼 수 있는 만큼이다.
데이터가 새로운 생산수단이라면
이 분석을 피지컬 AI 시대에 적용하면 다음 명제가 나온다. 숙련 노동자의 동작 데이터는 새로운 생산수단이며, 이 생산수단의 소유 구조가 계급 관계의 새로운 전선이다.
전통적 생산수단은 토지, 공장, 기계였다. 이것들의 소유가 자본가 계급을 규정했다. 피지컬 AI 시대의 결정적 생산수단은 무엇인가? 로봇의 하드웨어? 부분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하드웨어만으로는 로봇이 작동하지 않는다. 로봇을 작동시키는 것은 알고리즘과 학습 데이터다. 특히 숙련 노동자의 동작을 캡처한 학습 데이터는 복제 불가능한 자산이다 — 6편에서 인용했던 스팀슨 센터 보고서가 "국가 자산"이라 부른 바로 그것.
그런데 현행 법 체계에서 이 학습 데이터의 소유권은 기업에 귀속된다. 노동자가 근로계약 하에 생산한 모든 산출물은 기업 소유라는 원칙에 따라서다. 결과는 명확하다. 노동자의 신체에 축적된 30년 숙련이 센서로 캡처되는 순간, 그것은 즉시 자본의 소유가 된다.
이것을 마르크스의 언어로 번역하면, "산 노동이 죽은 노동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극단적 가속화"다. 과거에는 노동자가 퇴직하면서 자신의 숙련을 후배에게 전수했다. 숙련은 노동 계급 내에서 순환했다. 이제 숙련은 퇴직 이전에 이미 데이터화되어 자본의 소유가 된다. 노동자는 자신의 몸에 축적된 가치를 근로계약이라는 법적 장치를 통해 무상으로 자본에 이전하는 것이다.
자동화 이득의 구조적 비대칭
구체적 숫자로 보자. 어떤 공장에서 숙련 노동자 10명이 연봉 5,000만 원씩 받고 일한다. 총 인건비 5억 원. 이들의 노동으로 연간 50억 원의 매출이 발생하고 영업이익이 10억 원이라 하자.
이 공장이 피지컬 AI 로봇 10대를 도입해 노동자 10명을 대체한다. 로봇의 감가상각과 유지비를 합쳐도 연간 2억 원이면 충분하다고 하자. 노동자가 하던 일을 로봇이 동등하게 수행한다고 가정하면, 새로운 손익 구조는 이렇다.
- 인건비 5억 원 → 로봇 운영비 2억 원 (3억 원 절감)
- 영업이익 10억 원 → 13억 원 (30% 증가)
그리고 대체된 노동자 10명은 어디로 가는가? 다른 일자리를 찾거나 실업자가 된다. 그들의 과거 5억 원 임금은 어디로 갔는가? 3억 원은 자본가의 이익으로 전환됐고, 2억 원은 로봇 제조사로 갔다.
여기서 결정적인 사실 — 그 로봇이 일할 수 있는 것은 원래 그 자리에서 일하던 숙련 노동자 (또는 유사한 숙련 노동자들)의 동작 데이터로 훈련됐기 때문이다. 숙련 데이터의 기여가 없으면 로봇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기여의 대가는 계산되지 않는다. "근로계약 중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부산물"로 처리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말한 부불노동(unpaid labor)의 21세기 버전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자신을 대체할 시스템을 훈련시키는 데이터를 부불 노동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4편의 "로봇세"는 왜 충분하지 않은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4편에서 제안한 네 가지 모델 — 로봇세, 자동화 이익 환수형 법인세 할증, 사회보험 확장형, 생산성 연동 기금 — 은 모두 분배의 차원에서 작동한다. 자본이 취득한 이득의 일부를 사회로 환원한다는 구조다.
그러나 이것은 소유 구조 자체에 손을 대지 않는다. 자본가가 자동화 이득의 70%를 가져가고 30%를 세금으로 낸다면, 90%를 가져가고 10%를 내던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여전히 본질적 불평등은 남는다 — 생산수단의 소유와 잉여가치 전유의 구조.
계급적 관점에서 보면,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로봇과 학습 데이터, 즉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할 것인가?
전통적 답은 세 가지였다.
첫째, 자본가 소유 + 세금을 통한 분배. 현재의 복지국가 모델이다. 한계: 자본가의 기본적 소유권은 유지되므로 권력 비대칭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둘째, 국유화. 20세기 사회주의의 모델이다. 한계: 관료제의 문제, 혁신의 저하,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현실에서 정치적 실현 가능성이 극도로 낮다.
셋째, 노동자 소유·공동체 소유의 확대. 협동조합, 노동자 지분, 공적 소유와 사적 소유 사이의 혼합 형태. 한계: 규모의 한계, 기존 자본주의 구조와의 충돌.
현실적 경로 — 부분적 소유 재편의 가능성
21세기 한국에서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현실주의적 단계 접근을 제안한다.
단계 1: 데이터 공동 소유. 숙련 노동자의 동작 데이터에 대해, 기업의 배타적 소유권을 깨고 데이터 기여자(노동자)와 기업의 공동 소유를 법적으로 인정한다. 공동 소유가 되면 데이터의 사용, 거래, 수익 귀속에 대한 노동자의 발언권이 법적 근거를 갖는다. 이것은 EU의 GDPR(일반 개인정보 보호법)이 Article 88로 이미 노동 데이터에 인정한 처리에 대한 권리를,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유권의 공유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단계 2: 자동화 설비의 노동자 지분 참여. 기업이 피지컬 AI 설비를 도입할 때, 일정 비율을 노동자 집단(노동조합 또는 공제회)의 지분으로 설정한다. 이 지분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전환 기금, 직업훈련, 소득 보전 등에 사용된다. 스웨덴이 1975년 LO의 메이드너 보고서로 발의해 1983년 약화된 형태로 입법됐다가 1991년 폐지된 "임노동자기금(Löntagarfonder)"의 축소판이지만, AI 설비로 대상을 한정한다면 정치적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계 3: 산업 단위 공동 소유 구조. 11편에서 논의한 초기업 교섭 체계 하에서, 산업 공통의 AI 학습 데이터베이스를 산업 공동 소유로 만든다. 즉, 자동차산업의 숙련 데이터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자동차산업 전체(노사 공동)의 자산이 된다. 기업들은 이 공동 데이터베이스에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산업 공동 기금에 기여금을 낸다.
이 세 단계는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생산수단인 "학습 데이터"의 소유 구조를 부분적으로 재편한다. 분배 차원의 개입을 넘어서 소유 차원의 개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리즈 전체 흐름에서 이 12편이 차지하는 위치
이 편이 이 시리즈에서 하는 역할을 분명히 하자. 1~4편은 현상 진단이었다. 5~7편은 제도적 대응(노동영향평가, 숙련 데이터 권리, 초기업 교섭)이었다. 8~11편은 국제 비교와 제도 설계의 확장이었다. 이 12편은 제도 논의의 이론적 기초를 드러내는 편이다.
지금까지의 제도 제안들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나는 이 편에서 계급적 관점의 답을 제시한다. 피지컬 AI는 자본주의의 한 국면이고,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 재편 과정에 노동자 계급이 주체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면, 재편의 결과는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고착된다.
13편에서는 민주노총이 과거에 겪은 세 번의 기술 전환 — 컴퓨터화, 자동화, 디지털화 — 의 경험을 복기하고,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논한다. ■
출처:
-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1권 (1867):
- "기계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수단이다" 인용: 영어판 제4편 제15장 "Machinery and Large-Scale Industry" 첫 부분. 마르크스주의자 인터넷 아카이브(MIA):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67-c1/ch15.htm
- "자본은 죽은 노동이며, 흡혈귀처럼 산 노동을 흡수한다" 인용: 영어판 제3편 제10장 "The Working-Day" 제1절. MIA: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67-c1/ch10.htm
- 한국어 번역본: 강신준 역 《자본 I》 (길, 2008). 강신준판은 영어판과 장 번호 체계가 일부 다름 (각각 제13장·제8장으로 매김)
- 피지컬 AI 숙련 데이터의 "국가 자산(national asset)" 담론: Stimson Center, "Revolutionizing the Industrial Base: South Korea's AI Integration in Manufacturing" (2026.2.26): https://www.stimson.org/2026/revolutionizing-the-industrial-base-south-koreas-ai-integration-in-manufacturing/. 한국 정부 정책 맥락: UPI, "Korea's manufacturing base could fuel a 'physical AI' advantage" (2026.1.27): https://www.upi.com/Top_News/World-News/2026/01/27/manufacturing-ai-transformation-strategy-physical-AI/2571769575200
- 임노동자기금(Löntagarfonder) 논쟁: 스웨덴 사회민주당과 LO(노총)가 1970년대에 추진한 노동자 소유 확대안. 1975년 Meidner 보고서 → 1976년 LO 총회 채택 → 1983년 12월 의회 통과 (약화된 형태) → 1984년 시행 → 1991년 우파 정부 출범으로 폐지. 영문 개관: Bengt Furåker, "The Swedish wage-earner funds and economic democracy: is there anything to be learned from them?" (Transfer: European Review of Labour and Research, 2016): https://journals.sagepub.com/doi/abs/10.1177/1024258915619310. 국내 자료: 신정완,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사회평론아카데미)
- EU GDPR (일반 개인정보 보호법, Regulation (EU) 2016/679) 발효 2018.5.25. 개인 데이터에 대한 삭제권·이전권·동의권의 원칙. 노동 영역 적용은 Article 88이 회원국 입법 또는 단체협약을 통한 구체화를 허용. 공식 원문: https://gdpr-info.eu/art-88-gd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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