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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열어낸 길 — 윤경회 간사의 5.18 증언

작성자
외민동 관리자
작성일
2026-05-01 13:56
조회
42

여성이 열어낸 길 — 어제 들은 윤경회 간사의 5.18 증언

이덕준 선생님의 증언에 이어 두 번째 순서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성폭력 사건 조사팀장을 지낸 윤경회 간사(5·18 열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5.18 당시 다섯 살, 경북에서 자라 1997년에 대학에 입학한 — 그러니까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던 해에 새내기였던 — 세대의 한 분입니다. "직접 겪은 분의 이야기를 제가 전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로 시작된 한 시간이었습니다.







"5.18 성폭력이 아니라 5.18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조사위원회는 2024년 6월에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윤 간사는 처음엔 5.18 당시 성폭력만을 조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간호사 출신이고 성폭력 상담 경험도 있어서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그 일은 거뜬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피해 여성들은 자신이 입은 피해뿐 아니라, 그날 광주에서 본 모든 장면들조차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피해를 말하는 것이 큰 수치라고 여겨, 결혼한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손발이 떨리거나 구토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몸이 기억하는 일을 언어로 꺼내는 순간, 트라우마가 통째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윤 간사는 깨달았다고 합니다. "내가 조사하는 게 5.18 성폭력이 아니라, 5.18 자체를 조사하는 일이구나."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5.18은 절반의 기록이었습니다.

가두방송 전옥주 선생님 — 재생산 폭력

가두방송을 한 전옥주 선생님은 "북한에서 왔다, 이렇게 말 잘할 수 없다"는 시나리오에 엮여 끔찍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신군부에게는 명분이 필요했고,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성적 침해가 자행됐습니다. 그 골자는 단순했습니다. "빨갱이는 함부로 해도 된다. 너희 같은 빨갱이 새끼 못 낳게 해야 한다." 윤 간사는 이를 '재생산 폭력'이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대학 시절 우리가 부르던 노래 「꽃잎」 — "꽃잎처럼 금남로에 흩날리던 그 날" — 그 가사 뒤에는 회음부와 유방이 훼손된 시신들에 대한 목격담이 있었습니다. 유언비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윤 간사가 직접 11공수 부대원들과, 이후 시신 수습을 위해 광주에 들어왔던 부대원들을 조사한 결과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는 것은 잊지 않기 위한 약속이었습니다.

성수남 선생님 — 사진을 찍은 사람

성순암 선생님은 사진관을 운영했고, 남편은 기독교 전속 사진사였습니다. 5.18이 시작되자, 골목에서 곤봉에 머리가 깨지는 중학생 또래 소년을 목격하고 너무 무서워 그 자리에서 손쓰지 못한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부는 양말 속에 가위 두 개를 꽂고, 붕대와 약을 챙기고,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토대가 된 사진첩, 그 대부분이 이 부부의 사진입니다. 독일인 파울 슈나이스 목사를 통해 독일과 일본으로 전달된 사진들이었습니다.

5월 19일 밤, 성 선생님은 황금동 뒤편에서 한 군인에게 대검으로 위협당하며 강간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양말 속 가위를 꺼내 가해자를 찌르고, 자기 몸을 찔렀습니다. 위협이 아니라 그냥 죽으려고 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시절 30대 초반 여성에게 강간을 당하느니 죽는 게 낫다는 정조관념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무마취로 위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 다시 시신 수습 현장이었습니다. 자기 몸이 어떻든, 시신을 손댈 수 있는 사람이 그곳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 선생님은 이후 7년간 흰밥을 드시지 못했다고 합니다. 유방이 훼손된 시신이 마치 하얀 밥그릇 같았고, 거기 하얀 벌레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황금동 여성들 — 그 이름 없는 일곱 명

상무관에서 시신 수습에 참여한 여성들 중에는 황금동의 성매매 여성 일곱 분이 있었습니다. 직업적 특성 때문에 끝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못한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했던 말이 이랬습니다.



"이건 좋은 일이야. 이렇게 안타깝게 가신 분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깨끗이 닦아서 보내드리고 싶어."


그분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알 수 있는 통로조차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픈 어머니"가 아니라 "용기가 꺾인 여성"

조사 끝에 만나지 못한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큰딸이 어느 날 열매 모임에 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5.18 때문에 아프다는 것은 알았지만, 왜 아프신지는 몰랐던 분이었습니다. 동생을 씻기고 어머니의 입퇴원을 지켜보며 자란 큰딸. 윤 간사가 어머니의 서사를 들려드리자, 딸의 머릿속에서 비로소 조각이 맞춰졌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아픈 여성이 아니라, 용기가 꺾인 여성이었구나." 1996년 검찰 진술서를 보면 주민등록번호도 제대로 쓰지 못할 만큼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도 그분은 증언을 남겼습니다. 그 기록 덕에 진상규명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남순 선생님 — YWCA에서 다시 들어간 사람

이덕준 선생님 이야기와 같은 공간, 5월 26일 YWCA였습니다. 여성과 소년들은 다 떠나라는 지시에 따라 선언서를 받고 나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는 길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나가면 시민군 밥은 누가 해주지?"


그래서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군용트럭에 오르는 동안 대검이 옆구리에 찔렸습니다. 국군통합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사망자가 너무 많아 하혈을 흘리는 한 여성을 돌볼 인력은 없었습니다. 상무대로 끌려가 조사받는 동안에도 치료받지 못했고, 결국 자궁을 적출하셨습니다. 그 시절 결혼하지 못하는 여성에게 인생이 끝난 것과 같았던 시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동네로부터 쫓겨나다시피 미국으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 오래 사시다가 돌아오셨습니다. 이후 암을 세 번 겪으셨습니다.

2025년 4월, 진상규명 결정이 내려진 뒤 처음으로 전남대에서 피해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처음 보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남순 선생님은 그날 정말 많이 웃으셨다고 합니다. 그 4개월 뒤, 네 번째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췌장암이었습니다. 그분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증언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말하는 것을 보면, 다른 분들도 용기를 얻을지 모른다"는 마음이었습니다.

12월 3일 밤, 두 분의 선택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밤, 윤 간사도 고민했다고 합니다. 국회 앞으로 갈까, 말까. 결국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78세 거동이 불편한 성수남 선생님이 택시를 타고 국회 앞으로 가셨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도청을 지키던 그 자리에 다시 서신 것입니다. 항암 치료 중이라 모임도 나오지 못하시던 이남순 선생님은 비상계엄 다음 날 상담사에게 전화하셨습니다. "나 이번에 모임 가야겠어."

윤 간사가 조사할 때 두 분께 똑같이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똑같은 일이 발생하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두 분 다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나 똑같은 선택했을 것 같아."



"저는 그때까지 과거의 여성들을 도와 무언가 활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비상계엄 사태 다음 날, 그분들이 똑같은 선택을 하시는 걸 제가 봐버린 거예요. 아, 내가 이분들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한 명의 책임 있는 주체로서 이 숙제를 풀어야겠구나."


원형 법정 — 5.18은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사

윤 간사는 이제 한 가지 전시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원형 법정」이라는 이름의 전시입니다. 9개의 방이 동그랗게 둘러서 있고, 각 방에는 한 분 한 분의 고유한 삶의 서사가 담깁니다 — 침묵, 어둠을 뚫고 나온 목소리, 5.18에 대한 의혹과 부정과 억압, 피해 증언, 증언 이후의 좌절과 다시 일어섬, 연대자들과 함께 만든 주체의 자리, 광장에서 젊은 세대와 다시 만난 탄핵의 시간들. 관람객은 그 9개 방을 모두 돈 뒤, 가운데 법정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가지 질문을 받습니다.



"대한민국이 잘못했다. 일본이 사과하지 않았다. 그게 다입니까? 우리 자신은 거기에 기여한 바가 없는가?"


피해자들이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데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다고, 윤 간사는 말했습니다. 5.18 피해자의 가정에서도 가정폭력이 있고, 알코올 중독이 있고, 한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직업군인이 되겠다 했을 때 그것을 끝내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군인 두 명에게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성애 교수의 말처럼, 5.18은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사입니다.

윤 간사는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생애사적 피해가 인정되는 판례를 올해 안에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인정되면 대한민국 최초의 판례가 되고, 다른 모든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길을 여는 일이 됩니다.



"국가폭력 피해자 중에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이 성폭력 피해자분들이, 지금은 맨 앞장에서 그 길을 열고 있습니다."


마치며

이덕준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총을 들었기 때문에 5.18이 민주항쟁으로 남았다"고 말씀하셨다면, 윤경회 간사는 "그 새벽을 지킨 곁에 누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분들이 지금도 어떻게 살아내고 계신지"를 들려주셨습니다. 소년이 지킨 새벽이 있었고, 여성이 열어낸 길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이번 자리의 제목 그대로였습니다. 그 자리를 마련해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민주동문회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주신 두 분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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