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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⑬ 민주노총의 세 번의 기술 전환 — 컴퓨터화, 자동화, 디지털화의 교훈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⑬
민주노총의 세 번의 기술 전환 — 컴퓨터화, 자동화, 디지털화의 교훈
12편에서 피지컬 AI 시대의 소유 재편 문제를 다뤘다. 그 논의가 "민주노총의 과제"로 수렴되는 지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이 과제를 수행할 역량과 경험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를 보자. 민주노총이 1995년 창립 이후 30년 동안 겪은 기술 전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네 번째다. 이전의 세 번 — 컴퓨터화(1990년대), 공장 자동화(2000~2010년대), 디지털 전환(2015~)— 에서 민주노총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못했는가.
이 편의 논지는 불편하다. 민주노총은 이전의 세 번의 기술 전환에서 모두 현장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구조 재편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의 패턴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를 묻는다.
첫 번째 전환 — 컴퓨터화와 사무직 노동의 재편 (1990년대)
민주노총이 1995년 창립됐을 때, 한국 기업 사무실에 이미 PC가 대규모로 보급되고 있었다. 은행에서 주판이 사라지고, 경리부서에서 수기 장부가 사라지고, 설계실에서 CAD가 드래프팅 보드를 대체했다.
이 전환의 노동 영향은 명확했다. 전통적 사무직 노동 — 계산, 문서 작성, 도면 작업 — 이 대량으로 재편됐고, 많은 여성 사무직 노동자들이 단순 보조 업무의 외주화·비정규직화 흐름에 휩쓸렸다. 1997년 외환위기가 오자 이 흐름은 가속됐다. 은행의 대규모 구조조정, 대기업의 사무직 명예퇴직, 비정규직 전환.
민주노총은 이 시기 무엇을 했는가? 핵심은 "정리해고 반대"와 "비정규직 보호법 쟁취" 투쟁이었다. 1998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저지 투쟁, 2006년 비정규직 보호법 입법 관련 투쟁. 이것은 중요한 방어였다.
그러나 무엇을 하지 못했는가? 컴퓨터화가 만드는 생산성 이득에 대한 권리 주장이 없었다. PC 도입으로 사무직 1인이 수행하는 업무량이 5배, 10배로 늘었을 때, 그 생산성 이득이 어디로 갔는지를 묻지 않았다. 임금 인상 투쟁은 있었지만, 그것은 "생산성 이득의 귀속"이 아니라 "생계비 인상"의 차원이었다.
사회진보연대의 2025년 분석이 지적하듯, 이 시기 민주노총의 투쟁은 "해고자 원직 복직"에 집중되면서, 노동시장 전체의 구조 재편에 대한 대응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기업별 노조의 관성 속에서 투쟁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정규직 보호와 비정규직 확산이라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고착됐다.
두 번째 전환 — 공장 자동화와 제조업 숙련 노동의 재편 (2000~2010년대)
2000년대 한국 제조업에서 본격적인 공장 자동화가 시작됐다. 자동차 조립라인의 로봇 용접, 철강 공정의 무인화,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 자동화. 이 전환은 민주노총 핵심 조직인 금속노조의 전장이었다.
자동화의 노동 영향은 컴퓨터화와 달랐다. 직접적 대체가 아니라 숙련의 재편이었다. 단순 조립 공정에서 인간이 빠지면서, 그 자리가 두 개로 갈라졌다 — 로봇을 감독하는 고숙련 기술직, 그리고 로봇이 못 하는 잡다한 보조 업무를 하는 비정규·하청 노동자.
금속노조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중심으로 정규직 임금 인상과 고용 안정을 방어했다. 이것은 가시적 성공이었다. 현대차 생산직 정규직은 한국에서 가장 안정된 일자리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사내 하청, 사내 협력업체, 2·3차 부품사로 비정규직 노동이 대규모로 이전됐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조립라인 옆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수가 정규직 수에 육박하게 됐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절반의 임금을 받았다.
2004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진 현대차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투쟁은 이 구조에 대한 저항이었다. 대법원은 여러 차례 이들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하며 정규직 전환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현대차는 매번 새로운 외주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시기 민주노총·금속노조의 역할을 평가하면 이렇다. 정규직 노조의 방어에는 성공했으나, 자동화 이득의 배분을 산업 전체 수준에서 교섭하는 데는 실패했다.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는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심화됐고, 금속노조의 중앙교섭 체계는 11편에서 보듯 69개 사업장·1만 8천 명으로 축소됐다.
세 번째 전환 —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노동의 등장 (2015~)
2015년 이후 한국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됐다. 배달의민족·쿠팡이츠·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의 급성장, 공장의 스마트팩토리 도입, 금융의 모바일·AI 기반 재편.
이 전환의 노동 영향은 이중적이었다. 기존 노동자에게는 업무 강도의 증가와 감시의 내재화, 그리고 새로운 노동 형태의 등장 —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 프리랜서 IT 노동 등 플랫폼 노동 — 이 있었다.
민주노총은 이 국면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 2019년 5월 라이더유니온이 독립 산별노조로 출범했고(이후 2023년 3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 2020년 무렵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가 설립되어 같은 해 우아한청년들(배달의민족)과 플랫폼 배달업계 최초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2024년 9월에는 대법원이 대리운전 기사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지위에 관한 최초의 대법원 판례(2020다267491)가 확정됐다. 플랫폼 노동자의 조직화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계가 있었다. 플랫폼 노동자 조직화가 진행되는 동안,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 경영 자체에 대한 규제는 거의 마련되지 못했다. 9편에서 다룬 알고리즘 투명성, 이의제기 절차, 변경 시 사전 협의 — 이 모든 것이 아직 제도화되지 못했다.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은 여전히 "기업 비밀"로 보호되고, 노동자가 "사장"인 알고리즘과 교섭할 방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AI 시대로 넘어오고 있다.
세 번의 실패가 말하는 패턴
이 세 번의 기술 전환에서 민주노총이 보인 패턴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패턴 1: 기업별 방어에 집중 → 산업별 구조 문제 방치. 컴퓨터화 때는 은행·대기업 정규직 방어, 자동화 때는 완성차 정규직 방어, 디지털 전환 때는 핵심 업종별 노조 방어에 집중했다. 그 결과 보호받는 노동자의 섬이 지켜졌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바다가 넓어졌다.
패턴 2: 이득 배분 의제 부재. 세 번의 전환 모두 기술 도입으로 막대한 생산성 이득이 발생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교섭 의제에 "그 이득의 귀속"은 본격적으로 포함된 적이 없다. 임금 인상은 생산성 이득의 일부분일 뿐, 자본에 귀속된 잉여가치 자체에 대한 권리 주장은 없었다.
패턴 3: 투쟁 후 복귀형 대응. 정리해고가 발생한 후, 하청 문제가 터진 후, 플랫폼 노동 문제가 가시화된 후에 대응했다. 기술 도입 이전에 그 조건을 협상하는 선제적 개입은 없었다. 이것이 5편에서 제안한 노동영향평가가 중요한 이유다 — 사후 대응에서 사전 개입으로의 전환.
네 번째 전환 — 이번엔 다를 수 있는가
피지컬 AI는 이전 세 번의 기술 전환과 질적으로 다른 국면이다. 1편에서 논의했듯이, 그것은 노동의 조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동 자체의 존재를 침식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
패턴 1의 반복: 현대차·삼성전자 정규직 조합원은 AI 전환 과정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부품 하청,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는 대규모로 밀려난다. 정규직의 섬은 좁아지고, 보호받지 못하는 바다는 더 넓어진다.
패턴 2의 반복: AI 도입으로 기업이 얻는 막대한 비용 절감과 생산성 이득은 자본에 귀속되고, 노동자는 임금 인상 투쟁만으로 그 이득의 일부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12편에서 본 구조적 비대칭 속에서, 임금 인상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몫은 점점 줄어든다.
패턴 3의 반복: AI 도입이 본격화된 후 대량 실업이 가시화되어서야 민주노총이 긴급 대응에 나선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다 — 일단 도입된 로봇이 "철수"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달라져야 할 것
이 시리즈를 통틀어 일관되게 제안해 온 것들을 이 편의 결론에서 다시 모은다.
첫째, 기업별 교섭을 초기업 교섭으로 전환해야 한다(11편). 법 개정이 완료되기 전에도 금속노조 중앙교섭 참여 사업장을 확대하고, 업종분과위원회를 활성화해 산업 단위 공동 교섭 의제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이득 배분이 아닌 소유 재편을 의제화해야 한다(12편). 단순 임금 인상이 아니라, 학습 데이터 공동 소유, 자동화 설비 노동자 지분 참여, 산업 단위 공동 기금 — 자본의 배타적 소유권 자체에 균열을 내는 의제들.
셋째,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개입의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5편). 노동영향평가의 법제화, EU AI Act 수준의 고위험 AI 규제, 알고리즘 투명성 의무화.
세 번의 기술 전환에서 민주노총이 했던 것 — 방어 투쟁 — 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방어만으로는 이번에 충분하지 않다. 방어와 함께 구조 재편을 의제로 들고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연구해 오면 수용하겠다"고 했던 그 말이 시험대에 오르는 지점이 여기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역사적 한계를 정직하게 인식하고, 이번에는 다른 의제를 들고 가느냐 — 그것이 네 번째 전환의 결과를 결정할 것이다. ■
출처:
- 민주노총 『민주노총 30년사(1995~2025)』 발간 보도자료 (2025.11): https://nodong.org/statement/791183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항목 (1995년 창립, 1999년 합법화 경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9274
-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30년 평가 — 1997 외환위기 및 2008 금융위기 구조조정 투쟁 쟁점' (2025.12, 박준형 『투쟁의 역사, 성찰의 기록: 한국 노동운동사 1987-2025』 서평): https://pssp.org/bbs/terms.php?termID=3
- 노중기, 「민주노총 30년,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비판과 성찰」, 『경제와 사회』 148호 (2025): 비판사회학회 학술지.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의 구조적 분절, 진보 정치의 붕괴, 사회적 대화 및 국가의 통제전략 전환 등이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위기 요인이라는 학술적 진단
- 1997~1999년 민주노총 노사정위원회 불참 경과: 위키백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항목
- 현대차 비정규직(사내하청) 불법파견 투쟁과 대법원 판례: 국내 다수 판례 (대법원 2010.7.22 선고 2008두4367 판결 등)
- 라이더유니온 2019년 5월 1일 출범 (초기 독립 산별노조), 2023년 3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편입: 라이더유니온 공식 (https://riderunion.org/) 및 노동과세계 등 다수 보도
-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 2020년 우아한청년들(배달의민족)과 플랫폼 배달업계 최초 단체협약 체결: 우아한청년들 보도자료 (https://www.woowayouths.com/media/press/view/1/194)
- 대리운전 기사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처음 인정한 대법원 판결: 대법원 2024.9.27 선고 2020다267491 판결 (플랫폼 종사자의 노조법상 근로자 지위에 관한 최초의 대법원 판례). 대법원 보도자료: https://www.scourt.go.kr/portal/news/NewsViewAction.work?seqnum=10075&gubun=4. 한국노동연구원 판례 평석: https://www.kli.re.kr/kli/prcdntView.es?prcdnt_no=138043
- 학습지교사 노조법상 근로자성 인정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의 출발 판례): 대법원 2018.6.15 선고 2014두12598, 12604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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