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책방에 모인 사람들
— 사회연대경제 탐방단 모임 참여기
강민신
스페인어과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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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 연희동의 아늑한 공간, ‘초콜릿 책방’에서 소모임 회원을 중심으로 한 사회연대경제 탐방단 모임이 열렸다. 번역협동조합 사무국에서 일하는 최재직 동문이 공간을 내어주었는데, 조합 사무실이 따로 없어 총회나 모임이 있을 때 이곳을 활용한다고 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사회연대경제 탐방단을 제안했다는 충주에서 올라온 안미현 동문, 정년 이후 의미 있는 활동을 찾고 있는 박찬호 동문, AI 시대에 소규모 사업체의 어려움을 체감하며 전환을 모색하는 강민신 동문, 마을 공동체 활동가 김복남 동문, 사회적 경제 매체 ‘이로운넷’의 편집국장 겸 부사장 남기창 동문과 회사 동료 이수진 기자까지. 세대도 배경도 제각각이었지만, “사회연대경제가 무엇이고, 우리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가”라는 공통된 궁금증이 이 자리를 만들었다.
🌊 오늘의 강연: 탄탄주택협동조합 김수동 이사장
이날의 초대 강연자는 탄탄주택협동조합의 김수동 이사장이었다. 모임을 기획한 최재직 동문조차 5년 넘게 노래 모임에서 함께하면서도 정작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 오늘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만큼 현장에서 묵묵히 일해 온 분이었다.
김수동 이사장은 원래 IT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벤처기업을 창업해 10여 년간 경영자로 살았다. 2014년, 50대 초반에 개인적·사회적 충격을 겪으면서 “다른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사회적 경제에 발을 들였다. 1929년생 어머니와 함께 살며 노년의 사회적 고립 문제를 가까이서 목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실버타운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의 선택지일 뿐, 우리가 협력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이 출발점이 되어, 2015년 13세대가 모여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고, 경기도 고양시에 다세대 공동체주택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되었다.
전세사기, 사회연대경제로 풀다
강연의 핵심은 탄탄주택협동조합의 전세사기 피해 대응 사례였다.
2023년,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대규모 전세사기가 터졌다. 피해자는 대부분 20~30대 1인 가구 청년들, 전부 오피스텔 거주자로, 총 311채·약 250억 원 규모였다. 한 명의 임대인이 공인중개사와 결탁해 무자본 갭투자를 벌인 것이 원인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영원히 오를 거라는 전제 위에서 전세제도가 작동했는데,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이라는 외부 충격이 그 전제를 무너뜨렸다.
피해자들의 상황은 참담했다. 김 이사장은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고 싶으면 전세사기를 한번 당해봐라”는 표현으로 그 고통을 전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이 고통의 공간이 되고, 경찰에 가면 “사기인지 당신이 입증하라”는 말을 듣고, 누구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이때 한국사회주택협회가 움직였다. 경기도에 제안해 협동조합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자고 나선 것이다. 2023년 5월, 사회주택 활동가 7명이 발기인이 되어 탄탄주택협동조합을 설립했고, 전세사기 피해자 21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 협동조합이 문제를 푸는 구조
구조는 이랬다. 협동조합이 사기 임대인으로부터 오피스텔의 소유권을 인수하고, 장기 민간임대주택 사업자로 등록한다. 조합원(피해자)은 사기범이었던 임대인 대신 자신들이 만든 협동조합과 새로 임대차계약을 맺는다. 시세 기준 90% 수준으로 계약을 갱신해 전세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맞추고, 나머지 10%는 출자금으로 약정한다. 이후 점진적으로 반전세·월세로 전환해 임대수익을 만들고, 장기적으로 출자금까지 반환하는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순탄하지 않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피해자이면서 소유자인 이중적 지위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보증보험 인수를 거절했다. 경기도의 정책자금 지원 약속도 실무 단계에서 무산됐다. 사업의 두 가지 전제조건이 동시에 무너진 것이다.
활동가들은 멈추지 않았다. 화성시 사회적경제센터, 화성 한마음 신협(약 3% 금리 상생자금 대출), 사회가치연대기금, 시민연대기금 모금, 그리고 변호사·법무사·세무사·공인중개사 등 뜻을 같이하는 민간 전문가들의 재능기부까지, 가능한 모든 통로를 동원했다. 특히 지역의 선량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24채에 달하는 오피스텔 관리를 전담하며 저렴한 중개료로 협력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설립 약 2년 만에 조합원 전원의 전세 피해가 복구되었다. 원래 약정 대비 94%를 되돌려받은 셈이다. 당초 10년으로 잡았던 계획이 크게 앞당겨진 것이다. 현재 피해자 조합원들은 모두 보증금을 반환받고 탈퇴했으며, 활동가 조합원들이 남아 사회주택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 시혜가 아닌 연대
김 이사장이 강조한 것은, 이 모델이 정부의 시혜적 지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었다. 전통적 정부 대책은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고, 절차가 경직되어 있으며, 피해자를 수동적 구제 대상으로 둔다. 반면 탄탄주택의 방식은 피해자가 당사자 주체로 참여하고, 활동가들이 전문성과 관계망을 동원해 유연하게 대응하며, 시민사회가 연대하는 구조였다. 피해자 중 두 명이 당사자 이사로 활동하며 활동가와 피해자 사이의 신뢰를 끝까지 유지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한계도 솔직히 이야기했다. “다시는 이런 짓 하면 안 된다”는 것이 협회 활동가들의 교훈이라고 했다. 공공과의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선의의 민간이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연대경제의 유연한 대응력과 공공의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현장의 경험으로 증명한 사례였다.
🌊 2부: 나답게 늙어갈 수 있는 집
공동체주택이라는 대안
2부에서 김수동 이사장의 이야기는 전세사기 대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초고령 사회에서 공동체주택이 왜 필요한가로 확장되었다.
출발점은 개인적 경험이었다. 2014년, 어머니 친구분이 집에 모였을 때 한 분이 “이렇게 혼자 오래 살 줄 몰랐다”고 탄식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초고령 노인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75세가 넘으면 무조건 요양원이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도 많다. 고립되지 않고 이웃과 어울리며, 공적 돌봄이 아니라 약간의 생활 지원만 받을 수 있는 주거 환경이 갖춰지면 훨씬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돌봄 비용을 낮추는 효과까지 있다.
공동체주택의 핵심은 ‘공유 공간’이었다. 함께 모인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공유 공간을 마련하고, 그 덕분에 개인의 전유 공간은 미니멀하게 줄일 수 있다. 집에 거품을 쫓을 필요 없이, 공유 공간이 넉넉하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 주택을 소비재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내가 필요한 집을 직접 만들고 공급하고 사는 것 — 협동조합의 이중적 지위가 여기서도 작동하는 셈이다.
🎉 실버타운의 한계, ‘우리 동네 스테이’의 가능성
김 이사장은 정부의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내놓았다. 기존 실버타운은 보증금 수억 원에 월 수백만 원이 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만의 선택지다. 정부가 새로 내놓은 ‘실버스테이’ 역시 보증금 2억 원 이상에 월 200만 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로, 과연 중산층이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우리 동네 스테이’라는 구상이었다. 일본의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지역 밀착형 소규모 고령자 주택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배리어프리 설계에 공유 공간을 갖추고, 동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지역사회와 고립되지 않는 형태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연계하면, 월 150만 원 전후의 주거비로 주거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는 — 진정한 의미의 중산층 부담 가능 주택이 된다는 계산이었다.
“돈 버는 집이 아니라 돌봄이 되는 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김 이사장의 말이 인상 깊었다. 공동 식사가 해결되고, 코디네이터 한 분이 복지 서비스 연결과 병원 동행 같은 생활 지원을 해주면, 요양원에 가지 않고도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꿈과 현실 사이, 뜨거운 토론
2부는 참석자들의 관심과 질문이 쏟아지면서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
박찬호 동문은 아내의 건강 문제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이주를 고민하고 있다며, 타운하우스를 둘러봤지만 천편일률적인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각자 원하는 형태의 독립된 집에 살면서도 공동의 공간을 공유하는” 모델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실버타운에서 “왕년에” 이야기를 늘어놓는 분위기가 싫다는 솔직한 고백도 나왔다. 쉐어하우스는 과거 가톨릭 공동체에서 시도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완전한 공동생활이 아니라 독립 공간을 확보하면서 느슨하게 연결되는 형태가 현실적이라는 데 공감이 모였다.
김 이사장은 “세 사람만 있으면 생각해볼 수 있다”고 답했다. 공동체주택은 결국 사람을 모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뜻을 모은다면 충분히 추진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남기창 동문은 “민주당 정권이 지속된다면 정책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끼리 작게 하는 것보다 대안을 정책으로 올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실제로 김 이사장은 그날 오전에도 서울시장 후보 의원실에서 공동체주택 정책 제안 간담회에 다녀왔다고 했다. 수도권 남양주 별내에서는 뉴스테이 사업으로 시작된 아파트가 주민들의 의지로 협동조합형 아파트를 유지하고 있으며, 새 정부에서 이를 장기 민간임대로 전환하고 협동조합형 아파트를 확대하라는 정책적 검토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다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결국 거버넌스가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 다시 한번 강조되었다. 주거 운동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공공 자금을 매칭하고, 시민이 주체로 나설 수 있는 통로를 여는 것 — 정책과 현장이 만나야 비로소 움직인다는 것이다.
🌅 모임을 마치며
와인과 주스가 돌고, 이야기는 정책 토론에서 각자의 노후 이야기로, 다시 다음 모임 계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누군가는 “외민동 공동주택을 만들어보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졌고, 웃음이 번졌다.
이날 모임은 ‘이로운넷’과 외민동(외대 민주동문) 공동 기획으로 진행되었다. 1부의 탄탄주택협동조합 사례가 “사회연대경제가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면, 2부는 “그렇다면 우리의 노후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더 가까운 질문으로 다가왔다.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의 해법에서 출발해, 초고령 사회의 주거 대안까지 — 사회연대경제라는 말이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혼자 오래 살 줄 몰랐다”는 탄식이 아니라, “함께라서 오래 살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돌아가는 길. 다음 모임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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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다세대주택을 지어 분양ㆍ전세 주는 업체가 대충 지어 놓은 빌라에 전세 살고 있는데, 업체에 빚이 많아 이사 나가려 해도 전세금 바로 못 돌려준다 해서 마음고생을 하는 처지라서 그런지, 평소 전세 사기가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아요.
그런데, 탄탄주택협동조합의 전세 사기 피해 복구 과정ㆍ방법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네요. 어렵다~ ㅠ
외민동 노후 공동주택이나 주거단지 조성 등은 생각해볼 만은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