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 생명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
이주하
변호사, 법학과 01
1️⃣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첫 장면. 회사는 25년을 일한 노동자에게 그렇게 통보한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을까.
오전에 의견서를 쓰다가 미정 씨에게 물었다. 이거 진짜예요?
2024년 12월 89마리, 2025년 2월 39마리. 소심하고 겁 많던 들개 ‘유진이’는 ‘매우 공격적’이라는 죽음의 사유를 달고 시(市)보호소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래저래 어쩔 수가 없었다고(아래는 유진이 사진).
2️⃣ 안락사(euthanasia)는 그리스어로 “좋은 죽음”이다. 불치의 고통이 있을 때, 그 생명을 위해 베푸는 자비의 행위다.
그러나 유진이, 유진이와 함께 있던 무수히 많은 아이들은 건강했다.
갑자기 잡혀 와 두려움에 떨었을 뿐, 불치의 고통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불치(不治)의 인간들에 의해 생명을 중절당했다.
사람이 사고, 사람이 버리고, 사람이 관리하지 못한 생명들을,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또다시 사람이 죽인다. 이름은 안락사이지만, 실질은 ‘살처분’이다.
3️⃣ 현행 「동물보호법」 제46조 제1항은 “동물보호센터의 장이 보호조치 중인 동물에게 ‘질병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마취 등을 통해 고통을 최소화하는 인도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 제2항은 그 처리를 수의사가 하도록 규정한다.
법문(法文)은 어디까지나 ‘질병 등’이라는 예외적 사유와 ‘고통의 최소화’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 예외가 원칙이 되어 버렸다. 「동물보호법」상 유실·유기 동물의 보호조치는 7일 이상 공고하면 족하고, 공고일로부터 열흘이 지나면 지방자치단체가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제40조·제43조). 그 길지 않은 기간 안에 주인이나 입양자를 찾지 못하면, 건강한 동물조차 ‘관리 곤란’, ‘공격성’, ‘수용 한계’ 등의 이름표를 달고 죽임을 당한다. 실제로 농림축산검역본부의 202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그해 전국 동물보호센터에 들어온 유실·유기 동물 약 10만 7천 마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6%가 보호소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자연사가 27.5%, 안락사가 18.5%이다. 회복 불가능한 고통을 끝내주기 위한 자비는, 어느새 보호소를 비우기 위한 행정으로 변질되었다. 법은 ‘인도적 처리’라고 적었지만, 인도(人道)가 빠진 처리만 남은 것이다.
4️⃣ 유실·유기 동물의 관리와 보호 주체는, 원칙적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이다. 「동물보호법」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동물보호센터를 설치·지정하고 그 비용을 지원하도록 정하고 있다. 즉 길 위의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본래 공공의 의무다.
그러나 그 공공의 시스템, 직영이든 위탁이든, 지방자치단체의 동물보호센터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용할 부지가 없다는 이유로 생명을 줄 세워 죽인다. 사람이 만들어 낸 문제, 즉 번식과 유기와 방치의 비용을, 정작 아무 잘못 없는 동물의 목숨으로 정산하는 셈이다. 예산과 부지는 인간의 선택적 사정이다. 생명을 끝내는 결정을 정당화하기에는,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래서 너무나 부끄러운 단면이다.
게다가 정작 더 많은 생명을 실제로 떠안고 있는 것은 공공이 아니다. 시 직영이나 시 위탁 보호소보다 훨씬 더 많은 유기·유실 동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곳은, 국가의 지원 없이 오직 운영자의 자비와 시민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민간 동물보호소이다.
이들은 심지어 직영 시보호소에서 안락사를 앞둔 동물까지 데려와 떠안는다. 공공이 ‘어쩔 수 없다’며 끝내려던 생명을, 지금까지 민간의 빈 주머니가 대신 살려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민간 보호소에 상황에 맞는 지원은 좀처럼 없다. 행정은 오직 규제를 들고 이들을 찾는다. 2023년 도입된 민간 동물보호시설 신고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보호소에 시설·운영 기준과 신고 의무를 부과하지만, 오랜 세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명을 보호․관리해 온 기존 보호소들의 상당수는 농지법·건축법 등 개별 행정법규가 정한 입지·건축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형편에 맞는 지원이 아니라, 온갖 행정법적 하자를 이유로 한 시정·이전·폐쇄 명령과 이행강제금이다.
생명은 행정의 안에 없다. 칸을 채우는 통계와, 보여주기식 구호만 있을 뿐이다.
5️⃣ 문제의 근원은 훨씬 더 깊다. 우리 「민법」은 여전히 동물을 제98조의 ‘물건’으로 본다. 물건이기에, 동물의 죽음은 ‘재물’의 처분으로 환산되고, 학대는 ‘재물손괴’로 가벼이 다루어지며, 보호소의 안락사는 재고(在庫) 정리의 논리로 치환된다.
이를 바꾸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법무부는 2021년 민법에 제98조의2를 신설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그 법안은 여야가 뜻을 모으고도 제21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제22대 국회에서도 같은 취지의 개정안과, 반려동물에 대한 압류를 금지하는 민사집행법 개정안을 발의하였으나, 1년이 넘도록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
그러던 논의가 최근 다시 시작됐다. 2026년 4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한 반려견 학대 사건의 기소를 계기로 “동물의 비물건화 민법 개정을 국민적 합의를 거쳐 다시 추진하겠다”라는 뜻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2026년 6월, 법무부는 그 첫걸음으로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국민 여론조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 개정에 앞서 대국민 의견 수렴 절차부터 밟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이 문제를 한 부처의 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미이다.
이미 세계는 오래전에 그 길을 걸었다. 오스트리아(1988년), 독일(1990년), 스위스(2003년)는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규정하였다. 보호소의 살처분을 두고서도, 독일은 1972년부터, 이탈리아는 1991년부터, 대만은 2017년부터,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던 실질적 ‘살처분’을 법으로 금지했다.
한국은 2026년 현재에도 그것이 가능하다.
6️⃣ 동물이 ‘물건이 아니다’라는 한 문장은, 단지 손해배상액을 높이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기술적 조항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선언이며, 우리 사회가 생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약속이다.
생명에 서열이나 위계는 없다. 사람의 생명도, 들개 유진이의 생명도, 길 위의 한 마리 고양이의 생명도, 그 무게는 다르지 않다. 지구라는 같은 터전에서 함께 숨 쉬는 모든 생명은 동등하며, 공존은 시혜가 아니라 전제다. 어느 한 생명을 ‘어쩔 수 없다’며 버리는 사회는, 결국 다른 어떤 생명도 끝내 지키지 못한다.
하루 종일 유진이의 그 눈빛에 눈물이 아롱아롱한다. 화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미안함이라는 단어로는 도무지 담지 못하는, 저 깊은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깊은 고통 같은.
그러나 미안함이나 슬픔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법을 바꾸고, 주체를 바로 세우고, 예산을 핑계 삼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 그것이 생명을 대하는 기본이다. 생명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
이주하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엘피 파트너변호사
사법시험 53회, 사법연수원 43기
충주시 마을변호사(2014.~)
해양환경공단 정보공개심의회, 징계위원회 외부위원(2024. 3.~)
국회추천공직자자격심사특위 위원(2021.~)
한국발명진흥회,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등 공공기관 면접위원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남양주시 교통약자지원센터,
광진구 1인가구지원센터 등 외부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