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나갔다. 여론조사 결과는 캠프로 갔다. 재판부 스스로도 “유죄의 의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결론은 무죄였다.
지난 23일 서울고법 형사7부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의 줄기는 단순하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명태균이 비공표 여론조사를 열 차례 돌렸다. 그 비용 3,300만 원을 오세훈의 후원자 김한정이 다섯 차례에 나눠 냈다. 지난 7월 1심은 이 가운데 다섯 차례를 유죄로 보고 벌금 1,000만 원과 추징금 2,100만 원을 선고했다. 확정되면 시장직을 잃는 형량이었다. 2심은 이를 통째로 뒤집었다.
같은 재판부, 16일 사이 두 번의 뒤집기
이 재판부가 1심 유죄를 뒤집은 것은 이달에만 두 번째다. 지난 7일에는 명태균에게서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받은 윤석열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때의 논리는 “정치적 조언은 돈으로 환산할 재산상 이익이 아니다”였다. 이번에는 “명태균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였다. 이유는 매번 달라지는데 결론은 매번 같다.
증거 대신 짐작으로 채운 판결문
판결문을 들여다보면 증거보다 재판부의 짐작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재판부는 이틀 전 처음 만난 사람에게 오세훈이 울면서 불법 비용까지 부탁했을 리 없다고 했다. 증거가 아니라 “그랬을 리 없다”는 판단이다.
김한정이 부가가치세까지 얹어 계좌로 돈을 보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하면서도, 이를 불법이 아니라는 쪽으로 읽었다. 대신 내주는 사람이 왜 부가세까지 챙겨 보냈는지는 묻지 않았다.
재판부는 2021년 2월 이후 명태균과 김한정이 “꽤 막역한 사이”가 되어 돈을 줬다고도 봤다. 친해져서 3,300만 원을 냈다는 얘기다.
1심은 달랐다. 명태균의 말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카카오톡 대화와 통화 기록, 여론조사 파일을 주고받은 내역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은 받아들였다. 2심은 이 객관적 자료들을 “명태균을 믿기 어려우니 전부 부족하다”는 한 문장으로 지웠다. 증거로 메워야 할 빈자리를 추측으로 메웠고, 그 추측은 하나같이 피고인 쪽으로 기울었다.
시민사회가 들고 일어났다
참여연대는 선고 당일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이 “여론조사 비용 대납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자금법 위반에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했다. 정치인의 요청 없이 업자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냈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은 “사법정의 사망선고”라고 했다. 다음 날 국회 앞 촛불집회에서도 이 판결이 도마에 올랐다. 몇몇 정당의 반발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판결이 남기는 선례는 분명하다. 브로커에게 여론조사를 맡기고, 후원자가 돈을 대고, 정치인은 “몰랐다”고 하면 빠져나갈 수 있다.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하자고 만든 법이 힘을 잃는다.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봐야 한다
이번 판결을 판사 한 사람의 문제로만 보면 핵심을 놓친다. 우리는 내란을 겪었다. 지귀연 재판부는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해 풀어줬다. 선거 사건을 전담하는 재판부는 올해 2월 인사에서 재판장이 바뀐 뒤 명태균 사건 두 건을 연달아 뒤집었다.
사건은 어떻게 배당되는가. 재판장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앉히는가. 판결문은 왜 시민이 쉽게 볼 수 없는가. 잘못된 판결에는 누가 책임을 지는가. 이 모든 것이 내란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내란을 거치고도 바뀌지 않은 사법 구조, 그것이 이번 판결의 진짜 배경이다.
광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검은 상고했다. 김건희의 같은 명태균 여론조사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가 있다. 그곳에서 명태균의 진술을 어떤 기준으로 볼지가 정해진다. 특검법 기한을 감안하면 대법원 판단은 내년 1월 무렵 나올 전망이다.
그렇다고 대법원이 이 판결을 바로잡아 주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 꼭대기에 조희대가 있기 때문이다. 업무추진비로 고급 오마카세를 먹은 일을 두고 “구성원들이 못 먹어 보던 음식을 먹어 보고 싶어 했다”고 답한 사람이다. 대법관 제청은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이라며 대통령과 국회가 간섭하면 위헌이라고 맞선 사람이다. 김건희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긴 직후에는 선고를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질타까지 받았다. 사법개혁의 문 앞을 막아선 사람이 바로 그라는 것이 이미 많은 시민의 판단이다.
길은 분명하다. 조희대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국회가 탄핵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위에서 사건 배당과 재판장 인사, 판결문 공개, 잘못된 판결에 대한 책임까지 사법 구조 전체를 다시 짜야 한다.
내란 청산은 끝나지 않았다. 광장에서 시작된 싸움이 이제 법원 문턱에 와 있을 뿐이다.
법은 저절로 정의로워지지 않는다. 지켜보는 눈이 있을 때만 바로 선다. 법정의 문이 닫히면 광장의 문을 연다. 판사가 기득권의 편에 서면 시민은 역사의 편에 선다.
계엄을 막아낸 것도, 내란 수괴를 끌어내린 것도 법원이 아니라 광장이었다. 사법개혁도 다르지 않다. 광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외민동 공감소통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