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피디의 문화산책] 같은 날짜, 두 개의 촛불

두 개의 촛불
한피디의 문화산책은 대학 시절 FBS 방송국 마이크 앞의 감성으로 떠나는 문화 산책입니다. 그림 한 점, 노래 한 곡, 책 한 권에 담긴 사람과 시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끔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곁들입니다. 신청곡과 사연은 댓글로 보내 주세요.
한피디의 문화산책, 열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10월 29일은 우리에게 두 번 찾아온 날입니다. 2016년 이날 첫 촛불이 켜졌고, 2022년 이날 이태원 골목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화가 나서 든 촛불과 슬퍼서 든 촛불. 오늘은 같은 날짜의 두 촛불 이야기입니다.
첫 곡은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입니다. 2016년 11월 19일 밤, 광화문 촛불 무대에서 전인권이 이 노래를 부르자 수만 명이 따라 불렀습니다.
그해 겨울, 저는 광장에 없었습니다
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 수만 명이 촛불을 들고 모였습니다. 그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토요일마다 23번, 모두 1,700만 명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12월 9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명 모두 한목소리로 대통령을 파면했습니다.
그해 겨울, 저는 광장에 없었습니다. 지방에 살고 있었고, 아이들은 아직 갓난아기였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유튜브 생방송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6년 뒤 같은 날, 다른 촛불
그리고 6년 뒤 같은 날, 2022년 10월 29일 밤.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놀러 나온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에 갇혀 159명이 숨졌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이어졌지만 나라는 거기 없었습니다.
그 뒤로 켜진 촛불은 화난 촛불이 아니라 슬픈 촛불이었습니다. 6년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촛불과 같은 촛불인데, 이번에는 지켜 주지 못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들었습니다.
분향소 앞을 지키던 날들
슬픔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정부는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이 차린 분향소 앞에는 막말과 조롱을 퍼붓는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영정 앞에서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유가족 곁을 지키는 자원봉사를 나갔습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옆에 서 있는 일이었습니다. 소리 지르는 사람과 유가족 사이에 서서, 그분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일.
8년 뒤 겨울, 이번에는 광장에 섰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그다음 날 밤부터 저는 거의 모든 집회에 나갔습니다. 맨 위 사진처럼 외민동 깃발 아래에서요.
함께 간 날이 많았던 건 아이들이었습니다. 2016년 겨울에 갓난아기였던 그 아이들이 이번에는 응원봉을 들고 제 옆에 섰습니다. 8년 전에는 제가 아이들 때문에 광장에 못 갔는데,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광장에 섰습니다. 촛불은 응원봉으로 바뀌었지만 광장은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12월 14일 국회는 다시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고,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이번에도 8명 모두 한목소리로 파면을 결정했습니다.
10년 동안 바뀐 것과 안 바뀐 것
10년 동안 우리는 대통령 두 명을 광장의 힘으로 물러나게 했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바뀌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4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토요일 서울광장 4주기 추모대회에서 국무총리는 정부를 대표해 다시 사과하면서 "책임자 징계가 부족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진상을 밝힐 특별조사위원회는 활동 기간이 1년 늘어났지만, 정작 일할 예산은 아직 제대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바꿨지만, 골목에서 쓰러진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 나라는 아직 다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피디의 생각
촛불은 대통령을 바꾸려고 든 게 아닙니다. 나라가 사람을 지키라고 든 겁니다. 그래서 이태원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촛불이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입니다.
사과보다 예산입니다. 특별조사위원회가 일할 돈과 사람을 주지 않으면서 진상을 밝히겠다는 말은 빈말입니다. 국회와 정부는 올해 안에 답해야 합니다.
광장은 대를 이어 갑니다. 2016년에 화면으로만 보던 아빠가 2024년에는 아이 손을 잡고 광장에 섰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또 무언가를 바꿀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아이들에게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는 겁니다.
오늘 오전 10시 29분, 참사가 일어난 시각에 맞춰 광화문 북광장에서 정부 공식 4주기 기억식이 열립니다. 저녁 7시 반에는 녹사평역과 이태원역 일대에서 낭독문화제와 추모 행진이 이어집니다. 이건 누구나 함께할 수 있습니다. 같은 날 저녁 대전, 수원, 대구에서도 추모 행사가 열립니다. 가지 못하시더라도 잠시 159명을 떠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곡은 이번에도 일부러 신나는 노래로 골랐습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입니다. 2016년 여름 이화여대 학생들이 농성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해 겨울 광장을 거쳐, 2024년 겨울에는 응원봉 광장을 대표하는 노래가 됐습니다. 10년을 한 곡으로 이어 온 노래입니다. 슬픈 날일수록 우리는 신나게 노래하면서 버텨 왔습니다.
한피디의 문화산책,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의 첫 촛불은 언제였나요? 응원봉은요? 댓글로 들려주세요.
사진: 2024년 12월 4일 밤 집회 현장의 외민동 깃발 · 외민동 앨범
참고: 뉴시스(2016.11.20), 경향신문(2026.10.24), 코리안센터 보도(2026.10)
언제 첫 촛불을 들었는지 분명하게 기억이 안납니다.
그러나 내가 촛불을 들었음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2016년 박근혜탄핵 떄이네요.
광화문 광장이다 보니 서대문에 사는 특혜를 누렸어요.
제주로 조합원크숍을 갔을 때 우린 동반한 아이들까지 데리고 서귀포시에서 제주시까지 차를 타고 달려가서
참여했지요. 늘 혼자가 아니라 마을사람들과 같이 참여했고, 당시 중학생이었던 막내와도 갔던 적도 있고요,
넓은 광장에서 탄핵을 외치는 함성과 함께 해방구 느낌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몇십년만에 광장에서 마주친 반가움도 경험하고요.
총 22회를 참여해서 그 해 마을 송년모임 때 촛불아차상을 받았습니다.
왜 우리는 공식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 자리가 분명한 중대한 일들은 지지부진 얼렁뚱땅,,,
부끄러운 일들을 반복하는 걸까요?
그것도 아이들이, 젊은이들이 희생된 일들을 말이지요.
벅찼던 촛불집회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