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게시판

문예게시판

<복숭아 연정-9> "앙콜~~~ 앙콜! 앙코르~~~!" 상철이형의 노래가 끝나자 열광적인 환호와 함께 앵콜요청이 쇄도했고, 단박에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앙콜은 한바쿠 돌고나서 부르기로 허고 다음은 나가 가리키는 사람이 부르기로 혔제?" 상철이형은 안평리 처자를 지목했다. 안평리 처자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서 조신하게 노래를 불렀다.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애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 𝅘𝅥𝅯 " 이어서 안평리 처자가 대근이 아재를 지목했고, 아재는 남진과 쌍벽을 이루던 나훈아의 노래로 구성지게 화답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 먼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괴로워서 울테니까요~~♬ 𝅘𝅥𝅯 " 대근이 아재는 앞동네 성자누나를 지목했는데, 안평리 처자와 대근이 아재 노래가 분위기를 조금 가라앉게 만들었다고 느꼈는지 성자누나는 허리춤을 추켜올리면서 목소리 옥타브를 끌어올렸다.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 정다운 우리 님 닐리리 오시는 날에 원수의 비바람 닐리리 비바람 불어온다네 님 가신 곳을 알아야 알아야지 나막신 우산 보내지 보내드리지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 𝅘𝅥𝅯 𝅘𝅥𝅰" 성자누나는 핸드볼공만한 젖통을 좌우로 흔들어대며 '닐리리 맘보'를 열창했고, 일행들은 박장대소하며 원두막은 어깨춤으로 들썩들썩했다. 흥겨운 분위기를 돋구는데는 상철이형과 성자누나가 그야말로 용호상박(龍虎相搏) 아니 남녀상박(男女相搏)이었다. 그렇게 돌림노래를 부르면서 복숭아파티장은 밤을 찢어버릴것처럼 무르익어갔고, 한식경이 지나자 대근이 아재가 슬그머니 원두막에서 내려와 주인아재에게로 다가와서 부탁을 드렸다. "아재!...
외민동 관리자 2024.08.05 추천 0 조회 125
<복숭아 연정-8> 길섶에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가 울어대는 논둑길을 따라 복숭아밭 원두막에 당도하니 희미한 남포등 아래 산둥개 여남은 마리가 빙빙 돌며 군무를 추고 있었다. "아재! 저 대근이어라우. 그동안 잘 지셨능게라우?" "응~ 어서 오소. 오늘 자네 친구들 온다고혀서 복성 따노코 지달리고 있었네." 대근이아재 친구들은 사다리계단을 타고 원두막 위로 올라가 빙~ 둘러앉았다. 가운데는 물로 깨끗이 씻어논 복숭아 한바구니가 놓여 있고 상철이형이 들고온 막걸리 주전자가 그 옆에 내려졌다. 같은 면(面)에 살아도 국민학교가 달라서 자세히 모르는 네명씩 모였기 때문에 먼저 자기소개를 하면서 막걸리잔을 돌렸다. 아재와 나는 원두막 아래쪽 바위옆에서 모깃불을 피웠다. 먼저 바싹 마른 건초(乾草)로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덜마른 반건초(半乾草) 개똥쑥을 얹으면 몽글몽글 연기가 피어나면서 모기를 쫓아냈다. 모깃불이 피워지자 아재는 쌈지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면서 나에게 말씀을 하셨다. "세현아 오늘 저사람들 누구 누구가 함께 왔는지 다른데 가서 말하믄 절대 안된다. 알것제?" "아재 지가 나이는 쬐까 묵었어도 고정도는 알지라우. 처녀들이 남자들허고 놀러댕긴 것이 소문나불먼 혼삿길이 막힌다고요." "세현이 니가 시방 5학년이라고혔냐? 고럼 알만한 때가 돼앗다. 허허허." 고객의 신상정보를 지켜주는 것은 복숭아밭 주인의 영업상 비밀로 불문률이었다. 막걸리잔이 한바퀴 돌고 서먹한 분위기가 해소되자 대근이 아재가 상철이형에게 넌즈시 권했다. "자~ 인자 서로 인사가 끝났응께 우리들의 카수 상철이가 한곡조 뽑아부러라." "잉~ 그려볼까? 고럼 나가 먼저 한곡 부르고 끝나먼 나가 가리키는 사람이 이어서 부르는 것으로 허세." 상철이형이 일어서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저...
외민동 관리자 2024.08.05 추천 0 조회 134
<복숭아 연정-7> 집에가서 얼른 벌레먹은 복숭아 대여섯개를 보자기에 싸서 챙겨들고 다시 방천으로 나와 대근이 아재를 기다렸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어둑해질 무렵 체크무늬 남방셔츠에 베이지색 나팔바지를 차려입은 대근이 아재가 휘파람을 불면서 나타났다. 역시 서울물을 먹어본 사람이라 패션이 남다르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대근이 아재는 복숭아밭쪽으로 가지 않고 서성거리며 두리번 두리번 좌우를 살폈다. "아재 누구를 찾으싱게라우?" "으~응... 아랫동네 복순이가 오기로 혔는디 혹시 못봤냐?" "나가 아재 따라서 복성밭에 갈라고 해름참(해거름, 해질녘)부터 여그서 지달리고 있었는디 복순이누나는 못봤는디요." "니가 왜 복성밭을 따라와? 어린 놈이 어른(?)들 노는곳에 끼는 것은 아니란다." "울 아부지가 벌레묵은 복성을 바까오라고 하셔서요. 한번은 바까와야 담부터는 잘 골라서 주실거라고요." "느그 아부지 명령이란 말이제?" "예 그렇당게요." 사실 그것은 내가 꾸며낸 말이었다. 벌레먹은 복숭아는 엄니가 칼로 벌레먹은 부위를 도려내고 깍아주셨기 때문에 한번도 바꾸러 가본적이 없었다. 대근이 아재도 울 아부지를 무서워 했기 때문에 아부지 핑계를 대면 어쩔수 없이 받아들일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근이 아재가 방천 언덕배기에 쭈그려 앉아 담배 한대를 피워물고 기다리는데 담배가 다 타들어갈 즈음 복순이누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오빠 오래 지다렸제. 미안해. 아부지가 못나가게 혀서 복성밭 좀 갔다온다는디 뭣이 문제냐고 엄니랑 대판 싸우시고 열두시까정 꼭 들어오것다고 약속허고 포도시(겨우) 빠져나왔네." "그려... 다른 친구들 지다리것다. 빨리 가자." 대근이 아재와 복순이 누나가 앞에 나란히 걷고 나는 벌레먹은 복숭아 보자기를 들고 뒤따랐다. 총 여덟명이 학교앞 다리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음력...
외민동 관리자 2024.08.05 추천 0 조회 105
<복숭아 연정-6> 거칠게 쏟아지던 소나기가 차츰 잦아들더니 여우비로 바뀌어 날이 훤해지면서 다시 해가 나오고 빗방울은 가늘게 듬성듬성 내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리밑을 뛰쳐나가면서 외쳤다. "야~~ 호랭이 장가간다~~!" 비가 오면서 해가 뜨는 날을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불렀다. 나머지 친구들도 다같이 뛰쳐나갔다. 우리들은 냇가 둑방길옆 강변밭에 심어진 토란잎을 하나씩 따서 머리에 얹어쓰고 둑방길을 따라 동네쪽으로 걸어갔다. "와~~ 무지개 떴다~~!" 또 누군가 외쳐서 뒤를 돌아보니 앞산 비봉산(飛鳳山) 중턱과 뒷산 금산(錦山) 중턱에 걸쳐 무지개가 하늘에 빨주노초파남보 일곱빛깔 포물선을 그려놓았다. 우리들은 다같이 폴짝폴짝 뛰면서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를 만끽했다. 동네앞 '물몰이보'에 이르자 비도 거의 그쳤고 우리들은 오래된 관행처럼 둑방에 책가방을 내려놓고 빤쓰만 남기고 발개벗은채 봇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뒤늦게 하교하던 여자애들은 한손으로 냇가쪽 얼굴을 가리고 지나갔다. 물몰이보에서 신나게 멱을 감고 동네 방천에 이르러 저녁에 보기로 하고 각자 고샅으로 흩어졌는데, 저 멀리서 대근이 아재가 억새풀을 한짐 지고 작대기로 지게다리를 두드리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아재가 다가오자 물어보았다. "아재 오늘밤 복성밭에 우리 작은집 옥자고모도 간다요?" "아녀. 오늘은 우리동네 친구들이 아니라 타(他)동네 친구들허고 갈거구먼. " ("어라? 그라믄 안돼는디... 내 작전에 막대한 차질이 생겨분디...") 나는 고민에 빠졌다. 우리동네 선배들만 가면 내가 따라가도 괜찮겠지만, 타동네 선배들이 온다면 필시 내가 따라가는 것을 뺀치놀게 뻔했다. 이 사태를 어찌한단 말인가. 저녁밥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방천에 나가니 동네 친구들도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잔뜩 기대를...
외민동 관리자 2024.08.05 추천 0 조회 117
<복숭아 연정-5> 이틀이 지나 운명의날 반공일(토요일)이 찾아왔다. 지금은 주5일근무가 정착돼서 토요일이 휴무일이지만, 예전에는 직장에서는 오전근무, 학교에서는 오전수업만을 해서 반공일(半空日)이라고 불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공일이 반가운 것은 직장이든 학교든 사람의 몸과 마음을 구속하게끔 짜여진 틀이 가져다 주는 압박감에서 잠시나마 해방될수 있었기 때문일게다. 오전수업 끝종이 울리고 교실청소를 마친 다음 담임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책가방을 둘러메고 야호~~ 환호성을 지르면서 교문을 나섰다. 아까부터 시꺼먼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냇가를 가로질러 건너는 수문교 다리앞에 다달을쯤 거센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리는 누구랄것도 없이 다리밑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다리는 일제시대때 신작로를 만들면서 놓여진 다리로 바로 옆에 국민학교도 있었지만 냇가의 강폭이 가장 좁은 곳이라 거기에 다리를 건설했을성 싶다. 70년대 이전에는 우마차가 냇가(오례천)를 건널수 있는 유일한 다리였다. 언제 그칠지 모르게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태구가 입을 열었다. "세현아 그저께 니가 복성을 배부르게 묵을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제? 그 방법 좀 갈챠주라." 옆에 있는 세명의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우리들도 고것이 알고잡다." 네명의 눈깔 여덟개가 내 입속으로 쳐들어 올것만 같았다. "음~~ 고것이 말이제... 쉬운 일은 아녀." "아 글씨 고것이 뭔디?" "느그들이 내 말을 잘듣것다고 약속허믄 갈챠줄게." "아따 언제는 우리들이 니말 안들었냐?" "모두 약속헌다 이거제? 고럼 요리 모이봐." 친구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옆으로 모여들었다. "오늘 밤에 대근이 아재 친구들이 복성밭에 가는디 고때 나도 따라갈거고만." "근디? 고것이 우리들 복성...
외민동 관리자 2024.08.05 추천 0 조회 112
<복숭아 연정-4> 한참을 기다리니 아재가 대소쿠리 한가득 복숭아를 담아 땀을 뻘뻘흘리며 들고 오셨다. 그리고 저울 위에 올려놓고 눈금을 살피더니 한관이 넘지만 그냥 가져가라시며 내 꼴망태에 담아 주셨다. 그리고 어차피 팔지 못할거라며 못난이 대여섯개를 덤으로 주셨다. 복숭아를 담은 꼴망태를 자전거 짐바리에 싣고 새끼줄로 단단히 묶은 다음 논두렁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엄니께 복숭아를 넘겨드리고 냇가로 멱감으러 가려는데 여동생 둘이 "오빠"하면서 내게로 달려왔다. "오빠 저 산딸기랑 머루 먹어도 돼?" "아직 안먹었냐? 대근이 아재가 줘서 느그들 먹으라고 갖다놨는디." "아부지 엄니가 넘(남)의것은 절대 허락받지 않고 먹으면 안된다고 하셨잖여." "바보들 내가 넘이냐? 글고 내가 느그들 안줄라믄 어디다 숨겨놨것제 왜 마루에다 놔덧것냐. 맛나게 먹어라." 동네 앞을 흐르는 제법 강폭(江幅)이 넓은 냇가의 천연수영장인 '물몰이보(洑)'에 다다르니 동네 아이들을 죄다 모아논듯 봇물속에서 엄벙첨벙 물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나도 위아래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다이빙으로 풍덩 물보라를 일으키며 들어갔다. 아이들은 두패로 나눠서 물싸움도 하고, 수영시합도 하고, 물속에 잠수해서 오래 버티기, 하얀 돌을 멀리 던져 찾아내기 등등 자체놀이방식에 익숙해서 지금처럼 수영강사나 안전요원도 필요없이 서산에 해가 넘어갈때까지 시간가는줄 몰랐고, 바윗돌 밑을 더듬어서 메기를 잡고 대나무로 만든 작살로 붕어나 가물치 같은 물고기를 잡아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한 뀀지(꿰미) 채워서 들고 엄니를 갖다드리면 엄니는 그것을 절반은 밥반찬으로 호박과 감자를 넣어서 조림을 하고, 절반은 아부지 술안주로 얼큰한 매운탕을 끓이셨다. 냇가에서 멱을 감고 집으로 돌아오니까 엄니가 저녁상을 내오셨다. 밥상앞에...
외민동 관리자 2024.08.05 추천 0 조회 16
<복숭아 연정-3> 나는 산딸기와 머루를 집에 가서 마루위 책가방 옆에 던져두고 다시 새터골 복숭아밭을 향해 무거운 짐바리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장마철 삼복더위라 고온다습한 날씨는 땀을 비오듯 흘리게 만들었고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땀으로 안장에 앉은 엉덩이까지 축축해졌다. 이윽고 복숭아밭에 다달아 입구에 자전거를 받쳐놓고 꼴망태를 어깨에 메고 오솔길을 따라 복숭아밭 가운데 있는 원두막을 찾아갔다. 원두막 위에는 주인아재가 부채질을 하면서 담배를 피고 계셨다. 아재는 울 아부지보다 한살 아래 연배이면서 두분이 친한 사이였고 내가 여러번 복숭아를 사러 왔기 때문에 친척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분이셨다. "아재 안녕하셨어요?" "응~~ 세현이 왔냐? 아부지는 잘 계시냐?" "예 잘 계십니다. 오늘도 한관을 사오라고 하셔서요."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십원짜리 다섯개를 빼고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니까 5장이었다. 아재에게 돈을 드리면서 말씀드렸다. "2000원은 오늘 한관값이고요, 500원은 낼모레 반공일날 밤에 우리동네 대근이 아재 친구들이 예닐곱명 오겠다면서 계약금이라고 주셨어요." "대근이 친구들이 온다고? 남자들만 온다냐? 여자도 온다냐?" "글씨... 고건 말을 안혀서 모르것는디요. 복성밭을 남자들만 오것어요?" "여자들이 오먼 치깐(화장실)이 당췌 옹삭시롸서(불편해서) 그러제." "고건 밤잉께 알아서들 하것지라우." "알았다. 한관을 딸라믄 시간이 좀 걸링게 여그서 복성 몇개 깍아묵고 있어라. 생긴건 못났어도 맛은 괜찮을 것이다." 아재가 대소쿠리를 들고 복숭아를 따러간 사이 나는 칼로 복숭아를 깍아먹으면서 원두막에서 복숭아밭을 한바퀴 휘~ 둘러보았다. 원두막에서는 넓고 큰 복숭아밭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원두막에서 가까운 곳은 손이 먼저 가서 그런지 익은것이 거의 없고 멀어질수록 붉으스레한 수밀도가...
외민동 관리자 2024.08.05 추천 0 조회 14
<복숭아 연정-2> 내가 국민학교 5학년때 일이다. 울 아부지는 젊으셨을적에 육척장신에 타고난 강골인데다 당시에는 보기드물게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셨으므로 박학다식한 식견과 언변이 유려하셨고, 타인의 범접을 불허할만큼 애주가(愛酒家)이자 호주가(豪酒家)이셨다. 그래서 우리집은 사시사철 손님들로 대문을 넘나드는 문지방이 닳아없어질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니 없는 살림에 매번 주안상을 마련해야만 하는 울 엄니의 고생은 어찌 필설로 다 형언할수 있으랴. 울 아부지는 다른 과일은 그다지 좋아하시지는 않았으나 유독 복숭아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복숭아가 익어가는 이맘때 나에게 복숭아 심부름을 자주 시키셨다. 복숭아밭은 우리 마을에서 두어마장 떨어진 산밑 새터골에 있었다. 어느날 학교를 댕겨와서 아부지께 "학교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아부지는 나를 부르시고는 2000원(500원짜리 지폐 4장)을 주시면서 복숭아밭에 가서 복숭아 한(1)관(4kg)을 사오라고 하셔서 나는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두고 짐바리 자전거를 끌고 복숭아밭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나와 동네어귀에서 막 자전거를 타려는데 등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지게에 소여물로 줄 억새풀 한짐을 가득 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대근이 아재였다. 대근이 아재는 서울에서 공장에 다니다가 군대를 갔고 모내기철인 5월에 제대를 해서 가을걷이까지 시골에서 농삿일을 돕다가 가을에 농삿일이 끝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 요량이었는데 항상 나를 이뻐해주셨다. 대근이 아재는 동네 앞 큰도랑 방천(防川)의 언덕배기에 지게다리를 내려놓고 어깨끈을 벗고 작대기로 지게를 받치더니 띠꾸리(지게 위의 짐을 묶는 '참바'의 전라도 방언)를 풀고 빨간 산딸기가지 서너개와 시커먼 머루 한넝쿨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세현아! 맛있게 묵어라. 근디 어데가냐?" "아부지 심부름으로 복성(복숭아)사러 새터골에 가고만이라우." "아 그려? 고럼 내가...
외민동 관리자 2024.08.05 추천 0 조회 19
오늘도 쉼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들판의 곡식은 무럭무럭 커가고 있지만, 온전치않은 생명체는 사멸해가고 있다. 얼마전 가수 현철이 평생 모은돈 100억을 사회에 기부하면서 이승에 하직을 고했다. 가수 현철은 오랜 무명시절을 거치면서도 가수의 꿈을 잃지 않고 혼신의 노력과 열정으로 '가수왕'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봉선화 연정'으로 스타덤에 오른 현철을 생각하니 초성음절이 비슷해서인지 문득 어린시절 복숭아밭 추억이 샘솟아오른다. 그에 관한 추억담을 끄적거려볼까 한다. 봄꽃이 피는 순서대로 자연은 순서에 따라 과실로 돌려준다. 맨먼저 매화가 피고, 다음 살구꽃이 피고, 그다음 복사꽃이 핀다. 그 순서대로 매실, 살구, 복숭아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매실과 살구는 꽃이 먼저 피어서인지, 과실 크기가 작아서인지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전에 결실을 맺는다. 그런데 복숭아는 꽃이 늦게 피어서인지, 과실이 커서인지 모르겠지만 한여름이 시작되는 초복 무렵에 제대로된 상품가치를 선보여준다. 요즘 복숭아가 제철을 만나 한창 농익어 사람들의 입을 맛나게 달구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벌레먹은 복숭아가 맛있다.'는 속설을 믿을지 모르겠다. '벌레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표현은 많이 접해서 식상하실지 모르겠지만, '벌레먹은 복숭아가 맛있다.'라니.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복숭아를 사먹기 위해서 꼭 밤에 복숭아밭을 찾았다. 왜냐하면 밤에는 복숭아의 과즙과 벌레의 육즙이 섞여도 모르고 맛있게 먹을수 있기 때문일게다. ㅎㅎ 그옛날 복숭아밭은 처녀총각 청춘남녀의 사교장이자 파티장이었다.
외민동 관리자 2024.08.05 추천 0 조회 19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