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피디의 문화산책]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가렸나

왜 눈을 가렸나
한피디의 문화산책은 대학 시절 FBS 방송국 마이크 앞의 감성으로 떠나는 문화 산책입니다. 그림 한 점, 노래 한 곡, 책 한 권에 담긴 사람과 시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끔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곁들입니다. 신청곡과 사연은 댓글로 보내 주세요.
한피디의 문화산책,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법정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이야기가 무거운 만큼 노래는 낮고 부드럽게 골랐습니다.
첫 곡은 존 바에즈가 부르는 〈Here's to You〉입니다.
50년 만에 돌려받은 이름
1920년 미국 보스턴 근처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두 사람이 강도 살인 혐의로 붙잡혔습니다. 구두 수선공 니콜라 사코와 생선 장수 바르톨로메오 반제티. 둘 다 무정부주의자였습니다.
재판은 처음부터 기울어 있었습니다. 증거보다 '가난한 이민자, 위험한 사상가'라는 딱지가 앞섰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1927년 8월 23일 전기의자에서 숨졌습니다.
1971년 이탈리아 영화 〈사코와 반제티〉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냈고, 엔니오 모리코네가 곡을 쓰고 존 바에즈가 노랫말을 붙인 주제곡이 바로 오늘의 첫 곡입니다. 짧은 노랫말을 낮게, 몇 번이고 되풀이합니다. 그리고 처형 50년 뒤인 1977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두 사람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고 공식으로 인정했습니다.

수갑을 찬 반제티(왼쪽)와 사코 (퍼블릭 도메인)
우리에게도 그런 새벽이 있었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1975년 4월, 대법원이 인민혁명당 사건 피고인들의 사형을 확정하자 바로 다음 날 새벽 여덟 명의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2007년 재심 법정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무죄가 되기까지 32년, 그 사이 가족들이 견딘 세월은 누구도 돌려주지 못했습니다.
법정이 권력의 눈치를 볼 때 무엇을 잃는지, 우리는 이미 값을 치르고 배웠습니다.
발아래 놓인 권력자들
맨 위 사진은 스위스 베른 구시가지에 있는 '정의의 분수'입니다. 1543년 조각가 한스 기엥이 만든 정의의 여신이 한 손에 칼,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서 있습니다. 그리고 두 눈을 천으로 가렸습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더 눈여겨볼 것은 여신의 발아래입니다. 교황, 황제, 술탄, 그리고 베른의 최고 행정관 얼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당시 세상을 다스리던 권력들이 모두 정의 아래 놓여 있는 셈입니다.
눈가리개는 권력 앞에서 눈을 감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가 누구든, 내 편이든 네 편이든, 내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정의는 권력자를 우러러보지 않고 발아래 둡니다.
굶어 죽을 각오와 오마카세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는 법관은 정의를 위해서라면 굶어 죽는 것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월급이 모자라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에도 법복의 무게를 그렇게 여겼습니다.
칠십여 년이 흐른 이번 달 국정감사. 대법원 업무추진비가 스시 오마카세 같은 고급 식사에 쓰였다는 지적에 조희대 대법원장은 구성원들이 그동안 못 먹어 보던 음식을 먹어 보고 싶어 했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1억 800만 원어치 와인 구매를 두고는 자신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업무추진비 문제에는 국민께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숫자보다 더 아픈 것은 그 말에 담긴 생각입니다. 국민의 세금을 두고 '먹어 보고 싶던 음식'을 말하는 대법원장에게서 굶어 죽을 각오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대법관 후보를 대통령에게 올리는 제청을 두고도 그는 국감에서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이며 대통령과 국회가 간섭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맞섰습니다. 그사이 대법관 자리를 제때 채우지 않았다는 비판도 커졌습니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자리는 헌법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건희의 구속 기간은 10월 31일에 끝납니다. 대법원은 그 직전에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겼고, 국감장에서는 선고를 미루는 것 아니냐는 질타가 나왔습니다. 판결을 미루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풀려날 수 있습니다. 시간도 판결의 일부입니다.
역풍이 두려운가
여당은 탄핵 논의를 꺼내 놓고도 국감 이후로 미루며 '역풍'을 걱정합니다. 그런데 역풍이란 국민 다수가 등을 돌릴 때 쓰는 말입니다. 내란을 옹호해 온 세력과 그 편을 드는 일부 언론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두고 역풍이라 부르면, 정치는 늘 엉뚱한 쪽의 바람만 살피게 됩니다.
지금 국민이 보고 있는 것은 오마카세 영수증과 미뤄진 대법관 제청, 그리고 10월 31일이라는 날짜입니다. 진짜 역풍은 이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붑니다.
한피디의 생각
법복은 특권이 아니라 짐입니다. 그 짐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면 내려놓는 것이 법관의 마지막 예의입니다.
사법부 독립은 대법원장 한 사람의 방패가 아닙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지키라고 준 자리입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헌법이 정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탄핵소추는 국회가 헌법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고,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합니다. 그 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코와 반제티의 이름이 돌아오기까지 50년, 인혁당은 32년이 걸렸습니다. 우리 세대에 또 그런 숫자를 남길 수는 없습니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렸지만 귀까지 막지는 않았습니다. 저울은 국민의 목소리로 기웁니다.
마지막 곡은 정태춘·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입니다. 정태춘은 노래를 미리 심사받으라는 제도를 거부하고 1990년 비합법 음반을 냈고, 이 곡은 1993년 두 번째 비합법 음반의 표제곡입니다. 그 외로운 싸움 끝에 1996년 헌법재판소는 노래 사전심의가 헌법이 금지한 검열이라고 결정했습니다. 헌법을 지켜 낸 것은 법복이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피디의 문화산책,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바로잡힌 판결'은 무엇인가요? 댓글로 들려주세요.
사진: 베른 정의의 분수 JoachimKohler-HB, 위키미디어 공용(CC BY-SA 4.0) · 사코와 반제티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
참고: 주간경향·YTN·경향신문·뉴스토마토 보도(2026.10.6~20), 영화 〈사코와 반제티〉(1971), 국가기록원 대중가요 금지곡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