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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피디의 문화산책] 임진강 물새는 철책을 묻지 않는다

작성자
한피디
작성일
2026-10-24 08:55
조회
17
철책 너머 임진강
ON AIR
한피디의 문화산책 · 다섯 번째 시간
임진강 물새는
철책을 묻지 않는다
글·선곡 한피디

한피디의 문화산책은 대학 시절 FBS 방송국 마이크 앞의 감성으로 떠나는 문화 산책입니다. 그림 한 점, 노래 한 곡, 책 한 권에 담긴 사람과 시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끔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곁들입니다. 신청곡과 사연은 댓글로 보내 주세요.

한피디의 문화산책,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그래서 노래는 더 부드럽게 골랐습니다.

첫 곡은 일본 포크 그룹 포크 크루세이더스가 부르는 〈임진강〉입니다.

♪ 오프닝 곡
〈임진강(イムジン河)〉
포크 크루세이더스 (1968)

물새는 건너고, 사람은 못 건너고

〈임진강〉은 카프 시인 박세영이 노랫말을 쓴 북한 노래입니다. 1968년 일본의 3인조 포크 그룹 포크 크루세이더스가 부르면서 오히려 바다 건너에서 먼저 널리 알려졌습니다.

노래는 단순합니다. 강물은 흘러 내려가고, 물새는 강 위를 제 마음대로 오가는데, 사람만 건너지 못합니다. 그 서러움을 큰소리 없이 낮게 부릅니다. 일본 청년들의 서툰 우리말 발음이 오히려 마음을 건드린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1954년, 종이에 유채 (퍼블릭 도메인)

철책 없는 길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입니다. 앞에서 소를 모는 남자, 꽃을 실은 달구지 위의 여인과 두 아이. 모두 즐겁게 길을 떠납니다.

화가는 헤어져 지내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가족을 달구지에 태우고 자신은 황소를 끌며 따뜻한 남쪽으로 함께 가는 모습을 그렸다고 적었습니다. 북에서 내려와 전쟁 통에 가족과 헤어진 화가. 그가 끝내 걷지 못한 그 길에는 철책이 없습니다.

그런데, 철책이 '국경'이 되었다

이 노래와 그림을 꺼낸 건 한 장군의 말 때문입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10월 14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세미나에서, 유엔군사령부의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DMZ 남쪽 철책선에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유엔사는 한국의 주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DMZ와 공동경비구역 안의 군사·행정 책임을 설명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국방부는 "개인의 견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뱉은 말은 해명으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정하고 있습니다. 철책선은 총성을 멈춘 자리일 뿐, 나라의 끝이 아닙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전작권 전환 조건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국방부 대변인은 골대를 계속 옮기면 전작권 전환은 영원히 할 수 없다고 맞받았습니다.

땅 이야기와 지휘권 이야기. 뿌리는 하나입니다. 이 땅의 주인이 누구냐는 물음에 대한 그들의 속마음입니다.

역사는 이런 장면을 처음 보지 않았다

파나마. 1903년 조약으로 미국은 운하 주변 폭 10마일의 띠를 영구히 차지했고, 그곳을 사실상 미국 땅처럼 다뤘습니다. 그 안에는 미국의 우체국과 법원, 학교가 따로 있었습니다. 파나마 사람들은 70년 넘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77년 토리호스–카터 조약으로 미국은 파나마를 운하지대의 주권자로 인정했고, 1999년 12월 31일 정오 운하는 평화롭게 파나마에 넘어갔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훗날 불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확신했다고 돌아봤습니다.

프랑스. 1966년 드골 대통령은 존슨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프랑스는 자기 영토 전체에서 주권을 온전히 되찾겠다며 자국 군대를 더 이상 나토 지휘 아래 두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동맹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동맹은 지키되 지휘권은 내 손에. 그것이 드골의 방식이었습니다.

유엔사 자신. 지금의 유엔사도 이미 한 번 '퇴장 권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1975년 유엔총회는 결의 3390호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1976년 1월 1일 유엔사가 해체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미국도 당시 대안이 마련된다는 조건으로 유엔사를 끝낼 준비가 돼 있다는 편지를 안보리에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세 장면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주권은 남이 알아서 돌려준 적이 없습니다. 주인이 또렷하게 요구할 때 돌아왔습니다.

한피디의 생각

사과 한마디로 덮을 일이 아닙니다. 말실수가 아니라 생각을 들킨 것이기 때문입니다.

DMZ 남측은 대한민국 땅입니다. 유엔사의 권한은 정전 관리에 그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말이 아니라 문서로 못 박아야 합니다.

골대는 우리가 세웁니다. 전작권 전환의 기준과 일정을 우리 손으로 정하고, 남이 옮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유엔사의 앞날도 공론에 올려야 합니다. 1975년 유엔이 이미 던졌던 질문입니다. 50년 만에 다시 묻는 것이 무례는 아닙니다.

물새는 철책에게 길을 묻지 않습니다. 강물도 누구의 허가를 받고 흐르지 않습니다. 이중섭의 달구지가 남으로도 북으로도 굴러갈 수 있는 날, 그 길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번만큼은 분명히 해 둡시다.

마지막 곡은 문병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김원중의 〈직녀에게〉입니다. 만나지 못하는 견우와 직녀에 기대어 갈라진 땅의 그리움을 노래한 곡입니다.

한피디의 문화산책,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마음속 '건너고 싶은 강'은 어디인가요? 댓글로 들려주세요.

♪ 클로징 곡
〈직녀에게〉
김원중

사진: Jettcom, 위키미디어 공용(CC BY 3.0) · 그림: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

참고: 연합뉴스·뉴스토마토·SBS Biz 보도(2026.10.15~19), 유엔총회 결의 3390(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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