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피디의 문화산책] 〈고엽〉이 온 세상의 가을 노래가 된 사연

온 세상의 가을 노래가 된 사연
한피디의 문화산책은 대학 시절 FBS 방송국 마이크 앞의 감성으로 떠나는 문화 산책입니다. 그림 한 점, 노래 한 곡, 책 한 권에 담긴 사람과 시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끔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곁들입니다. 신청곡과 사연은 댓글로 보내 주세요.
한피디의 문화산책, 네 번째 시간입니다. 창밖의 나뭇잎이 하나둘 물들어 가는 계절, 오늘은 가을이면 꼭 한 번은 듣게 되는 노래 한 곡을 따라 걸어 봅니다.
첫 곡은 이브 몽탕이 부르는 〈고엽(Les feuilles mortes)〉입니다.
묻힐 뻔한 노래
2차 대전이 끝나 가던 1945년 파리. 헝가리 출신 작곡가 조제프 코스마가 발레 음악으로 쓴 선율에,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노랫말을 붙였습니다. 지나간 사랑과 떨어지는 낙엽을 노래한 시였습니다.
이듬해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영화 〈밤의 문〉에서 젊은 이브 몽탕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노래도 함께 잊힐 뻔했다고 전해집니다.
바다 건너 새 옷을 입다
노래를 살린 것은 바다 건너의 번역이었습니다. 1950년 미국 작사가 조니 머서가 영어 가사를 붙였습니다. 그는 프랑스어를 한 줄 한 줄 옮기지 않았습니다. 뜻은 살리되 영어의 말맛에 맞게 새로 썼습니다. 그렇게 'Autumn Leaves'가 태어났습니다.
그해 조 스태퍼드가 처음 영어로 불렀고, 1955년에는 로저 윌리엄스의 피아노 연주가 미국 빌보드 1위에 올랐습니다. 피아노 연주곡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뒤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반스 같은 재즈 거장들이 앞다투어 연주하면서, 〈고엽〉은 재즈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가을 낙엽〉 1856년, 맨체스터 미술관 (퍼블릭 도메인)
1인치의 장벽
2020년 봉준호 감독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막이라는 1인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받을 때, 상은 작가와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가 함께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강은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지금 K팝과 한국 드라마가 세계로 가는 길도 결국 누군가의 번역과 자막 위에 놓여 있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묻힐 뻔한 〈고엽〉이 번역으로 세계의 노래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알리스캉〉 1888년 (퍼블릭 도메인)
남의 말을 배운다는 것
외국어대학을 다닌 우리는 젊은 날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그때는 시험을 위해서였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남의 노래를 내 노래로 만드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조니 머서가 프레베르의 시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영어로 다시 노래하게 했듯이, 좋은 번역은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이 가을, 우리가 배운 그 말들로 누군가에게 다리 하나 놓아 보면 어떨까요.
마지막 곡은 재즈로 다시 태어난 'Autumn Leaves'입니다. 1958년 캐논볼 애덜리의 음반으로, 트럼펫은 마일스 데이비스입니다. 같은 선율이 얼마나 다르게 노래할 수 있는지 들어 보세요.
한피디의 문화산책,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고엽〉은 누구의 노래인가요? 댓글로 들려주세요.
그림 이미지: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