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어디에 써먹으려고 숲해설가 자격증을 따나
— 60 넘어 시작한 숲해설가, 백련산이 가르쳐 준 것
김복남
외민동 부회장, 스페인어과 83
“내려올 걸 뭐 하러 힘들게 올라가나요?”
“내려올 걸 뭐 하러 힘들게 산을 올라가나요?” 체력도 자신감도 뿡뿡인 20대에 흔하게 하는 말이다. 대학 시절 틈나면 학교 앞 골목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우기가 일상이었다. 강촌으로 대성리로 엠티를 가서도 지척에 있는 산에 가긴커녕 역시나 밤을 지새운 까닭에 산을 오르는 프로그램은 아예 정한 적도 없었다. 세미나를 하고 강가에서 잠시 물놀이를 하거나, 왜 뛰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새벽을 가르며 평지를 뜀박질한 적은 있어도 등산을 한 적은 없었다.
잊히지도 않는 유일한 등산이 있었다. 수락산 1박 2일. 성구 형, 상익 형 선배들과 함께 갔는데 신발부터 뭐 하나 갖춘 것 없이 나선 길이 밤 산행이 되어 버렸고, 길을 잃고 라이터 불에 의존해 미끄러지며 간신히 밤을 새울 장소를 찾은 적이 한 번. 이후에 76학번 영어과 기욱 형을 비롯해 스페인어과 선배들과 한 산행. 이게 내 기억의 전부다.
“복남이 고기는 오기로 가득 차서 질길 거라고.” 기욱 형이 그랬다. 모두 힘들어했지만 끝까지 배낭을 남자 선배들에게 주지 않았고 험한 곳을 오르며 내미는 손 한 번 잡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오기로 느껴졌나 보다. 오기라기보다는 내 짐이고 넘을 수 있으니 손잡을 필요가 없었을 뿐인데….
산을 오른 경험은 극히 적었지만 그때도 나는 산이 좋았다. 한밤중에 산길을 헤맨 것도 어찌나 재미있던지. 무서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함께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공장의 언니들, 동료들과는 주말에 놀러 가면 등산을 갔다. 모처럼 맞은 여름휴가 때는 대학 때 꿈도 안 꿔봤던 지리산을 처음 가보았다. 갑작스러운 비 때문에 천왕봉을 멀리 두고 냅다 뛰어서 뱀사골로 내려왔지만 지리산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대 초반에도 별로 가본 적 없는 산 같은 남자가 이상형이었다. 산 같은 남자를 못 만나서인지 실제로 없는 건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건 환상이었다.
산을 좋아했다는 이야기, 이것이 내가 60이 넘어 숲해설가를 시작한 동기의 첫 번째 이유이다.
백련산 아래로 이사하고, 코로나가 왔다
산을 좋아해서 함께 오르고 멀리 바라보고 땀 흘리는 것을 즐겼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숲속 생물들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서대문으로 이사 와서 백련산 밑에 전셋집을 얻었다. 모기도 많았지만 확실히 공기가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진입로가 100미터도 안 되는데도 산 밑에 사는 것으로 만족하며 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몇 년 뒤부터 북한산을 한 달에 두어 번씩 오르며 약해진 몸을 추스르고 산행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큰 도로를 건너 다시 이사를 했다.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되고 끊임없이 필요한 것들을 함께 만들어내는 공동체 활동에 매료되어, 결국 주민들의 공유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공동체주택을 짓게 되었다. 돈도 없으면서 겁도 없이 주택을 지어 2019년에 입주했다. 이전 골목의 사랑방 시절과 비슷하리라 생각했던 일상은 곧 예기치 못한 상황들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2020년 코로나가 엄습했고, 규모를 한껏 키워 사람 모이자고 만든 공간은 첫 난관을 맞이했다.
백련산 위에 있는 테니스장을 아침마다 다니는 남편이 그곳조차 문을 닫자 산자락에 설치된 배드민턴장을 잠시 가게 되었고, 나도 따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백련산을 매일 올라 배드민턴을 치게 되었다. 산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그제야 백련산의 매력을 발견한 셈이다. 동네 앞산을 매일 오르는 일상의 참맛도 그때 알았다.
배드민턴을 즐기게 되면 실내체육관에 가서 제대로 배운다지만, 나는 산이 좋아서 산에 있는 배드민턴장을 가는 것이므로 눈동냥 삼아 배운 게 전부여서 아직도 내 맘대로 친다. 이런 시간들은 별생각 없이 숲을 이전 그 어느 때보다 훨씬 가까이하는 기회가 되었고, 숲해설가를 선택한 두 번째 이유의 깊은 바탕이 되었다.
마을의 환경 활동, 그리고 산의 주인들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은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 기반으로 만든 비영리사업 조직이다. 공동체주택을 겁 없이 만든 주체 중 하나이고, 주민들의 거점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를 겪으며 지역의 환경 문제에 천착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저층 주거단지는 아파트에 비해 재활용 물품을 효과적으로 모으기도 어렵고, 우유팩은 재활용으로 분류해 수거해 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원이 순환될 수 있는 거점을 만들었다. 주민들이 병뚜껑, 종이봉투, 우유팩 같은 것들을 모아 가져오면 재활용 업체가 가져가는 거점이 되었고, 관련된 제로웨이스트 교육과 판매, 캠페인을 벌였다.
단체는 자원순환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을에 있는 환경 자원을 기반으로 환경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홍제천과 백련산은 마을언덕사협과 인접한 생태환경 자원이고, 백련산의 식생을 알아보는 ‘백련산지킴이’ 활동이 시작되었다. 아침마다 오르는 그 산의 주인들의 이름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특징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금씩 알아가자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맨발길이 알려준 생태감수성
작년에 서대문구청은 능선 2킬로미터를 모두 맨발길로 조성했다. 오솔길이 사라지고 길이 넓혀지고 나무뿌리가 드러나고… 우려했던 대로 산이 훼손되었다. 편리함을 중요시하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어떤 사람들은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그 산을 오랫동안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8억 5천만 원이나 들여서 이렇게 할 일인가 싶어 속상하고 안타까워했다.
그 과정에서 최대한 훼손이 덜 되도록 주민들에게 알리고 관에 설명회를 열게 해서 주민들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손대지 않은 백련산의 옛 모습은 사라졌다.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이런 게 생태감수성이구나!’를 깨달았다. 이후 맨발길 모니터링을 격월로 진행해 공유하고 있고,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기회가 될 때마다 제안하고 있다. 제발 주민들의 의견을 먼저 듣고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해서, 숲이 보존되어 사람들 곁에 오래 남을 수 있게 예산을 낭비하지 말자고.
생활권과 맞닿은 도시의 산들이 겪는 이 고초는 어디나 비슷했고, 한 전문가는 이렇게 조언해 주었다.
“결국은 주민들이 그 산의 생태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알게 하는 것이 많이 있어야 해요.”
편리하게 개조해서 시설을 만들고 길을 넓히고 그 산의 식생이 아닌 나무들을 식재하고 데크를 늘리는 것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지, 오히려 숲이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있지 못하게 하는 일인지 그렇게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이 나이에 숲해설가를 하게 된 두 번째 동기이다.
5개월, 그리고 남들 안 받는 꽃다발
기획을 하건 프로그램을 하건 더 알고 자격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5개월간 평일 저녁 세 시간씩 이틀, 토요일, 때론 일요일까지, 필기시험과 시연평가… 숨차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사)산림문화콘텐츠연구소의 숲해설가 과정에 참여했다. 영초 형의 해석에 의하면 숲해설계의 하버드라 불리는 곳이다.
대표인 영초 형이 첫날 물었다. “단체 일에 외민동에 그렇게 바쁘면서 가능하겠냐?” 그래도 끝까지 한 게 대견했는지 수료식 날 남들 안 받는 꽃다발을 안겨주어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기까지 했다. 문화탐방소모임 방에 수료식 사진을 올려서 부끄러워하는 내게 격려까지 해주었다.
“60 넘어 하는 공부는 6개월이 6년하고 같아.”

자격증을 따면 일자리가 많을까
이런 자격증 과정은 50+ 세대라 불리는 층이 많이 참여한다. 하던 일을 바꾸고 싶어서, 퇴직을 앞두고, 하고많은 자격 중에 그래도 이 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유독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수가 적지만 젊은 세대도 있는데, 이들은 현명하게도 숲이 주는 평온함과 풍요로움이 가득한 이 일의 매력과 어떤 식으로든 접속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부럽기 짝이 없다.
그럼 이 자격증을 갖게 되면 일자리는 많을까? 결코 아니다. 지금도 숲해설가는 수요에 비해 차고 넘친다. 다른 자격증도 그런 면이 많지만, 평생교육으로 내일배움카드가 적용되어 지원이 가능한 국가자격증 대부분이 그 이후는 각자도생이다.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숲해설가로 공식 프로그램에 등장할 수 있을까? 모든 자격증이 그렇듯 이 역시도 아니다. 자격을 갖추는 최소한의 과정을 수료하고 기준이 되는 시험을 통과했다는 의미일 뿐, 실제 숲에서 숲해설가로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숲의 생물들에 대한 지식은 갖추어야 할 그저 한 요소일 뿐이다. 생태계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인문학적인 소양과 숲 생물에 대한 풍부한 감수성을 갖추어야 한다. 숲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자가 되려면 숲해설가 자신이 숲과 충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야 하므로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그 과정 자체가 배움이고 깨달음이고 힐링이었다. 시험이 쉬운 편이긴 하지만 공부해야 쉬움을 느낄 수 있었으니, 급속히 퇴화해 가는 기억력을 돌려보고 잠시 안도감을 가져보는 덤도 하나 있기는 하다.
숲과 가까이 나이 들고 싶어서
숲과 가까이 나이 들고 싶어서. 이것이 내가 숲해설가 과정에 참여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다.
아침마다 백련산을 걷는 일은 거의 명상에 가깝다. 온갖 잡념을 들여다보게 하고, 때론 복잡하고 불안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가다듬게 하는 명상길이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이끼류와 곤충과 풀과 나무, 새, 어쩌다 보이는 동물들까지 백련산에 살아 있는 것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 또한 그러함을 알게 한다. 잠시 멈추어 풀과 나무를 자세히 바라보고 생각도 해보는 일상에 한 발 더 가까이 가게 만들어 준 기회였다.
숲해설가 자격증을 목에 걸고 겨울이 오기 전에 백련산 숲해설을 문화탐방소모임 프로그램으로 기획하려고 마음을 먹었건만, 자꾸 다른 일들에 치여 밀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