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시작입니다"

— 지방선거에 도전한 두 20대 동문, 김민지·이민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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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민

편집부장, 신문방송과 85학번

이번 6월 지방선거에는 외민동의 여러 동문이 후보로 나섰다. 열 명이 넘는 선후배가 전국 곳곳에서 출사표를 던졌고, 누군가는 당선의 기쁨을, 누군가는 낙선의 아쉬움을 안았다. 그 도전의 행렬 가운데 가장 젊은 두 사람이 있었다. 관악구의원 후보로 출마한 김민지 동문(스페인어과 18)과 서대문구의원 후보로 출마한 이민지 동문(언론정보전공 19)이다. 둘 다 20대, 둘 다 첫 출마였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벽 앞에서 청년이, 그것도 청년 여성이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로 지역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남겼다. 외민동이 이 가장 어린 두 후보를 따로 만난 이유다.

선거 기간 내내 외민동 단톡방에는 출마한 동문들을 향한 응원이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을 향해서도 “왜 우리 지역엔 후보가 없냐”는 아쉬움 섞인 농담까지 오갔다. 깃발을 들고 거리로 달려간 선배들에게 두 후배는 그저 막내가 아니라, 광장에서 함께 싸운 동지였다. 그 마음으로 자리를 청했다. 그리고 마주 앉아 나눈 한 시간 남짓의 대화는, 후배들의 도전기를 듣는 자리이자 선배인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광장에서 외친 목소리, 제도 안에서 실현하고 싶었어요

두 사람의 출발점은 모두 광장이었다. 김민지 동문은 윤석열 비상계엄 이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를 꾸려 반년 가까이 매주 대학생 집회를 열었다. 대학생과 청년들이 끝내 퇴진을 이끌어냈지만, 대선이 끝난 뒤에도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광장에서 외친 목소리를 제도 안으로 옮겨야겠다는 결심이 출마로 이어졌다.

“청년들이 정치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말할 수 있는 스피커가 되고 싶었어요.”

관악은 그가 평생 살아온 동네이자 서울에서 청년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나고 자란 동네의 청년 문제를 자기 언어로 말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민지 동문은 총학생회 활동에서 길을 찾았다. 학생들의 요구를 모아 학교와 협의하고 실제 변화를 만들어낼 때 느낀 효능감이 컸고, 그 과정이 진보당의 지역 정치와 닮아 있다고 오래전부터 느꼈다. 국가교육위원회,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의장을 거치며 쌓은 경험을 지역에서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출마로 이어졌다. 연고 하나 없는 서대문이었지만, 선거를 떠올리며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뜻밖에도 ‘행복했다’였다.

“첫 일주일에 인사를 드리는데, 하루하루 주민분들 반응이 달라지는 게 신기했어요. 청년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당 선배님들도, 외민동 선배님들도 예뻐해 주시고요.”

일면식도 없던 주민이 달려와 안아주기까지, 100

김민지 동문에게 선거는 꼭 100일 전 시작됐다. 서울대입구역 앞에 처음 섰을 때는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이 어색했다. 그래도 매일 같은 자리에 서고 골목을 돌며 자신을 알렸다. 시간이 쌓이자 마음이 통했다. 원래 국민의힘을 지지하던 주민이 “동네에 젊은 후보가 나왔으니 너를 찍겠다”며 손을 내밀었고, 자주 마주친 주민은 유세에 나선 그를 먼저 알아보고 달려와 안아주었다.

“100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저에게 애정을 쏟아주신 분들을 보면서, 이렇게 따뜻한 분들이 사는 관악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이민지 동문 역시 주민을 만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연고 없이 출발했지만 주민들은 그를 ‘우리 지역 청년 후보’로 받아들였다. 특히 어르신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젊은 후보라는 것만으로 반갑게 맞아준 기억이 오래 남았다.

“너무 예쁨받기 좋은 나이였던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뭘 안 해도 예뻐해 주셔서, 황송해하면서 동네를 다녔어요.”

후배가 어르신 앞에서 ‘예쁨받았다’고 말하는 그 표정에는, 처음 세상에 나선 사람만이 짓는 환한 빛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선거를 치르며 진보정당 후보로서의 자신감도 얻었다고 했다. 거대 양당에 비해 정치 경험이 적다는 고민이 늘 있었지만, 다른 후보들을 만나고 청년들과 토론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가 실력 없는 정당이 아니구나, 하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이민지

기탁금 100만 원에 손이 떨렸다 청년이 정치에 나서기 힘든 이유

기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부딪힌 것은 선거의 현실적인 벽이었다. 기탁금 200만 원, 청년 감면을 받아도 100만 원. 현수막을 걸 수 있는 사무실을 구하느라 보증금과 월세로 한 번에 천만 원 가까운 돈을 써야 했다. 대학생에게는 인생에서 처음 만져보는 액수였다.

“이체하는 순간에도 손이 벌벌 떨렸어요. 선거 내내 돈 걱정을 하면서 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김민지

거대 양당 후보들이 좋은 유세차와 사무원을 갖추는 동안, 두 청년은 한정된 재원으로 아무것도 없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김민지 동문은 7.11%를 득표해 기탁금 일부를 돌려받았지만 전체 비용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나머지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과 대출, 그리고 외민동을 비롯한 선배와 지지자들의 후원으로 메웠다. 선배들의 후원이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한 청년의 도전을 끝까지 지탱한 힘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대목에서 새삼 확인했다.

청년 여성 후보로서의 안전 문제도 있었다. 김민지 동문은 도움이 필요한 처지를 알고 접근하는 원치 않는 접촉을 겪었고, 이민지 동문은 자원봉사를 빌미로 반복해서 연락하며 방문을 요구하는 사례를 마주했다. 청년이자 여성인 정치인이 걱정 없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앞으로 깨야 할 또 하나의 벽이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이민지 동문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력 부족과 조급함이었다. 다른 후보들이 거리를 누비는 동안 사무실을 비울 수 없는 시간이 생기면 마음이 급해졌다. 막차 인사를 거의 매일 나가던 어느 밤, 누군가의 거친 말에 마음이 흔들리던 그때, 지나가던 청년 여성이 말없이 초콜릿을 쥐여주고 갔다.

“하나를 건네면 또 돌려주는 분들도 계시는구나 싶었어요.”

작은 초콜릿 한 조각이 흔들리는 후배를 다시 세웠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정치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청년 20만 명인데 월세 지원은 50두 사람이 주거문제를 들고 나온 까닭

김민지 동문의 슬로건은 “4명 중 1명은 청년 구의원으로”였다. 관악구에서 4명까지 당선되는 선거구에 나선 만큼, 그중 한 명은 청년이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그가 꼽은 관악의 가장 큰 청년 문제는 주거였다. 직접 만난 청년들에게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답도 주거였다. 2호선으로 출퇴근하기 좋고 강남보다 집값이 낮아 청년이 몰리지만, 사회초년생에게 월세는 여전히 큰 부담이다. 그는 관악구 청년 월세 지원 대상이 청년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고 보았다. 월세 지원이 있다고 하지만 대상 청년은 너무 적었고, 가파르게 오르는 월세에 비해 월세 상한 금액은 너무 낮았다. 여성 안전도 핵심 공약이었다. 신림 일대의 밤길과 늦은 시간의 불안감은 특히 20~30대 여성이 동네에서 체감하는 문제였다.

“여성 청년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동네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민지 동문의 슬로건은 “이민지로 새롭게”였다. 자기 이름을 그대로 살린 언어유희로, 함께 출마한 시의원 후보의 슬로건과 어감을 맞춰 주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가 주목한 문제 역시 주거였다. 특히 이대 앞 오피스텔 밀집 지역은 대학가 중에서도 주거비 부담이 큰 곳이다. 관리비 부담은 크지만 실제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는지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는 주민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요구를 모아 전달하는 프로젝트를 공약의 바탕으로 삼았다.

“오피스텔 관리비가 실제로 관리·감독되고 있나 했을 때, 그렇게 느끼는 친구가 없었어요.”

청년은 보수화된 게 아니라, 고를 만한 선택지가 없었어요

인터뷰는 선거 이후 외민동 단톡방에서도 이어졌던 질문으로 옮겨갔다. 이번 선거에서 2030이 보수화된 것 아니냐는 평가, 청년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는 우려였다. 솔직히 말하면, 선배인 우리 안에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이 적지 않게 나왔다. 두 후배의 답은 그 물음을 거꾸로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이민지 동문은 ‘보수화’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2030은 정치와 정당의 역사를 모두 학습하고 투표하는 세대가 아니다. 당장의 후보와 현수막, 유세, 태도를 보고 판단한다. 그는 정원오 캠프가 청년에게 매력적인 선거운동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형편이 어려운 동네 사거리에 엉뚱한 재개발 현수막을 걸고, 대학가 앞에 맞지 않는 공약을 내거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중간에 현수막을 교체하길래 기대했더니 ‘모두가 안전한 서울을 만들겠습니다’ 같은 무미건조한 문구로 바뀌어 아쉬웠다고도 했다.

“개념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후보가 내놓은 안과 태도와 정책을 보고 판단한 거예요.”

김민지 동문은 더 근본적으로 양당 체제를 짚었다. 그는 청년을 탓하는 마음 자체를 나무라려는 게 아니라고 먼저 분명히 했다. 다만 그 마음이 향할 곳이 청년이 아니라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빨강 아니면 파랑, 그게 아니면 사표가 되는 구도 속에서 청년은 사실상 둘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에 표를 주고 싶어도 그 표가 죽는다는 걸 알기에 망설이게 된다. 그런 현실은 그대로 둔 채 결과만 두고 “왜 그렇게 찍었냐”고 물으면, 정작 바뀌어야 할 판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오세훈을 찍은 청년을 보수화됐다고 단정하기 전에, 왜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봐주셨으면 해요. 청년을 탓하는 그 에너지가 청년이 아니라, 청년에게 한 표의 무게를 돌려주지 못하는 이 구조로 향했으면 좋겠어요.”

청년이 보수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청년이 마음 놓고 고를 만한 선택지가 없었다는 진단. 그것은 선배 세대를 겨냥한 반박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던 동지에게 시선의 방향을 살짝 틀어달라는 부탁에 가까웠다.

그는 지방선거가 본래 주민의 일상과 가까운 선거라는 점도 강조했다. 주거와 안전, 생활비처럼 삶을 직접 건드리는 정책이 더 크게 작동하는 자리에서, ‘내란 척결’이라는 단일한 프레임만으로 청년을 설득하기는 어려웠다고 보았다. 자신이 7%대를 득표한 것도 당명 때문이 아니라 “동네가 너무 고여 있다”,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피로감과 기대 덕분이었다고 했다.

“청년들도 더 많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고 싶어 해요. 내 표가 사표가 아니라 실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정치적 변화가 필요해요.”

청년이 보수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청년이 마음 놓고 고를 만한 선택지가 없었다는 진단. 그것은 선배 세대가 미처 던지지 못한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 땐 더 했어라는 말이 청년에게 가닿지 않는 이유

여기서부터 대화는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필자를 비롯한 선배 세대가 후배들의 속내를 이렇게 길게 들어볼 기회는 흔치 않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말을 되도록 그대로 옮긴다.

세대 차이를 이야기할 때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우리 땐 더 했어’라는 말이었다. 이민지 동문은 청년이 자기 고민을 털어놓을 때 가장 자주 돌아오는 반응이 바로 그 말이라고 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주거 환경이 훨씬 열악하던 시절을 견뎌낸 선배 세대의 이야기다. 공동 화장실 하나를 여럿이 쓰고 냉수로 씻으면서도 다들 잘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은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데도 너무 좋은 오피스텔만 바라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맞는 얘기인 것도 있고, 배워야 할 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청년들이 놓인 세태와 어려움은 이쪽에 있는데, 이전의 얘기만 하시면 서로 공감대를 찾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민지

김민지 동문은 그 지점에서 더 분명한 속상함을 드러냈다. ‘옛날엔 다 던지고 싸웠다’는 말을 들을 때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돼야 그 이상의 것에도 눈을 뜨고 고민할 수 있는데, 사실 청년들이 일상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사회가 문제인 거잖아요.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를 얘기하면, 마치 더 큰 대의를 위해 그걸 포기하지 않는 사람처럼 청년을 바라보시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슬퍼요.”

그가 말한 ‘먹고사는 문제’는 추상적인 엄살이 아니었다. 당장 월세 낼 돈이 없어 쫓겨날 처지에 놓이거나, 월세를 메우려 아르바이트를 늘려 시간이 사라지거나, 여성 청년이라면 일상적인 성차별 속에서 견뎌야 하는 무게다. 그런 현실을 다 차치하고 대의를 위해 움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요구인지, 그는 차분히 짚었다.

취업 이야기에 이르자 후배 세대의 현실은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이민지 동문은 어렵게 취업한 친구들이 첫 석 달을 못 버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학까지는 ‘경쟁에서 이기면, 실력을 키우면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살아왔는데, 막상 회사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현실과 마주한다는 것이다.

“내가 따낸 프로젝트인데 합당한 설명도 없이 내 이름은 빠지고 다른 사람 이름이 올라가는 게 그 회사에선 당연한 문화인데, 그걸 이해 못 하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당해요. 그게 부당하게 느껴져서 못 버티고 나오는 경우가 꽤 많아요. 취업도 어렵지만, 들어가서 버티는 첫 석 달이 너무 어려워진 상황도 다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민지

그 밑바닥에는 무력감이 깔려 있다고 그는 말했다. 열심히 해도 내 삶이 나아질 것 같지 않고, 격차는 이미 너무 벌어졌다고 느낀다. 노동만으로는 삶의 조건을 지킬 수 없다고 여겨 투자에 매달리는 청년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우리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못 살게 된 첫 세대”라는 말이 두 사람 사이에서 무겁게 오갔다.

연애조차 시간과 돈 앞에서 뒤로 밀린다. 한 번 만나는 데 못해도 하루 5만 원, 조금 즐기려면 10만 원이 드는 현실에서, 그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누군가를 찾게 되지 않더라는 솔직한 토로도 나왔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선배 세대를 향해 일방적인 서운함만 토로한 것은 아니었다. 김민지 동문은 오히려 청년 세대의 책임도 함께 짚었다. 그는 한때 받았던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옛날 학생운동과 지금 대학생이 많이 다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때 당혹스러웠던 것은, 시대가 흐른 만큼 같은 목소리도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서로 충분히 나누지 못해서였다.

“선배 세대가 청년의 고충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반대로 청년 세대도 ‘이전에 어떤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 선배님들이 그런 아쉬움을 말씀하시는지’ 그 역사를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쌍방의 노력이 필요한 거죠.” —김민지

특히 그는 최근의 변화를 만들어온 선배 세대의 노고가, 정작 학교에서 현대사로 충분히 배워지지 않는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고대사에 비해 가까운 역사가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청년에게 비난 대신 그 역사를 건넬 통로가 필요하다는, 후배가 먼저 내민 제안이었다.

선배의 말이 가르침이 아니라 공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터뷰를 함께한 필자의 태도도 걸림돌이 되는 데 한몫하는 것은 아닐까. 평소 후배가 힘들다고 털어놓으면, 사정을 몰라서가 아닌데도 자꾸 설명을 보태고 답을 주려 하게 된다.

“나이가 드니까 ‘그렇구나’로 끝나질 않아요. 사실 우리도 답을 모르는데 말이죠.”

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언젠가 인구와 세대 문제를 연구해온 한양대 전영수 교수를 인터뷰하며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의 실마리를 준다. 그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사실상 서로 다른 나라에서 자란 사람들이라고 했다. 기성세대가 개발도상국의 질서 속에서 성장했다면, 지금의 청년은 태어날 때부터 선진국인 한국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살아온 세계가 다르니 몸에 밴 삶의 규칙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한쪽의 잣대로 다른 쪽을 가르치려 들면 갈등이 생긴다. 청년이 게을러지거나 나약해진 것이 아니라, 발 딛고 선 세계의 좌표 자체가 다른 셈이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대화는 비로소 시작되지 않을까. 어쩌면 후배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끝까지 들어주는 귀 하나일지 모른다. 먼저 듣고 서로의 세계를 헤아린 뒤에 우리 세대의 역사를 건넨다면, 그제야 그 이야기는 ‘꼰대의 말’이 아니라 함께 걷자는 손짓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외민동 선배들에 대해서만큼은 거듭 든든함을 드러냈다. 이민지 동문은 성평등이나 젠더 의제에 대해 일부 선배들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보일 때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이면서도, 후배를 예뻐하고 챙겨주는 선배들의 마음만큼은 충분히 느낀다고 했다.

“노래만 안 시키면 괜찮아요(웃음).”

농담처럼 나온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세대의 문화 차이가 담겨 있었다. 술집에서 술이 곧 노래였던 선배 시절과, 노래방을 따로 가는 지금 후배들의 문화는 다르다. 마주 앉은 필자도 옛 뒤풀이를 떠올리며 함께 웃었다. 세대의 거리가 잠시 농담 한마디로 좁혀지는 순간이었다.

선배의 후원이 도전을 지탱했고, 이제 후배가 후배를 부른다

세대의 거리를 이야기하면서도, 두 사람이 정작 외민동 안에서는 그 벽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선거를 치르는 내내 가장 든든했던 버팀목으로 외민동을 꼽았다. 이민지 동문은 서대문에 선배 네 명이 찾아와 함께 피켓을 들고 자원봉사를 해준 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김민지 동문은 선배들의 후원 덕분에 선거를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앞으로는 지역에 사는 선배들을 더 자주 뵙고, 선배들이 아는 지역 지인도 소개받아 더 많은 주민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외민동이 젊은 학번과 더 가까워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민지 동문은 이미 좋은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봤다. 집회 현장에서 후배를 선배들에게 소개하고, 몇 번 얼굴을 익히면 자연스럽게 가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21학번 후배 중에는 젊은 학번을 직접 챙겨보고 싶다는 친구도 있다고 했다.

“후배 학번 안에서 외민동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역량이 자라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김민지 동문은 진입 장벽을 낮추는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학생회나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이 외민동을 알 수 있게 하고, 가입 전에도 집회 참여 같은 가벼운 만남으로 외민동을 경험해볼 수 있으면 더 많은 후배가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외민동에 들어오면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하고 맛볼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선배가 후배를 끌어주는 것을 넘어, 후배가 후배를 부르는 선순환.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외민동의 다음 세대는 이미 자라고 있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는 계속된다

두 사람은 낙선 이후에도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민지 동문이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주민들에게 꾸준히 인사드리는 일이었다. 선거 때만 나타나는 정치가 아니라, 평소에도 얼굴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선거 때만 이러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정치가 주민과 신뢰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김민지 동문도 비슷했다. “평소에 잘해야지”라는 주민의 꾸지람에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곧 그 말이 정치에 대한 오랜 아쉬움에서 나왔음을 알게 됐다. 그는 그 아쉬움을 깨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선거 이후 관악구청 정책기획단 청년분과로 위촉된 것도 그에게는 중요한 계기였다.

“선거 때의 고민들이 더 나은 구정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외민동 선배와 동료, 후배에게 인사를 남겼다. 김민지 동문은 총학생회 활동부터 지방선거 출마까지 외민동이 늘 함께해주었다고 했다.

“언제나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갈 수 있길 바라요. 관악구에 아는 분이 계시면 꼭 소개해 주세요.”

이민지 동문은 퇴진 광장 이후 외민동과 쌓아온 인연이 감사하다고 했다. 선배들이 다른 자리에서 “우리 후배 학번이 이렇게 많다”고 자랑스러워할 때, 후배들도 그것을 자부심으로 삼는다고 했다.

“후배 학번들도 더 열심히 해서, 외민동의 자부심이 될 수 있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이들이 우리에게 건넨 말은 끝나지 않았다. 청년을 평가하기 전에 청년의 상황을 봐달라는 것, 경험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들어달라는 것, 선거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곁에 있어달라는 것. 그것은 선배 세대를 향해 따지는 물음이 아니라, 지친 후배들에게 조금만 마음을 열어달라는 부탁에 가까웠다. 정답을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공감해줄 선배 한 사람이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수줍은 손 내밂이었다.

광장에서 함께 깃발을 들었던 우리가, 이제 그 손을 가장 먼저 잡아야 할 사람일 것이다.

*동영상 촬영·제작 차재훈 동문(포루투갈어과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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