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선거는 없었다'

— 6.3 지방선거의 특징과 정치적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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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대

영어과 97, JTBC 기자

0️⃣ 지금껏 본 적 없는 특이점 선거

필자는 2010년부터 정치권 기사를 써왔다. 그동안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를 각각 네 번씩 취재했는데, 이번 6ㆍ3 지방선거만큼 이례적인 선거는 본 적이 없다. 선거 결과는 물론 그 이후 정치권의 반응과 파장 모두, 그동안 수없이 취재하고 목격해 온 일반적인 풍경과 무척 달랐다.

예컨대 여야 중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또는 패배했는지)를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할 만큼 승패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 선거 결과는 객관적이고 분명한데도, 공로와 책임을 나누는 기준은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그래서 이번 6ㆍ3 선거는 우리 정치사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돌연변이 현상과도 비슷하다. 기존의 정치 문법이 작동하지 않는 특이점 선거다. 투표지가 부족해 투표를 못 한 일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

그런데 이러한 특이점은 그저 우연한 돌연변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몇 년간 우리 정치의 흐름을 규정할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1️⃣ 줄투표 없는 선거

이번 선거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같은 정당 번호로 내리찍는 이른바 ‘줄투표’가 현저히 줄었다는 점이다. 지방선거는 광역단체장부터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교육감까지 최소 다섯 명을 선택해야 하고, 비례의원(광역ㆍ기초) 선출을 위한 정당 투표도 한다. 지역에 따라 국회의원까지 뽑는다. 선택지가 많다 보니 대선이나 총선과 달리 인물보다 정당 기호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이번엔 이른바 교차투표 현상이 뚜렷했다. 전국적 관심 지역이었던 부산 북갑을 보자. 부산시장 선거와 북구청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이겼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보수 성향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당선됐고, 광역의원 비례투표에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앞섰다. 반면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 교육감의 손을 들어줬다. 이곳 유권자들은 ‘무조건 2번’ ‘이번엔 1번’ 식의 싹쓸이 투표 대신, 선거 단위와 후보를 꼼꼼히 따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것이다.

서울에서도 교차투표가 두드러졌다. 구청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17대 8로 압승했다. 득표 차이는 23만 6천여 표다. 그런데 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6만여 표 차로 패했다. 다시 말해 서울 시민 상당수는 구청장으로는 민주당 후보를, 서울시장으로는 국민의힘 오세훈 시장을 택한 것이다. 정당보다 인물 경쟁력을 따졌다고 추론할 수 있다.

정치권에선 흔히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소로 바람, 구도, 인물을 꼽는다. 정권심판론이나 내란 청산 같은 큰 메시지, 대형 공약이 ‘바람’을 일으키는 요소다. ‘구도’는 후보 단일화나 3자 대결처럼 각 진영의 통합과 분열에 따라 여야의 경쟁 판세가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선거에서는 주로 바람과 구도의 영향이 더 크다. 세 요소 중 ‘인물’은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변수로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여러 명을 선택해야 하는 지방선거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번엔 ‘인물’도 만만치 않은 요소로 작용했고, 그 결과 ‘묻지마’ 줄투표 대신 ‘지그재그’ 교차투표가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이는 선거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민심이 발현된 모범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언론에선 절묘한 민심을 확인한 선거였다고 평가한다.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한편 야당의 무능도 질타했다는 것이다. 여당엔 힘을 실어주면서도 경고를 잊지 않았고, 여전히 ‘윤어게인’을 버리지 못한 국민의힘에는 책임을 물으면서도 보수 재건의 불씨는 살려뒀다. 마치 전 국민이 미리 협의하고 투표한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절묘한 결과다. 여당도 야당도 이긴 것 같고 동시에 진 것 같은 표심은, 정치권에 그만큼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2️⃣ 이기고도 진 선거, 졌지만 이긴 선거

선거가 끝나면 진 쪽의 대표는 늘 곧바로 사퇴했다. 선거의 ‘국룰’과도 같은, 너무나 예측 가능한 클리셰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특이점은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여야 당대표 중 개표 직후 패배를 선언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조국 대표는 6월 4일 오후에야 사퇴를 발표했지만, 그보다 몇 시간 전 평택을 보궐선거 패배 직후 입장문을 낼 때는 사퇴 여부를 언급하지 않았다.)

여야 거대 정당 대표 누구도 사퇴하지 않았다는 건, 모두 선거에서 이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기는 선거란 없다. 객관적 수치는 승패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우선 광역단체장 16곳 중 12대 4로 민주당의 승리가 맞다. 정확히 4년 전 국민의힘이 12대 5로 이긴 것과 정반대 결과다. 민주당은 4년 전 빼앗겼던 충청을 대부분 회복했고, 강원과 울산까지 차지했다.

그런데 최대 승부처인 서울에서 졌고, 국회의원 선거였던 평택을과 부산 북갑에서도 패했다. 정청래 대표는 선거 초기 ‘오빠 발언’ 논란 같은 불필요한 구설을 자초했다. 결국 이겼지만 이긴 것 같지 않은 느낌, 말하자면 배는 부른데 행복한 포만감 대신 더부룩함이 더 큰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겨야 할 곳을 졌다면 최소한 성공은 아니다”라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무엇보다 집권 초기,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치른 선거인데도 압도적 대승을 거두지 못했기에 여권이 느끼는 아쉬움의 체감도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반면 국민의힘은 객관적으로 패배했다. 언론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민주당과는 정반대 이유로 ‘졌지만 잘 싸웠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처음부터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 잡았던 터라, 이를 웃도는 성적이 나오자 결과적으로 선전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 한 여론조사에서 ‘어느 쪽이 더 선전했느냐’는 질문에 국민의힘(40.2%)이 민주당(35.7%)을 앞섰다(오마이뉴스ㆍ에스티아이 조사, 6월 9~10일). 장동혁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59.4%)’가 ‘동의한다(36%)’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는 인상 비평이자 장동혁 대표의 ‘정신 승리’에 가깝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동훈 의원은 장 대표와 각을 세우면서 자력으로 승리했다. ‘윤어게인’ 주류인 장동혁 지도부가 온전히 이긴 곳은 전통적 지지층인 TK뿐이다. 정작 자신이 선거 유세를 다닌 충청권에서는 대부분 민주당에 밀렸다. 결국 장 대표는 보수 전체의 파이가 커진 것을 자신의 영향력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장동혁 대표는 6월 11일 자신의 SNS에 “민주당은 민주당이 패배했다며 정청래 대표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국민의힘이 패배했다며 장동혁 ‘사퇴’를 외치고 있다. 참 요상한 일이다. 양당 대표들이 ‘가위바위보’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썼다. 최소한 이 부분만큼은 장 대표의 말이 맞다. 이번 선거는 정말로 ‘참 요상한 일’이다.

결국 객관적 승패보다 정성적 평가가 더 크게 부각되면서, 여야 대표 모두 책임론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는 여야 모두를 미래 권력투쟁으로 급속히 빨아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3️⃣ 여권 권력투쟁 신호탄 선거

이번 지방선거는 이재명 정권 집권 1주년에 딱 맞춰 치러졌다. 그래서 결과는 보나 마나라는 전망이 다수였다. 집권 초기에 열리는 선거는 거의 집권당의 승리로 끝나는 게 선거의 또 다른 ‘국룰’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뒤 실시된 2018년 지방선거나, 윤석열 정부 출범 한 달 뒤 치른 2022년 지방선거가 그랬다. 대선 직후 1년 이내에 열리는 선거는 시기상 대통령 인기투표 성격이 짙다. 애당초 정권심판론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로 이 법칙이 깨졌다. 정권의 힘이 강력한 집권 1년 차 선거에서 정작 이재명 정부가 탄력을 받지 못했다는 게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특이점이다.

앞서 말했듯 객관적으로 보면 12대 4로 정부 여당의 압승이 맞다. 하지만 서울을 빼앗기면서 체감 성적은 크게 낮아졌다. ‘서울에서 이기고 전북에서 지는 것’과 ‘전북은 사수하되 서울을 빼앗기는 것’ 중 어느 쪽이 민주당에 더 큰 타격인지는 뻔하다.

게다가 오세훈 시장은 사실상 혼자 힘으로 승리를 따내며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 입지를 다졌다. 하필 민주당 후보는 이른바 ‘명픽’ 정원오 후보였다. 또 다른 야권 주자 한동훈 의원도 살아남았다. 하필 민주당 후보는 대통령실에서 AI 정책을 맡았던 하정우 후보였다. 역대 어느 대통령이든 임기 중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가 발표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미래 권력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현재 권력에 원심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재명 대통령에게 브레이크가 걸렸다. 선거 전 60%를 넘던 국정지지율이 50% 초반까지 급락했다. 말하자면 홈그라운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불의의 일격을 맞으며 순위 경쟁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성급하게나마 ‘레임덕’을 거론하는 언론까지 등장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이러한 위기 징후가 야당의 정치 공세보다 여당 내부의 권력 재편과 더 밀접하다는 점이다.

선거 결과는 여권 권력 구도 재편에 불을 댕겼다. 이 대통령은 정청래 대표의 선거 책임을 우회적으로 거론했다. 그런데 정 대표는 책임질 생각이 없다. 오히려 대표 연임에 도전하고 나섰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유럽 순방길에 오르면서, 당대표에 도전하는 김민석 총리는 부르고 정 대표는 부르지 않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던졌다. 정 대표는 곧바로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고 맞받았다. 정권 말에나 볼 법한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긴장 관계가 집권 2년 차에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이 대통령의 레임덕 여부는 야당의 대여 투쟁이 아니라 민주당 차기 당대표 선거에 연동되는 모양새다.

4️⃣ 줄 서도 투표지가 없는 선거

말 그대로 백주대낮에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선관위 측은 “당일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아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며 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했다며 당내 책임론에 맞서는 장동혁 대표는, 정작 그 선거를 다시 치르자는 황당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투표지 부족 사태는 6ㆍ3 선거가 기존 문법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투표지가 없어 투표를 못 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투표지 부족과 참정권 침해 사태가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거 결과로 절묘한 민심을 드러낸 유권자들이 선거 이후 대응에서도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번 사태가 지긋지긋한 부정선거 음모론을 낱낱이 분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차분히 지켜볼 일이다.

2개의 응답

  1.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글 참 잘 쓰시네요.^^

    1985년 신민당 황색돌풍 : 대중의 반정부 의식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는 징표.

    1988년 여소야대 출현 : 노태우 초기인데도 여당이 패배한 선거. 대중의 반정부 투지와 자신감이 높았음을 반영. 보수진영이 1990년 3당 합당으로 역공에 나서다.

    2004년 여당 과반수 및 민노당 10석 획득 : 노무현 정부 초기 탄핵 역풍으로 철퇴를 맞은 우파. 그러나 사회 개혁의 결정적 호기를 날려먹은 정부여당.

    2008년 여당 과반수 획득 : 이명박 정부 초기 여당의 승리. 그러나 곧 광우병 투쟁으로 전세가 뒤집히다.

  2. (줄 띄어서 쓰기도 안 됐고 댓글 수정 버튼도 안 봬 다시 올립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글 참 잘 쓰시네요.^^

    1985년 신민당 황색돌풍 : 대중의 반정부 의식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는 징표.

    1988년 여소야대 출현 : 노태우 초기인데도 여당이 패배한 선거. 대중의 반정부 투지와 자신감이 높았음을 반영. 보수진영이 1990년 3당 합당으로 역공에 나서다.

    2004년 여당 과반수 및 민노당 10석 획득 : 노무현 정부 초기 탄핵 역풍으로 철퇴를 맞은 우파. 그러나 사회 개혁의 결정적 호기를 날려먹은 정부여당.

    2008년 여당 과반수 획득 : 이명박 정부 초기 여당의 승리. 그러나 곧 광우병 투쟁으로 전세가 뒤집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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