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도법에 입각한 한국 외교 주권과 자국민 보호
— 가자 구호선 나포 사건과 한국 외교의 새로운 좌표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의약품 등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출항한 국제 구호선단이 지중해 공해상에서 이스라엘 해군에 의해 나포되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KFFP)’ 한국인 활동가 김동현 씨가 탑승한 구호선 ‘키리아코스 X’호가 5월 18일 나포된 데 이어, 또 다른 한국인 활동가 김아현 씨가 탑승한 ‘리나 알 나불시’호 역시 추가로 나포되어 두 명의 한국인 활동가가 이스라엘 당국에 구금되었다. 구금 중 두 사람은 이스라엘군에 의해서 잔인한 폭행 등 비인도적 고통을 당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해상봉쇄를 뚫고 구호품을 전달하겠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스라엘 당국에 우리 국민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줄 것을 요청하고, 신속한 석방 및 추방 조치가 이루어지도록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시민단체는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 등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도주의적 구호선단을 나포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자 불법 납치라며 억류된 활동가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하였다. 반면 이스라엘 외무부는 전시 중 합법적인 해상봉쇄를 뚫고 전투 지역에 접근하려던 시도를 차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탑승자들의 안전을 확인한 뒤 절차에 따라 추방할 예정이라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은 5월 20일 석방되어 22일 귀국하였다.
해상봉쇄에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대한민국 외교부의 종래처럼 안이한 대응에 대하여, 대통령이 자국민 나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나설 것을 주문하였다. “왜 우리가 거기 영향권이냐?” “이번 나포가 국제법 위반이 아니냐?” 등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즉각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다. 대통령의 신속한 문제 제기는 이스라엘 정부와 국제사회에도 즉시 알려졌다. 또 대통령의 주장은 국제법적으로도 옳았다. 전시 중 합법적으로 선언된 해상봉쇄라도 일정한 최소 네 가지 조건(산레모 매뉴얼 등에서 통상 거론되는 조건은 선언·통고, 실효성, 무차별 적용, 중립국 접근 보장)을 갖추어야 한다. 이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해상봉쇄를 통한 민간인 굶주림 유도,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인 식량과 의약품 등을 고의로 차단할 목적의 해상봉쇄는 국제법상 절대 금지된다.
1967년부터 이어진 불법 점령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불법적으로 점령해 이스라엘 정착촌을 만들고, 가자지구 토착 민간인을 추방하기 위해서 비인도적 행태를 1967년부터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자위권 행사와 주권 공백 지역이라는 논리로 관할권을 정당화하고, 2005년 이후엔 점령이 끝났고 합법적으로 영토를 관할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국제법과 국제사회는 무력에 의한 영토 취득 금지와 실질적 국경 통제를 근거로 1967년부터 현재까지를 불법 점령 상태로 판단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24년 7월 권고적 의견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인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점령이 국제법상 불법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ICJ는 이스라엘이 2005년 철수 이후에도 가자지구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해 왔으므로 점령 책임이 지속되며, 이 불법 점령을 가능한 한 빨리 종식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점령국이기에, 전시 민간인 보호 제네바 제4협약(1949) 제55조에 따라야 한다. 동 55조는 “점령국은 이용가능한 모든 수단으로써 주민의 식량 및 의료품의 공급을 확보할 의무를 진다. 특히 점령국은 점령지역의 자원이 불충분한 경우는 필요한 식량, 의료 및 기타 물품을 입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고립되어 있는 가자지구 토착 민간인에게 가는 국제 구호품 전달 출구를 수년 동안 차단하여 국제사회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에도 공해상에서 인도적 물품을 실은 비무장 구호선단을 나포하고, 거기에 탑승한 활동가를 나포·폭행한 것은 명백한 국제인도법 위반이다.
달라진 위상, 달라진 외교
이재명 대통령이 국제법에 합당한 구호활동을 하는 한국인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극적 발언을 주문한 것은, 이전 정부와 달라진 외교 주권과 자국민 보호의 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제 식민지 36년, 미군정 3년, 한국전쟁 3년, 정전체제 73년을 거쳐오면서 이 땅의 민초와 강토는 많은 인간적, 물질적, 심리적 아픔을 겪었고, 이제 그 상처를 점차적으로 치유하고 있는 중이다. 식민 지배와 전쟁, 분단의 삼중고를 모두 겪은 나라는 힘의 논리가 사람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한국은 힘이 아니라 보편 규범에 입각한 평화외교의 소중함을 체득한 나라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위상에 올라선 지금 한국에 요구되는 것은 강대국의 눈치를 살피는 약소국 외교가 아니라, 국제 여론을 움직이는 조정자이자 균형자로서의 책무이다. 이번 발언은 그 책무가 외교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 한 단면이다.
광복 81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자주적 주권국가로서 보편적 국제규범에 입각한 국제 모범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이와 같은 인도적 구호 국제문제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 가까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동맹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 속에서도 보편 규범을 지키는 중견국의 자세로, 당당하게 자국민 보호와 국제 공의를 위해서 국제인도법에 입각하여 발언한 것은 국제적 공감을 얻었다.
시민이 함께 떠받치는 국제법
자국민 보호는 정부의 영사 조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해상에서 의약품을 나르던 활동가를 지키는 일은 굶주림과 봉쇄로 고통받는 가자 주민과의 인도적 연대를 함께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종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 모인 시민들이 보여 주었듯, 국제법은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이 함께 떠받치는 규범이다.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무너질 때 가장 먼저 위협받는 쪽은 강대국이 아니라 중견국과 그 국민이다. 한국 사회가 중동의 비극을 남의 일로 흘려보내지 않고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민적 감각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