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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연정-7> - 여세현 창작소설

작성자
외민동 관리자
작성일
2024-08-05 22:09
조회
105
<복숭아 연정-7>

집에가서 얼른 벌레먹은 복숭아 대여섯개를 보자기에 싸서 챙겨들고 다시 방천으로 나와 대근이 아재를 기다렸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어둑해질 무렵 체크무늬 남방셔츠에 베이지색 나팔바지를 차려입은 대근이 아재가 휘파람을 불면서 나타났다. 역시 서울물을 먹어본 사람이라 패션이 남다르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대근이 아재는 복숭아밭쪽으로 가지 않고 서성거리며 두리번 두리번 좌우를 살폈다.

"아재 누구를 찾으싱게라우?"
"으~응... 아랫동네 복순이가 오기로 혔는디 혹시 못봤냐?"
"나가 아재 따라서 복성밭에 갈라고 해름참(해거름, 해질녘)부터 여그서 지달리고 있었는디 복순이누나는 못봤는디요."
"니가 왜 복성밭을 따라와? 어린 놈이 어른(?)들 노는곳에 끼는 것은 아니란다."
"울 아부지가 벌레묵은 복성을 바까오라고 하셔서요. 한번은 바까와야 담부터는 잘 골라서 주실거라고요."
"느그 아부지 명령이란 말이제?"
"예 그렇당게요."

사실 그것은 내가 꾸며낸 말이었다. 벌레먹은 복숭아는 엄니가 칼로 벌레먹은 부위를 도려내고 깍아주셨기 때문에 한번도 바꾸러 가본적이 없었다. 대근이 아재도 울 아부지를 무서워 했기 때문에 아부지 핑계를 대면 어쩔수 없이 받아들일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근이 아재가 방천 언덕배기에 쭈그려 앉아 담배 한대를 피워물고 기다리는데 담배가 다 타들어갈 즈음 복순이누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오빠 오래 지다렸제. 미안해. 아부지가 못나가게 혀서 복성밭 좀 갔다온다는디 뭣이 문제냐고 엄니랑 대판 싸우시고 열두시까정 꼭 들어오것다고 약속허고 포도시(겨우) 빠져나왔네."
"그려... 다른 친구들 지다리것다. 빨리 가자."

대근이 아재와 복순이 누나가 앞에 나란히 걷고 나는 벌레먹은 복숭아 보자기를 들고 뒤따랐다. 총 여덟명이 학교앞 다리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음력 초사흘날이라 초승달이 동편 하늘에 노란 눈썹같이 걸리고 검은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떴다.

학교앞 다리에 도착하니 이미 여섯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두명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면소재지인 앞마을에 사는 상철이형과 성자누나였다. 상철이형은 해마다 추석때 콩쿨대회를 열면 빠지지않고 참가해서 양은냄비나 스텐세숫대야 같은 상품을 타가고 익살스런 입담은 코미디언 못지않은 재주꾼이었고, 성자누나는 노는데는 끼가 다분한 발랄처녀였다. 나머지 네명(남자 둘, 여자 둘)은 우리학교 분교격인 동(東)국민학교를 나온 안평리 형님누나들이라고 했다.

"자~ 인자 다 모였응께 슬슬 복성밭으로 올라가보드라고."
상철이형이 막걸리가 가득 담긴 두되(二升)짜리 주전자를 들고 앞장섰고, 성자누나는 술잔으로 쓸 양재기 그릇 세개를 포개서 들고 옆에 나란히 걸어갔다.
나도 개밥에 도토리마냥 맨뒤에서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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