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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연정-2> - 여세현 창작소설
작성자
외민동 관리자
작성일
2024-08-05 22:01
조회
32
<복숭아 연정-2>
내가 국민학교 5학년때 일이다.
울 아부지는 젊으셨을적에 육척장신에 타고난 강골인데다 당시에는 보기드물게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셨으므로 박학다식한 식견과 언변이 유려하셨고, 타인의 범접을 불허할만큼 애주가(愛酒家)이자 호주가(豪酒家)이셨다. 그래서 우리집은 사시사철 손님들로 대문을 넘나드는 문지방이 닳아없어질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니 없는 살림에 매번 주안상을 마련해야만 하는 울 엄니의 고생은 어찌 필설로 다 형언할수 있으랴.
울 아부지는 다른 과일은 그다지 좋아하시지는 않았으나 유독 복숭아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복숭아가 익어가는 이맘때 나에게 복숭아 심부름을 자주 시키셨다. 복숭아밭은 우리 마을에서 두어마장 떨어진 산밑 새터골에 있었다.
어느날 학교를 댕겨와서 아부지께 "학교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아부지는 나를 부르시고는 2000원(500원짜리 지폐 4장)을 주시면서 복숭아밭에 가서 복숭아 한(1)관(4kg)을 사오라고 하셔서 나는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두고 짐바리 자전거를 끌고 복숭아밭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나와 동네어귀에서 막 자전거를 타려는데 등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지게에 소여물로 줄 억새풀 한짐을 가득 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대근이 아재였다. 대근이 아재는 서울에서 공장에 다니다가 군대를 갔고 모내기철인 5월에 제대를 해서 가을걷이까지 시골에서 농삿일을 돕다가 가을에 농삿일이 끝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 요량이었는데 항상 나를 이뻐해주셨다.
대근이 아재는 동네 앞 큰도랑 방천(防川)의 언덕배기에 지게다리를 내려놓고 어깨끈을 벗고 작대기로 지게를 받치더니 띠꾸리(지게 위의 짐을 묶는 '참바'의 전라도 방언)를 풀고 빨간 산딸기가지 서너개와 시커먼 머루 한넝쿨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세현아! 맛있게 묵어라. 근디 어데가냐?"
"아부지 심부름으로 복성(복숭아)사러 새터골에 가고만이라우."
"아 그려? 고럼 내가 부탁하나 허자."
"무슨 부탁인디요?"
"낼모레 반공일(半空日=토요일) 밤에 내 친구들 예닐곱명이 원두막으로 간다고 복성밭 주인한티 알려주라."
"음~ 고것이 맨입으로 되것어라우? 복성을 따놓고 기다리는디 아재친구들이 안가불먼 어쩐다요?"
"아따 이눔아 그려서 내가 계약금을 줄라고 안허냐."
대근이 아재는 쌈지에서 돈을 꺼내더니 내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550원잉께 500원은 복성밭 주인한티 주고 50원은 니 심부름값이다. 알았제?"
"예~~? 심부름값은 필요없는디..."
"어서 갔다 오거라. 니 아부지 기다리시것다."
이 무슨 횡재수란 말인가. 당시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과자가 뽀빠이(10원), 자야(20원)였다. 50원이면 뽀빠이 5봉, 또는 자야 2봉에 뽀빠이 1봉을 사먹을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세배돈만큼 큰돈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때 일이다.
울 아부지는 젊으셨을적에 육척장신에 타고난 강골인데다 당시에는 보기드물게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셨으므로 박학다식한 식견과 언변이 유려하셨고, 타인의 범접을 불허할만큼 애주가(愛酒家)이자 호주가(豪酒家)이셨다. 그래서 우리집은 사시사철 손님들로 대문을 넘나드는 문지방이 닳아없어질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니 없는 살림에 매번 주안상을 마련해야만 하는 울 엄니의 고생은 어찌 필설로 다 형언할수 있으랴.
울 아부지는 다른 과일은 그다지 좋아하시지는 않았으나 유독 복숭아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복숭아가 익어가는 이맘때 나에게 복숭아 심부름을 자주 시키셨다. 복숭아밭은 우리 마을에서 두어마장 떨어진 산밑 새터골에 있었다.
어느날 학교를 댕겨와서 아부지께 "학교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아부지는 나를 부르시고는 2000원(500원짜리 지폐 4장)을 주시면서 복숭아밭에 가서 복숭아 한(1)관(4kg)을 사오라고 하셔서 나는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두고 짐바리 자전거를 끌고 복숭아밭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나와 동네어귀에서 막 자전거를 타려는데 등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지게에 소여물로 줄 억새풀 한짐을 가득 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대근이 아재였다. 대근이 아재는 서울에서 공장에 다니다가 군대를 갔고 모내기철인 5월에 제대를 해서 가을걷이까지 시골에서 농삿일을 돕다가 가을에 농삿일이 끝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 요량이었는데 항상 나를 이뻐해주셨다.
대근이 아재는 동네 앞 큰도랑 방천(防川)의 언덕배기에 지게다리를 내려놓고 어깨끈을 벗고 작대기로 지게를 받치더니 띠꾸리(지게 위의 짐을 묶는 '참바'의 전라도 방언)를 풀고 빨간 산딸기가지 서너개와 시커먼 머루 한넝쿨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세현아! 맛있게 묵어라. 근디 어데가냐?"
"아부지 심부름으로 복성(복숭아)사러 새터골에 가고만이라우."
"아 그려? 고럼 내가 부탁하나 허자."
"무슨 부탁인디요?"
"낼모레 반공일(半空日=토요일) 밤에 내 친구들 예닐곱명이 원두막으로 간다고 복성밭 주인한티 알려주라."
"음~ 고것이 맨입으로 되것어라우? 복성을 따놓고 기다리는디 아재친구들이 안가불먼 어쩐다요?"
"아따 이눔아 그려서 내가 계약금을 줄라고 안허냐."
대근이 아재는 쌈지에서 돈을 꺼내더니 내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550원잉께 500원은 복성밭 주인한티 주고 50원은 니 심부름값이다. 알았제?"
"예~~? 심부름값은 필요없는디..."
"어서 갔다 오거라. 니 아부지 기다리시것다."
이 무슨 횡재수란 말인가. 당시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과자가 뽀빠이(10원), 자야(20원)였다. 50원이면 뽀빠이 5봉, 또는 자야 2봉에 뽀빠이 1봉을 사먹을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세배돈만큼 큰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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