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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는 왜 졌다가 이겼나 — 브라질 대선 패인과 승인

작성자
강 민신
작성일
2026-10-26 10:57
조회
40

10월 25일 브라질 대선 결선에서 룰라가 이겼다. 득표율 51.75% 대 48.25%. 사상 첫 4선이다. 결선 전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51 대 49를 가리켰고, 베팅 시장은 플라비우 승리 확률을 77%로 봤다. 3주 전 1차 투표에서 룰라는 222만 표 차로 2위였다. 1985년 민주화 이후 1차 2위가 결선에서 뒤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라던 사람이 왜 1차에서 졌고, 3주 만에 어떻게 뒤집었는지를 차례로 보자.

1. 1차 패배의 크기

룰라의 패배는 어느 한 지역의 이탈이 아니었다. 2022년보다 340만 표가 줄었고, 전국 지자체의 98%에서 득표율이 떨어졌다. 북동부 9개 주는 지켰지만(피아우이 71%, 바이아 66%), 상파울루에서 13.7%포인트, 리우에서 13.6%포인트 뒤졌다. 의회는 더 나빴다. 극우 자유당(PL)이 하원 121석으로 1988년 이후 최대 의석을 차지했고, 상원은 15석에서 28석으로 거의 두 배가 됐다. 노동자당(PT)은 하원 70석이다.

여론조사기관들은 플라비우 득표율을 1~5%포인트 낮게 봤다. 룰라 표는 맞췄는데 상대 표를 못 본 것이다. 극우 지지를 밝히지 않는 유권자가 그만큼 있었다는 뜻이다.

2. 패인 하나 — 치안

유권자가 꼽은 최대 관심사는 경제가 아니라 치안이었다. 선거 초반 콰에스트 조사에서 38%가 치안을 1순위로 꼽았고, 1차 직전에도 보건 21%, 폭력 19%가 경제·물가 11%보다 앞섰다. 2025년 말 리우에서 경찰 작전으로 120명이 숨진 사건이 이 분위기를 상징한다. 플라비우는 조직범죄 강경 대응을 내걸었고, 룰라는 뒤늦게 주정부 지원 100억 헤알과 치안부 신설을 내놨다. 치안은 주정부 소관이라 연방정부가 손쓸 여지가 적었지만, 유권자는 그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3. 패인 둘 — 지표는 좋은데 체감은 나쁜 경제

경제 성적표는 묘하다. 지표만 보면 나쁘지 않다. 2024년 성장률 3.4%, 2025년 실업률 5.6%로 2012년 이후 최저, 빈곤율은 2024년 한 해 31.6%에서 27.4%로 떨어져 870만 명이 빈곤선을 벗어났다.

문제는 체감이다. 기준금리는 2025년 말 15%까지 올랐고, 가계는 소득의 28.7%를 빚 갚는 데 쓰며, 연체율은 2011년 이후 최고인 8%다. 소비자신뢰지수는 3년 만에 최저였다. 식료품 물가가 뛰면서 2025년 초 지지율은 35%에서 24%(다타폴랴)로 주저앉았다. 1년 만에 "나쁘다"가 "좋다"를 앞서는 대통령이 됐다. 고용과 빈곤 지표가 좋아져도 장바구니와 이자 부담이 무거우면 정부는 공을 인정받지 못한다.

4. 패인 셋 — 소수 여당의 한계

룰라 3기는 처음부터 의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정부였다. 하원 513석 중 PT 68석. 예산 하나 통과시키려면 중도우파 연합인 센트랑과 손잡아야 했다. 그래서 장관직을 나눠줬고, 국방장관은 군부가 선호한 조제 무시우였다. 보수파 하원의장 리라의 재선을 지지했고, 보우소나루 때 만들어진 연 200억 헤알짜리 "비밀 예산"(의원 재량 예산)을 사실상 유지해 줬다.

더 큰 타협은 재정이었다. 하다드 재무장관이 만든 새 재정준칙은 지출 증가를 세입 증가의 70%, 연 2.5% 이내로 묶었다. 2024년 180억 헤알, 2025년 300억 헤알 삭감 패키지가 뒤따랐다. 실업급여, 최저임금 인상분, 장애인 급여, 가족수당 자격 요건이 대상이었다. 가족수당은 4년간 동결됐다가 선거를 한 달 앞둔 2026년 9월에야 올랐다.

브라질 좌파 안에서 나온 평가는 혹독하다. 앙드레 싱어는 재정준칙을 "국가 규모의 점진적 축소"라 불렀다. 주 6일제 폐지는 대중 동원 대신 상원의장과의 거래에 기대다 좌초했고, 2025년 9월 "방패 개정안" 반대 시위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정부는 뒤로 물러섰다. 그래서 지지층이 "우리가 왜 이 정부를 지켜야 하는지" 느낄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다만 소수 여당이 센트랑과 결별했다면 예산이 막히고 가족수당 확대조차 통과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타협은 선택이기 전에 생존이었다. 문제는 타협 자체보다, 싸워야 할 때도 의회 거래로만 풀려 한 방식이었다.

5. 패인 넷 — 피로감, 스캔들, 트럼프

여기에 세 가지가 겹쳤다.

피로감. 룰라는 80세이고 상대는 45살 어렸다. PT는 최근 24년 가운데 18년을 집권했다. 젊은 후보를 키우지 못했고, 리우 상원 선거에 84세 후보를 냈다가 크게 졌다. 룰라는 1차 TV 토론에도 나가지 않았다.

스캔들. 80억 달러 손실을 낸 방코 마스터 파산 사건에서 소유주는 보우소나루 지지자였는데, 브라질 최대 방송사 글로부는 룰라 아들 의혹을 집중 보도하다 사과했다. 이 사건은 대법관 모라이스와 소유주의 메시지가 공개되며 대법원 위기로까지 번졌다.

트럼프. 보우소나루 재판을 이유로 브라질 수출품에 최대 50% 관세를 매기고, 브라질 갱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대사관을 폐쇄했다.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는 미국으로 건너가 영주권을 받고 룰라 축출을 도모했다. 브라질 연방경찰과 정보기관은 미국의 선거 개입 가능성을 공개 경고했다.

6. 승인 하나 — 정부가 지갑을 열었다

결선 3주 동안 정부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주말 전국 무료 대중교통, 기존 복지 15% 증액, 중소기업 채무 탕감, 주 6일제 폐지 상원 통과. 재정준칙을 금과옥조로 지키던 정부가 선거 앞에서 방향을 틀었다. 국내 경제지가 "역전의 비결"로 꼽은 것도 이것이다. 브라질 언론은 벌써 "4선 룰라의 과제는 선거 기간 늘린 지출 뒤 재정 신뢰 회복"이라고 쓰고 있다.

7. 승인 둘 — 집에 있던 사람들이 나왔다

1차 기권율은 21%, 2,900만 명이었다. 의무투표 국가에서 이 숫자다. 아틀라스인텔 대표는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이 룰라에게 유리했다"고 했다. 1차에서 집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가 결선에 나왔다는 뜻이다. 군소 후보 지지층 8%도 변수였는데, 이들 다수가 플라비우 지지를 거부했다. 개표 초반 상파울루와 리우에서 플라비우가 10%포인트 넘게 앞섰지만, 북동부 표가 늦게 집계되면서 절반 개표 시점에 룰라가 역전했다.

8. 승인 셋 — 거리

결선 기간 좌파 진영의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다. 구호는 "다시는 보우소나루를"이었다. 코로나 대응, 아마존 파괴, 복지 삭감을 되새기는 집회였고, 10월 24일 상파울루에서 마지막 행진이 있었다. 이 집회들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도 있고, 집회 규모를 "100만 명"으로 전하는 글도 돌지만 공식 수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지지자들이 가족과 이웃을 설득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풀뿌리 캠페인이 있었다는 건 여러 매체가 공통으로 전한다. 정책 발표만으로 3주 만에 3%포인트를 뒤집지는 못한다.

9. 승인 넷 — 메타 사태 이후 온라인 전환

메타는 10월 9일부터 약 24시간 룰라 캠프의 인스타그램 광고 부스트를 막았다. 캠프는 130만 명이 광고를 못 봤다고 추산했고, 폴랴는 메타 직원들이 룰라 계정이 "제한된 상태"임을 알고 있었다는 내부 메시지를 보도했다. 선거법원은 결함은 인정하되 고의 증거는 못 찾았고, 양 캠프 동등 대우를 명령하며 위반 시 하루 50만 헤알 벌금을 걸었다. 미국 의회에서도 샌더스와 자야팔 의원이 메타에 해명을 요구했다.

이 사건 뒤 룰라 캠프는 셀피 영상 중심으로 전략을 바꿨고, 80세 룰라는 처음으로 휴대전화를 샀다. 브라질 소셜미디어에서 룰라 밈이 쏟아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것이 표를 얼마나 움직였는지는 측정된 바 없다. 분명한 것은 메타의 조치가 "빅테크가 극우 편에 섰다"는 서사를 만들어 지지층 결집의 재료가 됐다는 점이다.

10. 선거 당일 교통 문제

확인된 것은 이렇다. 상파울루와 바이아 등에서 버스 운행이 줄어 투표가 어려웠다. 자닌 대법관은 아직 닫히지 않은 투표소에 한해 투표를 2시간 연장했다. 룰라 캠프는 "보우소나루 측 동맹이 운영하는 도시"의 버스 부족을 문제 삼았고, PT 의장은 법적 대응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보우소나루 측도 폭우를 이유로 연장을 요구했다.

확인되지 않은 것도 있다. "버스 29% 운행 중지", "전력 차단", "항공 중단" 같은 수치는 주류 보도에서 찾지 못했다. 연방고속도로경찰의 "작전"으로 유권자가 막혔다는 영상은 개인 증언 수준이고, 모라이스 대법관은 경찰 작전이 적법했다고 발표했다. 조직적 투표 방해가 있었는지는 앞으로 조사가 가려야 할 몫이다.

11. 이긴 뒤가 더 어렵다

룰라는 이겼지만 의회는 졌다. 새 의회에서 우파는 하원 276석, 상원 49석으로 단순 과반을 넘는다. MDB까지 합치면 하원 322석으로 개헌선(308석)도 넘는다. 룰라 쪽 동맹은 하원 124석, 상원 15석이다. 2027년 2월 이 의회가 출범하면 룰라 4기는 3기보다 더 센트랑에 기대야 한다.

그리고 선거 기간 약속한 지출이 있다. 무료 교통, 복지 증액. 이걸 지키려면 재정준칙을 손봐야 하고, 손보면 시장과 센트랑이 흔든다. 지키지 않으면 결선에서 나온 유권자들이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룰라 4기의 첫 싸움은 보우소나루가 아니라 이 모순과의 싸움이다.

12. 우리에게 남는 것

브라질이 보여준 건 두 가지다. 첫째, 숫자가 좋아도 살림살이가 팍팍하면 진다. 일자리가 늘고 가난한 사람이 줄어도 이자와 장바구니 물가가 무거우면 국민은 정부 공을 알아주지 않는다. 둘째, 의석이 모자라면 타협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싸워야 할 때 거리를 비우면 지지자들은 등을 돌린다. 룰라 3기가 놓친 것은 의회 표가 아니라 광장이었다. 결선에서 다시 모인 것도 바로 그 광장이었다. 집에 있던 2,900만 명 가운데 일부가 투표장으로 나왔고, 거리에 사람이 모였고, 집집마다 선거 독려가 이어졌다.

한국은 조건이 다르다. 브라질 여당은 하원 13% 소수당이었고, 우리 여당은 과반이다. 그래서 브라질식 양보가 그대로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지표와 체감의 간극", "의회 거래에만 기대다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게 하는 위험"은 과반 여당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룰라의 승리는 남미의 연쇄 극우화를 일단 멈췄다. 그러나 그것은 파시즘을 이긴 것이라기보다 한 번 더 기회를 얻은 것에 가깝다. 다음 4년이 그 기회를 무엇으로 바꾸는지가 진짜 답이다.

(참고: 득표율·의석·지지율 수치는 브라질 선거법원 집계와 다타폴랴·아틀라스인텔·콰에스트 조사, 국내외 보도를 근거로 했다. 결선 기간 집회 규모와 투표 방해의 세부 수치는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그대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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