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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피디의 문화산책] 늦게 핀 꽃,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작성자
한피디
작성일
2026-10-23 08:00
조회
9
아바나 말레콘
ON AIR
한피디의 문화산책 · 세 번째 시간
늦게 핀 꽃,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글·선곡 한피디

한피디의 문화산책은 대학 시절 FBS 방송국 마이크 앞의 감성으로 떠나는 문화 산책입니다. 그림 한 점, 노래 한 곡, 책 한 권에 담긴 사람과 시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끔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곁들입니다. 신청곡과 사연은 댓글로 보내 주세요.

한피디의 문화산책,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 아바나로 산책을 떠납니다.

첫 곡은 〈찬찬(Chan Chan)〉입니다. 기타 몇 줄과 느긋한 노랫소리로 시작하는 이 곡을 한 번 들으면, 아바나 바닷가의 저녁 바람이 느껴지실 겁니다.

♪ 오프닝 곡
〈찬찬(Chan Chan)〉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공식 영상

빈 녹음실

1996년 3월, 미국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가 쿠바 아바나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멕시코를 거쳐 돌아 들어가야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아프리카 말리의 음악가들과 쿠바 음악가들이 함께 음반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리 음악가들이 비자를 받지 못해 끝내 오지 못했습니다.

녹음실은 이미 잡혀 있었습니다. 빈자리를 채우려 급히 사람을 모았는데, 연락이 닿은 이들은 한때 이름을 날렸다가 잊혀 가던 노장들이었습니다.

잊혀 가던 사람들

기타를 든 콤파이 세군도는 1907년생, 그때 아흔을 바라보던 나이였습니다. 가수 이브라임 페레르는 거리에서 구두를 닦다가 불려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피아니스트 루벤 곤살레스는 집에 피아노조차 없었다고 하지요.

그렇게 모인 노장들이 엿새 만에 녹음을 마쳤습니다. 이듬해 나온 음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전 세계에서 800만 장 넘게 팔렸고, 1998년 그래미상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그들은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섰고, 빔 벤더스 감독은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1999)로 담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공연

2012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오케스트라의 공연 (사진 XIIIfromTOKYO, CC BY-SA 3.0)

이제 서로를 알아갈 때

그 먼 나라 쿠바와 우리나라는 2024년 2월 14일에야 정식으로 수교했습니다. 하지만 인연은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1921년, 멕시코 유카탄의 애니깽 농장에서 고된 일을 하던 한인 300여 명이 다시 배를 타고 쿠바로 건너갔습니다. 그들은 애니깽을 베어 번 돈을 모아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습니다.

바로 어제, 우리 외민동의 이정환(서어 83) 동문이 클라우디오 몬손 바에사 초대 주한 쿠바대사를 인터뷰한 기사를 냈습니다(미디어인뉴스, 10월 22일). 대사는 두 나라 국민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으로 문화 교류를 꼽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악과 춤, 영화, 미술, 음식 등 문화를 통해 상대방의 삶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는 26일 유엔총회에서는 미국의 대쿠바 경제봉쇄 해제 결의안이 다시 표결에 부쳐집니다. 지난해에는 165개국이 찬성했습니다. 라이 쿠더가 멕시코를 돌아 아바나에 들어가야 했던 그 봉쇄입니다.

아바나 말레콘

아바나 바닷가 방파제 길, 말레콘 (사진 Antonio Schubert, CC BY-SA 2.0)

우리의 소셜 클럽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기적은 우연에서 시작됐지만, 우연만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노장들은 무대가 사라진 뒤에도 손에서 악기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함께 모였을 때, 혼자서는 잊힌 연주자였던 사람들이 하나의 악단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되었습니다. 외민동의 주축인 80년대 학번도 하나둘 은퇴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회 모임으로, 소모임으로, 동문 탐방으로 우리는 이미 다시 모여 연주하고 있습니다. 늦게 핀 꽃이 더 오래 갑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무대

무대 위의 노장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오케스트라, 2012년 (사진 XIIIfromTOKYO, CC BY-SA 3.0)

마지막 곡은 구두를 닦다 다시 마이크 앞에 선 이브라임 페레르의 목소리로 듣습니다. 〈두 송이 치자꽃(Dos Gardenias)〉입니다.

한피디의 문화산책,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정환 동문의 쿠바대사 인터뷰도 꼭 읽어 보세요. 신청곡과 사연은 댓글로 보내 주세요.

♪ 클로징 곡
〈두 송이 치자꽃(Dos Gardenias)〉
이브라임 페레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공식 음원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CC BY-SA). 참고: 미디어인뉴스(2026.10.22), 경향신문, 행정안전부(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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