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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피디의 문화산책] 멀리 보는 돌을 쥔 사람들

작성자
한피디
작성일
2026-10-22 10:17
조회
7
플라톤의 동굴 판화
ON AIR
한피디의 문화산책 · 두 번째 시간
멀리 보는 돌을
쥔 사람들
글·선곡 한피디

한피디의 문화산책은 대학 시절 FBS 방송국 마이크 앞의 감성으로 떠나는 문화 산책입니다. 그림 한 점, 노래 한 곡, 책 한 권에 담긴 사람과 시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끔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곁들입니다. 신청곡과 사연은 댓글로 보내 주세요.

한피디의 문화산책,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림 대신 한 편의 판타지 소설에서 출발해, 지금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로 걸어가 봅니다. 첫 곡은 영화 〈반지의 제왕〉의 음악입니다.

♪ 오프닝 곡
〈샤이어의 호빗들(Concerning Hobbits)〉
하워드 쇼어, 영화 〈반지의 제왕〉 음악

멀리 보는 돌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는 '팔란티어'라는 수정 구슬이 나옵니다. 멀리 떨어진 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돌입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이 돌을 쥐고 세상을 내려다보는 쪽은 악의 군주 사우론입니다. 그 돌을 들여다본 마법사 사루만은 결국 사우론 편에 서고, 곤도르의 섭정 데네소르는 절망에 빠집니다.

이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회사가 있습니다. 미국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입니다. 정부와 군의 흩어진 데이터를 한데 모아 '멀리 보게' 해 주는 회사입니다. 미국 국방부와 이민세관단속국이 주요 고객입니다.

롤모델이 된 사람들

팔란티어를 세운 피터 틸, 그리고 그와 페이팔을 함께 키운 일론 머스크는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자주 롤모델로 꼽힙니다. 지난해 9월에는 팔란티어가 한 주 동안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미국 주식이었습니다. HD현대는 2021년부터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로 조선소를 운영해 왔고, 올해 1월 계약을 더 넓혔습니다. 그들은 이미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성공은 잘 알아도, 그들이 무엇을 믿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들이 믿는 것

틸은 2009년 한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함께 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는 또 "경쟁은 패자나 하는 것"이라며 독점을 공개적으로 칭찬합니다.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틸은 대학 시절 프랑스 사상가 르네 지라르에게 배웠습니다. 지라르는 사람이 남의 욕망을 따라 하다 결국 서로 다투게 된다고 경고한 사람입니다. 틸은 그 가르침에서 '다투지 말고 혼자 차지하라'는 사업 전략을 읽어 냈습니다.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회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비판 철학의 본거지에서 공부한 그는 이제 실리콘밸리가 정부·군과 손잡고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외칩니다. 틸이 후원한 J. D. 밴스는 부통령이 되었고, 머스크는 한때 정부 조직을 직접 손보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기술 자본이 권력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온 것입니다.

왜 위험한가

첫째, 민주주의를 '느리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 결정은 선거로 뽑히지 않은 소수의 몫이 됩니다.

둘째, 데이터가 곧 권력이 됩니다. 국가의 모든 정보를 한 회사의 소프트웨어가 엮을 때, 그 돌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 사람은 누가 감시합니까.

셋째, 독점을 칭찬하는 세계관은 다른 사람의 기회를 지우는 데서 출발합니다.

넷째, 젊은이들이 그들의 성공만 보고 세계관까지 따라 배운다면, '세상을 바꾸려면 민주주의쯤은 건너뛰어도 된다'는 생각이 자랄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목소리도 있습니다. 민주국가가 기술 경쟁에서 권위주의 국가에 지면 그게 더 큰 위험이라는 주장입니다. 실리콘밸리가 그동안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외면했다는 카프의 비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해법이 왜 꼭 소수의 기술 자본이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땅에서는

저는 이 생각이 우리나라에서 쉽게 뿌리내리지는 못할 거라고 봅니다. 우리는 불과 2년 전 겨울, 한밤의 계엄을 시민의 손으로 몇 시간 만에 멈춰 세운 나라입니다. 민주주의를 '비효율'로 여기기에는 그것을 지키느라 치른 값이 너무 큽니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도생의 불안,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믿음, 주식과 코인으로 단번에 뒤집고 싶은 마음. 그 틈으로 '멀리 보는 돌'의 유혹은 언제든 스며들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기술은 이미 우리 기업과 투자 계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돌을 쥔 손

플라톤의 동굴

〈플라톤의 동굴〉 얀 산레담, 1604년, 미국 국립미술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 믿는 사람들

소설 속 팔란티어는 그 자체로 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들여다본 사람은 하나같이 더 강한 쪽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돌을 누가 쥐고 누가 견제하느냐가 문제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곡은 레너드 코언의 〈Democracy〉입니다. 1992년, 그는 "민주주의가 미국으로 오고 있다"고 노래했습니다. 30여 년이 지나 그 미국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함께 갈 수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한피디의 문화산책,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 이른바 '온톨로지'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 가겠습니다. 신청곡과 사연은 댓글로 보내 주세요.

♪ 클로징 곡
레너드 코언 〈Democracy〉 (1992)
Leonard Cohen 공식 영상

그림 이미지: 미국 국립미술관(퍼블릭 도메인) · 참고: 헤럴드경제(2026.1), 머니투데이(2025.9), Cato Unbound(2009), 알렉스 카프·니컬러스 자미스카 『기술 공화국』(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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