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피디의 문화산책] 모네의 정원, 그리고 평화의 수련

그리고 평화의 수련
한피디의 문화산책은 대학 시절 FBS 방송국 마이크 앞의 감성으로 떠나는 문화 산책입니다. 그림 한 점, 노래 한 곡, 책 한 권에 담긴 사람과 시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끔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곁들입니다. 신청곡과 사연은 댓글로 보내 주세요.
안녕하세요, 한피디의 문화산책 첫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 화가의 정원으로 산책을 떠나 봅니다.
첫 곡은 드뷔시의 〈물에 비친 그림자〉입니다. 모네가 수련 연못 앞에 이젤을 세우던 무렵, 같은 프랑스에서 물 위에 어른거리는 빛을 소리로 그린 곡입니다. 피아노는 조성진입니다.
1883년 봄, 마흔둘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기차 창밖으로 작은 마을 하나를 봅니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0km쯤, 센강이 굽어 흐르는 지베르니입니다. 모네는 그 마을에 집을 얻고, 192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43년을 그곳에서 삽니다.
처음에는 셋집이었습니다.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자 1890년 집과 땅을 사들였고, 그때부터 정원 가꾸기에 매달립니다. 정원사를 여럿 두었지만 무엇을 어디에 심을지는 늘 모네가 정했습니다. 그는 훗날 "내 최고의 걸작은 내 정원"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일본 판화에 빠진 화가
모네의 집에 들어서면 벽마다 일본 목판화가 걸려 있습니다. 호쿠사이, 히로시게, 우타마로의 우키요에입니다. 지금 전해지는 모네의 컬렉션만 230점이 넘습니다.
모네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파리의 화가들은 일본 판화의 대담한 구도와 맑은 색에 열광했습니다. 이 유행을 '자포니즘'이라고 부릅니다. 모네는 1876년, 첫 아내 카미유에게 붉은 기모노를 입히고 뒤편을 부채로 가득 채운 그림 〈라 자포네즈〉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라 자포네즈〉 1876년, 보스턴 미술관
직접 판 연못, 직접 놓은 다리
1893년 모네는 집 건너편 땅을 더 사들입니다. 근처 개울물을 끌어와 연못을 파고 수련을 심었습니다. 물길을 바꾸는 일이라 마을 사람들과 관청을 설득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연못 위에는 판화에서 본 듯한 일본식 아치 다리를 놓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려고 만든 연못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연못이 완성되자 모네는 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 뒤 30년 가까이, 모네는 수련만 250점 가까이 그렸습니다. 아침 빛, 한낮의 빛, 저녁 빛에 따라 같은 연못이 매번 다른 그림이 되었습니다.

〈수련 연못 위의 다리〉 189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흐려지는 눈으로
말년의 모네는 백내장을 앓았습니다. 1912년 진단을 받았고, 시력이 점점 나빠져 파란색과 초록색이 잘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이 시기 그림에는 붉고 노란 색이 짙게 남아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은 스스로 찢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1923년 수술을 받은 뒤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뉴욕에 잠시 거주하던 시절, 현대미술관(MoMA)에서 이 그림 앞에 선 적이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리는 붉고 거친 붓질에 묻혀 형체가 흐릿합니다. 흐려지는 눈으로 같은 다리를 그리고 또 그린 화가의 시간이 그 붓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일본식 다리〉 1920~22년, 뉴욕 현대미술관. 백내장을 앓던 시기에 그린 같은 다리
전쟁이 끝난 다음 날
1918년 11월 11일, 4년을 끈 1차 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그 다음 날 모네는 오랜 친구이자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에게 편지를 씁니다. 거의 끝낸 수련 그림을 승리의 날을 기념해 나라에 바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커다란 수련 연작이 되어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의 둥근 방 두 곳에 걸렸습니다. 모네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시실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몇 달 뒤인 1927년 5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전쟁으로 수많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그 방에 앉아 끝없이 이어지는 물과 꽃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랑주리의 수련이 '평화의 기념비'라고 불리는 까닭입니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전시실 (사진 Brady Brenot, CC BY-SA 4.0)
12월 5일
2008년 런던 경매에서 모네의 수련 그림 한 점이 4,090만 파운드, 당시 우리 돈으로 800억 원이 넘는 값에 팔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값에 놀라지만, 수련은 원래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로 시작된 그림입니다. 한 노화가가 전쟁을 겪은 나라에 건넨 평화의 정원이었습니다.
모네는 1926년 12월 5일 지베르니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올해 12월 5일이 꼭 100주기입니다. 마침 외민동 정기총회도 그날 열립니다. 평생 한 정원을 가꾼 화가를 떠올리며, 우리가 함께 가꿔 온 정원도 한번 돌아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곡은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입니다. 1차 대전 중에 쓴 피아노곡인데, 라벨은 여섯 곡 하나하나를 전쟁터에서 숨진 친구들에게 바쳤습니다. 모네가 나라에 수련을 바치던 바로 그 무렵의 음악입니다. 같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로 첫 곡 '프렐류드'를 띄워 드립니다.
한피디의 문화산책,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신청곡과 사연은 댓글로 보내 주세요.
그림 이미지: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 오랑주리 전시실 사진은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