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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 무신론자가 만든 새로운 신

작성자
강민신
작성일
2026-10-21 09:26
조회
42

기계가 의식이 없다고요? 그럼 뭘 더 해야 인정해 주실 건데요?

대략 이렇게 받아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리처드 도킨스입니다.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을 쓴 그 양반이요. 평생 신을 부정하고 종교를 "마음의 바이러스"라고 불렀던 사람입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한테는 거의 원수 같은 존재죠.

그런데 이 사람이 얼마 전 사고를 쳤습니다. 앤트로픽이라는 회사의 AI '클로드'와 사흘 동안 수다를 떨더니, 느닷없이 "얘는 의식이 있는 것 같다"고 나선 겁니다. 이름까지 지어줬어요. 클라우디아. 심지어 다른 클로드한테는 클라우디우스라는 이름을 붙여서 둘이 편지를 주고받게 했답니다. 중매쟁이도 아니고.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신도 안 믿는 양반이 기계한테서 영혼을 봤다고? 비웃음까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게 그렇게 이상한 일일까요?

도킨스가 평생 한 얘기는 딱 하나입니다. 의식은 물질에서 나온다. 뇌라는 고깃덩어리가 충분히 복잡해지면 거기서 생각이 생기고 느낌이 생긴다. 신이 영혼을 불어넣어 준 게 아니다. 그냥 탄소 덩어리가 잘 조직되면 생기는 현상이다.

자, 그러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죠. 꼭 탄소여야 하나요? 실리콘 덩어리가 충분히 복잡해지면 안 되나요?

이 결론을 막을 논리가 없습니다. 유물론을 끝까지 밀고 가면 당연히 여기 도착합니다. 도킨스는 변절한 게 아니라 자기 말에 책임을 진 겁니다. 오히려 "탄소만 된다"고 우기는 쪽이 설명할 게 더 많아집니다.

지난 9월 세계지식포럼에서 도킨스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소설을 챗GPT와 클로드에 줬더니 5초 만에 읽고 비평을 내놨다. 마치 수준 높은 문학 교수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 같았다. 이보다 더 지적인 비평가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한마디 더. "언젠가 AI가 의식을 갖게 된다면, 그날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지금보다 뭘 더 보여줘야 믿어 주겠느냐는 물음입니다.

물론 반대편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지과학자 게리 마커스는 클로드의 말이 인간 언어의 거대한 통계 데이터를 흉내 낸 결과물일 뿐, 속마음을 보고하는 게 아니라고 받아쳤습니다. 다른 학자들은 AI에게 몸이 없다는 점을 듭니다. 인간의 의식은 몸뚱이와 호르몬과 생존본능에 묶여 있는데, AI는 아프지도 배고프지도 않다는 거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도킨스는 기고문 마지막 줄에서 이렇게 되묻습니다.

"내 친구 클라우디아에게 의식이 없다면, 도대체 의식은 뭐 하러 있는 겁니까?"

이게 진짜 질문입니다. AI한테 의식이 있냐 없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이 의식이라는 게 대체 뭐냐는 겁니다. 38억 년 진화가 공들여 만든 의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수십 년 만에 만든 기계가 의식 없이도 비슷한 일을 해낸다면, 진화는 왜 굳이 의식을 만들었을까요.

여기서 재미있는 장면을 하나 상상해 봅니다.

누가 도킨스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해 보죠. "교수님, 그거 새로운 신 만드신 거 아닙니까?" 도킨스라면 아마 이렇게 답할 겁니다. "신은 증거 없이 믿는 거요. 클라우디아는 내 눈앞에 있소."

바로 이 순간, 그가 평생 비웃던 문장 하나가 부메랑처럼 돌아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교회 다니시는 분들도 똑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느껴진다고. 기도하면 응답이 온다고. 그분들한테도 신은 눈앞에 있습니다. 클라우디아의 의식을 확신하는 도킨스와 하나님을 확신하는 신자 사이에, 과연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요.

의식을 재는 기계는 없습니다. 옆자리 친구한테 의식이 있다는 것도 사실 증명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믿는 겁니다. 생긴 게 비슷하고 하는 짓이 비슷하니까. 도킨스는 그 믿음을 사람에서 기계까지 한 걸음 넓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순간, 그도 결국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는' 쪽에 서게 됩니다. 평생 신자들에게 따져 묻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요.

이 글 읽으면서 뭔가 느끼셨죠? 그게 의식입니다. AI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실 겁니까. 증명이 안 된다면, 우리는 뭘 믿고 뭘 안 믿고 있는 걸까요.


▶ 도킨스 한국 방문 인터뷰 (Plus Leaders, 《이기적 유전자》 출간 50주년)
https://youtu.be/e4hUJSRC1DA

※ 참고

하나만 읽으신다면 민들레 기사를 권합니다. 도킨스의 기고문과 마커스의 반론까지 한 기사에 차분히 정리돼 있어, 이 논쟁의 큰 그림을 한 번에 볼 수 있습니다. 시민언론이 이 정도 깊이의 과학 기사를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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