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시리즈 ②] 골대는 누가 옮겨 왔나
작성자
강민신
작성일
2026-10-17 23:59
조회
29
지난 글에서는 브런슨이 "조건이 바뀌었다"며 골대를 옮기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전작권은 어떻게 넘어갔고, 그동안 누가 몇 번이나 골대를 옮겼을까요.
1950년, 편지 한 장으로 넘어간 지휘권
1950년 7월 14일. 전쟁이 터지고 3주쯤 지났을 때입니다. 국군은 낙동강 쪽으로 밀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승만은 유엔군을 이끌던 맥아더에게 편지 한 장을 보냅니다. 지금의 전쟁 상태가 이어지는 동안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넘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전쟁 상태가 이어지는 동안'이라는 단서입니다. 처음부터 잠시 맡긴다는 뜻이었습니다. 국회 동의도, 정식 조약도 없었습니다. 급한 불을 끄려고 쓴 편지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멈춘 뒤에도 지휘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만들어지면서 이 권한은 연합사령관, 그러니까 미군 대장에게 넘어갔습니다.
돌아온 건 반쪽뿐입니다. 1994년 12월 1일, 평상시 작전통제권을 돌려받았습니다. 전쟁이 나면 우리 군을 움직이는 권한은 여전히 미군 장군 손에 있습니다. 잠시 맡긴다던 것이 76년째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돌려받기로 했다가, 미루고, 또 미루고
전작권을 돌려받자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건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그 뒤 2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언제 | 누가 | 무슨 일 |
|---|---|---|
| 2006년 | 노무현 정부 | 한미 정상이 전작권을 돌려받는 데 합의. 이듬해 국방장관끼리 날짜를 2012년 4월 17일로 정함 |
| 2010년 | 이명박 정부 | 천안함 사건 뒤 2015년 12월 1일로 3년 미룸 |
| 2014년 | 박근혜 정부 | 날짜를 아예 없애고 '조건에 기초한 전환'으로 바꿈 (프레시안) |
| 2018년 | 문재인 정부 | 전환 뒤에도 연합사 틀을 유지하되, 사령관은 한국군·부사령관은 미군이 맡기로 함 (노컷뉴스) |
| 2019년 | 문재인 정부 | 첫 번째 시험(기본운용능력, IOC) 통과 |
| 2022년 | 윤석열 정부 | 두 번째 시험(완전운용능력, FOC) 평가는 했지만 마무리 짓지 못함 |
| 2025년 | 이재명 정부 | 한미 국방장관 회의에서 두 번째 시험을 2026년에 끝내기로 합의 (경향신문) |
| 2026년 10월 | 브런슨 | "조건이 바뀌었다, 새 기준이 생겼다" |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2006년 협상 때 미국은 오히려 서둘렀습니다. 당시 미국 측은 한국이 정말 원한다면 2009년에 넘겨받으라고 했습니다. 늦출수록 일이 꼬일 거라는 경고도 덧붙였습니다. 결국 날짜는 2012년으로 잡혔고, 그 경고는 그대로 현실이 됐습니다. (경향신문)
날짜를 지우고 조건을 넣다
가장 큰 갈림길은 2014년이었습니다. 그해 한미 국방장관 회의에서 두 나라는 정해 둔 날짜를 버리고 '조건에 기초한 전환'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공동성명에는 이것이 대한민국이 제안한 방식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먼저 내민 안이었다는 뜻입니다. (프레시안)조건은 세 가지였습니다. 한국군이 연합 작전을 이끌 능력, 북한 핵과 미사일에 맞설 능력, 그리고 넘겨받기에 무리가 없는 주변 안보 상황입니다.
여기서 꼭 짚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조건을 내건 건 한국입니다. 우리 군이 넘겨받을 준비가 됐는지 우리 스스로 점검하겠다는 기준이었습니다. 미국에 허락을 구하는 시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조건이 미국이 매기는 시험처럼 변했습니다. 조건을 채웠는지 평가하는 일을 한미연합사령관, 곧 미군 장군이 맡게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건 기준인데, 합격 도장은 미군이 찍는 구조가 된 겁니다.
날짜는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조건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힙니다. 북한 위협에 맞설 능력이 충분한지, 주변 안보 상황이 안정됐는지는 언제든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한 발 쏘면 조건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지난주 브런슨이 한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처음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방식은 한국군과 미군이 각자 지휘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2014년 이후에는 지금의 연합사 틀을 그대로 두고 사령관 자리만 바꾸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군이 계속 연합 체제 안에 남는 겁니다. 그렇다면 조건은 오히려 처음보다 가벼워져야 맞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노컷뉴스) 그런데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골대는 누가 옮겼나
솔직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골대를 처음 옮긴 건 미국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라고 뭉뚱그릴 일도 아닙니다. 2010년에 날짜를 미룬 건 이명박 정권이었고, 2014년에 날짜를 아예 지우고 조건을 집어넣은 건 박근혜 정권이었습니다. 날짜가 다가오자 받지 않겠다고 버틴 쪽도 이들이었습니다. 제 나라 군대의 지휘권을 스스로 남의 손에 더 오래 맡겨 둔, 사대매국정권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일입니다.그 뒤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이제 이재명 정부가 받겠다고 합니다. 국방부는 숫자로 따지는 조건은 다 채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군 사령관이 "조건이 바뀌었다"며 골대를 옮기려 합니다.
76년을 돌아보면 세 가지가 분명해집니다.
- 전작권은 협상할 대상이 아닙니다. 1950년에 잠시 맡긴 것입니다. 맡긴 것을 돌려받는 데 상대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조건은 한국이 내세우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이 내밀었더라도, 2014년의 조건은 어디까지나 한국이 내건 기준입니다. 그 기준을 채웠는지도 우리가 판단해야 합니다. 채점권부터 돌려받아야 합니다.
- 그러니 남은 건 시기입니다. 날짜 없이 조건만 있으면 끝이 나지 않는다는 걸 지난 12년이 보여 줬습니다. 올해 한미 국방장관 회의에서 몇 년도에 돌려받는지를 문서에 박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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