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3

특별기고 3

장성(長城), 민중이 성을 쌓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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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익

법학과 87학번

올해 518 광주기행에 장성에서 1박을 하며 장성 일대의 역사를 답사하는 일정을 준비중이며 이에 미리 장성 지역 역사와 문화등 에 대한 사전지식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글이다. -편집자

장성(長城)이라는 지명이 처음부터 자랑스러운 이름은 아니었다. 백제 때는 그냥 ‘고을’이라는 뜻의 고이현(古伊縣)이었고, 통일신라 때는 ‘험한 지형’을 뜻하는 갑성군(岬城郡)이었다. ‘긴 성’이라는 이름이 굳어진 건 고려 성종 때다. 노령산맥이 북쪽을 병풍처럼 두르고, 그 사이를 황룡강이 관통하는 이 땅의 지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벽이었다.

그러나 장성을 장성답게 만든 것은 산세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장태 하나로 기관총을 이겼다

1894년 4월,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 수천 명이 장성 황룡촌에서 경군(京軍)과 맞섰다. 상대는 미국제 개틀링 기관총과 독일제 크루프 야포로 무장한 정예부대였다. 농민군 손에 들린 건 화승총과 죽창, 낫뿐이었다.

승부는 엉뚱한 데서 갈렸다. 농민군은 닭장 만드는 법으로 대나무 원통을 짰다. 길이 4~5m, 지름 2m의 원통 속을 짚과 솜으로 빽빽이 채운 이 물건, 이름하여 ‘장태(竹太)’였다. 완만한 능선에서 이 장태를 굴려 내리자 개틀링의 총탄이 회전력을 잃고 박혔다. 관군의 전열이 무너지는 틈에 농민군이 쏟아져 내려왔다. 지휘관 이학승이 전사하고, 관군은 대포를 버린 채 달아났다.

이 황룡촌 승리가 전주성 입성의 발판이 되었다. 일상의 사물로 시대를 바꾼 이 집단지성의 기억은 지금도 황룡전적지에 새겨져 있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

86년 뒤, 장성은 다시 한번 그 기억을 꺼내 들었다.

1980년 5월, 광주가 계엄군에 포위되었을 때 외부로 통하는 도로는 차단되고 정보는 왜곡되었다. 장성 주민들은 읍내를 에워싼 제봉산, 성산, 월봉산, 못재, 갈재에 올랐다. 밤마다 횃불을 들고 광주 방향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말이 닿지 않아도 불빛은 닿았다. 낮에는 장날에 맞춰 가두시위를, 밤에는 횃불시위로 광주에는 연대를, 계엄군에게는 저항의 뜻을 보냈다.

장성 출신 박관현 열사는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다. 5월 14일부터 사흘간 도청 앞 분수대에서 수만 명 앞에 섰던 그는 비상계엄 확대와 함께 수배를 피해 잠적했고, 2년여의 도피 끝에 1982년 체포되었다. 감옥에서도 단식으로 진상 규명을 요구하던 그는 그해 10월, 스물아홉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장성군 하서면에 그의 생가가 남아 있다.

학문은 실천으로 완성된다

장성에는 예로부터 “학문으로는 장성만 한 곳이 없다”는 말이 전해왔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필암서원은 조선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모신 곳으로, 인종이 세자 시절 스승에게 직접 그려준 묵죽도 목판이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 서원 정문 확연루의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는데, ‘군자의 마음은 맑고 사심이 없다’는 뜻이다.

청렴으로 이름 높은 아곡 박수량 선생의 묘비는 글자가 없다. ‘백비(白碑)’다. 평생 탐욕을 멀리한 이의 삶을 기리는 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는 뜻이리라. 이 비석 하나가 장성 선비 정신의 결을 말해준다.

광주의 뜨거움을 안고 장성을 걷다

백양사 쌍계루 연못에 비치는 백학봉의 반영은 한국 사찰 풍경 중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다. 350년 넘은 홍매화 고불매(천연기념물 486호)가 봄마다 붉게 피어나고, 5,000여 그루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153호)이 경내를 감싼다.

축령산 편백나무 숲은 전쟁 후 황폐한 산을 평생 일군 임종국 선생의 손길이 만든 국내 최대 인공 조림지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은 ‘전국 최고의 치유의 숲’으로 꼽힌다. 장성호 수변 데크길은 경사가 완만해 담소 나누며 걷기에 그만이다.

외민동은 해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광주를 찾아왔다. 그 길에 담양을, 순창을, 정읍을 함께 걸었다. 올해는 광주를 다녀오는 길에 장성을 들르는 일정이다.

황룡촌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에서 장태를 굴렸던 민중의 지혜를 떠올리고, 축령산 편백숲에서 한 사람의 평생 헌신이 일군 치유의 숲을 걷고, 필암서원에서 학문을 실천으로 완성했던 선비 정신을 되새기는 것. 이 모두가 광주에서 품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며 되돌아보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다. 많은 동문들이 함께하길 바란다.

*사진 제공: 한국관광공사, 장성군청,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박관현기념재단,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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