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민동 감사패 수상 소감
2025년 외대민주동문상 및 따뜻한 동행 수상 소감
-2025 외민동 총회 감사패 수상자 3인의 감사 인사
감사패 수상
🙋수상자: 김재연(진보당 상임대표, 러시아어과99)
💭광장에서 받은 감사패, 감개무량합니다
외대 민주동문회에서 뜻깊은 감사패를 주셨습니다.
윤석열 파면 광장이든, 트럼프 위협 저지 집회든, 세상을 바꾸는 거리에서 어김없이 휘날리는 외대 민주동문회 깃발을 볼 때면 늘 자랑스러웠는데, 그런 동문들께 받은 감사패이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지난달 있었던 시상식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김종찬 회장님과 이중원 상임부회장님, 남일 사무국장님, 조화명 따뜻한동행위원장님께서 국회로 찾아와 패를 전달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다른 세상을 꿈꾸던 20대 시절의 다짐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동문 선후배들이 있어 큰 힘이 됩니다.
보내주신 격려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새해에도 더 분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상자: 김민웅(촛불행동 상임대표,정치외교학과75)
외민동과 함께 하는 투쟁, 그리고 승리로 가는 길
50년의 세월을 지나 외민동 동지들과 만났다. 이문동 대학 캠퍼스가 갑자기 시야에 들어오고 미네르바 동산에서 노래를 불렀던 시절도 아울러 소환되었다. 휴교령으로 시작했던 대학생활, 세상은 아름답지 않았고 폭군의 지배는 우리를 도리어 명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교문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투쟁의 목표였던 날들, 가난이 일상이던 학생들의 삶은 위태로웠다. 하지만 청춘은 언제나 뜨겁고 맑았으며 견고했다. 외민동은 그 힘을 여전히 지닌 이들의 결사체다.
유신체제의 폭압을 뚫고 나섰던 70년대의 격동, 그 시절을 겪어냈던 때를 훌쩍 넘어 내란 진압의 현장은 외대 민주동지들과 다시 하나가 되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역사는 같은 길을 가는 이들을 결국 어디서든 만나게 해준다. 그러니 외민동은 각자의 연륜과 삶의 자리가 가지고 있는 차이를 사라지게 한다. 같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동문이자 동지다.
지난해 말, 외민동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내란 진압의 공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걸 받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먼저 스쳤다. 그러나 긴 민주화 투쟁의 역사에서 외민동의 정신을 함께 나눈다는 뜻으로 감사하게 받았다. 그건 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촛불행동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외민동의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촛불대행진 현장에서 외민동 깃발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뛴다. 우리는 늙어가면서도 젊구나, 시들지 않고 쇠락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청년의 기세를 품고 역사의 한복판에 성큼 들어서는구나, 그래서 외민동 동지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우리는 이렇게 여기까지 함께 온 것이다. 출발과 경로가 다를지라도 집결지는 같은 것이다. 또한 종착지도 동일하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자랑이며 자부심이고 투쟁의 영혼이자 실천의 본거지다. 그래서 우리는 흩어지지 않는다. 함께 나누어온 기억들과 연대의 감격, 그리고 승리의 기록이 우리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외민동은 과거를 추억하는 이들인 동시에 지금, 바로 이곳에 뛰어드는 이들이자 미래를 기획하는 사람들의 환대 공동체다. 소중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최근 검찰 개혁을 마무리 짓는 투쟁에서 외민동의 총집중 투쟁 참여는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내란을 진압한 주권자 국민들이 세운 이재명 정부의 정통성, 대들보가 휘청거리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안고 청와대까지 진격한 그날은 거대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아니었다면 우리는 절망하고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이재명 정부는 여타의 개혁 동력을 잃어가면서 내란 세력의 반격과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재명 정부를 세운 주권자로서 청와대 진격은 선뜻 나서기 어려운 일이었다. 누워서 하늘에 대고 침을 뱉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며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비판하고 어쩌면 공격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슬픔과 분노가 한데 뒤섞인 공간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외민동도 위엄 있게 그곳에 우뚝 섰고, 결연한 모습으로 행진했다.
결과는 어땠는가. 주권자의 승리, 정부의 승리, 의회의 승리로 하나가 되었다. 국민들은 결사적이었다. 지금 아차하면, 역사는 휘어버리고 내란 세력 척결의 기회는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격문에 눈물 흘리고 합창에 심장을 불태웠으며 행진으로 기세를 드높였다. 그곳에 외민동이 빛나는 모습으로 함께 했다.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우리의 과제는 아직 남았다. 조희대 탄핵은 물론이고 이 나라를 자주와 평화의 나라로 서게 하는 임무,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명령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지치지 않을 것이며, 어떤 혼란과 교란, 기만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며 최전선에 선 혁명의 타격 선봉이 될 것이다. 외민동은 그 선봉의 본체로 자신을 다듬어 진격의 회오리를 이끌 것이다.
외민동과 함께 하는 투쟁, 승리로 가는 여정에 동지가 된 것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의 가슴과 영혼은 꺼지지 않는 화로(火爐)다. 거기서 솟구치는 불길로 우리는 낡은 시대를 태워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일으켜 나가는 빛이 되어 갈 것이다.
외민동 만세~! 동지들이여, 끝까지 가봅시다.
극우들은 미리부터 2월 28일 외대에서 결집할 것임을 알리며, 안정권을 비롯한 세력을 결집해 퇴진 반대 시국선언을 하고 기세를 올리려 했습니다. 이것을 무산시킨 것이 장장 10시간을 넘긴 ‘외대 대첩’이었습니다. 나는 이날의 주역이 바로 우리 외대민주동문회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이날 이전까지 외민동 회원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때부터 외민동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봐 왔지만, 당시 이중원 사무국장님과 인사만 나눴을 뿐 가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외민동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2월 28일 反극우 투쟁은 외민동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꿔 놓았습니다. 당시 극우의 결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에 반대하는 투쟁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외민동의 反극우 투쟁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갑자기 함께 투쟁하는 천군만마를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이후 외민동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대학 시절 민주주의와 사회 변혁을 위해 한몸 불살랐던 大선배님들이 여전히 외민동을 통해 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매우 고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외민동이 내게 따뜻한 동행의 ‘활동가 응원상’을 줬습니다. 외민동에서 오래 활동한 회원이 아닌데도 나를 응원해 주는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됩니다. 밥벌이, 단체 활동 등을 함께 해야 하는 처지에서 외민동 활동에 생각보다 잘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사회 변혁을 이뤄 갈 동지들과 언제나 함께하고 싶습니다.
2026년, 내란 세력 숙정과 민주주의 발전 그리고 사회 변혁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외민동이 있어 든든합니다. 새해 모든 외민동 회원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수상자: 현상윤(중국어과 74)
💭인생역전의 증표, 외민동 감사패
2년 전쯤 어느 날 전국시국회의에서 일하는 후배의 권유로 팔레스타인 집회 현장에서 김종찬 회장과 이중원 당시 사무국장을 소개받고 외민동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외민동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을 뿐 아니라 외대인의 정체성 자체가 아예 없던 저였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노는 데 열중했던 불량기 넘치는 생활이 자유 방탕한 대학시절로 이어져 결국 졸업도 못했습니다. 등록금은 남들보다 한 번 더, 아홉 번을 냈는데도 취득학점이 49학점 밖에 안됐으니 거의 학교를 안 다닌 거나 마찬가지였죠. 그런 제가 외민동에서 감사패를 받게 되다니 대단한 인생역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군 제대 후 학력제한이 없던 관제방송 KBS에 올림픽 방송요원으로 운 좋게 입사해 방송제작보다는 노조 쪽으로 풀렸고, 역대 최강성 노조위원장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외대 동문회장이셨던 KBS 최동호 부사장의 주선으로 미운 놈 떡 하나 주는 격으로 명예졸업장을 받게 되면서 외대와의 인연이 가냘프게나마 이어진 셈이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외민동
외민동에 가입하고 며칠 후 버스 두 대가 동원된 전남 장흥 동학혁명 성지순례에도 참여하고, 크고 작은 행사와 집회 현장에 함께하면서 외민동은 저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모임, 영순위’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마치 50년 전에 잃어버린 대학 시절을 되찾아 맘껏 즐기고 회춘하는 느낌이랄까요. 특히나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학생운동, 통일운동에 앞장섰거나 노동현장에 투신한 후배들과 일체화되면서 마음 속 한편의 부채의식도 털어버리는 일타쌍피의 효능감을 얻고 있습니다.
더욱 주요하게는 우리의 소중한 공동체를 파괴하고 무한경쟁의 비인간적 삶을 강제하는 내외의 기득권 세력에 맞서 함께 투쟁하고 있다는 자긍심,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말년에 찾아온 큰 행운이자 홍복입니다.
가정의 평화까지 지켜주는 외민동
외민동은 제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제주 4·3 항쟁 순례, 5·18 광주 참배, 정읍 동학성지 순례, 내린천과 곰배령 자연탐사, 내장사 단풍여행, 홍범도 신년음악회, 민가협 40주년 음악회, 겸재 정선 전시회, 현대미술전 등 외민동을 만나 제 인생은 더욱 다이내믹하고 풍요로워졌습니다.
윤석열의 계엄 이후로는 민주시민으로서 주어진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강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조국의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 안고 느꼈던 깊은 분노와 힘찬 투쟁, 고비 고비마다 찾아온 위기와 초조함, 그리고 마침내 짜릿한 승리의 희열을 함께 나누었던 기억은 값진 보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을 살면서 위대한 역사의 현장에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요.
그것만으로도 족한데 과분하게 감사패까지 받게 되니 뭐라 더 드릴 말이 없습니다. 더구나 매일 밤 취해서 밤늦게 들어오는 저의 일상을 언제나 한심하게 지켜보던 저의 집 V제로께서 감사패를 보며 내심 기특해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니, 가정의 평화까지 지켜주는 외민동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여생의 동반자 외민동
사랑하는 외민동은 어느새 제 여생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큰 보람이자 기쁨입니다. 더 많은 회원들께서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보적인 생활공동체’로서 아래로부터의 혁신적인 변화를 추동해내는 외민동으로 우뚝 서주기를 희망합니다. 못다 이룬 꿈을 함께 꿈꾸며 이루어 나가는 신나고 즐겁고 의미 있는 외민동을 위해 더욱 성실히 함께하겠습니다.
참여해주신 외민동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tadalafil medicine bangladesh
tadalafil medicine bangladesh
vidalista buy uk
vidalista buy uk
cialis mexico
cialis mexico
viagra pill doses
viagra pill doses
stendra cost cvs
stendra cost cvs
topiramate topamax moa
topiramate topamax moa
doxycycline mono generic
doxycycline mono generic
flagyl for kidney infection
flagyl for kidney infection
minoxidil tablet form
minoxidil tablet f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