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탐방기
몽골 울란바토르·돈드고비 탐방기
안미현
아랍어과 85학번
프롤로그
외민동의 몽골 탐방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출발 전부터 탐방단은 이 여정의 의미를 고민했다. 울란바토르와 돈드고비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며,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배우고 남길 것인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개인 텀블러를 준비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몽골 땅에 작은 묘목 34그루를 심기로 하면서, 우리의 여정은 단순한 체험이 아닌 실천과 약속의 장이 되었다.
광활한 초원과 드높은 하늘, 밤마다 쏟아지는 별빛은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묻게 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했고, 민주동문회라는 이름이 단순한 모임을 넘어 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울타리임을 새삼 확인했다.
첫째 날(8월 21일)_솔롱고스1가 건넨 특별한 환영
“17명의 외민동, 운명처럼 만난 무지개의 나라“
인천공항에 모인 외민동 17명(동문 가족 2명 포함)의 얼굴에는 설렘과 긴장감이 가득했다. 울란바토르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누군가 “로밍을 신청해도 초원으로 나가면 어차피 소용없다”는 말을 농담 삼아 건넸다. 여권을 꼭 챙기라고 신신당부하셨던 회장님이 구여권을 꺼내시는 바람에 잠시 소동이 일었으나, 덕분에 우리 모두 한 번 더 배를 잡고 웃을 수 있었다.
기내식은 대체로 만족스러웠고, 먹거리와 담소로 여행길의 긴장이 풀리며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도 열려갔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며 ‘몽골’이라는 막연함이 서서히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칭기스칸 공항에 도착하자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함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거대한 몽골 국기는 자존심 강한 몽골인의 기상을 보여주고, 드넓은 초원은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여정을 예고하는 듯했다.
외민동이 미니버스에 타자마자 비가 퍼붓더니, 연거푸 무지개가 하늘에 걸렸다. ‘솔롱고스’에 외민동이 오자 비가 내리고 쌍무지개가 뜨는 풍경은 ‘몽골이 우리를 특별히 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몽골에서는 비올 때 만나면 헤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니, 정말 운명적인 만남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NOMIN 마트에 들러 간단히 장을 본 뒤, 우리는 칭기스칸 대형 기마상2으로 향했다. 세계 최대의 기마상 앞에 서자 몽골의 광활함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 내부 관람을 할 수 없었는데, 경석은 홀로 출구로 들어가서 칸을 뵙고 왔다고 자랑했지만, 나머지 동문들은 입구에서 발을 돌려야 했기에 아쉬움만 남았다.
저녁 늦게, 우리는 현PD의 인류 기원 강의를 들으며 텔레지 국립공원의 게르 숙소에 도착했다. 아직 낯설고 어색했지만, 비와 무지개, 그리고 칭기스칸 동상이 함께한 첫날의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았다.
① ‘솔롱고스’는 몽골어로 ‘무지개’를 뜻하며, 몽골인이 한국을 가리켜 ‘무지개가 뜨는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② 칭기스칸이 지휘 채찍을 친구의 벨트와 교환했는데, 친구 무덤에서 채찍을 발견한 후에 세움
둘째 날(8월 22일)_초원 위를 달리는 외민동의 대장정
“17필의 말과 함께 은하수를 맞이하다“
이른 아침, 텔레지 국립공원의 환상적인 정경을 보며 장거리 여행의 여독도 잊은 채 새로운 하루를 열었다. 낯선 땅에서도 함께하는 동문들이 주는 익숙함은 마음을 편하게 했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낙타를 타고 초원 속으로 들어서며, 붉은 바위 협곡을 지나 몽골의 황량하면서도 황홀한 풍경을 온몸으로 마주했다. 이어서 말을 타고 맑은 시냇가를 따라 달리니 바람에 실린 초원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호산의 능숙한 기마 솜씨에 모든 동문이 감탄했고, 17명의 외민동이 말을 타고 횡렬로 달리는 장관을 연출했다. 그 순간, 우리는 마치 몽골의 일부가 된 듯한 벅찬 감동을 느꼈다.
차강 수브라가3로 가는 길, 불상과 공동묘지를 지나 성황당4에 잠시 들러 운 좋게 사냥매를 가깝게 볼 수 있었다. 만달고비의 끝없는 평야, 대지와 맞닿아 낮게 깔린 구름, 말과 낙타, 염소와 소떼가 어울려 있는 풍경이 끝없이 재현되며,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러나 정작 점심을 먹을 식당은 보이지 않았고, 화장실 문제는 드넓은 초원의 가축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해결해야 했다.
점심 식사 후 다시 달리고 또 달려서 비포장도로에 접어들자 흙먼지를 실은 바람이 창문을 흔들었다. 갈수록 황량해지는 길에, 자꾸 백미러를 바라보는 기사의 표정에 긴장감이 묻어나더니, 결국 길을 잃은 듯 버스가 멈춰 서고, 1호차를 기다려야 했다. 날이 저물고, 붉은 노을 속에 낙타 떼가 실루엣처럼 지나갔다.
밤이 깊어 고비 홀랑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 피로감이 모든 동문의 어깨를 짓눌렀지만 모닥불을 둘러앉자마자 피곤함은 사라졌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은하수 아래에서 노래와 웃음소리, 불꽃이 어우러진 초원의 밤이 흘러가는데, 모두가 잠든 후까지 찬호와 미현은 마지막 불꽃을 지켰다. 이 순간, 우리는 외민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③ 흰색 탑이란 의미로 울란바토르 남부 430km 소재,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절벽과 계곡이 절경임
④ 게르 모양의 돌탑과 각양각색의 깃발들로 이루어져서 위치와 영역을 나타내기는 듯하다.
셋째 날(8월 23일)_게르에서 만난 한심몽심(韓心蒙心)
“주소 없는 초원에서 찾은 따뜻한 인연“
게르 문을 열자, 차가운 새벽 공기를 덥히려는 초원의 끝에서 붉은 태양이 힘차게 떠오르고 있었다. 오늘은 고비의 한복판으로 향하는 날이다. 오전에 도착한 차강 수브라가는 기암괴석이 있는 고비다. 초원은 저 멀리 사라지고 수백 미터 낭떠러지 같은 협곡으로 내려갔다. 저마다 인생샷을 남기고 고비 한복판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도코(Doko)5의 작은아버지 게르로 향하는 창밖 풍경은 어제와는 또 달랐다. 풀은 점점 줄어들고, 땅은 모래빛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초원으로 이어졌다.
⑤ 국제농업네트워크 몽골 지부장으로서 김호산의 지인이며, 외민동 몽골탐방의 몽골인 파트너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듯, 초원에서의 게르 찾기는 ‘여기가 아닌갑네’의 연속이었다. 도로도 주소도 없이,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 초원에서 지나는 차량을 세우고, 멀리 보이는 게르를 찾아가 위치를 묻기를 반복했다. 이 모든 과정을 동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즐거워했다.
어찌 연락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도코의 사촌 동생 카라가 마중을 나왔다. 반가이 맞아주는 가족들이 허르헉을 준비하면서 마유주를 내주었다. 우리는 점심 식사를 놓친 시간이라 맛있게 먹고 작은아버지 게르로 이동했다.
작은아버지는 유목민에게 목동왕으로 불리는 원로였는데 친근한 이웃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작은할머니와 일행 모두가 볼인사하며 커다란 게르로 들어갔다. 코담배, 수태차가 나오고 치즈와 사탕류 등 간식을 나눠줬다. 이때부터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분위기였다.
귀한 손님에게 베푸는 은잔의 보드카가 몇 순배 돌려졌다. 유목민 복장을 한 할아버지 부부의 구성진 노래, 카라 부부와 여동생의 노래가 이어지고 우리 외민동은 답가로 아리랑을 불렀다. 운율과 정서가 비슷한 것이 바로 ‘한심몽심(韓心蒙心)’이었다. 이 순간, 언어는 달라도 마음은 통하는 것을 느꼈다.
단연 흥미를 끈 것은 할아버지 부부의 덴버 게임이었는데 즐거운 운율과 작은 손동작으로 서로에게 스킨십을 하는 묵찌빠와 비슷한 게임으로, 이긴 사람이 마유주를 바치면 진 사람이 마시는 벌칙이 있었다. 외민동도 함께 참여하며 배꼽 잡고 웃었다.
다시 카라의 게르로 이동한 우리는 조리가 완성된 허르헉을 즐겼다. 바로 잡은 양고기는 잡냄새 없이 신선했고, 양념이나 향신료 없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내장은 순대와 비슷했는데, 양 한 마리가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밤 10시가 지나서 캄캄한 밤에 도로도 없는 낯선 초원길을 안내하던 카라의 차바퀴에 문제가 생겼다. 왼쪽 차바퀴 2개를 모두 교체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서 어찌 연락했는지 신기하게도 잠시 후 응원군이 등장해서 바그 가즈링 후레 숙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도 서로를 챙기며 웃음을 잃지 않는 외민동의 모습이 빛났다.
넷째 날(8월 24일)_함께 심은 희망의 씨앗
“34그루 묘목에 담은 외민동의 미래“
오늘은 미리 준비한 나무 34그루를 심는 날이다. 17명이 작은 묘목 2그루씩 심는 것이니 10분도 안 걸릴 거라고 얕보고, 점심은 어디서 먹을까 ‘김칫국’부터 마셨다. 굳은 땅을 2~3m 간격으로 넓고 깊게 파야 한다는 게르 주인의 지시에 따라 괭이질과 삽질을 몇 번하다가 우리는 몽골에서 나무를 어떻게 심어야하는지 크게 깨달았다.
일행 중 모 인사는 죽은 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심자고 선동하며 생나무를 뽑다가 게르 주인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몽골에서는 묘목 심을 구덩이 파는데도 엄청나게 힘이 들지만, 심고 나서 물을 충분히 주기 위해서는 물차가 필요할 정도였다. 하지만 동문들은 서로 힘을 모아 구슬땀을 흘리며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묘목을 심었다. 이 작은 나무들이 훗날 울창한 숲이 되어 외민동의 우정처럼 뿌리 깊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여곡절 끝에 지구환경 구하기 실천을 마치고 울란바토르를 향해 출발했다.
중간 목적지는 ‘바그 가즈링 출루’였는데, 일설에 따르면 수도승이 수행했던 사원이라 한다. 버스들은 초원과 황무지, 도로를 번갈아 달리며 서서히 바위 군락 앞에 섰다.
국립공원 입구에는 암각화가 있고, 간신히 몸을 숨길만한 작은 동굴도 있었다. 돌산에 오르자 주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위는 수만 년 동안 바람과 비에 깎여 독특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그 틈새마다 들꽃과 키 작은 나무들이 숨어 있었다. 고비의 척박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있는 생명력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에피소드 하나를 추가하자면, 지난 며칠간 도로가 없는 초원과 광야를 누비더니 2호 버스 왼쪽 앞바퀴가 고장이 났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좌판을 깔았다. 국립공원 밖에 버스를 그늘막 삼아, 삼겹살 구이판 3대를 설치했다. 낮에 장을 봐둔 삼겹살과 쌈채, 공수한 김치와 밑반찬 그리고 보드카가 나오니 갑자기 몽골 초원에서 즉석 외민동 야외 파티가 열렸다. 이런 순간이야말로 외민동다운 순발력과 유쾌함이 아닐까.
푸른 초원을 뒤로하고 달리고 달려 도시로 들어서자,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불야성이었다. 30만 명이 거주하도록 설계된 도시에 170만 명이 몰려들어 있는 울란바토르는 밀리는 차량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80년대의 공사중인 서울을 연상시켰다.
다섯째 날(8월 25일)_붉은 영웅의 도시에서 나눈 마지막 추억
“울란바토르여, 안녕! 우리가 함께 걸은 이 길을“
날이 밝아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서울의 남산 같은 자이산에 올랐다. 자이산에는 몽골-러시아 친선탑이 있어서 도시 전망을 둘러볼 수 있다. 자이산에 가려면 서울의 강남 같은 구역을 지나가는데, 실물 크기의 돌로 빚어 놓은, 유목민이 게르를 이동시키는 낙타군들이 인상적이었다. 자이산 아래 이태준6 선생 기념공원, 조계종이 기증한 거대불상 공원이 가까이 있어 둘러보았다. 간단 사원7 내부는 아쉽게 들어가지 못했는데 다시 몽골 방문 기회가 있다면 외민동과 함께 둘러볼 만한 곳이다.
오후에는 수흐바타르 광장과 그 인근을 둘러봤다. 거대한 칭기스칸 상에는 내몽고에서 온 관광객들도 정성스레 절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었다. 광장 한복판에는 독립영웅 수흐바타르 장군의 기마상이 있는데 몽골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그리스식 건물 식당 ‘브로드웨이’도 인상적이었는데, 경석이 협찬한 최고급 보드카 소욤보를 곁들인 현지식 점심은 일행 대부분의 입맛에 맞는 편이었다. 이렇게 서로를 챙기는 마음이 외민동의 따뜻함이다.
철도대학 옆 공연장은 오랜 유서가 쌓인 곳으로 보였다. 극장 내에 유명 배우들의 사진이 걸려있고, 정동극장 정도 규모의 낡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들은 초원에서 미처 다 보지 못한 다양한 전통춤, 노래와 기예들이었다. 외민동 모두가 함께 감상하며 몽골 문화의 깊이를 느꼈다.
몽골의 캐시미어가 유명하여 특산품 매장마다 코트, 스카프, 모자 등이 많았고 값비싼 제품도 있었지만, 소소한 기념품들을 심지어 한화를 받으며 파는 곳도 있었다. 동문들은 서로에게 작은 선물을 골라주며 여행의 마무리를 준비했다.
아쉬운 마지막 밤, 프리미엄 호텔방에서 보드카와 맥주를 놓고 둘러앉은 우리는 도코의 노래로 마지막 여운을 달랬다. 이 순간, 외민동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
⑥ 항일 독립지사이자 몽골의 마지막 황제 보그드 칸의 어의
⑦ 티베트 불교 겔룩빠의 중심적인 절이자 몽골 3대 불교 사원 중 하나. 풀네임은 ‘간등테크칠링’ 사원이다. 뜻은 티베트어로 ‘완전한 기쁨을 지닌 대승의 땅’
여섯째 날(8월 26일)&에필로그_“다시, 더 큰 연대로”
“귀환, 그리고 영원한 외민동의 약속“
마지막 아침. 칭기스칸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모든 동문이 창밖 풍경을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창밖으로 몽골의 대지가 멀어져 갔다. 그 순간, 누군가 낮게 말했다.
“언젠가 다시 오고 싶다.”
짧다면 짧은 6일이었지만, 울란바토르의 무지개, 돈드고비의 바람, 초원의 별빛은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속에 머물 것 같다. 또한 부족한 장비로 굳은 땅을 파며 흘린 땀방울은 외민동의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계기가 될 것이다.
몽골 고비에 심은 작은 묘목이 언젠가 숲을 이루듯, 이번 탐방을 계기로 외대민주동문회의 연대 또한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외민동, 외민동, 우리의 약속 우리의 믿음. 외민동 외민동 나 너 우리 함께 가리라. 영원히” 가는 곳곳 울려 퍼지던 외민동 찬가와 목청껏 부른 민중가요….
돌아온 지금, 우리는 일상으로 흩어졌지만, 모든 동문이 같은 다짐을 한다.
“다시, 더 큰 의미와 더 깊은 연대로 외민동과 함께 떠나자.”
외민동 몽골 탐방 참여자 17인 명단
현상윤(중어 74), 엄태경(베어 77), 김종찬(정외 80), 박찬호(한교 80), 이두헌(노어 80), 이중원(무역 83), 김호산(독어 83), 이상묵(법학 83), 최숙(서어 83), 정희상(서어 83), 김복남(서어 83), 정두완(경희 83), 김경은(포어 84), 이귀애(독어 84), 안미현(아랍 85), 김순선(서울여대 86), 이경석(경영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