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걷는 스페인 500년 —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 소개

그림으로 걷는 스페인 500년 대표 이미지
그림: 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톨레도 산토토메 성당 소장, 이번 전시 출품작 아님)

교과서 속 명작 한두 점을 보러 가는 전시가 아니라, 스페인 그림 500년 역사를 통째로 훑는 전시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 이야기다. 뉴욕 히스패닉 소사이어티가 모은 스페인 회화 95점이 아시아에 처음 왔다.

미술사의 흐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전시다. 다만 예쁜 그림이나 관광지의 낭만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수 있다.

‘지독한 덕후’ 수집가, 헌팅턴

이 그림들을 모은 사람은 아처 헌팅턴이다. 뉴욕 부잣집 아들이었던 그는 스페인 옛 서사시 「엘 시드의 노래」에 빠져 수년간 영어로 번역했고, 20대 초반에 그 여정을 직접 걸어서 답사했다. 아버지의 조선소 경영을 마다하고 스페인 문화 박물관을 세우는 데 평생을 걸었다.

  • 소장 회화 900점 가운데 95점이 왔는데, 그것만으로도 스페인 회화사 전체를 담으려 한 수집임이 드러난다.
  • “스페인 땅에 있는 작품은 빼내 오지 않는다.” 그는 이미 해외로 흘러나온 작품만 사 모았다. 문화유산을 어떻게 모으고 지킬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 자기 취향대로가 아니라 백과사전처럼 고르게 모았다.

여섯 개의 방, 500년의 흐름

1. 종교화에서 르네상스로 — 금박 제단화로 시작한다. 뒤처져 있던 스페인이 유럽의 새 기법을 급히 받아들이며 여러 양식이 섞였고, 엘 그레코가 그 대표다.

2. 황금기 바로크(17세기) — 벨라스케스, 수르바란, 무리요, 리베라를 모두 만날 수 있다. 벨라스케스의 작은 초상화가 방 전체를 압도한다는 평이고, 멜론과 무화과를 그린 정물화도 추천작이다.

3. 고야와 낭만주의 — 고야가 중심인 방이다. 고야를 따라 그린 후배들의 그림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데, 매끈한 아카데미풍 그림은 고야 옆에서 밋밋해 보인다.

4. 풍경화 — “내륙의 돌”(황량한 고원과 돌산)과 “해안의 빛”(지중해 어촌)으로 나뉜다. 베루에테의 세고비아·과다라마 풍경이 백미로 꼽힌다.

5. 풍속화 — 1898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진 뒤 화가들은 “스페인이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시골 사람들의 옷과 장터, 결혼식을 그렸다. 작품 수가 가장 많은 방이다. 포스터에 실린 미겔 비야드리치의 「나의 장례식」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6. 모더니즘 — 프랑스가 형식 실험에 몰두할 때 스페인 화가들은 주제와 이야기를 지켰다. 앙글라다 카마라사의 화려한 색채와 솔라나의 어두운 그림이 인상적이다.

눈여겨볼 그림

  • 엘 그레코 「성가족」
  • 벨라스케스의 추기경 초상
  • 고야 「마누엘 라페냐」 전신 초상
  • 베루에테의 세고비아 풍경
  • 미겔 비야드리치 「나의 장례식」

관람 팁

그림 하나하나보다 전체 흐름을 따라가며 보는 것이 이 전시에 맞는 관점이다. 넉넉히 2시간은 잡는 것이 좋다. 전시 후반부를 보고 나면 “그동안 근대 미술을 파리 중심으로만 좁게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관람평이 많다.

관람 안내

  •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 기간 2026년 9월 22일 ~ 2027년 1월 20일 (월요일 휴관, 공휴일 정상 운영)
  • 시간 화~일 오전 10시 ~ 오후 7시 (입장 마감 오후 6시)
  • 관람료 성인(만 19~64세) 23,000원
  • 문의 02-3473-4889

참고 자료

다른 기사

10.28 건대항쟁 40주년 대표 이미지

“동지여, 무지개가 떴습니다” — 10.28 건대항쟁 40주년, 국회 토론회부터 열린음악회까지

가자 학살 3년 국제 공동 행동 대표 이미지

“가자를 잊지 말자” — 10월 11일 서울 영풍문고 앞, 팔레스타인 연대 국제 공동 행동

2026 정기총회 준비 — CMS 회원 수 변화

2026 정기총회 12월 4일 모교에서 — 준비위원회 출범, 위원장에 김복남 동문

2026 외민동 포럼 대표 이미지

2026 외민동 포럼, 10월 15일 막 올린다 — 네 차례 강연으로 ‘민주시민의 실천’을 묻다

프랑스 10대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 대표 일러스트

프랑스 10대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 고교생 반란과 나라 빚 위기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 정비 대표 이미지

열사가 살고 싶었던 내일을 — 외민동, 10월 11일 모란공원 열사 묘역 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