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소감

수상 소감

2025년 외대민주동문상 및 따뜻한 동행 수상 소감

-2025 따뜻한 동행, 수상자 13인의 감사 인사

🎤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 수상자들이 전하는 이야기

 

 206명 동문의 정성이 모여 만든 4천만 원의 기금. 그 온기는 13명의 동문에게 전해졌습니다. 자랑스러운 외대민주동문상, 유자녀 장학금, 투병 동문 생활비 지원, 활동가 응원상 — 각기 다른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걸어온 이들이 보내온 감사의 마음을 소개합니다. 연대가 어떻게 서로의 내일을 잇는지, 그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편집자 주-

🎓 유자녀 장학금 수상

🙋수상자: 김민아(故 박문현(신문방송학과 92)의 배우자)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위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민주동문회 유자녀 장학금을 받은 박윤서의 어머니 김민아입니다. 저희에게 이 장학금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위로입니다.

문현 씨를 기억해 주시는 따뜻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아이가 힘든 순간마다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윤서도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건넬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기도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 번 외민동의 따뜻한 마음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이 아빠가 유독 그리운 날, 윤서와 함께 외민동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 애 아빠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수상자: 조원영(故 조정권 동문(독일어과 83)의 아들)

💭행동하는 이 시대의 청년으로서 외대민주동문회의 따뜻한 동행에 보답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2025년 ‘따뜻한 동행’ 유가족 지원금을 수혜하게 된 故 조정권 동문(독일어과·83)의 아들 조원영입니다.

저에게 큰 혜택을 베풀어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민주동문회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동고동락하셨고 언제나 마음으로 의지하셨던 민주동문회로부터 이처럼 소중한 도움과 응원을 받게 되어 더없는 영광입니다.

아버지께서 작고하신 지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난날 당신께서 민주동문회 여러분과 함께 이 땅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고 땀 흘리셨던 그 발자취는 지금까지도 제 삶의 방향을 이끌어주는 지향점이자 원동력입니다.

정당운동과 노동자·학생 연대활동에 뛰어들었던 대학생 시절부터, 국회 보좌진으로 일하며 정치·사회 개혁에 힘을 보탰던 시기를 지나, 독일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후 정당과 시민사회에 몸담으며 극우·내란세력에 맞서 싸웠던 작년에 이르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의 중심에는 독재와 부조리에 항거하셨던 아버지 세대 선배님들에 대한 존경과 강한 동질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민주동문회에서 격동의 2025년을 마무리하며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지원해주신 것은, 일신의 영달이 아닌 우리 사회와 모두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일에 힘쓰라는 뜻이라고 여겨집니다. 단지 동문의 유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큰 혜택을 입는 것은 한편으로 부끄럽고 또 민망하지만, 민주동문회 회원분들의 큰 뜻을 마음에 새겨 앞장서 실천하는 삶의 계기이자 동력으로 삼겠습니다.

저는 새해부터 기후변화 문제와 대응방안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에서 일하는 동시에, 국내 대학원의 기후·환경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다수 민중과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맞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일에 헌신함으로써, 민주동문회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가겠습니다.

2026년 병오년 새해, 모든 외민동 여러분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활동가 응원상 수상

🙋수상자: 이민지(신문방송학과 19)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지는 연대의 힘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언론정보전공 19학번 이민지입니다.

활동가 응원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배님들께서 보내주신 응원과 지원 덕분에 생활에 대한 걱정을 덜고, 활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후배들의 활동을 향해 아낌없이 응원을 보내주시는 선배님들이 계시다는 사실에 늘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2025년을 돌이켜보면 외대민주동문회라는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어 참 감사한 한 해였습니다. 퇴진 광장에서 후배들과 함께 ‘윤석열 퇴진을 바라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 참가단 일동’ 깃발을 들고 여의도부터 남태령, 한강진, 광화문까지 거리를 지켰습니다. 그 모든 순간에 외대민주동문회 선배님들께서 함께해주셨습니다.

집회에서 함께 나눴던 담소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던 눈빛, 챙겨주셨던 용돈, 뒤풀이에 함께하자고 항상 먼저 제안해주셨던 말씀들까지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했습니다. 함께하던 후배들이 선배님들의 애정을 듬뿍 머금은 모습들 속에서 한국외대라는 자부심, 우리 학교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크게 느꼈습니다.

한국외대 선배님들께서 만들어온 운동의 역사를 들으며, 그 길에 함께 서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이 외대에도 있기를, 이왕이면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내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한국외대를 거쳐 간 학생들이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우리가 함께해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얼마나 많은지를 배우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외대와 함께한 7년의 시간 동안 참 많은 추억이 쌓였습니다. 과 회장 선거에 나가기를 주저하던 제가 단과대학 학생회장과 총학생회장을 맡아 학교를 상대로 노숙 농성을 벌이기도 하고, 정부를 상대로 삼보일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외대 학우들이 원하는 학교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던 마음, 우리 학교에 필요한 변화가 꼭 이번에는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마음들이 저를 성장시킨 소중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소중한 경험을 하는 후배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도 학교를 지키고 있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제게 보여주신 사랑을 본받아 후배들을 향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배가 되겠습니다. 앞으로 외대민주동문회와 더 많은 것을 함께 만들어 갈 미래를 상상하니 감사하고 기쁩니다.

🙋수상자: 허영호(영어학과 00학번)

💭따뜻한 동행에 감사드리며 광장에서 늘 함께하겠습니다.

따뜻한 동행 추천과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문회 총회 며칠 전에만 해도 홈플러스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 개입을 촉구하는 농성이 계속되고 있었기에, 총회에 참석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3월 4일 갑작스럽게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한 이후 사태는 예상과 달리 9개월이 넘도록 이어졌습니다. 삭발과 단식 농성, 대규모 집회, 서명운동까지 진행했지만 노조가 요구해오던 정부 개입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11월 8일부터 시작된 홈플러스 지도부 3인의 단식 농성은 26일, 27일째까지 이어졌습니다. 총회 전날이던 12월 4일이 되어서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와 여당 대표의 호응이 있었고 그제야 농성을 정리할 수 있었으며 총회에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총회 당일에야 따뜻한 동행의 취지와 그동안 수상했던 선후배님들을 찾아보며, 과연 제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는 저보다 더 치열하고 어렵게 투쟁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기에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고민되었습니다.

저는 2013년 홈플러스노동조합 설립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마트 노동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홈플러스노동조합 설립도 여러 동문들의 도움으로 가능하였고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도움을 받으며 지금의 마트노조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외민동에는 진작 가입했지만 활동에는 거의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겨울, 윤석열 파면 광장에서 늘 외민동 깃발을 마주하며 제 마음에는 동문회가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매주 광장에서 동문회의 깃발을 볼 때마다 늘 반갑고 자랑스러운 마음이었고,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과 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외민동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함께 투쟁했고, 이어진 홈플러스 투쟁도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주신 상이라 생각하며 외민동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외민동이 빛의 광장을 빛냈던 것처럼, 앞으로도 광장에서 언제나 함께하기를 바라며 도움을 주신 외민동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수상자: 이병무(독일어과 86)

💭부족하지만 함께 걷겠습니다

전주에 살고 있는 독일어과 86학번 이병무입니다.

지난해 지인의 소개로 외민동에 가입했지만, 단 한 번도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비판을 들어도 모자랄 판에 도리어 상을 받게 되어 미안함이 더 커졌습니다. 외민동 총회에서 느낀 것은, 정말 많은 선후배님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혹은 ‘현역처럼’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받아야 할 상을 제가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외람되게도 제가 호명된 것은 세월호가 갖는 역사적 의미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전주는 서울과 꽤 거리가 있는 지방이다 보니, 정치적으로 치열함보다 한가함이 일상입니다. 그런 곳에서도 12년이 다 되도록 세월호를 상기하는 장소와 시민들이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에 서는 시민들이 전국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00일 넘게 매일 수 시간의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자발적 시민이 있고, 암 투병 중에도 세월호 진상규명의 성과와 과제를 다룬 다큐 영화를 제작한 감독도 있습니다. 앞으로 청와대 앞에서도 유가족과 시민들이 지난 문재인 정부 때처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행동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에 비하면 분향소 지킴이는 사실상 한가한 편이고, 활동가라면 세월호를 주요 현안으로 만들지 못한 문제를 먼저 자성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지난 총회에서 고사하려던 상을 받으며 감사의 인사로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받을 자격은 없지만 함께하고 있는 분향소 지킴이들께 선후배님들의 지지의 마음을 전하겠다는 것, 그리고 용기가 없어 외민동 선후배님들께 세월호 진상규명에 관해 적극적으로 공유하지 못했지만, 12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과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일명 사참위)에서 조사국장으로 활동한 동문 박병우 선배(독일어과 84, 전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의 존재를 소개드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외민동 가입을 권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외민동과 세월호가 12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인연을 맺고, 남은 진상규명 운동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구했다”는 말을 돌이켜, 이제는 반드시 “현재가 과거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는 마지막 남은 냉전 지역이라는 특수한 현실과 그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공한다고 했습니다. 그조차도 그것을 인식하고 사람들이 도전해야 가능하며, 그러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많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외민동 선후배님들의 지난 25년 활동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분단되고 80년 넘게 자주적 독립국가조차 되지 못한 역사의 산물이며, 그 역사에 의해 다시 소환되고 이 역사와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교적 한가한 지방에서나마 선후배님들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상자: 홍진기(법학과 85, 새물결)

💭‘지난 삶을 기억해주는 외민동이 부럽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2025년이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일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아내를 영원히 떠나보낸 힘든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함께 아파해 주고 많은 격려를 보내주신 동문들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외대 민주동문회에서 활동가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처음 든 생각은 ‘내가 받아도 되나?’였습니다. 마침 그날, 지역의 오랜 지인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동문회에서 활동가상을 준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인이 “받을 자격 충분하다”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나는 가족 말고는 내 삶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당신의 살아온 삶을 기억하고 알아주는 외민동이 부럽다”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내가 잘 살았구나’라는 생각보다는 ‘외민동이 있어 좋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상을 받기로 했습니다.

오래전 어느 소설에서 본 “스무 살의 젊은 꿈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는 구절이 기억납니다. 대학 생활은 전체 삶에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내 수십 년을 이끌어 온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90년대 초반 대학을 떠나, 당시 서울의 제2공단이라 불리던 성수동에서 ‘놀이패 울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성수동은 대학 시절 가두시위나 노학연대를 위해 자주 왔던 곳이었고, 외대 출신 활동가들도 많이 활동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지역 단체들의 연대회의에 나가면 외대 출신이 절반 가까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야학, 노동조합,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연대 활동을 하면서 ‘광진구를 바꿔 보자’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지역운동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지역사회와 지역정치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지역의 활동가들과 치열하게 논의한 끝에 지역신문을 만들기로 했고, 2000년에 서울 최초로 자치구 단위 인터넷 신문을 창간해 지금까지 ‘지역을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동안 외민동은 회비만 내는 회원으로만 지내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송년회에 참석했습니다. 30년 넘게 보지 못했던 옛 동지들과 다시 만나는 자리는 설렘 그 자체였고,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젊은 날의 꿈을 잊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에 사진첩을 정리하다 보니, 졸업식 사진을 빼고는 대학 때 사진이 아예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은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도 없었고 또 마음 편히 보관할 수도 없었던 때였지요. 하지만 내가 보냈던 대학생활은 나의 머릿속에, 그리고 함께 했던 벗들의 기억 속에 어떤 사진보다 선명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나의 삶을 기억해 주는 외민동은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하고 감사한 공동체입니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리며, 외민동의 무궁한 발전과 동문 여러분의 즐겁고 평안한 일상을 기원합니다.

🙋수상자: 김재헌(무역학과 89)

💭따뜻한 동행이 지속되길

‘외대 대첩’. 2025년 2월 28일 외대 정문 앞에서 벌어진 反극우 집회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시도가 목숨을 건 평범한 민중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패배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 전광훈을 비롯한 극우들의 준동이 시작됐고, 윤석열 퇴진 집회에 버금가는 극우 대중을 끌어모으며 실패한 쿠데타의 국면을 역전시키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거리 극우의 결집은 이후 소위 ‘자유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 내 극우들을 결집하려는 시도로 이어졌습니다. 윤석열 퇴진 시국선언을 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를 시작으로 대학 내 극우를 결집시키려 했지만 친민주주의 학생들의 대응 행동으로 쉽게 전진하지는 못했습니다.

극우들은 미리부터 2월 28일 외대에서 결집할 것임을 알리며, 안정권을 비롯한 세력을 결집해 퇴진 반대 시국선언을 하고 기세를 올리려 했습니다. 이것을 무산시킨 것이 장장 10시간을 넘긴 ‘외대 대첩’이었습니다. 나는 이날의 주역이 바로 우리 외대민주동문회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이날 이전까지 외민동 회원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때부터 외민동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봐 왔지만, 당시 이중원 사무국장님과 인사만 나눴을 뿐 가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외민동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2월 28일 反극우 투쟁은 외민동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꿔 놓았습니다. 당시 극우의 결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에 반대하는 투쟁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외민동의 反극우 투쟁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갑자기 함께 투쟁하는 천군만마를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이후 외민동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대학 시절 민주주의와 사회 변혁을 위해 한몸 불살랐던 大선배님들이 여전히 외민동을 통해 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매우 고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외민동이 내게 따뜻한 동행의 ‘활동가 응원상’을 줬습니다. 외민동에서 오래 활동한 회원이 아닌데도 나를 응원해 주는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됩니다. 밥벌이, 단체 활동 등을 함께 해야 하는 처지에서 외민동 활동에 생각보다 잘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사회 변혁을 이뤄 갈 동지들과 언제나 함께하고 싶습니다.

2026년, 내란 세력 숙정과 민주주의 발전 그리고 사회 변혁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외민동이 있어 든든합니다. 새해 모든 외민동 회원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수상자: 윤성희(신문방송학과 01)

💭오늘도, 내일도 듣고, 보고 기록해나가겠습니다

저는 사진 이미지와 글쓰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현장, 그중에서도 주로 노동 현장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말하는 쪽보다는 듣는 쪽이 더 좋았습니다. 그러다 작은 월간지 일을 하게 되면서 여러 노동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속품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일터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고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급여를 떼이지 않고, 해야 할 말을 말하기 위해 사람들은 부단히 무언가를 쌓아 올리거나 깨부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과 삶을 향한 일종의 사랑의 이력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저 역시 그런 것들에 기대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어떤 미래를 위해,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채로 묵묵히 그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적어두고 싶다고. 세상을 당장 바꾸는 커다란 이슈가 아닐지라도, 어떤 일들은 계속 말해져야 한다고. 그래서 저는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을 시작으로, 주로 해고노동자들의 현장을 기록해 왔습니다. 이어 고 김용균 씨 사건을 계기로 산업재해 현장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작업을 책으로 묶어냈습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야간노동자를 다룬 르포르타주를 썼고,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백남기 농민을 다룬 책을 공저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연일 재난과 비극의 뉴스는 계속 업데이트됩니다. 쏟아지는 사건·사고 속에서 살아가기도 버거운 이 상황에서, 이런 노동 현장의 기록은 무엇이 될까요. 글쎄요, 확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기록이란 단순히 정보의 집적이 아니라 ‘연결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와 연결하는. 나와 타자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연결하는. 나의 삶이 세상과 무관할 수 없으며, 함께 살아가야 함을 배워가는. 가속하는 재난과 위기 속에 불안정해진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런 ‘연결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연결됨’의 힘을 외민동의 따뜻한 동행 프로젝트를 통해 더욱 강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있어 ‘함께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고, 좀 더 나은 미래를 기어이 함께 그리려는 마음들. 그런 마음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에 기대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연결의 감각을 길게 이어갈 수 있기를 또한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상자: 김문성(스페인어과 93)

💭영 피프티, 수구초심, 그리고 외민동

바쁘디 바쁜 윤석열 탄핵 운동 국면이었다. 집회 말미에 출석 체크(?)를 위해 외민동 깃발 쪽으로 갔다. 한 선배님이 어디 있었냐고 물으시는데, 옆에서 다른 선배님이 대신 답하셨다.

“얘는 안 보여도 집회 어딘가에 늘 있어.”

정확한 워딩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올해 외민동에서 들은 말 중 가장 기분 좋은 대화였다.

사실 나이 50에 막내 노릇 하는 모임이야 많겠지만, 집회 열심히 나간다고 칭찬받을 모임이 얼마나 있겠나. 이것이 단지 특수한 시기였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것이 외민동에 대한 내 믿음이다.

5월 광주 기행은 중요한 개인 일정이 생겨 저녁에 따로 내려가야 했다. 간만에 광주에 내려가 아는 척 좀 해볼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정작 그러지 못해 아쉬운 일정이 되었다. 그날 뒤풀이에서, 이번에는 대학 때부터 교류하던 후배 동문이 물었다.

“민동에 가입하신 계기가 뭐예요?”

그런데 갑자기 화제가 바뀌어, 대답도 못 한 채 자리가 정리되고 말았다.

사실 외민동 선후배님들을 처음 본 곳은 시청 앞 집회였다. 우리 과 인종훈 선배님을 통해, 윤석열 퇴진 집회에 외민동이 자주 나온다는 이야기는 이미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재작년 여름, 덕수궁 앞 집회에서 인종훈 선배님과 과 후배 재직이를 우연히 만났다. 그 자리에서 드디어 회장님을 포함한 여러 동문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다시 만난 것이,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날이다. 집회장에서 이리저리 오가다 표결 발표에 맞춰 국회 앞 대로 대열에 끼어들었다. 12월 3일 이후로도 풀리지 않던 긴장이 일부 풀리던 날이었으니, 그 감격의 대열에 함께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그 대열 한가운데에서, 또 외민동 대부대를 만나지 않았던가.

가입을 결심한 건 그때였다. 대학에서 평생 살아갈 정치적 신념과 방향을 얻었지만, 그 출발점에는 외대라는 공간과 그 공간의 사람들이 있었다. 개인에게는 그 공간과 사람이 동시대적인 것이지만, 공간은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람들을 한데 이어 준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시대가 달라도 신기하게 비슷하다. 그 감각이 좋았다.

마침 나이가 주는 혼란 때문에 수구초심이 들 무렵이었다. 재작년(벌써 재작년이라니!) 계엄 직전, 만 50이 될 때 딱 마음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심리적 자아는 이제야 마흔을 갓 넘은 것 같은데, 이제 더는 청년이 아니라니. 그랬다가는 우파 청년들에게 ‘영 피프티’ 비아냥이나 듣게 된다니! 청년도 아니고 아직 노년도 아닌 이 묘한 연령 정체성은, 앞만 보고 달려온 무명 운동가에게 “이제는 한 번쯤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자기 혁신을 고민해 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바로 그때, 윤석열의 친위 무력 쿠데타와 동문 선후배들을 거의 동시에 만난 것이다. 수구초심이 마음속에서 번질 때, 내 운동의 초심이 담긴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다시 접속된 셈이다. 그래서 내란 저지와 청산 운동, 그리고 내 외민동에 대한 추억은 점차 겹쳐져 하나의 이야기처럼 엉겨 붙고 말았다. 계엄의 밤, 국회 앞에서 우리 과 재직이를 마주쳤을 때처럼.

그래서 가입도 자연스럽게 투쟁의 일환이 되고 말았다. 너무 긴박한 정세라 가입 신청을 잊고 있다가, 2월에야 홈페이지에 가입 신청을 했다. 그런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홈페이지 신청란은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마침 연세대에서 시작해 번져 가는 우파들의 대학 침투 공세와, 이를 막으려는 맞불 투쟁이 이어지던 때였다. 그 흐름 속에서 외민동의 기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입 완료 문자도, 연락도 없는 것이다. 아마 외민동 800명 시대에 “왜 제 가입 처리는 아직인가요?”라며 먼저 연락한 사람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나는 외민동 대부대가 극우로부터 모교를 사수하기 위해 몰려올 것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그 이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는 보자마자 매일 집회에서 부대끼는 사이가 되었고, 윤석열 탄핵 집회, 트럼프 반대 집회,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등 온갖 집회에 함께했다. 그러면서도 또 일상의 모임에서도 계속 뵙고 있다. 영 피프티지만 청년은 아닌, 그 묘한 좌절감은 수구초심으로 다시 찾은 외민동 안에서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섞여 버린 투쟁과 만남의 기억 속에서, 너무 많은 동문 선후배님들이 지치지 않는 열정과 지성의 모범이 되어 주셨다.

그렇게 겨우내 내 선망의 대상이었던 분들이 마음과 뜻을 모아 내게 활동가 응원상을 주셨다.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나를 적극 추천해 주신 인종훈 선배님이 나중에 말씀하셨다.

“자네 삶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라고.”

그렇게 여기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감사라기보다는 다짐이다. 삶의 자세에 대한.

🙋수상자: 홍윤희(영어과 92)

💭장애가 무의미한 세상을 향해, 함께 달립니다

영어과 92학번 홍윤희입니다. 장애가 무의미한 턱없는 세상을 만드는 사단법인 무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지원을 해주신 외민동 선후배 동기 여러분께 감사말씀 드립니다.

한자로 없을 무(無), 뜻 의(意)를 쓰는 무의’는 ‘장애를 무의미하게’라는 뜻입니다. 2024년 사단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장애인뿐 아니라 모두가 접근 가능하고 이동 가능한 ‘턱 없는 세상’이라는 슬로건으로 전환했습니다. 휠체어를 탄 딸이 지하철을 타고 싶다는 말에 2016년부터 만들게 된 지하철교통약자환승지도를 시작으로, 2025년부터는 이동약자 눈높이에 지하철 안내표지를 새로 디자인해 부착하는 ‘모두의 지하철’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턱을 없애기 위해 변호사, 건축사와 함께 하는 ‘모두의 1층’은 동네 가게에 경사로를 놓고, 확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로 이를 위해 자원을 모으고, 법제도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학교 내 휠체어 접근성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모모탐사대’ 활동도 2025년부터 시작했고, 장애여성 토크콘서트인 ‘걸즈온휠즈’를 통해 장애 당사자들의 심리적 턱을 허무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이동약자 비중은 전체 인구의 30%에 달합니다. 턱 없는 세상을 만드는 활동은 더 이상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정책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장애정책이 복지정책의 바운더리에서만 이해되는 대신 통합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사회분과에서 ‘산업 발전 위주의 AI정책’에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추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외대에서 사회과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노동권에 대한 의식을 갖추게 됐지만 일반 직장에 들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실제 펼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항상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갈급이 있었기에 글쓰기를 해왔습니다. 3년 가까이 글로벌 빅테크를 중심으로 자본이 어떻게 정치에 개입하고 기존 사회질서를 흔드는지, 기술 발전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는지에 대한 분석 글을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커피팟에 연재한 글 목록 https://coffeepot.me/library/?q=YToz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c6ImtleXdvcmQiO3M6MjY6Iu2CpO2LsOydmCDruYXthYztgawg7J296riwIjtzOjQ6InBhZ2UiO2k6Mjt9&page=1)

저는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목소리가 낮은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기에 무의 활동도 결국은 민주주의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달리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올 4월 (18일로 예상하고 있는) 배리어프리지향 마라톤인 ‘키움런’에 참여하셔서 휠체어, 유아차와 나란히 뛰는 경험을 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삶 속에서 장애가 무의미한 턱없는 세상 만들기에 함께 하시고 싶다면 무의 홈페이지를 둘러보시고 일상에서 우리 모두의 1층, 모두의 지하철을 함께 만드는 ‘무의 펠로우’가 되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휠체어를 타는 제 딸이 좀 더 친절하고 포용적인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 ‘제 딸 편’이 많아지기를 항상 갈망하고 있습니다. 외민동을 통해 그런 ‘제 딸 편’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든든하고 감격스럽니다. 소중한 지원에 다시 한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수상자: 나민석(정치외교학과 22)

💭든든한 선배 공동체, 이제는 제가 이어가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한국외대 민주동문회 따듯한 동행에서 올해의 활동가 응원상을 수상하게 된 서울캠퍼스제 제59대 총학생회장 정치외교학과 22학번 나민석 인사드립니다.

이와 같이 뜻 깊은 상을 수여해 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민주동문회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따듯한 동행이 있기까지 힘을 보태주신 수많은 동문 여러분과 집행부 동문들께 감사드립니다. 본 상은 개인에게의 응원을 넘어, 대학 공동체와 학생 사회를 향한 책임과 역할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의미 있는 격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총학생회장으로서 보내는 생활은 학생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대학이라는 공동체가 지켜야 할 민주적 가치와 절차를 실천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때로는 명분만을 보고 선택한 적도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책임 있는 선택이란 명분으로 실리를 좇다 본질을 잊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본 수상은 지난 날 후배가 저지른 수많은 실수를 따듯하게 응원해주시는 손길이자, 앞으로의 발전적 행보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 해의 여정 속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민주동문회가 보내주신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는 재학생과 총학생회에 큰 힘이 되어 왔습니다. 외민동은 참여하는 동문의 상징이고 실천하는 대학생들의 선배로서, 재학생들과 총학생회의 활동에 대해 꾸준한 애정과 실질적인 지원을 보내주며 든든한 선배 공동체의 역할을 수행해 주셨습니다. 이에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현재 본인에게는 2026년 4월 초까지 총학생회장으로서의 임기가 남아 있습니다. 남은 임기 또한 초심을 잃지 않고, 학생 사회의 대표자로서 맡은 바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며 무탈하게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대학 공동체의 민주성과 공공성을 지키는 데 있어 주어진 역할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 본 상에 대한 가장 올바른 응답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임기 종료 이후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민주동문회의 일원으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재학생과 학생 자치를 향한 연대의 흐름을 이어가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선배 세대의 관심과 지지가 오늘의 학생 사회를 지탱해 왔듯, 앞으로도 대학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책임 있는 동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귀중한 상을 수여해 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민주동문회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본 상의 의미를 항상 마음에 새기며, 현재의 책무와 이후의 역할 모두에 있어 부끄럽지 않은 구성원으로 남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투병 동문 생활비 지원 수상

🙋수상자: 전동중(일본어과 86)

💭동문들, 저 기억들, 고맙드시다

이번 투병 동문 생활비 지원 대상에 선정된 전동중 동문은 2019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지금까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잊지 않고 항상 챙겨주는 외민동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하며, 어렵게나마 직접 쓴 짧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동문들, 저 기억들, 고맙드시다, 감사합니다

삐뚤빼뚤 엉성해 보이는 글씨이지만, 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적기 위해 전동중 동문은 긴 시간을 들였습니다. 홀로 간병을 맡고 있는 연로한 어머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속 생활비 지원을 해주는 외민동에 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가끔 단체 대화방에 대게 구매에 대한 안내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셨을 거예요. 죽변 포구에서 좌판을 하는 어머님께서 직접 고른 싱싱한 대게를 쪄서 외민동 동문들에게 보내드리는 것으로, 많지는 않아도 외민동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어머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외민동 동문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전동중 동문이 더 크게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다시 힘을 내는 큰 버팀목이 될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편집자-

🙋수상자: 양윤경(신문방송학과 90)

💭두 번의 마음, 평생 잊지 못할 따뜻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애국외대민동 동문 여러분께,

저희 아내의 오랜 암 투병 과정 속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두 차례나 마음을 모아 후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쉽지 않은 시기를 지나며 지쳐갈 때마다 여러분이 보여주신 따뜻한 정성과 배려가 큰 힘이 되었고, 저희 가족에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은 단순한 금전적 후원을 넘어, 아내와 제가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다시 붙잡게 해 준 소중한 마음이었습니다. 보내주신 관심과 응원, 그리고 잊지 않고 또다시 손을 내밀어 주신 그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언젠가 저희가 받은 따뜻함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되돌려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모두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신방 90 양윤경의 남편

윤민석 배상

참여해주신 외민동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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