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팔레스타인 연대 투쟁기
나의 팔레스타인 해방 연대 일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침탈 2주년-
조수진
중학교 교사, 스페인어과 02
죽음으로 증명된 시대의 절규
할매가 죽었다. “애기들 좀 그만 쥑이씨요!(Stop Killing Children!)”하던 나의 엄마이자 할머니 ‘마시야마 덴중’ 씨가. 할매는 올해 7월 초까지 생명의 온기가 남아있었던, 호기심 많고 정이 넘치는 사랑스런 ‘만학도’였다. (‘마시야마 덴중’은 할머니가 일제강점기 야학에 다니실 때 사용하셨던 일본식 이름이다.)
“푸리.. 푸..푸..푸리푸리..팔레..파.. 파레스팅!”
할매는 더듬더듬 구호를 배워 외치고 휠체어 위에서 팻말을 펼쳐 들었다. 노래를 좋아했고, 주말에 서울 집회 가는 날을 좋아했다. 1929년 7월 21일 태어난 할매는 일본 제국주의 점령과 식민 지배를 직접 겪었다. 일본 노래를 흥얼거리고 ‘니꾸사꾸’(가방), ‘다마네기’(양파), ‘사요나라’(안녕) 같은 일본말을 섞어 썼다. 할매가 태어나고 20년쯤 후, 저 멀리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란 시온주의 나라가 들어섰다. 원래 살던 사람들의 땅을 빼앗고, 집을 부수고, 그들을 죽이고 80만 명을 내쫓으면서. 내 할머니 손귀례 씨보다도 나이가 어린, 77살 이스라엘은 1948년 나크바(Nakba, 아랍어로 ‘대재앙’)의 폭력과 피를 통해 만들어진 강탈 국가다.
가자(Gaza)에 사는 내 친구, 한국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친구들을 경애한다
내 친구는 팔레스타인 가자(Gaza)에 산다. 맞다. 2년 넘게 이스라엘이 인종 학살을 벌이고 있는 그곳.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 학교, 병원, 교회가 파괴되고 어린 아이와 여성을 포함해 최소 7만 명이 죽어간 땅. 이스라엘이 구호품 반입을 막아, 약이 없어 죽고 영양실조에 시달리다 굶어 죽는 곳. 그럼에도 굳건하게 불의에 저항해 온 불굴의 사람들이 있는 곳. 국제적 연대가 절실한 그 땅, 팔레스타인에 내 친구 라자(Rajaa)가 살고 있다.
라자의 조카 살레흐(Saleh)는 한국에 산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학생들에게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들려준 일을 계기로 친구가 됐다. 마리얌(Mariam), 나리만(Nareman), 나심(Naseem), 룰라(Rula)…. 수많은 재한 팔레스타인인 친구들이, 고국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한국의 거리에서, 대학과 중·고등학교에서, 그리고 일터와 노동조합에서 시온주의의 민낯과 학살의 진실을 알리고 있다. 머지않은 옛날, 나의 ‘마시야마 덴중’ 씨가 손귀례 씨가 될 수 없었던 시절에 타국 땅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한 조선 투사들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가.
그러니 팔레스타인 친구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경애의 마음이 먼저 든다. 이들의 열정과 에너지, 긍정, 헌신, 예의, 창의, 그리고 불굴의 투지. 팔레스타인인들은 마음 안에 불꽃이 일고 솟게 만든다. 그토록 많은 죽음을 겪은 얼굴들에 역설적이게도 삶과 희망이 선명하다.
2023년 10월 7일은 나의 “관점”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Victory to Palestine!
나의 팔레스타인인 친구들은 그날, “너무나 통쾌했다”고 한다. 막힌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다고.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 7일을 ‘하마스’에 의한 ‘테러’라고 명명한다. 미국 등 서구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주요 언론들의 시선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내 팔레스타인인 친구들은, 하마스와 일련의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들이 이스라엘의 봉쇄 장벽을 부수고 빼앗긴 팔레스타인 땅에 마침내 발을 내디딘 순간, 담쟁이가 벽을 타고 넘듯 장벽을 넘는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집과 과수원 땅을 빼앗기고,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곳곳의 검문소를 통과하며 겪었던 의도된 모욕, 이등 시민은 고사하고 인간 이하 ‘짐승’ 취급을 받으며 억압과 차별을 견뎌야 했던 치욕의 나날들, 수십 년의 봉쇄로 경제가 파탄 나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던 비참함, 그 모든 것들이 비로소 조금, 아주 조금 뚫리는 느낌이었으리라. 오랫동안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가 회심의 한방을 가해자에게 날렸을 때처럼.
그렇기에 내 팔레스타인인 친구들에게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행위는, ‘테러’가 아니다. 1948년 이래 무려 77년이나 지속된 시온주의자들의 강탈과 인종 학살에 맞선 정당한 무장저항의 일부이고, 민족해방 운동의 한 표현이다. 일제에 항의해 총을 들고 무장저항을 이끈 이육사 시인과 홍범도 장군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눈에 ‘테러리스트’로 매도될지라도, 조선 민중에게는 독립운동 투사이듯,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무장저항 세력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무기를 들고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독립운동 투사들이다. Victory to Palestine!
시계 바늘을 1948년 나크바 이전, 19세기 말로 돌린 일란 파페(Ilan Pappe)
: 시온주의가 뭣이여? 정착자 식민주의는 또 뭣이고? 인종청소는 또 뭣이당가?
내 팔레스타인인 친구들의 부모도, 그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스라엘 건국 이후 고통이 시작됐다. 무려 77년이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을 발명한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도착한 것은 1948년 이전, 즉 (울 할매가 태어나기 훨씬 전!)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온주의는 ‘오로지 유대인들로만 이루어진 배타적인 인종차별 국가를 만들겠다’는 사상인데, 정착자 식민주의를 추구한다. 원래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쓸어버린 땅에 불법 정착촌을 짓고 사는 것이다. 원주민은 이들에게 걸림돌이므로 “제거” 논리가 작동한다. 정착자 식민주의는 인종청소(Ethnic Cleansing)와 필연적으로 한몸이다. 시온주의자들의 잔학행위는 잠잠할 때조차도 인종분리(아파르트헤이트)였고, 극단으로 치달을 때는 인종학살 양상을 띠었다. 100년을 훌쩍 넘도록 시온주의는 거듭 극악무도한 인종학살로 치닫고 있다.
인종학살을 두고 볼 수 없다! 팔레스타인 역사 ‘덕질’을 하게 된 나
맹세컨대, 나는 역사 ‘덕후’가 전혀, 아니다. 그런 내가 ‘덕질’을 하는 역사학자 일란 파페(Ilan Pappe)는 이스라엘 출신 유대인이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라는 책을 썼고 핵심을 아주 쉽게 잘 설명한다. 이 책에서 파페는 시온주의를 유럽에서 온 “수입품”이라 규정하고, 이 악랄한 수입품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청소 의도를 드러낸 출발점을 1882년으로 옮긴다. 1882년에 젊은 시온주의 유대인들 한 무리가 팔레스타인으로 향했고, 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유대인 박애주의자와 기업가들이 제공한 돈으로 부재지주들(팔레스타인 바깥에 사는 부유층들)로부터 땅을 사들이며 정착했다.
부재지주들은 팔레스타인에 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팔레스타인이 “사람 없는 텅빈 땅”이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팔레스타인인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한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Golda Meir)는 “웁스(Oops)~” 당혹스럽겠지만. 조선 민중이 3.1운동하던 1919년에 이미 팔레스타인 아랍회의(Palestine Arab Congress)라는 깃발 아래 팔레스타인 민족운동이 있었고, 기독교인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뭣이라? 무슬림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그렇다. 이 분쟁은 항간의 오해처럼 무슬림과 유대인 간에 벌어진 ‘종교’ 분쟁이 아니다. 시온주의가 당도하기 전 수백 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살아온 소수 유대인 집단들은 무슬림 공동체와 평화롭게 살았다. 문제는 유대인이 아니라, 시온주의다.
잠깐! 시온주의는 전체 유대인을 대변하지 않는다
이 분쟁은 시온주의라는 정치적 발명품과 이를 이용해 온 서방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해방 세력 간의 쟁투다. 이스라엘 바깥의 많은 유대인들은 시온주의를 비판한다. 정의와 양심에 따라 활동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에서 쫓겨난 유대인 역사학자 일란 파페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 살고 있는 홀로코스트 학살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에 반대하고,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연대한다. 그러므로 ‘인종학살의 피해자가 어떻게 가해자가 되었나’하는 식의 비판은 위험하다. 팔레스타인인들에 연대하는 유대인들을 시온주의자들과 구별해서 보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홀로코스트 학살 피해자를 대변하고, 전체 유대인을 대변하는 척하는 시온주의 논리에 포섭되기 쉽다. 유대인들과 시온주의자는 결코 한몸이 아니다. 유대인들도 시온주의에 맞서 팔레스타인인들과 함께 이스라엘에 항의한다.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역 이용한 시온주의, 기독교 시온주의 vs 유대 시온주의
시온주의자들은 원래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였다. 유대인들로만 구성된 나라를 만들겠다는 황당무계한 구상이 다수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았던 게 아니다. 애초 시온주의자들은 유대 국가를 아프리카 우간다에 세울지 남미 아르헨티나에 세울지 저울질하다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으로 밀고 들어왔다. 역설적이게도, 유럽의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을 노골적으로 혐오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결코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땅을 “미국과 영국, 유럽의 유대인들을 내다버리는 처리장으로 보았다.” 그리고 “오스만제국의 손아귀에서 빼앗기 위해 종교적 구실로 유대인을 동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 기독교 시온주의(오늘날의 기독교 근본주의)와 구별되는 유대 시온주의자들이 움직인 주요 동기는 “동유럽과 중유럽에서 등장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집단 학살까지 이어진, 폭력적인 반유대주의에 대한 대응”이었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좌절한 유대인들을 시온주의가 이용했다.
팔레스타인 비극의 원흉 영국, 가자 학살 공범 미국
영국, 미국 같은 서구 열강들은 책임이 크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비극의 원흉이자 공범이다. 영국 정부는 1917년 (그 유명한!) 밸푸어 선언을 한다. 영국 외무 장관 아서 밸푸어, 동유럽 유대인들의 영국 입국을 막으려고 이민 규제법을 밀어붙인 역겨운 자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의 조국’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시온주의자들에게 약속한다. 아랍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을 독립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진짜 뒤통수는 따로 있다. 양측과 ‘이중 계약’을 맺어 놓고, 영국은 프랑스와 중동 땅을 어떻게 나눠 가지고 재편할지에 대한 이면 합의까지 한다. 그러니까 뚜껑 열어보니 ‘이중 계약’이요, 껍질 벗기니 ‘삼중 계약’인 희대의 ‘전세사기극’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집주인도 아닌 자가 벌인!
시온주의자들의 든든한 뒷배 노릇을 하던 영국 제국주의가 쇠퇴하고, 세계 패권 강국으로 미국이 떠오르자 시온주의자들은 미국을 부여잡는다. 미국은 중동에서 확실한 경비견을 하나 두어야 할 전략적 필요에 따라 이스라엘을 군사·경제적으로 지원해왔다. 시온주의자들은 미국이 쥐어준 돈과 무기로 이스라엘 최첨단 산업을 발달시키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고 내쫓는 포탄과 총알을 마구 쏟아부을 수 있었다. 국제법을 수시 위반하며 학살을 저지르고, 휴전안을 휴지조각처럼 내팽개치는데도 처벌은커녕 그 어떤 제재를 당하지 않으면서. 아휴, 킹받는다!
♪연대의 깃발을 올려라!~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를!
2025년 1월, 나는 한국외대 민주동문회에 가입했다. 여타 동문 모임과 달리 실천으로 연결된 살아있는 네트워크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다. 윤석열 퇴진 촛불 광장에서, 극우에 맞선 외대 앞 항의 행동에서 외민동 선후배님들은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 일에 당차고 대차게 뛰어들었다. 그 점이 무척 감명 깊었다.
외민동에는 팔레스타인인들과 따듯한 동행과 연대를 실천하는 동문들이 많다. 제1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김남일 작가님(네덜란드어과 76)은 갓산 카나파니, 아다니아 쉬블리 같은 팔레스타인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팔레스타인 문학을 꾸준히 알려온 귀한 분이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하 ‘팔연사’)이 주최한 강연에서 김 작가님이 진행한 “소설로 보는 팔레스타인 근현대사”를 들었는데 매우 깊이가 있고 감동적이었다. 꼭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팔연사는 매주 토요일 서울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를 주최한다. 이 집회와 행진을 준비하고, 알리고, 참여하고, 글을 쓰고, 영상을 편집하고, 통역이나 향도를 맡아 삶의 일부를 팔레스타인 연대에 흔쾌히 내어놓는 민주 동문들의 모습을 보면 물컹한 감동이 밀려온다. 외민동 동문들과 팔레스타인 연대 집중 집회에 같이 참가하고 행진한 기억이 생생하다. 70년대 학번부터 2000년대 이후 학번까지 수십 년을 아울러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학교 캠퍼스는 물론 일터, 노동조합, 모임 등으로 재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초청해 진실을 알리고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아내는 일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나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교사들’ 공동운영진으로 활동 중인데, 집회 참가 외에도 학생들에게 팔레스타인 계기수업을 하고, 재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교로 초청해 특강을 열기도 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인천 평화 축제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올해는 재한 팔레스타인인 마리얌 씨가 가자지구 전통음식인 마프툴(Maftoul) 40인분을 만들어 지역 시민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중동 향신료가 입안 가득 퍼지는 경이로운 맛이었다. (내 친구 마리얌은 복잡한 음식도 쉽게 뚝딱 만드는 가자 출신 ‘요리사’였다!) 이건 말과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맛이라 일단 먹어봐야 안다. 기회가 되면 외민동 회원들과도 마프툴 음식을 함께 만들어 나누고 싶다. ‘일일 요리 교실’ 같은 걸 열어 팔레스타인 음식을 나누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류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마을과 지역, 노동조합 등 모임에서 ‘가자의 요리사’ 마리얌을 부르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주시길!
가자 학살 2년이 넘었다. 이스라엘의 폭격과 총격은 물론, 강제된 굶주림과 감염병으로 죽임을 당하고 내쫓기는 상황에 몰린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우리 외민동 회원들이 따듯한 연대의 손을 내밀고 함께 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 다가오는 11월 29일 토요일 오후 2시,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호소에 화답하는 국제 연대 운동의 일부가 되기 위해 팔연사는 팔레스타인 연대 국제 공동행동의 날 집회를 개최한다. 이탈리아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를 주요 슬로건으로 내건 파업이 몇 차례 진행되고 수백만 명이 참여했다. 그 여파로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파업을 벌였고, 영국에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뉴욕에서는 무슬림이자 팔레스타인 운동을 지지하는 조란 맘다니가 당선돼 학살 공범 도널드 트럼프를 통쾌한 한방을 먹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 흐름에 함께 하자. ♪투쟁으로 다시 서는 나의 사랑 외대(동문이)여!~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를!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 (요르단 강에서 지중해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
☞ 재한 팔레스타인인 초청 특강 또는 재한 팔레스타인인과 함께 하는 일일 요리 교실 등 팔레스타인 연대 프로그램 운영 문의: 010-3629-7256( 스페인어과 02 조수진 )
<추천 사이트>
김남일 작가의 “소설로 보는 팔레스타인 근현대사”
https://palestine-solidarity.or.kr/p/18754
한국어로 만나는 팔레스타인 문학작품들
https://palestine-solidarity.or.kr/p/18392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예술
https://palestine-solidarity.or.kr/p/category/palestine-resistance-and-art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주최 집회 및 행사 소식
https://palestine-solidarity.or.kr/
팔레스타인 교육 수업 자료 모음
https://padlet.com/freepalestineteachers/teachers-in-solidarity-with-palestinians-4ai0qm1q9nlyyw7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