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예하지 마을 지달구 축제 참가 후기

공주 예하지 마을 지달구 축제 참가 후기

공주 예하지 마을 지달구 축제 참가 후기

-예하지 마을에서 다시 만난 우리의 가을

Picture of 박종호

박종호

스페인어과 85

<행사 개요>

날짜: 2025년 11월 1일(토)

장소: 충남 공주시 의당면 두만리

참가: 김복남(스페인어과 83)과 지인 10명, 이중원(무역학과 83)과 지인 3명, 남일(법학과 84), 공기호(아랍어과 85), 박종호(스페인어과 85)와 아내, 이선민(신문방송학과 85), 이수진(신문방송학과 85), 이재우(경영학과 85)와 아내, 장은영(아랍어과 85), 함칠성(법학과 85), 임은영(영어과 86), 정석원(터키어과 89), 그 외 마을 주민들과 G-밸리에서 오신 여러분 (표기 순서는 학번 및 가나다순)

“그냥 가볍게 다녀오자”던 마음이 흔들린 순간

지난 7월 외민동 85학번 모임에서 이재우 군이 동기회장으로 추대됐다.

그 며칠 뒤 그가 감사 표시로 동기들에게 술 한 잔 산다며 번개를 때렸는데, 그 술자리에서 “올 가을 우리 고향 마을 축제에 동기들과 외민동 회원 여러분을 초대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릴 적 봤던 마을 잔치 같은 것이겠지, 날 좋은 가을 어느 주말에 바람도 쐴 겸 친구 고향 마을 잔치판에 껴서 음식 좀 얻어먹고 놀멍쉴멍 빈둥대다 오면 되겠지 했을 뿐.

그러나 현지에서 체험한 바, 큰 행사는 아니었지만 가벼이 허투루 보아 넘길 일이 아니었고, 나이 탓인지 몰라도 어릴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고요한 산자락 속 둠안이’, 그릇 안 같은 마을 예하지

이 마을에 대한 설명부터 하자면, 첫째로 산과 산으로 둘러싸인 제법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는 점이다. 차를 타고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강원도 어느 산골 마을을 찾아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마을의 옛 이름이 ‘둠안이’였다고 한다. 마을이 커다란 그릇 안에 자리 잡은 것 같다고 해서 붙인 고유어인데, 지금은 ‘두만리’라는 한자어로 바꿔 부른다고 한다.

이 마을엔 ‘예하지’라는 이름도 있는데, 무지개와 노을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인 일종의 예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노을과 무지개는 언제 어디서든 대체로 예쁘고 아름답지 않나? ㅋ

김장 김치와 수육, 그리고 처음 만져본추억의 농사 도구

마을 이름은 그렇다 치고, 이날 행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마을 중앙 공터에서 주민과 손님 100여 명이 의자에 빙 둘러앉아 축제 개회식을 하고 마을 입구 장승 옆에 솟대를 세워 그 앞에서 고사부터 지냈다.

그러고는 마을회관 1층에서 주민들과 함께 김장 담그기 체험도 하고 2층에서는 갓 담근 김장김치와 돼지 수육, 부드럽고 쫄깃한 떡국으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이제 배도 부르고 하니 본격적인 축제를 시작해야겠지?

마을 경로당 앞 널찍한 열린 마당 한가운데 홀태와 수동식 탈곡기가 눈에 들어왔다.

홀태라는 것은 처음 본 듯한데, 큰 톱을 톱날들이 위로 가도록 세워 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톱날들이 무지무지 길다는 점이 다른 점이라고나 할까? 그 틈새에 잘 익은 벼 몇 가닥을 끼워 넣고 주욱 당기면 낱알이 투루룩 떨어지는 구조였다.

‘호롱기’라고도 부르는 수동식 탈곡기가 재미있었다. 풍금 발판을 밟듯 한 발로 발판을 버걱버걱 밟아주면 두꺼운 철사를 세모꼴로 구부려 한 줄에 열댓 개씩 모두 열댓 줄에 걸쳐 촘촘하고 가지런히 박은 둥근 나무통이 쉭쉭 돌아가고, 그 위에 나락 한 움큼을 주루룩 펼치듯 올려주면 우리 농민들의 소중한 땀의 결실이 투두둑 후두둑 떨어져 쌓이는데, 그 모습과 손맛이 좋았다.

공무원이었던 부친의 근무지 때문에 중고교 시절 약 4년간 고양군(현 고양시) 농촌 마을에 살면서 종로와 신촌까지 장거리 통학을 했었고, 마을 주민들이 이 탈곡기로 이삭 터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본 기억은 있으나, 나이 육십이 되어서야 처음 돌려 본 것이다.

곧이어 이삭을 털어 낸 나락들을 가지고 철퍼덕 주저앉아 새끼를 꼬고, 정해진 시간에 가장 길게 꼰 3명에게는 주최 측이 그날 담근 김치를 선물하기도 했는데, 내 아내가 3등을 하는 바람에 좀 뜬금없긴 했다. ㅋ

이 물건들은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외민동 참가자들은 주민들을 따라 홀태와 탈곡기로 서툴게 이삭을 털어내고 새끼줄을 꼬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과 힘들지만 살갑고 정겨운 농촌 생활을 새삼 느끼고 즐기는 표정들이었다.

단결해야 살 수 있다! 온몸으로 배운 국가 지정 두레

또 하나 인상적인 순서는 ‘집터 다지기’였다. 집짓기 전 땅을 다지기 위해 큰 돌에 사방으로 밧줄 수십 개를 묶고 빙 둘러서서 한 줄씩 잡고 ‘지달~구’ 후렴구에 맞춰 힘껏 들어 올렸다가 다시 힘껏 땅에 떨어뜨리는 전통적인 협동(두레) 작업인데, 국가가 지정한 민속문화재라고 한다.

수십 명이 빙 둘러서서 하나의 호흡으로 동일한 대상에 집중해 똑같은 목표를 이루려는 모습 자체가 아름다웠다. 우리 외민동 회원들도 구동존이와 대동단결의 기풍을 잃지 말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오래도록 의미 있는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

산속 마을을 흔든 노랫가락, 그리고 월드클래스 공기호 군의 무대

마지막으로, 축하 무대를 빼놓으면 섭하다. 무명 향토 가수의 트로트 몇 곡에 이어 웬만한 가수 뺨치게 노래를 불러 젖히는 G-밸리(옛 구로공단. 정식 명칭은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의 어느 여성이 좌중의 흥을 돋우더니, 마침내 우리 외민동이 낳은 월드클래스 가수 공기호 군의 멋들어진 노랫가락이 첩첩산중 속 작은 마을의 맑은 하늘 위로 허위허위 춤을 추며 날아올랐다!

돌아가며 떡메 쳐서 인절미 만들어 나눠 먹기, 이동식 화로에 밤과 고구마 구워 먹기, 수정과 마시기 등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작지만 정성 가득한 축제, 그리고 이재우 동문의 고향 사랑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이름의 축제를 열고 있고 어디든 규모도 제법 큰 데 비하면 지달구 축제는 일단 소박했다. 30여 가구 작은 산골 마을의 행사인데 더 클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축제에 기울인 노력은 어느 축제에도 뒤지지 않아 보인다.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도 많은 애를 쓰셨겠지만, 여기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G-밸리 경영자협의회장까지 맡아 금의환향한 우리 외민동의 뚝심가 이재우 동문의 깊은 고향 사랑과 노력, 기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워낙 겸손한 성격이라서 스스로 구체적인 설명까지 내놓진 않지만, 한마디로 그가 없었다면 이 축제도 없었다고 할 만큼 그의 존재감은 막강하다.

내년을 기약하며

이 축제는 그가 협의회장으로 선출된 작년 ‘정기적 도농교류’를 내걸고 시작되어 올해 두 번째밖에 안 되었다. 작년에도 참가했던 신방과 이 모 동기의 말에 따르면, 그땐 처음이라서 그런지 좀 엉성해 보였으나 이번엔 짜임새도 좋고 참여형이어서 좋았다고 하니, 내년에도 10월 말이나 11월 초 토요일로 예정된 제3회 지달구 축제에 많은 동문들의 참여를 바란다.

(참고로, 숙식과 교통비는 무료라고 보면 된다. 단, 내년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재우야, 돈 많이 벌어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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