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으로 다시 서는 나의 사랑 외민동
무역학과 96
기억은 노래처럼 시작된다
학창시절 목청 터지게 불렀던 노래가 있다. 이름하여 <나의 사랑 외대여>. 노래의 시작은 이렇다.
“달려 나가자, 우리 주인 되는 이 길! 벅찬 가슴, 힘차게 나가자! 우리 가는 이 길 험해도, 조국 해방의 몸짓이라면, 너와 나 굳게 잡은 손. 학원자주 투쟁으로~”
90년대 중후반 학생회 주최 모든 행사는 이 노래로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외대사랑’이 몸에 배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캠퍼스를 떠난 지도 20년이 지났다(대선배님들에 비하면…^^;). 서울에 살 때는 한 번씩 들렀던 교정이지만, 서울을 떠나온 뒤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무역학과 95학번 정연호 형과 점심 약속이 있어, 행사 시작 전 조금 일찍 도착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학창시절 청춘들이 즐겨 찾는 잡지에 소개될 만큼 유명했던 ***부대찌개에서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맛이 예전 같지 않아 남겼다. 내 입맛이 변한 거겠지? 그룹사운드 ‘봄여름가을겨울’ 형님들의 명곡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가 떠올랐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교정, 그리고 동지들
차 한 잔을 마시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무역학과 93학번 김창수 형을 만났다. 포어과 94학번 차재훈 형도 만났다. 무역학과 90학번 양봉열 형도 이내 만났다. ‘홈커밍데이’ 행사 당시 민동 회원이 아니었던 정연호 형은 인사만 하고 돌아갔다. 며칠 뒤 정연호 형도 회원 가입을 했다.
행사가 열리는 사이버관 3층으로 올라갔다. 집행부에서 폴라로이드 사진, 포토존, 명찰 등을 정성스럽게 준비한 모습을 보며 울컥했다.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무임승차’를 해도 되는 건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딱 떠오른 말이 ‘나의 사랑 외민동’이었다.
행사 시작까지 30여 분 정도 시간이 남았고, 최재직 형이 행사장 입구에서 <외민동가> 연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아 한국외대 민주동문회~ 하늘빛 깃발 아래 모인 우리.”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의 사랑 외대여> 다음으로 가장 많이 부를 노래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잠시 후 행사장 앞으로 재학생 후배들이 왔다. 지난 여름 순창으로 농활을 왔던 총학생회장 나민석 후배를 비롯한 많은 후배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후배들과 3박 4일 농활을 함께하기 위해 며칠 동안 회의하고 온라인으로 소통했던 누적된 시간 덕분에,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반가웠다. 머지않아 겨울농활을 오기로 약속했다.
외대사랑, 조국사랑으로 하나 되는 시간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었다. 유일무이한 96학번 동기 유복재가 사회를 맡았다. 유복재는 예로부터 천재 마케팅팀장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센스’가 있는 친구다. 서로의 군복무 기간이 달라 학창시절 함께 활동한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졸업 후 ‘청년동문회’ 시절부터 줄곧 함께한 동지다. ‘청년동문회’는 학번별 동문모임이 민주동문회로 통합되기 전, 90년대 초반 학번부터 2000년대 학번 동문들이 활동했던 단체다. ‘외대사랑, 조국사랑의 든든한 벗’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2025 홈커밍데이의 ‘기조’는 “No Trump! 경제수탈 거부한다!”, “경제주권, 민족주권 지켜내자!”였다. 역시 민주동문회다운 기조였다.
우리 외민동의 구성은 70년대 학번부터 2020년대 학번까지 거의 70년 세월의 격차가 있지만, 외대를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전국 최강의 민주동문회임이 분명하다. 백자 형이 공연하면서 다른 민동에서 “외대민동은 어떻게 그렇게 잘 모이냐?”고 물었다고 했다. 농담으로 “그동안 하도 안 모여서 그렇다”라고 답했다지만, 그야말로 농담일 뿐이다. 시대의 요구에 한국외대 출신 민주동문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대던 정의감이 폭발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상으로 본 지난 2월 “외대에 극우가 설 자리는 없다” <한국외대 긴급행동>, 내란 세력의 모교 침탈을 저지하는 동문들의 투쟁은 외대 동문임을 자랑스럽게 해주는 투쟁이었다. “어디 감히 신성한 한국외대의 교정을 더럽히려고!” 지방에 있어 참석하지 못한 나의 마음을 위로해준 것에 깊이 감사드린다.
운동장 위에서 다시 하나가 되다
실내 행사를 마치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농민가’에 맞춰 율동도 하고, 눈에 불을 켜고 피구도 하고, 이어달리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닭싸움이었다. 출전한 선배님들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만 같았다. 나도 백만 년 만에 하는 닭싸움이라 긴장했지만, 다행히 제 풀에 꺾여 넘어진 것 말고는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또 농촌에 살면서 항상 부르는 게 ‘농민가’인데, 재미난 율동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중에 이경우 형께 전수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운동장 한쪽에 설치된 천막 아래, 순창에서 가져간 쌀, 버섯, 요거트, 누룽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운동회 상품으로 준비해간 것이다. 사무국장 남일 형께서 구매 금액이 적다고 미안해하셨는데,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다.
순창에서 후배들 농활을 수행할 수 있게 농민회가 지원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농활을 들어갔던 마을 주민들이 학생들로 인해 즐겁고 잠시나마 마을에 활기가 넘쳐서 좋았다고 한다. 올겨울 ‘겨울농활’을 통해 내년 농활을 미리 준비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홈커밍데이 행사를 다녀온 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벌써 2026년 홈커밍데이가 기다려진다. 만나면 좋은 친구가 문화방송만은 아니다. 함께 투쟁하고, 함께 밥 먹고, 함께 땀 흘리는 외민동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 나의 사랑 외민동. 100년 조직으로 함께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