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남부지회장 법학과 82학번
두 달 전 외민동 영남남부지회장을 맡게 되었다. 능력도 안 되면서 감히 지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과거 학창시절 후배들의 투쟁에 적극 동참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군복무를 마친 늦깎이 대학생인데다 경제적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조용히 공부만 하겠다고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젊은 순수한 열정으로 민주화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투쟁하는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시선만 보낼 뿐, 밥 한 끼는커녕 따뜻한 말 한 마디도 못한 채 대학생활을 마쳤던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영남남부 지역의 역사적 의미
또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 4·19와 10·26 등 역사의 고비마다 민주화의 최선봉이었던 부산·울산·경남지역의 명예회복을 바라는 욕심 때문이다.
1979년 가을 부마항쟁 시기를 떠올려본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나도 하루도 빠짐없이 교복을 입은 채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시민과 대학생들을 따라 다니면서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이 지역은 그런 곳이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열망이 가장 뜨겁게 타오른 땅이었다.
외민동 정신의 확산을 꿈꾸며
또한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에 치중했던 외대인과 외민동의 순수한 열정과 뛰어난 역량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와 전 인류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30여 년 법조생활 중 20년 이상을 해외 비즈니스에 쏟아 부었다. 명성이나 돈벌이는커녕 ‘허황된 꿈에 사로잡힌 비현실적 인간’이라는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러나 어쩌랴, 하고 싶은 일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스럽고 미련 맞은 내 성격을 탓할 수밖에…. 어찌 보면, 이런 고집스럽고 미련 맞은 삶의 태도는 외대의 학풍과 외민동의 기질을 닮은 것 같다. 심야에 비상계엄발표를 듣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하여 가족들이 말릴 틈도 없이 여의도로 달려 나가 맨몸으로 중무장 군인들의 국회 진입을 저지시킨 무모함처럼…
현재 나는 유엔 5사무국 부산유치 시민연합의 사무총장을 맡아 유엔 5사무국 부산(정확히 말하면 부산·울산·경남)유치를 위한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역시 “세계 속의 외대”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인구의 60%가 살고, 세계적 분쟁의 대부분이 발생하는 아시아에는 유엔 지역사무국이 없는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고, 우리 지역이 그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겠는가.
미네르바의 정기를 이어받아
모교를 떠난 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미네르바 동산에서의 추억(비록 술판이 대부분이었지만)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미네르바는 바로 전쟁의 여신, 지혜의 여신이 아닌가? 외대인과 외민동의 뜨거운 애국심과 민주화를 향한 투쟁력은 미네르바의 정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외대인으로서 외민동의 일원인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
이 모든 것은 젊은 시절 우리 모두 수없이 외쳤던 “애국 외대”, “세계 속의 외대”가 어느덧 우리의 가슴과 뇌리에 삶의 지표로 각인되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영남남부지회, 더 큰 꿈을 향해
영남남부지회는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과거 이 지역이 보여준 민주화 투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외민동의 이상을 지역에서부터 실현해 나가고자 한다.
부산·울산·경남 지역 외대인들이 하나로 뭉쳐 지역사회는 물론 나아가 전 세계를 향한 더 큰 꿈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있게 외치고 싶다.
외민동이여, Be ambitio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