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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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

사진작가, 신문방송학과 85

구와바라 시세이 ⓒ최인숙

일본 포토저널리스트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 인생을 조명한 포토멘터리 〈사진의 얼굴〉(고희영 감독)이 개봉에 앞서 시사회와 사진전을 연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아흔의 사진가가 60년 동안 10만 컷이 넘는 사진으로 기록해 온 남북한 현대사를 보며, 한 사람의 삶을 통해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오래 생각했다.

1964년부터 찍은 사진과 영화 속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낙후된 환경에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던 청계천 주민들의 삶, 한일수교 반대 시위, 베트남 파병, 동두천 기지촌 여성들, 성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묻힌 사람들,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격렬한 현장까지. 한국인으로서는 들추기 부끄럽고 아픈 장면들이었다. 그는 이런 한국을 찍는다는 이유로 원색적인 욕설을 들었고, 남한에서는 국외 추방을, 북한에서는 입국 금지를 당했다. 그래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았다.

청계천 사진전에서 본 인터뷰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말은 “건물들이 가난한 것이지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아니다”였다. 그가 기록한 것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판잣집과 하수도, 좁은 골목에서도 살아가던 사람들의 얼굴과 일상이었다. 그래서 그의 청계천 사진을 지금 다시 보는 일은 옛 서울을 구경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한 장의 사진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기억이 되고 역사가 되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일이다. 영화의 감동과는 또 다른, 사진만의 감동이 거기 있었다.

“사진은 기록이다.” 사진을 오래 해온 사람에게는 너무 많이 들어 평범해진 이 말이, 아흔이 된 구와바라 시세이의 손에 여전히 들려 있는 카메라를 보자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는 전시장에서도 시사회장에서도 직접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은 한 사진가가 평생 사진에 바친 시간을 짐작하게 했고, 동시에 ‘나는 기록자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늘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사진가는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AI의 등장으로 현장 기록사진의 중요성이 사진계에서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 시간, 그 공간에서만 만들 수 있는 기록사진과 현장 다큐멘터리의 가치가 스마트폰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새삼 빛을 낸다. 사진은 찍는 순간에는 현재지만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적·공적 기록의 매체다. ‘AI 시대는 사진의 위기인가, 진실의 기회인가.’ 구와바라 시세이를 통해 이 질문을 곱씹으며 사진가로서의 나를 다시 돌아본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은 9월 2일 개봉했다. 사진전은 서울 씨네큐브와 용산 CGV 7층 로비에서 8월 19일부터 9월 8일까지 열렸고, 김영섭사진화랑에서 청계천 사진전으로 8월 27일부터 9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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