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서울 도심을 가른 두 개의 집회
— 광복절 좌우 집회 참관기
김문성
스페인어과 93
1. 극우 집회장을 돌다가, 하늘색 깃발을 만나다
주기적으로 극우 집회에 가서 관찰하는 편인데, 올해 광복절도 광화문 우파 연합 집회에 들렀다. 전국 결집 집회였다. 귀가 썩는 기분으로 극우 집회장을 돌아다니다가, 자주평화대행진 행진 대열이 을지로로 들어서는 순간에 맞춰 이동했다. 힘찬 투쟁 가요가 울려 퍼지고 한미동맹과 미국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는 대오가 어찌나 반갑던지. 행진 대열을 쭉 지켜보고 있으니 하늘색 외민동 깃발 아래 한일 연대 현수막과 작은 깃발들을 흔들며 걸어오는 선후배님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역시나!

2. 광복절은 왜 다시 쟁점이 되었나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이 공식 종료된 8월 15일 광복절은 한국의 반제국주의 운동사에서 상징적인 날이다. 그러나 해방은 그 자체로 독립이 되지는 못했다. 머지않아 한반도 남쪽에는 지금까지도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또 다른 제국주의 군대가 점령군으로 진주한다. (한반도 북부가 소련군에 의한 점령인지 해방인지는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과거 회고가 아니다. 광복의 불완전함이 오늘날 다시 첨예한 좌우 대결의 쟁점이 돼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한국의 주류 우파는 광복절을 좌우 통합적인 민족적 경사로 마지못해 인정해 왔다. 그러나 지금 극우는 이런 타협조차 거북스러워한다. 이른바 건국절 논란은 최근의 5·18 민주항쟁과 전두환 정권에 대한 재평가 기도와 함께 한국판 ‘역사 부정’ 행태다. 국가주의, 배타적 국수주의, 친제국주의, 자본주의 찬양에 바탕한 한국 현대사 다시 쓰기다.
이런 극우화 현상에 불을 지른 것이 윤석열의 친위 군사 쿠데타 미수 사태였다. 요즘 극우가 내세우는 친미와 반중·혐중, 좌파 싹쓸이, 부정선거론(선거민주주의 불복) 등이 비상계엄 선포 명분에 모두 담겨 있었다. 극우의 주류화는 한국이 처한 안보 위기 앞에서 범우파 세력이 극단적 해법으로 쏠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극우는 그동안 좌파와 중도의 것으로 간주돼 온 역사적 상징들을 가로채려 한다. 극우는 연중 가장 큰 집회를 3·1절과 광복절에 연다. 부정선거에 맞선 4·19 혁명을 자신들의 전통이라고 떠든다. 선관위의 선거 부실 사태를 두고는 좌우를 넘어선 모두의 참정권 문제라는 수사를 동원하며 포퓰리즘적 노련함까지 드러낸다.
3. 서로를 보완한 두 곳의 극우 집회
올해도 좌우 모두 광복절 집회를 열었다. 국제적으로는 이란 침공 전쟁 실패 이후 미국 패권 질서의 약화가 두드러지는 때였고, 국내적으로는 지방선거 이후 이재명 정부의 정치 위기가 극심한 여권 내분과 지지율 하락으로 표현되는 때였다.
올림픽공원과 광화문 네거리 세종대로에서 열린 극우 집회는 서로를 보완하는 집회였다. 두 곳에서 이재명 정부의 위기로 극우 인사들의 사기가 고무되고 있고, 이들이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으려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의힘 장동혁 지도부는 현역 의원 20명과 원외 당협위원장 수십 명을 이끌고 올림픽공원 집회에 참가했다. 광화문 집회는 장동혁 지도부와 연대해 이재명 정부 퇴진을 위해 우파가 총단결하자고 호소했다. 극우 셀럽 전한길은 “노란봉투법이 경제를 망친다”거나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구호로 호응을 얻었다.
4. 빗속의 행진, 도심을 마냥 내주지 않았다
자주평화대행진 집회는 한미동맹, 한미(일) 군사 공조, 주한미군 등이 규탄 대상이었다. 수천 명이 빗속을 뚫고 기세 좋게 한미동맹과 극우에 반대하며 행진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을 극우에 마냥 내주지 않고,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어도 기세에 밀리지 않으며 대항하는 모양새로 열린 것은 공간의 정치학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다음에는 규모에서도 맞먹으면 좋겠다.)


우리 외민동도 재학생부터 61학번 선배님 부부까지 총 50여 명의 회원이 출동했다. 빗줄기를 뚫고 통일비빔밥을 만들어 나누고, 미국 제국주의를 규탄하며 행진에 함께했다. 시청광장을 돌며 길게 늘어선 대열이 우렁차게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자 극우 집회 후미에 있던 이들이 흥분해서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행진 대오가 민주노총 대오로 이어지고 기세가 만만찮게 높아지자 야유도 시들해졌다. 이어진 집회에서는 대학생과 김종훈 진보당 대표 등의 힘 있는 한미동맹·주한미군 규탄 발언이 행진의 의미를 잘 살렸다.


5. 전선의 한복판에 놓인 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태도
올해 광복절 집회는 오늘날 세계에서 좌와 우, 진보와 보수, 평화와 반평화, 개혁과 반개혁, 민주와 반민주, 양심과 비양심, 자본과 노동 사이의 핵심 전선에 제국주의에 대한 태도 문제가 자리 잡고 있음을 새삼 드러냈다. 그것은 한국에서 한미동맹을 규탄하고 항의하는 일이 한국의 권력자들에 대한 항의, 그리고 제국주의 세력의 전쟁과 학살, 민족 억압에 맞선 국제 연대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일러준다.
이날 극우는 최근 미국 패권이 직면한 곤경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마치 그런 일이 없다는 듯이. 반면 진보는 한미동맹 중심의 호전적 외교·안보 노선에 기운 이재명 정부에 대한 명확한 언급(비판)을 회피했다. 나의 약점이 상대의 강점이 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고민이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