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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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

사진작가, 신문방송학과 85

최인숙, 은행나무 잔혹사

푸르른 신록들이 어우러져가는 5월의 어느 날, 200년 동안이나 부암동 한 자락을 지켜온 은행나무잎들이 죽음의 빛을 띠며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정체불명의 제초제를 투입하여 의도적으로 나무를 살해하려 한 환기미술관에 대한 분노는 수사와 처벌을 요청하는 법적 절차를 넘어 우리 사회가 생명공동체에 대한 성찰, 더 나아가 생태주권, 생명연대, 자연의 권리법 제정까지… 도시의 한 그루 나무에서 시작해 숲과 강과 바다의 권리까지 가는 첫걸음을 열어주고 있다.

또한 앞으로 나무와 숲, 바다, 야생동물 등 인간 이외의 생명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공존할 것인가도 묻고 있다. 특히 살아 있는 고목은 마을공동체의 역사이며 정신이고 사람과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문화예술적 상징이기에 자신의 아름다움과 편리를 위해 생명을 희생시키는 미술관의 미학적 사디즘에 대해 분노하며 나 또한 예술가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마을 주민들, 종로구청,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나무병원 전문가, 서울환경연합의 조사가 진행되며 나무가 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진단과 함께, 뿌리를 덮고 있는 토양오염 관리를 위해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내년 봄에 잎을 얼마나 틔울지를 파악하는 등 한편에서는 나무를 치료하고 살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마존 울창한 열대우림이나 수천 년 원시림에 감탄하는 마음이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는 마음과 달라서는 안 될 것이라 여기며 죽어가는 나무 한 그루에서도 커다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생태적 감각이 깨어나길 기대해 본다. 무엇보다 이 은행나무(나무에 새로 붙여진 이름은 수화(樹話). 나무와 대화한다는 의미의 수화는 화가 김환기의 호이며, 환기미술관은 이 화가를 기리는 미술관이다)뿐 아니라 유사한 사건에서 도시 내 나무들을 동의 없이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과 재발 방지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계기가 되길 부암동 은행나무 사건에 동참하는 한 사람으로서 소망해 본다.

사진은 환기미술관 마당에 있는 소나무와 주택마당에 있는 푸르른 나무들 사이에서 온몸으로 죽음을 버티고 있는 은행 나무의 현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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