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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④ 자동화세는 러다이트인가, 사회계약인가 — 로봇부과금을 둘러싼 쟁점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④
자동화세는 러다이트인가, 사회계약인가 — 로봇부과금을 둘러싼 쟁점 지도
간단한 산수 문제 하나.
어떤 공장에서 노동자 한 명이 연봉 5,000만 원을 받고 일한다. 이 노동자의 소득에는 근로소득세,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고용보험료가 붙는다. 대략 합산하면 연간 1,000만 원 정도가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국가에 들어간다.
이제 이 노동자를 로봇이 대체한다. 로봇은 연봉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근로소득세도,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료도 납부하지 않는다. 기업은 5,000만 원의 인건비를 절약하고, 국가는 1,000만 원의 세수를 잃는다.
이것을 100명으로 확대하면? 기업은 50억을 절약하고 국가는 10억을 잃는다. 1,000명이면? 10,000명이면?
여러분, 이 구조에서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인가? 그리고 이 불균형을 교정하는 것은 "진보를 가로막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계약을 재설정하는 것"인가?
빌 게이츠의 제안 — 놀랍도록 상식적인 질문
2017년, 빌 게이츠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노동자가 5만 달러어치의 일을 하면 소득세와 사회보장세를 낸다. 로봇이 같은 일을 하면,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로봇에게도 물려야 하지 않겠느냐."
세계 최대 부자이자 자칭 기술 낙관론자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게이츠의 논리는 세 단계다. 첫째, 자동화가 노동자를 대체하면 세수 기반이 줄어든다. 둘째, 그 세수 감소분을 메우기 위해 로봇에게 세금을 물린다. 셋째, 그 재원으로 돌봄, 교육 등 인간 고유의 일자리를 만든다.
독자 여러분은 이 논리가 상식적으로 들리는가, 아니면 황당하게 들리는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상식적으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로봇세 논의는 2017년 이후 8년간 격렬한 찬반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고, 현재까지 세계 어느 나라도 본격적인 로봇세를 도입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아이디어가 실현되지 않는가? 반대 논거를 하나씩 들여다보자.
반대 논거 1 — "혁신을 가로막는다"
가장 강력한 반대 논거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로봇세를 "진보에 대한 보호무역주의"라고 일축했다. 논리는 이렇다. 로봇에 세금을 물리면 기업의 자동화 투자가 줄어든다. 생산성 향상이 느려진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본다.
이 논리는 타당한가?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실제로 한 나라만 로봇세를 도입하면, 기업들은 로봇세가 없는 나라로 공장을 옮길 수 있다. 국제 경쟁 환경에서 단독 도입은 자해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어떤 규제도 불가능해진다. 환경 규제도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도 같은 논리로 반대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해 왔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논리가 무한정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 환경을 파괴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듯, 노동자를 배제하면서 자동화하는 것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서머스의 논리에는 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그는 "로봇은 부를 창출한다, 부를 창출하는 것에 세금을 물리는 것은 비합리적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노동자도 부를 창출한다. 우리는 부를 창출하는 노동자에게 세금을 물린다. 왜 부를 창출하는 로봇에게는 물리면 안 되는가?
반대 논거 2 — "로봇의 정의가 불가능하다"
두 번째 반대 논거는 더 실용적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지적 — "로봇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기 어렵다."
맞는 말이다. 공장의 산업용 로봇팔은 로봇인가? 그렇다. 자율주행 트럭은? 아마 그렇다. 그럼 셀프 체크아웃 기계는? 스프레드시트 매크로는? ChatGPT는? 어디서 선을 그을 것인가?
이것은 진짜 문제다. 세금은 과세 대상이 명확해야 한다. "이것은 로봇이고 저것은 아니다"의 경계가 모호하면 조세 회피와 법적 분쟁이 끝없이 발생한다. EU 의회가 2017년에 로봇세 제안을 부결시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정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 문제도 절대적인 장벽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정의가 어려운 대상에 세금을 매기고 있다. "소득"이란 무엇인가? "부동산 가치"란 무엇인가? 정의가 완벽하지 않아도 제도는 작동한다. 완벽한 정의를 기다리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불완전하더라도 시작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반대 논거 3 — "이미 법인세로 과세하고 있다"
세 번째 반대 논거. 로봇이 만든 이익은 기업의 이익이고, 기업의 이익에는 법인세가 붙는다. 따라서 별도의 로봇세는 이중과세다.
이 논거는 형식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현실과 괴리가 있다. 법인세의 실효세율은 명목세율보다 훨씬 낮다. 대기업일수록 각종 공제와 감면을 활용해 실효세율을 낮추고, 극단적인 경우 다국적 기업은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 법인세는 '이익'에 부과된다. 자동화로 인건비를 절감한 만큼 이익이 늘어나고, 그 이익에 법인세가 붙는다 — 여기까지는 맞다. 그런데 그 이익의 크기가 절감된 인건비와 같은가? 아니다. 절감된 인건비 5,000만 원 중 법인세로 환수되는 금액은 — 실효세율 15~20%를 적용하면 — 750만~1,000만 원이다. 노동자가 일할 때 국가에 들어오던 1,000만 원에 비해 같거나 적다. 게다가 노동자가 일할 때는 그 5,000만 원이 소비로 돌아가 다시 경제를 순환시켰지만, 기업의 이익 중 상당 부분은 사내 유보되거나 주주에게 배당된다.
결국 자동화는 세수의 감소와 소비의 감소를 동시에 야기한다. 법인세만으로는 이 이중 손실을 메울 수 없다.
한국의 상황 — 사실상의 '역 로봇세'
여기서 한국의 현실을 보자. 한국은 로봇세를 논의하기는커녕,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2026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을 보면, 피지컬 AI 개발 예산이 전년 2,149억 원에서 4,022억 원으로 거의 두 배로 늘었다. AI 팩토리 선도 프로젝트 예산도 1,582억 원에서 2,200억 원으로 확대됐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노동자를 대체할 기술의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것이 단순히 "노동자를 쫓아내기 위한 투자"는 아니다. 생산인구 감소, 글로벌 기술 경쟁 등 정부 입장에서 타당한 근거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피할 수 없다"고 한 것도 이 맥락이다.
그러나 문제는 투자의 방향이 아니라 투자와 보호의 비대칭이다. 자동화 촉진에는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데, 자동화로 인한 고용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에 있는가? 전환 교육 예산은? 노동영향평가 제도화 비용은? 이 비대칭이 교정되지 않으면, 정부가 한 손으로는 자동화를 밀어붙이고 다른 손으로는 노동자에게 "공포감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모순이 된다.
2018년 국회입법조사처가 국정감사 정책자료로 로봇세 도입 방안을 제안한 적이 있다. 7년이 지났다. 논의는 어디까지 갔는가? 사실상 멈춰 있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 네 가지 모델
로봇세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자동화 이득의 사회적 환원" 이라는 문제의식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현재 제시되어 있는 대안 모델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모델 1: 직접 로봇세. 게이츠의 원래 제안. 로봇이 대체하는 노동자의 임금 수준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한다. 장점은 직관적이고 세수 확보가 명확하다는 것. 단점은 "로봇"의 정의 문제, 국제 경쟁력 저하 우려, 이중과세 논란이다.
모델 2: 자동화 이익 환수형 법인세 할증. 로봇 자체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자동화로 인한 인건비 절감액의 일정 비율을 추가 법인세로 부과한다. 정의 문제를 우회할 수 있고, 기존 조세 체계 안에서 운용 가능하다. 단점은 "인건비 절감"과 "자동화 효과"를 정확히 분리하기 어렵다는 것.
모델 3: 사회보험 확장형. 로봇에 세금을 물리는 대신, 기업이 자동화 수준에 비례해 고용보험·직업전환보험에 추가 기여금을 납부하도록 한다. 세수가 아니라 사회보험 체계 안에서 처리하므로 "세금"이라는 저항을 줄일 수 있다. 한국의 기존 고용보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모델 4: 생산성 연동 기금. 자동화로 생산성이 향상된 기업이 향상분의 일정 비율을 전환 기금에 적립하도록 한다. 기금은 전환 교육, 실업 급여 보충, 지역 경제 지원 등에 사용된다. 노사 공동 운영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2편에서 말한 "참여" 모델과 결합이 가능하다.
네 가지 모델 모두 장단점이 있고, 어느 하나가 완벽한 해답은 아니다. 그러나 네 모델이 공유하는 원칙이 있다 — 자동화의 이득이 기업에만 귀속되는 현재 구조를 바꿔야 한다. 어떤 방식이든, 이득의 일부는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 이것은 "혁신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혁신이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민주노총은 어떤 모델을 들고 나와야 하는가
다시 간담회로 돌아오자. 양경수 위원장은 노동영향평가를 제안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연구해 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이 연구해서 들고 나와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모델 3(사회보험 확장형)과 모델 4(생산성 연동 기금)의 결합이 한국 맥락에서 가장 현실적이라고 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세금"이라는 프레임을 피할 수 있다. 한국에서 "새로운 세금"은 정치적으로 독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증세 논의는 기피된다. "로봇세"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정치적 사망 선고다. 그러나 "고용보험 기여금 조정"이나 "전환 기금 적립"은 기존 제도의 확장이므로 수용 가능성이 높다.
둘째, 노사 공동 운영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전환 기금을 노사가 함께 관리한다면, 이것은 2편에서 말한 "참여" 모델의 구체적 실현 형태가 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거두고 일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전환의 속도와 방향을 조율하는 매개체가 된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제안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이 "반대"의 언어가 아니라 "설계"의 언어로 이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다. "로봇세를 도입하라"가 아니라, "전환 비용의 분담 구조를 이렇게 만들자"는 구체적 제안을 들고 나와야 한다.
러다이트는 기계를 부쉈고, 우리는 기계의 이익을 나눠야 한다
이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자. 자동화세는 러다이트인가, 사회계약인가.
러다이트는 기계 자체를 적으로 삼았다. 방직기를 부수면 일자리가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물론 돌아오지 않았다. 기계는 더 많이 만들어졌고, 러다이트 운동은 실패했다.
그런데 러다이트 운동의 실패가 남긴 교훈은 "기계에 저항하지 마라"가 아니다. 교훈은 "기계를 부수는 것은 답이 아니지만, 기계가 만드는 이익의 배분에 대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러다이트 이후 반세기에 걸쳐 영국 노동운동은 차티스트 운동에서 노동조합의 법적 인정까지, 바로 그 싸움을 해냈다.
자동화세 — 그것이 로봇세든, 전환 기금이든, 사회보험 확장이든 — 는 기계를 부수는 것이 아니다. 기계가 만드는 부의 일부를, 기계에 밀려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러다이트가 아니라 사회계약의 재설정이다.
2026년의 한국에서, 피지컬 AI 예산이 4,000억 원으로 두 배가 되는 동안 전환 기금의 규모는 0원이다. 이 비대칭이 교정되지 않는 한, 대통령의 "공포감을 내려놓으라"는 말은 — 아무리 선의를 담고 있어도 — 공허하다.
다음 편에서는 양경수 위원장이 제안한 노동영향평가를 구체적으로 해부한다. 환경영향평가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노동영향평가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어떤 법적 구속력이 필요한지를 따진다. ■
다음 글: ⑤ 민주노총은 왜 '노동영향평가'를 꺼냈나 — 환경영향평가 모델의 노동 전용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