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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② "협조해 달라"와 "참여시켜라"의 거리
[시리즈]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 로봇은 파업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피지컬 AI가 노동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시대,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걸고 어디에 앉을 것인가. 2025년 4월 민주노총-대통령 간담회를 출발점으로, 20회에 걸쳐 묻는다.

AI와 일자리 그리고 민노총 ②
"협조해 달라"와 "참여시켜라"의 거리 — 간담회 발언으로 읽는 노정 간 AI 인식 격차
한 문장만 기억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숙련 노동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노동영향평가를 전면적으로 도입할 것을 제안합니다."
얼핏 보면 같은 방향이다. 둘 다 노동자가 AI 전환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같은 말일까?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자. "협조해 달라"와 "참여시켜라"는 같은 문장인가?
"협조"의 문법 — 누가 주어이고 누가 목적어인가
대통령의 발언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자. 피지컬 AI 도입에 대해 그는 이런 논리를 전개했다.
첫째, 피지컬 AI 도입은 피할 수 없다. 둘째, 정부는 선도적으로 속도를 낼 것이다. 셋째, 숙련 노동자의 협조 없이는 전환이 불가능하다. 넷째, 노동계가 대안을 연구해서 제시하면 정부가 수용하겠다.
논리적으로 깔끔하다. 그런데 여기서 의사결정의 주체는 누구인가?
도입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다. 속도를 정하는 것도 정부다. 노동자는 "협조"를 요청받는 위치에 있고, "대안을 연구해서 제시"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대안을 "수용"할지 여부는 다시 정부가 판단한다.
이것은 참여가 아니다. 이것은 자문이다.
자문과 참여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사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와 "같이 결정합시다"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전자에서 최종 결정권은 듣는 쪽에 있고, 후자에서는 양쪽이 공유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전자의 문법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 대통령은 왜 이 문법을 선택했을까?
선의의 함정 — "너희를 위한 거야"
오해하지 말자.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 악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간담회 전체를 관통하는 대통령의 태도는 명백히 노동 친화적이다. 비정규직 임금 차별을 "왜곡"이라 규정하고, 노동부를 "탄압부"였다고 인정하고,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기구 불참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진정성을 의심하기 어렵다.
그런데 바로 그 진정성이 함정이 될 수 있다.
"내가 노동자를 위해서 하는 건데, 일단 믿고 협조해 달라" — 이 문장의 구조를 잘 들여다보자. 여기에는 암묵적 전제가 있다. 정부가 판단의 주체이고, 노동자는 그 판단의 수혜자라는 전제. 선의를 가진 정부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면 노동자는 그에 따라오면 된다는 전제.
독자 여러분에게 묻겠다. 이 구조,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는가?
맞다. 발전국가 모델이다. 박정희 시대부터 한국 국가-노동 관계를 규정해 온 바로 그 프레임 — "경제 발전을 위해 일단 참아라, 나중에 다 돌려주겠다" — 의 세련된 업데이트 버전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의 방향은 박정희 정권과 180도 다르다. 노동을 탄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의사결정 구조 자체는 — 정부가 결정하고 노동자는 따르는 —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선의를 가진 정부라면 괜찮은 것 아닌가?
괜찮지 않다. 두 가지 이유에서.
이유 1 — 선의는 제도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간담회에서 이 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어차피 이재명 대통령도 잠시 있다가 떠날 거니까 어차피 정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바로 그거다. 대통령은 떠난다. 5년이면 끝이다. 그런데 피지컬 AI의 도입은 10년, 20년에 걸친 과정이다. 이재명 정부가 노동 친화적 방향으로 AI 전환을 관리한다 해도, 다음 정부가 같은 방향을 유지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협조" 모델에서 노동자의 위치는 정부의 선의에 의존한다. 선의가 사라지면 노동자는 다시 원점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기구에 안 나갔던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에서 "대화하자"고 해서 갔더니, 결국 형식적 들러리에 그쳤던 경험. 대통령 본인이 "이해한다"고 인정한 바로 그 경험.
"참여" 모델은 다르다. 노동영향평가가 법률로 제도화되면, 정권이 바뀌어도 AI 도입 시 고용 영향 검토와 전환 계획 수립은 의무로 남는다. 초기업 교섭 구조가 만들어지면, AI 도입의 속도와 범위에 대한 노동자의 발언권은 특정 대통령의 호의가 아니라 법적 권리가 된다.
선의를 제도로 바꾸지 않으면, 선의는 그냥 선의로 끝난다. 여러분의 직장 생활에서도 그렇지 않았는가? "좋은 팀장" 한 명이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 같다가, 그 팀장이 떠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험.
이유 2 — "협조"는 학습 데이터 추출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좀 불편한 이야기를 하겠다.
1편에서 언급했듯이, 피지컬 AI 도입의 핵심 과정 중 하나는 숙련 노동자의 동작과 판단을 데이터로 포착해서 로봇에 이식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숙련 노동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한 것은 바로 이 과정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협조"의 최종 산물이 무엇인지를 직시해야 한다. 숙련 노동자가 자신의 노하우를 AI 시스템에 이전하는 데 "협조"하고 나면, 그 AI 시스템은 해당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게 된다. 즉, 노동자는 자기 자신을 대체할 시스템의 구축에 협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발적인 참여와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이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베테랑 기사가 30년 경력의 운전 노하우를 자율주행 AI 개발사에 제공한다고 하자. "당신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협조해 주세요"라고 요청받아서. 그런데 그 AI가 완성되면 그 기사는 필요 없어진다. 이때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나가 주세요"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답은 명확하다. 처음부터 데이터 제공의 조건을 협상해야 한다. 내 노하우가 AI에 들어가는 대신, 그 AI가 창출하는 생산성 이득의 일부를 나에게 — 또는 나와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 돌려주겠다는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협조"의 문법으로는 나올 수 없는 결론이다. "교섭"의 문법에서만 가능하다.
여러분이 그 베테랑 기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라를 위해 협조해 달라"는 말에 그냥 응하겠는가, 아니면 "내 노하우의 가치를 먼저 합의하자"고 하겠는가?
양경수 위원장의 제안은 왜 중요한가 — 그리고 왜 부족한가
이런 맥락에서 양경수 위원장의 노동영향평가 제안을 다시 보자. 이 제안의 핵심은 AI 도입을 사전에 검토하고 조건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협조" 모델에서 "참여" 모델로의 전환 시도다.
그런데 양 위원장의 발언에도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노동영향평가는 도입의 '조건'을 다루는 도구다. 도입 여부와 속도에 대한 검토, 전환 계획의 의무화. 이것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왜? 피지컬 AI가 생산하는 이득의 귀속 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 로봇이 노동자 10명을 대체해서 연간 10억 원의 인건비를 절감했다면, 그 10억은 누구의 것인가? 현행 법체계에서 답은 간단하다 — 기업의 것이다. 로봇은 기업의 자산이고, 자산이 만드는 이익은 자산 소유자의 것이니까.
그런데 그 로봇의 성능은 어디서 왔는가? 30년 경력 숙련공의 동작 데이터에서 왔다. 그 숙련공은 "협조" 요청을 받고 자신의 노하우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제 그 노하우로 작동하는 로봇이 만드는 이익에서 숙련공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이게 합리적인가? 여러분의 직관은 뭐라고 말하는가?
독일은 어떻게 했나 — 잠깐 곁눈질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정교한 제도적 답을 만들어 놓은 곳이 독일이다. 독일의 공동결정제(Mitbestimmung)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서 노동자 대표가 감독이사회에 참여하도록 법으로 보장한다. 이 제도 덕분에 독일에서 자동화 도입은 단순한 경영 의사결정이 아니라 노사 공동결정 사항이다.
폭스바겐이 전기차 전환을 추진할 때, 직장평의회는 전환 과정의 설계에 참여했다. 22,000명의 생산직 재교육 프로그램이 직장평의회와의 협의 속에서 수립되었고, 츠비카우 공장 전환에 12억 유로, 볼프스부르크에 4.6억 유로가 투자되었다. 이것이 "참여"의 실체다. 도입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전환의 과정에 노동자가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존재한다는 것.다만 이 모델의 한계도 직시해야 한다. 2024년 경영 위기 속에서 폭스바겐 경영진은 오히려 10% 임금 삭감을 요구했고, 약 2만 명이 자발적 퇴직을 선택했다. 공동결정제가 전환의 조건을 협상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고용 축소 자체를 막지는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공동결정제조차 불완전한데, 아무런 제도적 장치 없이 "협조해 달라"만으로 전환을 관리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물론 독일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이식할 수는 없다. 역사적 맥락도 다르고, 기업 지배구조도 다르고, 노동운동의 전통도 다르다. 이 부분은 이 시리즈의 8편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러나 핵심 원리는 보편적이다 — 전환의 결과로 이득을 보는 쪽이 비용도 부담해야 하고, 그 비용의 규모와 방식을 이해당사자가 함께 결정해야 한다.
"연구해 달라"의 이면 — 공은 누구에게 있는가
간담회 말미에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노동계에서 연구를 좀 해 주세요. 그럼 저희가 그걸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수용해서 국가 정책으로 만들어 시행하겠습니다."
이 말을 다시 분해해 보자.
"연구를 해 주세요" — 공을 노동계에 넘기고 있다. 대안 제시의 책임을 노동계에 부과하는 것이다.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수용" — "최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수용 여부의 최종 판단은 정부에 있다.
이 구조에서 노동계는 이중의 부담을 진다. 첫째, 대안을 연구하는 비용. 둘째, 그 대안이 "가능한 범위" 밖이라는 판정을 받을 리스크. 반면 정부는 부담이 없다. 대안이 좋으면 수용해서 공을 세우고, 대안이 마음에 안 들면 "가능한 범위 밖"이라며 거절하면 된다.
이것은 공정한 구조가 아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정부가 모든 대안을 자체 생산할 수는 없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려면 현장에서 의제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연구해 달라"와 "같이 연구하자"는 다른 말이다. 전자는 위탁이고 후자는 협업이다.
민주노총은 이 구분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을까? 간담회에서의 반응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양경수 위원장이 노동영향평가와 초기업 교섭을 요구한 것은, 적어도 "위탁" 모델을 거부하고 "제도적 참여" 모델을 지향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세 가지 제안
비판만 하고 끝내면 무책임하니까,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노동영향평가에 "이득 배분 계획"을 포함시켜야 한다. 고용 영향 검토와 전환 교육 계획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동화로 절감되는 비용의 일정 비율을 전환 기금, 사회보험, 또는 노동자 지분으로 환원하는 계획을 평가 항목에 넣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노동영향평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리는지 미리 세어보기"에 그친다.
둘째, AI 도입 과정에서 생성되는 학습 데이터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숙련 노동자의 동작·판단 데이터는 그 노동자의 수십 년 경험이 축적된 것이다. 이것을 "협조" 명목으로 무상 이전하는 것은 부당하다. 데이터 기여에 대한 보상 체계 — 로열티든, 지분이든, 전환 수당이든 — 를 선행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셋째, "같이 연구하자"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정부 연구기관과 노동계가 공동으로 AI 전환 대응 연구를 수행하는 상설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총 산하 연구원과 한국노동연구원, 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에 AI 전환 공동연구단을 설치하는 방안이 있다. "연구해서 가져오면 검토하겠다"가 아니라, 연구 설계 단계부터 노동계가 참여하는 구조.
다시, 한 문장의 거리
"협조해 달라"와 "참여시켜라."
이 두 문장 사이의 거리가 앞으로 10년간 한국 노동운동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의만으로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대통령 본인이 간담회에서 가장 솔직하게 인정한 문장이 있다 — "신뢰라고 하는 게 쉽게 생기지는 않습니다."
맞다. 신뢰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일단 협조해 달라"는 요청은 — 아무리 선의가 담겨 있어도 — 받아들이기 어렵다. 신뢰를 만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말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것. 요청이 아니라 권리를 부여하는 것. "믿어 달라"가 아니라 "믿지 않아도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고 말하는 것.
민주노총에게도 질문이 남는다. 노동영향평가와 초기업 교섭을 요구했다면,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단순히 "고용을 지켜달라"를 넘어서, "AI가 만드는 이득의 소유권을 재편하겠다"는 수준의 의제를 테이블에 올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다음 편에서는 대통령이 낙관의 근거로 든 스마트팩토리 사례를 팩트체크한다. 정말 고용이 늘었을까? 늘었다면 어떤 고용이 늘었을까? 그 답이 피지컬 AI 시대에도 유효한지를 검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