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농부의 삶을 그린 이 화가가 바라본 노동은 성과를 내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 속에서 땀 흘리고, 기다리고, 다시 쉬는 과정이었다.
씨를 뿌리고, 키우고, 수확하고, 그리고 다시 고요해지는 시간….
외민동 DMZ 평화농부를 자칭하며 야심차게 가꾸어 온 텃밭모임이 어느새 한 해를 넘겼다. 사진 속 그때만 해도 가을의 수확물을 어떻게 거두어 축제를 열까,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네 명의 농부들 식탁은 행복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우리의 텃밭은 완전히 망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망한 것이지만 텃밭을 기어 다니는 생물들에게는 아마도 큰 축복이었으리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나 사람과 자연의 관계나 좋은 결실을 얻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흙의 성질을 파악하는 예리함, 그 흙에 맞는 작물을 심고 매일매일 나가 돌보는 정성, 무자비한 잡초와 해충으로부터의 세심한 보호가 턱없이 부족했음을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잠시 멈추어 우리의 실패를 가만히 정리하며, 올해를 다시 시작하는 힘을 가져야겠다. 수확의 결과물보다는 함께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너른 들판에서 한 알의 감자에도 감사하며 기도드리는 <만종> 속 주인공들처럼, 고개 숙여 기도하는 평화농부의 모습을 다시 사진에 담을 수 있기를….
텃밭 농사를 함께 고민한 설현, 경혜 언니, 그리고 가장 수고한 친구 미애의 환한 얼굴을 자주 보며 한 해를 보낸 것, 그것이 외민동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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