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이주하

특별기고 – 이주하

프레임을 넘어 진실로

- 내란 재판을 둘러싼 언론과 시민의 올바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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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하

변호사, 법학과 01학번

👁️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시선의 힘-가디언 광고로 본 ‘전체 맥락’의 중요성

  영국의 대표적 일간지인 가디언(The Guardian)지의 1986년 “Point of view” 광고는 대화가 없는 약 28초 정도의 짧은 영상이다. ​

  이 광고는 짧은 머리(skinhead, 스킨헤드는 1960년대 후반 영국에서 있었던 노동자 계급의 하위문화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의 젊고 건장한 남성이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향해 달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진 장면에서는, 마치 그가 중절모를 쓰고 서류 가방을 든 정장 차림의 중년의 남성을 공격하려는 것처럼 비춘다. 그러나 카메라 앵글이 전체 장면을 볼 수 있도록 바뀌자, 진실은, 그의 다급한 몸부림이 무너지는 건물 자재 아래 있던 노신사를 구하기 위한 것으로 드러난다.

  위 광고는 단 세 장면으로 사안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의 중요성과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공정한 사실 보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 정확한 정보가 만드는 민주주의-알 권리, 언론의 기능, 그리고 민주 정치 참여

  민주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민주 정치과정에 지적으로 참여하려면 다양한 의견․지식․정보가 필요하고, 언제든 자유롭게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에 관련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면 문제의 내용을 제대로 알기 어렵고, 제대로 내용을 알지 못하면 자기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식이나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는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을 가능하게 하고, 민주적 정치 질서를 생성․유지하는 데 본질적 기능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알 권리는 사상,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자기실현적 가치를 가지면서 동시에 공적, 사회적 사항에 관하여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고, 민주정치 과정에의 참여를 확보하는 자기 통치의 가치를 실현하는 참정권으로서 기능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문제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 지식, 정보’를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사회, 정치적 이슈에 대한 정치적 진실과 사실이 혼재해 있으면, 제대로 된 의견이 나오기 어렵고 여론은 왜곡될 수 있다.

진실을 좇을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자 권력의 비판적 감시자로서 언론은 다양하고 민주적인 여론을 매개하고, 공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시민의 알 권리 실현에 기여한다. 이에 더해 언론은 사회․문화․경제적 약자나 소외계층이 마땅히 누려야 할 문화에 대한 접근기회를 제공하여 시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실현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위와 같은 언론의 순기능 때문에 언론은 입법, 행정, 사법부와 함께 제4의 헌법기관으로 부르고, 언론의 자유와 권리는 제도로서 보장된다.

⚖️ 내란 재판과 언론의 책임– 재판 보도의 객관성, 법적 절차의 오해

우리는 최근 45년 만에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장기 독재를 시도하려던 ‘비상계엄’과 ‘내란’을 겪었고, 현재는 진실규명과 책임 추궁을 위한 특검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다. 특히 내란 재판은 단순한 법적인 판단을 넘어 공공의 신뢰와 민주주의 회복의 출발이라는 정의 실현의 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내란수괴나 그 관여자에 대한 재판의 보도는 그 어느 때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 전달이 요청된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는 공적 관심에 상당한 부담을 지고 있으면서도, 외부의 정치적,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명분은 국민의 알 권리로 들고 있으나 실질은 여론 재판인 경우, 법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심각하게 저해하며, 궁극적으로는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최근 내란중요임무종사자 혐의를 받고 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에 대한 재판에서, 재판부가 현직 정보사 대령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비공개로 진행하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시민단체 회원이 퇴정을 거부하며 공개적으로 강력하게 항의한 사건은 전형적 여론 재판의 폐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해당 회원은 구독자 수백만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재판부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채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내란중요임무종사자에게 유리하게 편파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지귀연 재판장은 내란범을 용서할 계획이다.”라는 등으로 재판장을 비난했다. 그와 함께 출연한 방송 전문 변호사 패널은 그 시민단체 회원의 발언에 맞장구를 치며 호응하였고, 진행자는 여러 차례 그 재판장이 내란 재판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언론에 의한 형사소송의 수행(Strafprozeßfuhrung uber Medien)”이다.

‘증인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147조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상 알게 된 사실에 관해 공무원을 증인신문 하는 경우, 공무상 비밀신고서가 제출되면 소속기관의 승낙 없이는 증인신문을 할 수 없다. 위 법률조항을 위반하여 증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한 증언은 위법한 증거로서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위 증인신문 비공개는 형사소송법 제147조에 근거한 합법적 절차였다. 증인들의 소속기관인 정보사는 ‘비공개’를 전제로 증언을 승낙했다. 비공개를 전제로 승낙을 받았는데 증인신문을 공개로 진행하면 증거능력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우리 법원뿐 아니라 해외 법원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사법행정학회에서 발간한 형사소송법 주석서에 따르면, “승낙 여부에 대한 해당 관청의 결정이 있으면, 소송당사자나 법원은 이에 구속된다.”는 것이 독일 판례의 입장이다.

실제로 판사는 법정에서 증언을 직접 듣기 전까지 구체적인 증언 내용을 알 수 없기에, 증언 내용 중 공무상 비밀에 관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미리 구별해 어느 때는 공개로, 어느 때는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인위적으로 공개, 비공개를 구분해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공개 상태에서 증인이 공무상 비밀을 이야기할 위험성이 있다. 무엇보다 공무상 비밀유지의무의 부담을 안고 있는 증인이 일반 대중 앞에서 진술 가능한 내용인지 여부를 하나하나 판단하다 보면 자유롭고 임의적 진술이 어려워 오히려 실체진실 발견을 저해할 수 있다. 따라서 통상 증인신문을 비공개할 때는 증인신문 전체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이다.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저 시민단체 회원이 최소한 방청 전에 비공개재판과 비공개증인신문의 차이를 알아봤더라면, 증인신문을 비공개로 진행한 것은 김용현, 노상원에게는 불리한 증인의 증언을 취득하기 위한 합법적 절차이고, 공개하는 순간 오히려 김용현과 노상원에게는 유리한 상황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위 시민단체 회원은 본인이 방청석에서 증인신문 비공개에 항의하였을 때, 김용현과 노상원의 변호인도 증인신문 비공개에 같이 항의하고 있었던 장면과 그 이유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날 오후 같은 재판부에서 소속기관에서 비공개를 요청하지 않는 재판 제2기갑여단장에 대한 증인신문은 공개로 진행한 것과의 차이도 구별하였을 것이다.

🌪️ 진실 앞에서 흔들리는 프레이밍의 위험–과거 사례로 본 재판에 대한 여론의 이중 잣대

2023년 3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제25부 법정에는 일명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증인인 장용석 전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이 출석하였으나, 재판부는 사전에 국가안보실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을 이유로 증인신문을 연기하였다. 그대로 증인이 증언하면 위법한 증언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부 구성원 중에는 현재 내란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지귀연 재판장이 있었으나, 그 어떤 언론이나 국민도 당시 증인재판 연기를 결정한 지귀연 재판장이 ‘재판지연’을 한다는 비판 기사를 보도하지 않았다.

지귀연 판사가 배우 유아인의 마약류 사건의 제1심 재판장으로서 유아인에게 징역 1년에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였을 때, 언론은 검사 구형량인 4년의 반도 되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재판부를 맹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어떤 변호사는 최소 징역 3년을 선고하였어야 한다는 변호인의견서 같은 칼럼을 게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최근 배우 유아인이 영화 ‘승부’에서 명연기를 펼치며 재기에 성공하고, 지귀연 판사의 내란수괴 구속취소 결정과 내란 재판 과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자, 이제는 지귀연 재판장의 배우 유아인에 대한 징역 1년 선고가 과중한 것이었다고 비난한다.

그때의 사실과 지금의 사실 사이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사실은 외면되고 일명 ‘내란수괴 구속취소 결정’을 시발점으로 그 판사에 대한 악의적 프레이밍만 생겼을 뿐이다.

🔨 구속취소 결정의 본질과 검찰 책임– 법리와 절차를 외면한 언론의 프레임 씌우기

감히 장담하는데, 구속취소 결정에서의 핵심 쟁점과 쟁점에 대한 결정문 전체를 정독한 언론이나 방송 패널은 없을 것이다. 2007년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형사소송법 규정이 대대적으로 개정되었는데,. 개정된 형사소송법 규정에는 체포, 구속적부심사에 관한 규정인 제214조의2 제13항도 있다. 그런데 체포적부심사 기간을 구속 기간에서 제외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위 규정 내용만으로는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구속 기간 기준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어 ‘관행’으로 ‘일(日)’로 계산해 왔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과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금언은 법률 규정이 명확하지 않을 때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법원을 기속한다. 구속취소 결정문에는 이러한 원칙과 금언을 지키려는 재판부의 고심이 담겨 있었고, 그렇기에 검찰의 즉시항고를 통해 대법원의 최종 유권해석을 기재한 것이다.

사실 ‘내란수괴’를 풀어준 것은 상급심 판단 시까지 석방의 효력이 정지되는 즉시항고를 하지 않은 심우정 검찰총장 하의 검찰이다. 국민적 공분과 내란수괴의 석방에 따른 모든 비판은 뜬금없는 전국 검사장회의를 개최하여 시간을 끌고, 통상 구속 기간 만료 전에 안전하게 기소하는 업무 관행을 무시하고 기간만료에 맞춰 기소한 검찰에게 향해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기사와 기성 언론, 유튜브에 출연하는 기자, 방송인, 정치인, 변호사인 패널 등은 재판부의 구속취소 결정이라는 결과에만 천착하여 인신구속과 관련한 형사소송법 규정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개선하는 노력 대신, 재판장을 내란수괴 옹호자라는 프레이밍으로 덧씌웠다. 만약 이들이 심도 있게 위 재판부의 구속취소 결정에 대한 법리적 검토를 하였다면, 위 결정이 내란 재판을 여론 재판으로 만들어 버린 도화선까지는 되지 않았을 수 있다.

🎭 재판의 절차를 왜곡하는 비난들–’특혜재판’이라는 프레임의 허구

재판부에 대한 불신과 왜곡된 시각에서 재판을 바라보니, 면밀한 사실 검토보다는 비난 감정을 앞세워 사실상 알 권리를 빙자하여 재판의 공정한 절차를 저해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윤석열에 대한 제1회 공판기일에서 법정 촬영 불허, 법원 청사 지하실 통로 사용, 피고인의 모두 진술과 인정신문부터 좌석 배치까지 모든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비난에는 합리적 근거가 없고, 사실에 기반한 것도 아니었다.

법원 청사 지하주차장의 이용을 허락할 권한은 청사관리관인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있고, 지귀연 재판장 소관이 아니다. 법정 촬영은 사전에 피고인 동의 절차를 거친 다음 방송촬영 허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주말 휴일이어서 피고인 의견 청취 절차를 거치지 못해 부득이 불허한 것이었다.

인정신문은 법정 출석 피고인이 검사가 기소한 피고인과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이다. 윤석열이 내란수괴 피고인인 것은 전 국민, 전 세계가 아는 공지의 사실이다. 재판부가 윤석열에게 ‘전 대통령’인지 묻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위 기일에서 검사의 모두진술 60분을 보도한 언론은 드물다. 모두진술은 피고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절차이다. 검사에게 할애한 시간에 맞추어 피고인 윤석열에게도 모두진술 시간을 부여한 것인데, 언론은 윤석열이 79분 동안 모두진술을 한 것만 강조하며 특혜재판이라는 비평을 달아 보도하였다.

또한, 법정 좌석에 관한 규칙상 피고인의 지정 좌석은 없다. 검사, 판사, 변호사의 좌석만 규정되어 있어, 실무적으로 피고인과 변호인이 많을 때, 피고인이 방청석까지 내려가 앉거나 교도관 옆자리에 재정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특혜재판이라고 비난받는 위 재판 절차 진행에 대하여 제대로 사실을 확인한 후 정말 특혜인지 확인하여 보도한 언론은 단 한 곳도 찾지 못하였다.

🤔 진실을 추구하는 시민의 자각– 법치주의를 지키는 첫걸음, 질문하는 자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제도 이전에 ‘시민의 자각’을 필요로 한다.

정치적 또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일수록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이 보장되도록 하여야 한다. 정말 우리는 제대로 보고,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진실은 항상 저 너머에 있다. 이 말은 단순한 철학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얼마나 자주 권력과 이해관계의 논리에 따라 편집되는지를 말해준다. 진실은 기성 언론에도, 유튜브 패널의 입에도 없다. 진실은 언제나 저 너머,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지점에 있다. 그렇기에 진실은 단순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추구하고 구성하고 교정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는 오늘도 질문해야 한다.

“이 말은 왜 지금, 이 방식으로 나에게 전달되는가?”

바로 그 질문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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