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외치고, 총회에서 껴안다
터어키어과 89
어느덧 나에게는 3번째 총회이자 따듯한 동행에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해에는 행사 기획팀으로 참여해 긴장 속에 진행하며 정신없이 임하다 보니 어떻게 총회를 끝냈는지도 모르게 보냈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은 이번에는 오롯이 행사를 즐길 수 있겠다는 마음과 행사를 제대로 지켜보고 기억에 담을 수 있겠다는 즐거운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번 행사는 모교에서 치르니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음까지 겹쳐 살갑게 떨리는 흥분도 더해져 더욱 그러했다.
모교는 참 많이 변했다. 행사장을 찾으면서도 남의 집에 간 것처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더듬듯 찾는 것은 공간적으로는 낯설음을 주었지만, 그만큼 모교가 발전했기에 오는 낯설음이라 정서적으로는 마냥 어색하지는 않았다.
좀 이르게 도착한 행사장은 벌써 온 행사기획팀이 분주하게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행사 특유의 흥분스러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거들 수 있는 것들을 거들며 작년의 행사가 되살아났다.
행사 불과 3일 전, 우리는 비현실적인 현실이었던 계엄이라는 비상시국 하에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적으로 해제는 되었지만 그 여운과 긴장 그리고 공포는 세상을 덮고 있었다. 이 처참한 그리고 국가 존망의 시국에 총회를 해야 하는가. 아니, 해도 되는가. 온통 의문이었고 모조리 어둠 같은 날에 집행부원, 운영위원, 행사기획자들은 모여서 말 그대로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3일을 앞둔 시간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우리는 괴로웠다.
그리고 우리는 결심했다.
행사를 한다. 우리는 결집하여야 하고 그리고 우리의 의지와 결의를 선포해야 한다. 외민동은 고난 속일수록 모여야 한다. 왜냐고? 우리 외민동은 고난이라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이기에 그러했다.
머리가 분열되는 듯한 고뇌 속에 내린 결단으로 행사는 치러졌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결의를 모은 성명서를 발표하여 행사가 단순히 행사가 아닌 이 나라의 시련을 이겨낼 결사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1년. 그 시간 속에 우리는 광장에서 외쳤고, 광장에 오지 못하는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외쳤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지켜냈다.
스크린에는 지난 1년 외민동의 모습이 흐르고 있었다. 흔히 한 해를 다사다난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다. 화면 속의 외민동은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고 해냈다. 그 속에 있을 때 몰랐던 우리 스스로의 모습들을 객석의 관객처럼 보니 그것은 역사가 되어 있었다. 외민동은 그렇게 또 우리의 역사를 써내었던 것이다.
만나면 반가운 이들. 안내석에서 동문들을 맞이하니 반가움은 왜 줄지는 않고 늘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외민동의 1년 농사가 총회를 통해 정리되었다. 지난 시간들을 정리하고 새해의 나갈 길이 박수로 동의를 얻었다.
외민동은 따듯하다. 마음만 따듯해서가 아니다. 그 마음을 꺼내어 불꽃으로 태우기 때문이다. 그 불꽃이 따듯한 동행이다.
외민동은 고난이라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에 외민동에는 아픈 자식들이 많다. 그 어머니를 보살피다 자기 삶의 꽃을 피우지 못한 자식들도 많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따듯한 사랑과 온기를 주어야 한다. 먼저 떠난 이에게는 추모와 함께 그가 남긴 이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어야 한다. 이들을 위해 회원들의 주머니에서 마련된 소중한 기금들이 모였다. 올해는 그것이 4,000만 원이 넘는 거금이 되었다.
어쩌면 총회는 모임을 만들기 위한 것이고, 행사의 본의는 ‘따듯한 동행’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고 지금도 함께 하고자 한다. 그 안에서 걸음이 어려운 이들은 부축을 받고 배고픈 이들은 함께 나누어 먹는다. 남겨진 이들을 우리가 품는다.
자랑스러운 외대 민주동문 수상자 그리고 노동, 인권, 평화, 문화, 언론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이 앞으로 나왔다. 면면이 모두 자랑스러운 이들이다. 우리의 자부심들이 우리 앞에서 웃고 있었다. 투병 동문에게 지원금이 수여되었다. 우리의 마음도 함께 아파하고 있었다.
한 어린 소녀가 우리 앞에 섰다. 어색하면서도 떨리는 음성으로 소감을 잔잔히 말했다.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이어졌다. 끝내 소녀는 고개를 숙였다. 말은 멈추었고 어깨는 파르라니 떨리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 유자녀 장학금 수여식에 그렇게 남겨진 가족은 아버지를 그리며 남편을 그리며 서 있었다.
순간 시간은 멈추었고 공간은 침묵했다. 우리는 울었다. 먼저 간 이가 그리워, 그리고 우리 앞에 선 소녀에게 아내에게 마음 아파 울었다. 다시는 질곡의 시대를 살아간 아비에게 슬픈 딸이 나오지 않기를 모두는 속으로 울며 간절히 기원했을 것이다.
시대는 불행을 낳기도 하지만 역사는 그것을 불행으로만 남기지 않는다. 반추를 통해 오늘을 바꾸고 치유를 통해 미래를 만든다. 그 자리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 슬픔 속에 피어오르는 따듯한 마음은 우리의 희망이고 우리의 힘일 것이다. 동행은 그것을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 따듯한 동행이다.
앞서 주어진 외민동 어워즈 수상식에서 유쾌, 상쾌, 발랄한 동문들이 한 해를 기쁘게 해준 감초가 되었기에 다행히 우리의 마음은 쓰지만은 않았다. 외민동은 감동과 기쁨을 같이 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나에게 외민동은 더욱 소중해지고 있었다.
우리 외민동의 자랑스러운 깃발이 앞에 펼쳐졌다. 광장에서 우리는 이 깃발 아래 모였고 외쳤고 싸웠고 마침내 승리했다. 외민동이 있는 곳에 늘 휘날리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표상이다. 풍찬노숙을 거치다 보니 깃발은 어느새 빛이 바래고 모서리는 해져 아픈 모습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깃발은 내란 사태에서 승리를 함께한 자랑스러운 우리의 승리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제 그 노고를 내려놓고 외민동의 역사 속에 소중히 보관하여 길이 전해질 것이다. 이어 새로운 깃발이 입장하였다. 더 크고 더 선명한 자태로 우리를 모아줄 자랑으로 자리 잡을 깃발 전달식이었다.
이어진 뒤풀이는 고여 있던 우리의 남은 마음을 마침내 모조리 터뜨려버리고 말았다. 나는 거기에 피폭되어 만취의 희생자가 되었지만 다음 행사에도 기꺼이 피폭될 것이고 희생자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인연은 소중하고 그것을 키우는 것은 더욱 소중한 일일 것이다. 모교라는 같은 탯줄에서 나온 우리는 그 인연으로 소중한 만남을 하고 있다. 한 해 한 해 키워나가는 시간들, 그 시간들이 모인 한 해를 기리는 총회와 따듯한 동행은 올해도 그렇게 소중하게 지나갔다.
하지만 아쉽지 않다.
우리의 만남은 이어지고 다른 한 해는 다른 소중한 인연과 키움으로 우리를 반겨줄 것이니 지나간 총회가 어찌 아쉽겠는가. 여전히 다음 연말에도 우리는 더욱 아름다웠던 한 해를 반추하며 모여 있을 것이다.
외민동 여러분, 올 한 해도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