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회원이 번개를 칠 때” 지회는 비로소 자리잡는다
— 동남·서북·서남·동북, 서울의 네 지회가 처음 마주 앉다
학번도 학과도 아닌 ‘사는 곳’으로 다시 만났다. 집이 가까우니 한 번 더 얼굴을 볼 수 있고, 한 번 더 만나다 보면 서로 어떻게 사는지도 알게 된다. 창립총회를 마친 서울 네 지회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창립보다 어려운 ‘그다음’을 이야기했다.
이선민
편집위원장, 신문방송학과 85
참석 함칠성 조직위원장, 이재우 서남지회장, 김현주 동북지회장, 임은영 동남지회 부회장, 현상윤 서북지회 부회장
진행 이선민 편집위원장
외민동에서는 오랫동안 학번과 학과가 동문을 잇는 중요한 관계의 축이었다. 이미 광주·전남과 제주 등 지역지회가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지난해부터 ‘사는 곳’을 기준으로 동문을 잇는 지역지회 조직을 본격화했다. 동남지회가 2025년 11월 14일, 서북지회가 2026년 6월 26일, 서남지회가 8월 27일, 동북지회가 9월 4일 각각 창립총회를 열면서 서울 네 권역의 지회가 모두 문을 열었다. 9월 16일 저녁 열린 이번 대담에는 동남지회 공기호 회장(아랍어과 85)과 서북지회 남선우 회장(행정학과 95)을 대신해 각각 임은영 부회장과 현상윤 부회장이 참석했다.
학번과 학과 대신 ‘사는 곳’으로 만난다는 것
김현주 지역적인 한계가 줄어드니까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게 좋은 장점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장점을 잘 살리려면 우리 생활과 밀착된 활동이 같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이 사람과 가장 친해지는 건 어쩌면 같이 밥 먹는 건데, 동네에서는 “이번 추석에 우리 집에 번개로 모여서 밥 한번 먹어볼까” 이렇게 편하게 만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모여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 보면 다 외민동 회원이니까 활동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회장이 되기 전까지 외민동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후배들이 “선배님, 준비 모임 꼭 나오세요” 해서 1차도 나갔고 2차도 나갔죠. 가까운 데니까 나갔던 것도 있어요. 준비 모임을 외대 앞에서 하니까 학교 근처에 한 번 더 가보는 계기도 되고요.
임은영 지역이 가깝다는 건 부담이 없다는 거예요. 김치를 담가도 “좀 가져와라” 하면 가져가게 되고, 그러다 친해지고, 친해지니까 뭘 하자고 하면 또 하게 돼요. 동문이 하는 부동산에서 모이기도 하고 술 한잔하면서 서로 어떻게 사는지도 알게 되고요. 가까우니까 자주 보고, 그러다 보니 더 친해지는 거죠.
현상윤 같은 지역에 산다고 하면 정서적으로는 가까워요. 다만 아직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서먹서먹하기도 하죠. 그래도 이웃에 모여 산다는 것 때문에 자주 만날 가능성은 더 있습니다. 앞으로 프로그램을 잘 만들면 회원들의 유대에도 도움이 되고 외민동의 튼튼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재우 외민동의 외연은 넓어지는데 그 사람들이 참여할 공간은 충분했나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행사도 있고 여러 활동도 있지만 자칫하면 나오는 사람들끼리만 활동하고, 안 나오는 사람들은 회비만 내다가 기껏해야 송년회에 한 번 오는 형태가 될 수 있죠.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이상은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지역 모임이라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에도 지회를 시작할 때 한 분씩 다 연락을 했는데 사람들 생각은 비슷하더군요. 몇 번이라도 나온 사람은 당연히 나오고, 안 나왔지만 지역이니까 한 번 나오는 사람이 있고, 몸이 움직이는 참여는 안 하겠다는 분도 있고요. 그동안 열심히 해온 사람들이 지역에서도 대부분 간부를 맡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잘될 때는 큰 힘이 되지만 잘못하면 여전히 몇몇 사람만 움직이는 조직이 될 수도 있다는 고민은 있습니다.
생활 밀착형 외민동을 향해
지회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배경에는 늘어난 회원 수가 있었다. 함칠성 조직위원장은 처음에는 지방 지회를 활성화하는 일부터 시작하려 했다고 말했다.
함칠성 회원이 200~300명 규모일 때와 500명이 넘어갈 때는 달라요. 회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외민동이라는 큰 그릇 하나에 다 담아내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지회를 통해 ‘생활 밀착형 외민동’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지방부터 조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광주·전남과 제주를 제외하면 지역 회원들끼리 소통하고 만나는 일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한 곳이 많았습니다. 제주도 북제주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려면 자차로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니까, 모임을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나오는 사람이 달라질 만큼 거리의 영향을 받고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조직위원회가 직접 챙기고 독려할 수 있는 서울부터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방향을 바꿨습니다. 운영위원회에서 서울 동남부 지회부터 만들자고 지난해 결의했고 제가 속한 동남지회를 먼저 조직했는데, 그다음이 계속 늦어졌어요. 그래서 상임집행부 회의에서 올 8월까지는 모든 지회 설립을 완성해야 한다고 독려해서 마무리했습니다.
새 얼굴이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창립 준비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는 물음에는 ‘낯섦’이라는 답이 나왔다.
이재우 시작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함칠성 늘 만나던 회원들에게는 장소만 바뀌는 모임일 수 있어요. 그런데 새로운 얼굴들은 마음이 있어도 실제 모임에 나오기까지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특히 90년대 학번들은 기존 모임이 80년대 학번 중심이다 보니 “내가 나가도 되는 자리인가” 하고 낯설어합니다. 1대1로 접촉할 때는 굉장히 성의를 보이다가 막상 모임 공지가 뜨면 나갈지 말지 대답도 안 하고 “고민해 보겠습니다”, “일정을 조정해 보겠습니다” 이래요. 동남지회 창립 때도 연락한 사람이 28명이었는데 16명이 모여서 총회를 했습니다.
그래도 몇 번의 시도 끝에 90년대 학번들이 꽤 많이 나왔어요. 한 번도 외민동 모임에 얼굴을 비친 적 없던 99학번 후배도 그날 처음 나왔고요. 그 친구는 지회에서 한번 얼굴을 익히고 난 뒤 전체 단체 대화방에도 들어오고 송년회와 다른 행사에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조직이라는 것도 사람이 좋아서 가는 거고, 사람이 그리워서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따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술 한잔 할 수도 있고, 생일이나 경조사를 챙길 수도 있죠. 결국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먼저 해주는 겁니다.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그래서 중요해요. 동남지회의 한 후배는 가족상을 당했을 때 동문들이 찾아간 일을 계기로, 이후 지회 모임뿐 아니라 5·18 기념행사와 가을 동문 탐방에도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조직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살갑게 챙기기 어렵잖아요. 지역지회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장 한 사람보다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
지회 창립 과정에서 네 지역이 공통으로 부딪힌 문제 가운데 하나는 ‘누가 회장을 맡을 것인가’였다. 서남지회의 경우 처음 생각했던 선배가 이사를 하게 되면서, 이미 여러 직책을 맡고 있던 이재우 회장이 자원해 매듭이 풀렸다.
김현주 준비 모임에서 “집행부나 다른 소모임의 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지회 임원에서 가급적 빼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다들 동의하는데 그러면 누가 회장을 하느냐가 문제죠.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되는 거예요.
1차 모임에 퇴직한 남자 후배가 한 명 있어서 그쪽에 권했는데, 그게 부담이 돼서 두 번째 모임에 안 나왔어요. 본인이 회장을 하라고 하면 탈퇴하겠다고 했다더라고요. 우리 지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아요. 회비를 내고 가끔 참여하는 것은 괜찮지만 회장까지 맡는 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2차 준비 모임 뒤 그 후배가 어렵다는 연락이 왔는데, 그때 제가 영화관에 있었거든요. 세 시간짜리 영화를 보고 나오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쌓여 있어서 ‘아, 일이 틀어졌구나’ 했죠. 그렇다고 후배들에게 다시 맡기라고 할 수도 없어서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준비 모임에 두 번 다 나왔던 후배에게 “제가 아무래도 회장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총무를 해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하겠다고 답이 왔어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사회 막상 맡고 보니 어떤 역할이 중요하던가요.
이재우 기꺼이 맡은 건 아니고요. 스태프들이 잘하면 회장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겁니다. 서포터가 있어야 회장이 회장 역할을 하는 거예요. 조직이 없으면 회장도 의미가 없습니다. 회장이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구조라면 오래가기 어렵죠.
김현주 최소한의 일을 하고 회원들이 많이 하도록 하는 것이죠.
현상윤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 경조사를 챙기는 것, 새로운 사람을 계속 찾아 함께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겠죠. 그런데 맨날 하는 것 없이 “모이자”고만 하면 오래 못 갑니다. 거기 가면 뭐라도 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남는 게 있어야 다시 찾게 되니까요.
친목만으로도 안 되고, 의미만 찾아서도 어렵고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만드는 모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친목에 무게를 둘 것인지, 뭔가 배우고 의미를 찾는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가 적절히 섞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현주 너무 의미를 찾다 보면 참여하기 어려워지고, 친목만으로 가도 오래가기 힘들 것 같아요. 둘이 적당히 어우러져야 지회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동북지회는 공식 모임을 분기별로 한 번씩, 외민동 전체 행사와 겹치지 않게 11월, 2월, 6월로 잡았어요. 첫 모임은 둘레길을 걸으면서 문익환 목사님의 통일의 집에도 들르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산책도 하고 의미 있는 장소도 보는 거죠. 이 산행은 외민동 산악회에서 활동하는 조태용 선배가 주관하실 거예요. 임원진은 아니지만 운영위원으로 함께하시는 거죠. 그러니 다음 모임은 또 다른 분께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 소모임과 외민동 행사를 맞물리게 하는 방법도 있어요. 제가 지금 당구 모임인 외민당에서도 회장을 맡고 있는데요, 집중 집회가 있는 날이면 당구 모임 정기 모임을 집회 전이나 끝난 뒤에 잡는 식이에요. 그러면 한 사람이라도 더 집회에 참석할 수 있으니까요.
임은영 적당히 상황에 맞게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재우 서남지회도 공식적인 전체 모임은 1년에 세 번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자리에는 작은 테마 하나쯤 넣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버리고 싶은 책 한 권씩 가져와 서로 골라 가고 남는 책은 기부하는 식이죠. 영화도 좋고요.
대신 번개나 일상적인 만남까지 목적을 둘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제가 공주에서 알밤을 가져왔다고 하면 “알밤 먹으러 모이자” 하는 정도로 편하게 보는 거죠. 공식 모임에는 작은 의미를 넣고, 일상적인 만남은 가볍게 열어두는 겁니다.
현상윤 걷기도 지역 모임에 잘 맞아요. 요즘은 동네마다 둘레길이 잘 되어 있는데 혼자서는 걷고 싶어도 잘 안 하게 되잖아요. 동네 사람들과 약속하면 훨씬 쉽게 할 수 있고요. 밤에 야경을 보며 걷는 것도 좋았습니다.
서북지회에서는 음식과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심야식당’ 아이디어도 나왔다. 김복남 동문이 제안한 것으로, 마을 협동조합 언덕의 공간을 빌려 여는 방식이다.
함칠성 그날 주방을 맡은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과 그 음식에 얽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음식을 만드는 겁니다. 감자범벅에 얽힌 이야기가 있으면 감자범벅을 만들면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죠. 비용은 그 사람이 다 내는 게 아니라 회비로 운영하고요.
계속 건배하면서 술만 먹는 것보다 음식을 먹으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게 얼마나 좋아요. 다만 호스트를 꼭 서북지회 사람으로만 한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누구든 와서 하면 되니까요. 이런 아이디어가 지역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역할 하나가 모임의 주인을 만든다
지금 지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원은 지회마다 예닐곱 명 안팎이다. 동남지회와 서북지회가 일고여덟 명, 동북지회가 여섯에서 일곱 명, 서남지회가 대여섯 명이다. 창립총회 참석 규모는 서북지회와 서남지회가 20여 명, 동북지회가 40명 안팎이었다. 참석자들은 그래서 회장의 역할 못지않게, 함께 움직이는 사람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함칠성 모임을 임원만 계속 주최하려고 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어느 정도 친해지면 “이번에는 네가 연락 한번 해봐” 하고 장소 섭외부터 공지까지 맡겨보는 거예요. 처음부터 혼자 하기 어렵다면 총무와 같이하면 되고요.
한번 모임을 준비해보면 몇 명이나 올지 걱정하게 되고, 이 사람은 어디 사는지, 이 장소까지 오기 너무 멀지는 않은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그전에는 ‘내가 나갈까 말까’만 고민했다면 역할을 맡은 순간부터 모임 전체를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주인 의식이 생깁니다.
임은영 맞아요. 저도 빠지고 싶을 때가 있는데 역할이 있으면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집회가 있는 토요일에 일이 겹치면 눈치도 보이고요.
함칠성 단체 대화방에서 공지만 올리지 말고 개인적으로 안부를 묻는 것도 필요합니다. 80년대 학번이 90년대 학번에게 목적 없이 보내는 안부 한마디를 후배들은 더 좋아해요. 큰 감동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하는 생활 속의 작은 관심이 중요합니다. 많이 하려 하지 말고 일주일에 한 명씩 정해서 연락하는 식으로요.
김현주 맞는 말씀이에요. 단체 대화방은 건성으로 보고 넘어갈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면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쓰게 되고, 답장을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잖아요.
임은영 선배가 그렇게 안부를 물어주면 저는 되게 좋을 것 같아요.
김현주 회장은 이런 모습을 ‘전 회원의 간부화’라고 표현했다. 모든 회원에게 직함을 주자는 뜻이 아니다.
김현주 여행을 셋이 가면서 숙소를 저 혼자 구하면 나머지 두 사람은 신경을 안 써요. 그런데 이틀씩 나눠서 알아보라고 하면 그것 때문에 엄청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역할을 한 번씩 바꿔가는 게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지회가 자리 잡았다는 신호
사회 이제 막 출발했지만, 이 정도면 지회가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김현주 집행부가 아니라 평회원이 번개를 칠 때요. 그러면 지회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게 아닐까요.
이재우 맞아요. 아주 좋은 기준인 것 같아요.
함칠성 저도 그게 중요한 지표라고 봅니다. 실제 동남지회에서도 예전에는 외민동 모임에 잘 나오지 않던 동문이 요즘 먼저 “우리 한번 봅시다” 하고 모임을 제안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모임을 만드는 거니까요.
이재우 다른 지회가 모인다고 하면 “우리 저쪽으로 원정 가자” 하고 서로 오가는 것도 좋겠어요.
현상윤 다만 요즘은 외민동 전체 행사가 워낙 많아서 지회에 신경 쓰기가 어려운 면도 있어요. 가을부터는 한 달에 한 번꼴로 큰 행사가 있으니까 지회에서 따로 뭘 하기가 애매해지죠. 행사가 많은 건 좋은 일이지만요.
김밥 한 줄과 제철 과일
지회를 꾸려가는 데는 프로그램 못지않게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비용이다.
현상윤 예전에는 회비가 1만 원이었는데 요즘은 1만 원으로 모임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요. 대개 2만 원 정도 하는데 그것도 빠듯하죠. 그렇다고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만 고집할 수도 없고요. 서북지회 창립총회 때는 강사도 내부에서 찾고, 6시 반쯤 모이면 배가 고프니까 김밥에 제철 과일을 곁들였습니다. 시장에서 사니까 굉장히 싸더라고요. 4천5백 원짜리 김밥인데도 메뉴가 그럴듯하고, 다 해서 1만 원이 채 안 들었어요. 외부 강사를 부르기보다 동문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고요.
김현주 요즘 밥값이 올라서 그 정도는 잡아야 가능하죠.
함칠성 중앙에서도 원래 지회를 1년에 세 차례 정도 지원하는 걸 목표로 세웠어요. 그런데 전체 행사가 많다 보니 행사 비용으로 쓰기도 빠듯해져서 지회 지원을 1회로 줄였습니다. 학번 지원도 1회로 줄였고요. 앞으로 재정 시스템이 더 안정되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창립식 외에는 지회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이재우 통상적으로 1차는 나눠 내고 2차는 누가 사는 식으로 했는데, 요즘은 값이 올라서 1차를 나눠 내는 것도 2만 원으로는 해결이 안 돼요. 중요한 건 모이자고 제안한 사람이 비용을 다 부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선뜻 “한번 보자”고 하기 어렵잖아요. 기본적으로는 나누어 부담하고, 누군가 특별히 사고 싶은 날에는 미리 내겠다고 이야기하는 정도가 편할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서로의 삶을 챙기는 조직
대담의 마지막에 함칠성 조직위원장은 지역지회의 의미를 조금 더 긴 시간 속에서 바라봤다.
함칠성 지역 조직이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소외와 고독이 사회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사실 지금도 이미 문제잖아요.
나이가 들수록 지역에서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기가 어려워집니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고요. 그런데 이미 관계가 형성돼 있는 외민동이 지역에서 활성화되면 서로의 고립과 외로움을 자연스럽게 덜어주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거기에 저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네 지회는 창립총회를 열고 집행부를 꾸렸다. 이날 나온 기준대로라면 자리를 잡았는지는 이제부터 확인된다. 집행부가 연락하기 전에 어느 날 평회원 한 사람이 “우리 동네에서 봅시다” 하고 먼저 말을 꺼내는 순간이다.
참석자들이 남긴 말
“결국은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먼저 해주는 겁니다.”
“서포터가 있어야 회장이 회장 역할을 하는 거예요. 조직이 없으면 회장도 의미가 없습니다.”
“집행부가 아니라 평회원이 번개를 칠 때, 그러면 지회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게 아닐까요.”
“맨날 하는 것 없이 모이자고만 하면 오래 못 가요. 내용이 있어야 다시 가게 되죠.”
“지역이 가깝다는 건 부담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주 만나니까 더 친해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