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과 85학번, 택배노동자
칠성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보잔다. 그는 외민동 조직위원장이다. 오늘의 외민동이 있기까지의 열정과 노력을 알기에 뒤로 빼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85끼리 보는 줄 알았는데, 78학번과 같이 만나자는 거였다. 학번 간 교류를 통해 촘촘한 소통을 시작하자는 의미였다.
낯선 익숙함
10월 18일(금) 오후 6시 사당역 인근 음식점. 칠성이가 먼저 와 있었다. 곧이어 85들이 하나 둘 오고, 조금 있자 78 선배들이 나타났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약간의 어색함과 친근함이 오갔다. 하지만 78들의 얼굴에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낯설었지만 익숙함이 더 컸다. 78들은 이미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씨줄과 날줄
왜 85끼리 보지 않고 78학번과 같이 했을까. 답은 김창기 선배에게서 나왔다. ‘민동이 튼튼히 뿌리내리려면 학번 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씨줄과 날줄을 잘 엮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785만남을 구상했더니, 함칠성 조직위원장이 덥석 받아 집행했단 것이다. 기획과 집행의 변죽이 척척 맞았고, 시작을 잘해서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의 뿌리
누군가 씨를 뿌렸기에 85들이 6월 민주항쟁을 조직했을 것이다. 주인공은 민청학련 세대인 78들이었다. 심지어 77학번인 김성원 선배까지 자리를 같이 했다. 외대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78들이 씨를 뿌리고 85가 꽃을 피워냈던 것이다. 언뜻 하는 몇 마디에 내공이 느껴졌단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 785만남을 시작하며 참가자들 >
* 78학번 참가자 : 임창수, 김창기, 조인영, 이병호, 이영호(불어과) + 김성원(77학번)
* 85학번 참가자 : 이해웅, 강민신, 이수진, 이선민, 고안경, 최기영, 함칠성, 김동규, 오주봉, 김상범, 장은영
대중과 함께
78들은 엄혹한 유신독재 속에서도 80년 ‘서울의 봄’을 일궈냈다. 85들은 전두환 군부독재를 물리친 ‘6월 항쟁’을 조직했다. 785가 가진 공통의 경험은 ‘대중과 함께’였다. 대중노선은 85학번이 체화하고 구현한 것이었지만, 대중 속으로 들어가려던 치열함은 78들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잘 이끌어주고 잘 풀어왔다. 더욱 더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민주의 함성
785들은 광장에서, 지역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민주의 함성으로 광장에서 만나고 있다. 외민동이라는 큰 터울에서 만나 불의에 항거하는 광장의 일원이 되고 있다. 이젠 외민동 깃발이 낯설지 않으며, 학번 간 교류를 통해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아마도 김창기 선배와 함칠성 조직위원장이 기획한 의도가 이것이었을 것이다. 학번 간 교류가 단순히 친해지는 것을 넘어, 민주화의 의지와 염원을 더욱 단단히 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일 테다.
현장에서 미래를
나는 오랜만에 상념과 추억에 젖었다. 각오와 결심도 새로이 했다. 외민동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으며 내가 현장 속에서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개척하려면 무엇보다 주체가 튼튼해야 한다. 그리고 질서와 체계를 정연히 해야 한다. 나아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봐야 한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고, 사람의 각오와 결단에 의해 일의 성공과 실패가 결판난다. 785 만남은 내게 또 다른 숙제를 주었다.
김창기 선배와 함칠성 동지에게 감사를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