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어과 89학번
일시 : 2024년 9월 28일(토)~29일(일)
장소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로 223 DMZ Stay 게스트하우스
참석자 : 회원 27명 + 가족 5명
우리의 길로 나서다
한적한 주말의 오후, 우리는 파주로 향하지 않았다. 우리의 발길은 시청으로 향했다. 시청 앞은 전혀 한적하지 않았다. 평화로워야할 우리들의 주말 오후는 누군가들로 하여 빼앗겼다. 가야할 곳을 바로 가지 못하고 돌아가게 하는 자들이 우리의 소중한 일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수많은 깃발과 사람들, 그 큰 대로는 메워지고 물결이 되어 흘렀다. 함성이 울렸다.
사익私益을 위해 공익公益을 밟는 자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하늘 아래 그냥 주어지는 것들이 있을까. 소중한 것들일수록 그것을 허락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인가를 내어주어야 한다. 땀과 눈물, 피를 대가로 그리고 한 번 뿐인 삶을 희생한 이들로 인하여 우리는 이 소중한 시대를 허락 받았다. 하여 우리는 감히 이를 밟는 자에게 분노한다. 거대한 물결과 함성은 용산 어귀에서 막혔다. 허나 그들은 알 것이다, 그들보다 더 강했던 자들도 우리를 막지 못했음을. 그날 우리는 거기까지 갔지만 다음은 한 발작 더 갈 것이고 마침내 해일이 되어 이를 것이다.
이제야 갈 길로 접어들었다. 파주로 가는 길은 어느덧 어슴푸레 하루의 반을 내어주고 있었다. 다시 노여움이 일었다. 우리를 돌아가게 만든 자들. 파주 들녘의 바람이 다행히 나를 위로하고 달래주었다. 저녁상은 풍요로웠다. 정갈하고 다양하고 넉넉했다. 준비한 이들의 수고가 보는 것만으로도 그려지는 자리였다. 진정 풍요로웠던 것은 선배와 후배들의 정겨움이었다. 한 순배 돈 술잔에 한 주를 보낸 고됨이 풀리고 알찬 끼니는 허기를 쫓아내 모두를 여유롭게 하여 본래 두터운 우리의 정을 더욱 돋우어 주었다.
이제 가고자 했던 자리에 모두 모였다. 윤설현 동문의 게스트하우스, DMZ Stay. 반가운 곳이지만 이름에 새겨진 ‘DMZ’는 다들 말은 안 해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둘러앉았다. 누구는 워크샵이라 쓰고 야유회라 읽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우리는 자리를 잡자 올 것이 왔다는 기대의 눈망울들이 커졌다.
외민동이 온 길. 3년은 짧지만 그 무거움은 산이 되었다.
모두는 함께 이룬 이 산에 감격하고 감동했다. 우리 스스로가 놀랐다. 우리가 다시 모인 것에 놀라고 해낸 것에 놀랐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룬 것들은 우리 모두가 했지만 누군가는 더 큰 노고를 더 큰 헌신을 했기에 그 대가로 허락받은 것임을 모두는 인정했고 그 자리에서 감사했다.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돌이킨 시간들을 함께 보며 우리는 더 큰 욕심을 내었다. ‘우리 외민동은 무엇인가.’ 진지한 화두가 던져졌다. 왜 모르겠는가. 모두는 알고 있다. 그 결이 서로에게 공감되기에 색은 다르게 칠해도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서로의 색이 작게 달라도 크게 달라도 마주한 이들에게 귀 기울여 주고 자신의 마음을 진지하게 토로한다. 그 모든 색이 어우러지면 더욱 아름다운 그림이 될 것이다.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만이 낼 수 있는 울림이 파동이 되어 심장을 울렸다. 외민동은 그 순간에도 더 큰 산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눈은 울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울고 있었다.
이어서 넷으로 나뉜 토의는 길어졌다.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은 더디 가는 시간과 내 차례가 돌아오는 것을 저어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네 곳에서 넘치는 이야기들로 게스트하우스는 밤을 쫓아내고 있었다.
다시 모이자 가져온 이야기들은 이제는 밤을 넘어 내일로 가야될 듯 넘치고 넘쳤다. 모두는 담고 있던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이제야 주어진 시간에 성이 난 듯 때를 놓치지 않으려 아우성 쳤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니, 깨달았다, 우리는 공통의 하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같은 하나를 사랑하면 그 하나에 내가 선택 받고자, 나 하나만 차지하고자 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다만 하나이기에 더욱 소중히 하고 더더욱 같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외민동’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의 색을 모아 아름다운 색을 빚어가고 있었다.
선을 넘기 위해 선으로 가다
누군가는 아쉽지만 내리는 눈꺼풀을 올릴 힘이 모자라 잠을 얻으러 가고 누군가는 남은 힘을 모아 이야기를 마저 꺼낸다.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침 볕이 느껴지고 부지런한 이들은 벌써 남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상쾌한 피로를 안고 반구정으로 걸었다. 반구정 앞 임진강은 그때와 다름없이 흐르고 있었다. 임진강변에서 보낸 군 생활 2년 반이 되도록 내가 보았던 임진강은 너무나 변함없이 흘러서 속절없는 세월이 미웠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선인들의 마음을 이제서야 고스란히 알 것 같다.
달라진 것은 임진강을 가르며 개성으로 가는 송전탑. 다시 막힌 길은 사람이 오갈 수 없지만 송전탑의 전선은 여태 이어져 있었다. 희망은 이어져 있으니 당신들만 오가면 된다는 증거가 되어 있었다.
반구정 너머 장단반도에는 포성이 멎었다 하였다. 포병 관측병으로 보낸 시절, 갈린 땅의 바로 아래 자리한 장단반도는 포사격 훈련의 표적지가 되어 무수한 포탄을,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그곳에 표적을 잡고 포탄을 날리라 지휘하는 심정은 참혹했었다.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장단반도에 포탄이 떨어진다. 나는 왜 우리의 반이 살고 있는 바로 앞에 하물며 소총도 아니고 대포를 쏘아대고 있는가. 나는 왜 분단된 이 땅에 다시 상처를 내고 있는가. 반구정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때의 아픈 마음을 다는 달래주지 못하였다.
윤설현 동문이 안내했다, 이곳은 본래 많은 정자들이 임진강을 따라 이어서 있었고 많은 선비들이 배움에 힘쓰고 토론하던 곳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남북을 접한 지리적 위치로 민감한 논의들이 사라진 침묵의 땅이 되었다고, 수많은 아름다운 정자들이 포탄에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아픈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임진강역과 외민동 평화농장을 거쳤다. 민통선 넘어 점심을 들러 가는 길은 국경을 넘는 길과 같았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끼니 한 번을 챙기기 위해 국경 아닌 국경을 넘었다. 군인들은 건조했고 우리는 긴장했다. 남의 나라를 넘어도 이리 삼업하지는 않건만 우리 땅의 선 하나를 넘는 것이 더 삼엄한 오늘.
슬픔은 다만 굉장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삶속에서 지나가는 낯설은 경험이 의미가 없을 때, 헛되었을 때 우리는 슬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점심 한끼를 먹으러 가는 길이 슬펐다. 포탄이 떨어지던 장단반도에서 난 콩은 두부정식이 되어 다행히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이어진 도라산평화공원. 평화공원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곳에서 보아달라고 하는 것들은 평화롭지 않았다. 한국전쟁과 전후의 사진들, 파편에 깨지고 총알에 구멍 난 철모······. 아직 기운이 남은 늦은 여름의 햇볕은 오늘 이 땅의 현실을 잊지 말라고 뜨겁게 우리를 내리쏘았다.
만나면 늘 반갑지만 헤어짐은 늘 마음을 저민다. 우리는 하룻밤을 같이 하며 저어놓은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눈빛으로 위로를 주고받는다. 잠시의 시간, 마음이 다 가라앉기 전에 만날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헤어질 수 있다.
다시 볼 수 없는 이를 기다리는 것은 슬픔이지만, 볼 수 있는 보고픈 이를 그리는 것은 행복이기에 우리는 지금도 기다리고 또 만날 것이다.
분단의 땅 파주에서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