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한 기억 저편에 작은 학교, 큰 마음이 있었다. 각자의 다른 이유로 청춘을 불태웠지. 어떤 이는 유신의 서슬퍼런 치하에서, 어떤 이는 6월 항쟁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또 어떤 이는 통일 투쟁의 길목에서…
5.18 광주 순례길
각자의 추억을 되새기며 아름답기만 한 인생을 노래할 줄 알았지.
거꾸로 가는 세상을 만났다. 전사적 투쟁을 하던 학생운동, 제 분야의 투쟁을 주도하던 노동운동, 촛불의 씨앗이 되었던 시민단체도 모두 시들해졌다. 40여 년을 아우르는 우리 외민동이 나설 일이 많아졌음이다.
“이제 와서 생뚱맞게 무슨 외민동이야?”
이리 생각하는 동문들이 많다. 그렇다, 생뚱맞고 별나지 않으면 이 퇴보하는 세상에서 어찌 살 수 있겠나? 각자 도생의 길에서 우리는 각자가 아니라 같이하는 기치를 앞세운다. 빠듯한 일용할 양식을 다른 이를 위해 덜어낸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사는 우리가 요구되는 시대다. 접촉을 반복하고 설득하며 지내온 지난 2년의 기간이 결코 순탄하지도, 허허롭지도 않았다. 네 차례의 제주방문, 대구, 부산, 동해, 화천과 경기도 일원을 순회하는 고단한 일정도 있었다. 어떤 선배는 8번째 만남에서 가입을 허락한 사례도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몇 차례의 만남을 통해 공들였던 동문이 결국 가입을 거절할 때와 제 전화를 차단한 후배를 접할 때 절망했더랬다. 하지만 다수의 동문들이 힘과 용기를 주며 선뜻 가입해 준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400 회원 돌파는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갈 또 다른 에너지가 된다.
전민동회원과 함께 순창 회문산 탐방
이제 조만간 500 회원 시대를 맞이한다. 이제부터는 모든 회원이 1000명 시대를 열어갈 조직화 사업의 일꾼이다. 외민동의 조직화는 꼭 신입회원을 가입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외민동 행사에 적극 참여하거나 지지를 보내는 일, 단톡에 댓글을 열심히 달거나 애정 표현을 하는 일, 그리고 주변 동문들에게 외민동을 자랑하는 일까지 모든 것이 조직화 사업이지. 민주동문회는 60대가 주력이다. 고령화시대에 뒷전에서 응원하는 박수부대는 80대부터이고 6,70대 많은 일꾼들이 중심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도 조직사업이다.
훈훈한 동문탐방 - 장흥
전국의 어느 대학 동문회도 이리 빠른 조직확대를 이룬 사례는 없다.
그간 각방으로 노력해 주신 동문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다시 힘을 모아 전진해 갈 때다.
외민동이 자랑스럽다. 동문들과 함께하는 삶이 행복하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사회 제 분야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그날까지 외민동은 뚜벅뚜벅 전진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