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바꾸는 건강한 연대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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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남

부회장(서반아어과 83학번)

아고…. 왜 이리 덥냐. 타 죽을 것 같네. 리모컨이 어디 있더라.

탄소배출을 줄이는 일이라면 나름 두 팔 걷어 부치고 실천하려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계속되는 폭염 앞에서 이렇게 맥없이 무너질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장기폭염입니다.

추석연휴 내내 33도를 웃도는 무더위 앞에 지난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입추가 무색하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 저를 이렇게 맥없이 만드는 듣보잡의 숨막힐 듯한 무더위조차도 멈추게 할 수 없었던 세 가지가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트를 깔고 성찰과 발원의 백팔배와 호흡과 명상을 짧게 합니다. 그 후 배드민턴 채를 넣은 배낭을 메고 집 앞 백련산을 오릅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이리저리 코트를 뛰어다니다 보면 이내 온 몸은 땀범벅. 높은 습도도 열대야도 이 필요와 재미 앞에서는 맥을 못 춥니다. 가진 것이 몸뚱이뿐이니 이것을 지켜내는 것이 제겐 최우선 과제이자 일상의 즐거움입니다.

두 번째는 마을의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모여 만든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으로 출근하는 일입니다. 지역의 주민조직이 뿌리내리는 건 참 더디기만 합니다. 마을살이 일상과 공동체조직은 때론 경계 없이 교차하며 쉼 없이 돌아갑니다. 비영리의 본질을 갖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지만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힘들어도 만들어가야 하는 당위성을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등 떠민 이 없고 선택해서 가고 있는 삶이니 물밑 쉼 없이 발을 움직이는 우아한 백조 같은 상황이어도 본질은 즐거움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는 바로 외대민주동문회라는 또 다른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야 말로 폭염도 불사한 돌진만이 있는 무시무시한 조직입니다. 사과꽃과 복사꽃 만발한 아름다운 청풍호 따라 제천으로. 흙이 살아 있는 농사를 고집하는 붉실사과농장주 동문을 만났던 4월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 만남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뒤풀이 모임까지 이어졌지요.

내리쬐는 남도의 햇빛이 뜨거웠던 5.18 광주와 순창탐방, 멋진 잔디정원이 있는 사옥마당에 초대받은 5월의 동문탐방,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당장 멈추라 외쳤던 기자회견과 거리집회의 6월, 물먹은 하마처럼 무겁고 끈적거렸던 7월에는 70년대 선배님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외민동의 뿌리를 찾아보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어 고양여성민우회의 27년 역사와 동문활동가의 깊은 삶을 들여다보고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894년 최후의 항전으로 쓰러져간 이름 모를 동학농민혁명가들의 무덤가에서 가슴 먹먹했던 남도 끝 장흥역사탐방은 뜨거운 8월에도 멈춤 없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외민동의 동문들을 만날 때도 똑같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궤적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꾹꾹 눌러놨던 뜨거운 열망이 느껴집니다.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자의 몫을 최선을 다해 헤쳐 온 삶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늘 놀랄 일입니다만, 상근자 있는 웬만한 규모 있는 조직도 이보다 더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발적인 참여는 기본이고, 품과 재능뿐 아니라 돈까지, 갖고 있는 자원들을 아낌없이 내놓는 통 큰 씀씀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열심인 동문회원들께 묻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외민동에 진심인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물이고, 그 여러 사람 중에 저 역시 한 사람인지라 저 스스로에게도 묻곤 합니다. 도대체 그 진심의 원동력은 무엇이고 외민동에 거는 기대는 무엇일까? 외민동 회원들은 청년기에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었고,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우리가 외민동 깃발 아래 모여야 할 이유를 발견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대학 이후 각자의 처지와 필요에 따라 살아 온 삶의 여정은 다르지만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한국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데 기여하는 집단이길 희망합니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뿐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실천까지 여러 일상의 작은 내 모습을 변화시키는 실천적인 영향을 주는 집단이어야 합니다. 또한 학연이라는 집단성이 갖기 쉬운 기득권과 폐해를 넘어서 용기와 지지가 필요한 다양한 집단과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연대할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로서 외민동이 존재하길 바랍니다.

내 자신에게 다른 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외민동이면 좋겠습니다.

“ 외민동 모임은 언제나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여서 기분이 참 좋아.”

“ 혼자의 힘은 미력하지만 외민동은 거대한 힘으로 바꿔줘서 든든하고 긍지가 느껴져.”

 

2024년 9월 30일